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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꽃 이 되소서 ! 형수님!!
2017년 07월 2일(일요일)
큰 형수님과 이별 하던 날
홍대입구에서 별을 헤이며 막내아우 K O 올림
I.
세상 사는데,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랴 마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안 믿으랴 마는, 더러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도 존재한다. 2017년 06월 29일 목요일 오후 6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의 사무실에서 부터 슬프다 기 보다는 아련한 기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혼자 차안에서도 중얼거림이 집에 까지 이어졌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사무실에 출근 할 때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침회의를 마친 30분 뒤 06월30일 08:56분 장조카님 찬호(金贊鎬)로 부터의 전화가 왔다. 0.5초의 직감이 맞았다.
검~은 눈~동~자~에 맺히는 이슬처럼
이~슬~비 소리 없이 내리던 밤길
서로 가슴깊이 맺히는 이슬처럼
안녕도 못하고 깨물던 입술
아~~ 아~ 아~
그러나 이~슬~비 다시오면
먼 훗날 그리워지는 “파란이별의 글씨”
29일 목요일 7시 퇴근 하면서, 집에 까지, 낮은 톤의 노래를 부르고 들어오니 처가 의아해 했다.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아니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늦은 밤 잠들기 전까지 도 핸드폰의 유튜브(you tube)에도 있는 노래를 그냥 따라서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침 기차 안에서도 작은 소리로 뭘 부르니 옆 사람이 쳐다봄을 한번 느꼈다. 가사와는 별 상관없이 곡조리듬과 마음속이 맞았나 보다. 큰형수님이 이 노래를 아시는지? 좋아 하셨는지? 는 모른다. 가수 문주란의 - “파란이별의 글씨”. 즐겨 부르시던 노래는 “찔레꽃“ 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련다.
향년 92세(범띠)의 형수님과 막내 도련님 K.O 사이에 많은 이별의 사연들을 내려 놓으셨나보다. 아마, 이틀 12시간 동안에 많은 사연의 정을 서로 되돌아보고 있었나 보다. 텔레파시(telepathy-심신의 파장)로 대화를 대신 하셨나 보다. 아님 이유 없이 그 시간 동안에, 12시간여동안 한 가지 노래를 부를 수 가 있을까? 큰형수님과 의호조카는 막내아우KO의 결혼 중신애비 였었는데..
문득 현재(at present status of me)의 나를 바라다본다.
누구는,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싶지 않고, 공부 잘 하고 싶지 않고, 누구는 고루 예쁘게 태어나고 싶지 않으랴! 마는 그러하지 못한 것, 아니한 것이 현실이다. 궂은 환경을 헤쳐나가는 방법중 하나는 각자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철 (Do it now rightly)이 때때로 들어야 한다. 있는 상태 (Just be-자기위치마다)에서.
가끔 얘기 하지만, 쌍놈이 어디 있고? 양반님이 어디 있으랴! 마는, 오늘날 바름(正)으로 사는것이 양반님이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양반님이고, 어차피 맺어진 인간관계를 잘 이끌며, 혹 잘 못 맺었다해도 잘 풀어가는 사람이 양반님인 것이라 생각 하며 실천한다. 모순矛盾도 순리順理대로 안고..
II.
7월1일 당진 장례식장의 복도에 서있는 50여개의 조화弔花들을 보니, 문득 옛날 장례(장사) 풍습이었던 것 중 만장(輓章 애도할만 글장) 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만장이라 함은 “죽은자를 슬픔 속에 기리기 위해 싯귀나 글귀를 한지 종이위에 쓰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천위에 쓴다. 좀 있는 분은 비단에 금사(노란 황금 가루)로 글씨를 쓰고, 주사(붉은 가루)로 쓰기도 한다. 대부분 2M로 길이로 천을 만들어서 먹물 붓으로 써서 대나무에 매달아 지붕근처에 세워 걸었다가 장삿날 아이들과 청년들이 들고 상여 뒤를 따라가게 하였던 것이 명정銘旌 뒤의 만장輓章이다.
