남문의 시간
『축복의 시작은 축복의 언어로부터』
창세기 11:9. 486, 488장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이 나옵니다. 시날 평지로 이동한 이들은 그곳에서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바벨탑을 쌓았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끝이 나고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선물로 주시며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벨탑을 쌓던 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믿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폭풍 속을 걸어도, 어둠의 긴 터널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질병의 고통, 죽음의 두려움, 그 어떤 좌절 속에서도 하나님을 깊이 신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두 번째 바벨탑을 쌓은 이유는 하늘에 닿아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벨이라는 이름은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신들이 출입하는 문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바벨탑을 사용하는 인간들 스스로 신이 되어 이름을 날리고 영광을 차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들은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니므롯과 같이 전쟁하고 정복하고 군림하는 이들을 말할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탑을 만드는데 동원된 이들은 애굽의 히브리들과 같은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셨을까요? 그래서 바벨탑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 인생을 집을 짓는 것에 비교하였습니다. 우리가 짓는 집이 바벨탑과 같이 내 자아를 뽐내고 내 이름을 높이는 것이라면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큰 홍수가 날 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인생의 집은 말씀 위에 지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집을 지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내 인생, 우리 가정, 내가 일하는 곳, 이 모든 곳이 거룩한 성전이 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바벨탑 이후 이들의 언어가 바뀌었습니다.
스스로 이름을 날리고 누군가를 정복하고 군림하며 이들의 언어는 부정적인 언어, 절망의 언어, 저주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주신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지만, 바벨탑 이후 하나님을 들어내는 언어가 아니라 자신을 뽐내는 언어, 그러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저주하는 언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모두 바벨탑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입술로 저주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축복의 언어,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축복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축복으로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삶의 적용 : 나의 입술은 어떤 입술입니까?
마무리기도
저주의 입술이 아니라 축복의 입술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