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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메시지480(설166) 오네시모의 죄를 용납하라
“8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9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저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빌레몬 1:8-18)
서론: 성경 빌레몬서(書)는 바울 사도가 ‘오네시모’란 종(노예)을 구원하기 위해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로 있던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서신입니다. 바울 사도가 빌레몬에게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와, 동역자와(빌레몬 1:1), 네 집에 있는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빌레몬 1:2). 빌레몬은 바울 사도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종을 거느릴 정도로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으며 성도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빌레몬 1:1-2, 골로새 4:9).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란 종이 있었는데 빌레몬의 돈을 훔쳐 도망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로마에서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나 바울 사도의 충성된 일군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바울 사도께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용서하고 받아달라고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오네시모의 죄를 용납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8절에서 9절에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레몬은 바울 사도의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신앙의 스승과 영적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바울 사도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지 않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달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13-14,절에서도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 싶지만 네 승낙이 없이는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너의 선한 일이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네시모가 너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 싶지만 네 승낙이 없이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전도만 잘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분 좋게 사용하실 줄도 아셨습니다. 교회의 권위와 교회의 법은 영적입니다. 교회의 법은 강제력과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법과 권위는 영적이기 때문에 교회와 교회지도자는 영적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권위를 어떻게 얻느냐? 진실하고 정의롭고 겸손하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지도자는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억지로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바울 사도처럼 겸손하게 부탁하고 호소해야합니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엇을 지시할 때도 아랫사람이 굴욕감을 갖지 않도록 지혜롭게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지 않고 부탁하고 호소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일도 호소하고 부탁하는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교회는 무익한 사람을 변화시켜 유익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12절). 전에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무익했지만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돌려보낸다는 말씀입니다. 오네시모(헬, Ὀνήσιμος 오네시모스)란 이름은 ‘유익한’과 ‘도움이 되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유익한 종이 되지 못하고 손해만 끼친 무익한 종이었습니다. 오네시모가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한 오네시모가 로마에서 바울 사도를 만나 예수를 영접한 후 새 사람이 되고 유익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2:17). 기독교는 의인을 구원하는 종교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는 종교이며 죄인을 구원해서 의인으로 만드는 종교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 죄를 범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옛날 중국 양(梁)나라의 혜왕(惠王)이 맹자(孟子)에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지 정사(政事)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왕에게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의 고사를 말했습니다. 전쟁에서 어떤 병사는 오십보를 도망하고 어떤 병사는 백보를 도망했을 때 오십보를 도망한 사람이나 백보를 도망한 사람이나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입니다. 오십보를 도망하거나 백보를 도망하거나 도망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오십보 도망한 사람이 백보 도망한 사람을 비난하고 꾸짖을 수 있을까요? 의인과 죄인의 차이는 오십보백보입니다. 별 차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은 죄를 안 짓습니까? 진짜 죄인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고 하나님께 회개해서 구원받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의 죄를 묵인하거나 덮어주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의 죄를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도망자와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 죄인 오네시모를 변화시켜 무익한 인간을 유익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 1:15). 바울 사도는 죄인을 보면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남다른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의 괴수도 용서받고 구원받았는데 하나님께 회개해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고 구원받지 못할 죄인은 없다고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무익한 인간을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용서와 희생과 거룩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공짜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 수 없습니다.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오네시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빌레몬입니다. 왜냐하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의 신분은 하인이나 종이 아니라 노예(奴隸)입니다. 옛날 로마제국에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소나 말이나 농기구처럼 주인의 재산이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생사를 포함한 노예의 운명은 전적으로 주인의 뜻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주인은 노예를 죽일 수도 있었고 살릴 수도 있었으며 자유인으로 방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노예가 병이 들거나 늙어서 일을 하지 못하면 주인은 노예를 광장에 내다 버렸습니다. 광장에 버려진 늙고 병든 노예는 추위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갔습니다. 또한 노예가 일을 하다 실수로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노예는 채찍으로 맞아 불구가 되거나 심한 경우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도 아프리카에서 붙잡혀온 흑인 노예들의 피땀 위에 건설됐는데 노예가 도망하다 붙잡히면 빨갛게 불에 단 인두로 이마에 도망자, 퓨저티브(Fugitive)의 첫 자인 F(에프)자의 낙인을 찍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이기 때문에 오네시모의 생사는 빌레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오네시모를 구원하기 위해 빌레몬에게 얼마나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지 본문 말씀을 읽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9-10,절에서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혀 있는 이 늙은이의 부탁을 들어달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11절에서는 “오네시모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너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시고 15절에서는 “오네시모가 잠시 그대를 떠난 것은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계셔서 그렇게 되었으니 오네시모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이제부터는 그를 종으로 여기지 말고 형제로 받아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예와 종의 신분에서 형제로 바뀌었습니다. 17절에서는 “네가 나를 동역자로 여긴다면 나를 영접하듯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이 상전을 영접하듯 오네시모를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인과 종이 바뀌었습니다. 18절에서는 “오네시모가 그대에게 손해를 끼쳤거나 오네시모가 빚진 것이 있으면 나에게 청구하라 내가 갚아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에서는 “내가 오네시모의 빚을 반드시 갚아주겠다, 그러나 너도 나에게 복음의 빚을 지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네시모만 빚을 진 것이 아니라 너도 나에게 복음의 빚을 진 채무자라는 말씀입니다. 20절에서는 “형제여 내가 오네시모의 일로 주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잘 받아들여서 내가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나는 그대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며 내가 말한 것 이상으로 행할 줄을 믿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것 이상으로 오네시모를 잘 대해달라고 반복해서 호소하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사랑, 구제, 용서, 선행과 같은 일은 나의 희생과 수고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거룩한 희생과 대가가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만약 오네시모가 너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내가 갚아줄 테니 나에게 청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처럼 고난에 처한 형제와 이웃이 있으면 대신 갚아주고 “내가 갚아줄 테니 나에게 계산하고 나에게 청구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고난에 처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거룩한 희생과 용서와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 빌레몬에게 돌아간 오네시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한 후 계속 ‘골로새’에 머물면서 자신을 섬기게 했느냐? 아니면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한 후 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를 섬기도록 로마로 보냈느냐?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로마의 감옥으로 보내 바울 사도를 계속 섬기도록 배려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약 50여 년 후 이그나티우스(Ignatius)라는 초대교회의 순교자가 소아시아의(아시아의 서쪽 끝 오늘날 터키공화국)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에베소 교회에 유명한 감독이 있는데 그 이름이 오네시모”라고 말했습니다. 이 오네시모가 바울 사도에 의해 구원받은 빌레몬의 노예 출신 오네시모인지 다른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동일인물이라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네시모를 구원하기 위한 바울 사도의 노력과 빌레몬의 용서로 오네시모가 하나님과 교회의 귀한 그릇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고(마태 18:22)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8:35). 공짜사랑은 없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희생과 용서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부탁하고 호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정당하게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도 호소하고 부탁하는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교회와 성도는 무익한 자를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현재의 연약하고 무능하고 불완전한 모습 보지 마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거듭 날 미래의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성도는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로 변화시켜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용서와 희생과 거룩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빌레몬은 예수님과 바울 사도를 위해 오네시모를 용서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사랑과 은혜를 배신하고 마음 아프게 한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하고 잊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에 비하면 우리의 이웃과 형제가 나에게 범한 죄는 죄라고 할 수도 없는 하찮은 것들입니다. 오네시모의 빚을 나에게 청구하라고 말씀하신 바울 사도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