도~환~이 자네 내말 들리나?. 이렇게 혀봐요! 남-산-에-솔-방-울-이-, 떽-떼-구-르-르-르-르
다 시 한 번, 남-산-에-솔-방-울-이-, 떽-떼-구-르-르-르-르
밤 10시에 모셔 오신 유째골에 사시는 완수 할아버님의 간절한 목소리를 따라서 아버님은 혀를 굴리시려고 애를 쓰셨다. 그러나 떽~ 데~ 데- 데..- 만 하셨다 두어번...
피가 안 나와요! 피가! 솟구쳐야 허는디! 언어장애와 중풍을 막아야 하는데.. 뇌 안에서 터졌어요! 아버님 머리의 정수백이에 연신 굵은 침을 내리 꽂으시면서 어두운 촛불 아래에서 애를 쓰셨다. 침쟁이 할아버님은... 그리고 새벽 2시에 멀리 십리(4km) 밖의 풍년동(사기소리 동산)의 아버님 친구이신 승환 할아버지가 지으신 한약을 아버님은 끝내 못드셨다. 아니 안드셨다.
도환이! 이제는 이약을 드셔야 혀! 입좀 벌리게나...! 침쟁이 완수 할아버님은 애절하면서도 침착 하셨다. 친구를 살리시려고.. 그리고는 대강 알고 계셨다.
어허! 자네 도환이! 산사람들 여럿 살리고 가시는군..!.( 의역: 약을 드시고 가시면 우리들이 한약을 원망 하며 친구 한약방에 시비를 걸까봐).
뇌일혈 (腦溢血- 뇌졸중- 동맥경화증으로 인해 뇌동맥이 터져서 뇌 속에 출혈하는 병증.) 의 증세는 저녁식사 반주 후 7시간 만에 모두를 슬프게 했다. 1961년 음력 9월15일 새벽 4시 모두들 울었다. 막내 KO도 지켜보았었다. 모두들..
1961년 가을 음력 9월 17일, 하늘로 가시는 아버님의 상여 뒤에도 만장이 뒤 따랐었다. 34장이라고 놀래면서 자꾸 세던(counting) 동네 청년들의 표정을 보고서, 무엇인지 모르던 막내도 어린아이로서 좋아 했다.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 전직 군수님의 만장숫자와 비슷하다 하며 놀래는 이유를 알 수 있어서 지금도 34장을 외우고 있음이다. 즉 30여명의 청년들이 만장을 들고 장지로 향했다. 만장깃발(천)은 장례 후 대개는 동네 주민들이 가져간다. 좀 께름칙하지만 물자가 모자라던 시절이라 대개는 가져다가 천으로 재사용했다. 아이들 명이 길어지라고 속옷으로 만들어 입혔다. 좀 한자를 쓰던 분은 천에 명정銘旌(내용은 위패와 같음) 과 만장輓章쓰기에 바빳었다.
장례 후, 우리 집의 경우 하얀 광목Cotton으로 천정 까지 둘러친 고현櫜縣(닷집) 이 있었다. 망자의 영정사진 및 혼백 위패를 올려놓는 나무상床의 주위 에는 좋다고 엄선한 만장이 몇 개 걸려 있었다. 어려서 무엇이 쓰여 있나? 들여다 본 것을 되짚어 보려 지금 염사적(念寫的)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불교의 불경의 일부를 적은 것도 보였고, 친구를 그리는 3언절의 시도 보였었다. 아버님의 폭 넒은 교류로 인한 인심과 품격과 사회적 위치를 알았기에, 막내KO는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 많이 접목 하며 도덕을 안고 살았음이다. 참외 와 복숭아 서리를 해보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3차원의 이승 과 4차원의 저승(=이승 + time machine era)이 혼재된 이야기를 하려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공부를 좀 더 하면 알거나 접할 수 있는 우주.지구상에 존재하는 얘기다.
