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고층 아파트 중간층으로 남서향이라 햇볕이 잘 드는 편이다.
광안대교가 있는 쪽에는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 있어 가려서 보이지 않고 불꽃 놀이 때는
공중에서 불꽃이 튈 때만 보인다. 약간 서쪽으로는 크게 가리는 게 없어서 황령산 해넘이도
잘 보이고 그 앞에 나즈막하게 품고 있는 벽산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벽산 중간쯤에는 하얀 구조물이 눈에 띄이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몇달전 민락동 목욕탕 옥천탕에 목욕하러 갔다가 벽산을 넘어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보니 무슨 암자 윗쪽 광장에 세운 관세음보살상이었다. 관세음보살은 관음보살 또는 관자재보살
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관세음보살은 관세음과 보살이 합쳐진 말로 관세음이란 다시 관과 세음이
합처진 말로서 '관'은 '관찰하다'는 뜻이고 '세음'은 '세상의 소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듣고 이를 구제하는 역할을 하는 보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절에 가면 불교의 여자신도들을 보살이라고 부르는데 관세음보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래 보살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va)에서 유래한 말로 깨달음을 구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보살은 자신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의 고통을 그들의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비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또 본래 보살은 깨달음을 이미 얻어 천상
세계에 살며 환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중생을 돕기 위해 일부러 속세에 환생을 자처하는 존재를 부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은 자비와 구제의 상징으로, 중생의 고통을 들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보살로 믿어진다.
중국에서 당송시대 이후 형성된 33변화 관음중 하나인 수월관음의 모습을 도상화한 불화가 수월관음도이다.
일반적으로 수월관음도의 성립은 '역대명화기' 기록에 의거하여 8세기 중후반 활동한 당대의 궁정화가 주방( )이
창안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 당말 5대 돈황에서 제작된 수월관음도들이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 가장 이른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제작된 관세음보살화 대부분이 수월관음도에 속한다.
십여년전 통도사에 일본에서 들여온 고려 수월관음도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그린 작품인데도
색감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관세음보살의 모습은 젊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작품이 너무 커서 1층과 2층에 걸쳐 전시를 해 놓았는데 가까이 서서는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수월관음도 아랫쪽에는 선재동자가 그려져 있었는데, 선재동자는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젊은 구도자의 이름인데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53인의 성인을 찾아갔으며, 마지막으로 만난 보현보살로 진리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에게 배움을 얻는 과정을 도화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