몇 번에 걸쳐서, 음력시월에 어머님의 꿈에 구월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나타 나셨는데, 말이 없으셨다 하셨다. 다음 꿈에는 나타나셔서는 말씀을 하셨단다. “여보! 추워! 다리가 시려!” 동짓달 꿈이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 어머님은 사태말 산소를 다녀오셨는데도 잘못됨을 발견 못하셨단다. 그 후 섣달 삭망(초하루朔 와 보름날望)에 상주가 제사상 앞에서 곡(哭울다)을 하시는데 무엇인가가 발견 되었다. 돈을 덜 준 것도 아닌데 동네 아주머니들의 협력(두레-품앗이)으로 만들어서 씌워 놓은 것인데 혼백魂魄을 모신 고현상櫜縣床을 둘러 싼 광목천(Cotton)과 4개 주련(柱聯길다란)의 길이가 아래 방바닥 까지 내려오지 않아 짧은치마 모양 상다리가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님은 다음 5일장에서 광목을 사다가 앉은뱅이 재봉틀로 둘둘 이어 박아서 다시 고현상에 둘러 드렸다. 그후 아버님은 정월 어느 날 밤 꿈에 다시 나타나셔서 말없이 미소로 대신 하셨다 했다.
우주의 법칙은 미신이 아니다. 과학(科學) 과 종교(宗敎)는 일종의 우주코끼리의 다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을 네 것이다! 내 것이다! 내종교가 맞다! 네가 틀리다! 라고 다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떻게 식물이 물을 먹고서 밤사이 각종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는 것은 무엇인가? 뱀은 물을 먹고 독을 만들고 식물은 물을 먹고 꿀을 만든다. 꿀 공장이 어디 있고 독 공장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보이지 않는것이니 미신 아닌가? 만물이 생장生長 하려면 우주 창생의 법칙중 하나인 화생(materialization, 化될화)을 즉시즉시 인간의 생각 포함 행(行될化)하고 있는 것이다.
즉, 1 胎-동물사람은 태. 2 卵-닭과 조류는 알 란. 3 濕-모기와 개구리 같은 습지의 생물은 습. 4 化-화학적 혹은 생물학적으로 순간적으로 또는 장시간 동안 알지 못하게 생성되는 것이 화다.
태.란.습.화.를 통해서 생성되어 지.수.화.풍.공.식-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 빈공간空, 언어와앎識 이라는 각각의 위치적 임무를 마치고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가는 윤회 metempsychosis, transmigration속에 있음이 우주의 생존법칙이다.
즉, 화학化學시간의 환원還元과 치환置換의 법칙, 즉 질량 불변의 법칙 質量不變法則...
인간으로 태어남을 자경自敬해야 하며, 이미 인과因果로 가족으로 태어났으니 나중에라도 철이 들어서 가족이 나에게 못했다 해도, 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볼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서운함을 오래 가지고 있거나 과거에 젖으면 마음이 가난해 진다. 마음의 거지가 되련다. 공짜는 빚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론적 증명을 뒷받침 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무엇이든지 하나의 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모든 것은 계속된다. 돈다. 물질불멸의 법칙-law of indestructribility of matter과 인연법등이다. 줄이자! 많이 얘기하면 머리 아픈 사람들이 있다.
법法 의 한자를 파자 해보면 삼수氵변 즉 물수 水 변에 갈 거去 란다. 즉 물흐르듯이 가는게 법이라 한다. 그것을 인간들이 글자로 성문법 成文法을 만들어 놓고서 지킨다 안지킨다 야단들이다.
III.
아버님이 살아 계신 줄 알고서 사후 5년 뒤에 찾아오셨던 거지 차림의 장(張氏)노인도 생각났다. 벗을 잃었음을 몹시 슬퍼하면서 오랫동안 우시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며칠 숙식을 하시면서 밀짚방석을 두어개 짜주시고 가시는 동안, 매일 읽으시던 어깨에 메는 바랑속의 책들이 생각났다. 장화홍련전도 있었고, 사서삼경 중 대학 중용 이라는 책도 보여 주고 읽어 주셨다. 5학년 아이가 여름밤 이야기 벗을 해드리니 반가워하시고 기특해 하셨다. 무엇을 여쭈시면 아주 재미있게 답을 해주시었는데, 지금 비교해보면 고승의 법문 같은 짧고 명료한 이야기 이었다. 식사보다 막걸리 한 대접을 원하셨었다. 시조도 읊어 주셨었다. 무뚝뚝하고 무서우셨는데도 아이막내KO는 부정(父情-아버지의 정)을 대신해 주니 좋았었나보다. 시조도 악보가 있구나? 처음 보니 신기 하였다. 즉 오선지위의 콩나물대가리 같은 음표 기능 대신이었다. 긴 두루마리의 한지중간에 길게 한 줄을 미리 그어 놓은 빈 것도 있었고, 대개는 그냥 백지에 상하 곡선을 이어서 高低높낮이와 長短길고짧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병원의 오스실로스코프 모니터의 sine curve 정현파 같았다. 5음계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는 아- 이- 우- 에- 오- 같았다.
청~ 산~~ 리~~~ 벽 ~ 계~~ 수~ 야~~~,
수 ~~ 이~ 감~~~을~~ 자~~랑~~ 말~아 (마라)~~
금강산에는 “무엇이 있나유?” 5학년 12살 아이는 많이 여쭈었다. “유점사 가 있지! 큰 절이야! 사명 대사가 머물던 곳이야! 마의태자가 머물던 곳이다.” “이북의 원산은 왜 가셨나유?” “음! 지금이 아니고 50여 년 전 일제시대(1915여년) 때 철도용 굴窟을 파러 다녔지!” 기차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전파 하셨는데 막내KO는 아직 기차를 보기 전(1964년) 이라 잘 몰라도 열심히 들었다. “일제 때 철도용 굴을 많이 팠어요! 많이..!” 1900여년 정도 출생 하셨던 바랑할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하셨다했다. 천체天體를 설명 하시는데 四書三經을 공부 하다보면 알게 된다 하셨다. 그래서 저의 아버님(1911.11.1일)과 친구 겸 벗을 하며 사서삼경을 논하셨다 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장 씨 집안에는 아들이 없이 대가 끊긴 모양 이셨다. 알고 보니 그분이 김기영과 김태흥 형님들의 외조부 장 씨 어른이시었다.
이분 말고, 아버님 사후 5년 사이에 아버님이 생존해 계신 줄 알고서 벗을 찾아오신 일곱분을 더 만났었다. 더러는 돌아가신 줄 알면서도 오셨었다. 어느 분은 경주 김가 종씨임을 내세우며 하룻밤 자더니 기헌형님을 취직 시켜준다고 서울로 같이 가던 중 천안에서 형을 두고 사라졌었다. 형이 차비뿐이 없으니 사기 칠 게 없어서...
3대독자 아들을 잃은 후, 1964년 음력 설날 태봉할아버님(1881.11.2. 신사 뱀)은 현재 종중 묘가 있는 사태말 선영을 향해서 승전목을 지나가시다가 한 말씀 하셨다. “야! 이 늠들아?” 네! “저기 저 논을 증조 해래비인 내가 세 번 샀다”. 할아버지! 논을 한번 사셨어야쥬! 왜? 세 번 사셨슈? 말이 없으셨다. 한동안. 그리고는 "학교옆 춘심(酒母)이네 주막집 거기에다 두 번이나 잽혀서...니 애비가! 대장부 할배는 무엇을 가슴속에 담고 계셨다. 애비 잃은 아들KO나 아들 잃은 할배에게도 그리움은 같이 찾아 왔었나보다. 보고픔이...
50여마지기 논의 소유주 부자 할아버님 슬하에 있던 선비/학자/한량 이셨던 아버지께서 친구들에게 베푼 한잔 술 값 이 이유였을 것이다. 아버님은 약주를 좋아 하셨었다. 기준형과 기헌형의 일기장에는 기분이 흐린날이 가끔 적혀 있었다고 하셨다. 아버지! 집으로 가시쥬~~! 가유 집으루~~~! 친구들과 아버지는 안 나오시고 아마다매 사탕 한 알 만 춘심 아줌마의 손에 들려 나왔었다 한다.
1958년도와 1959년도 당진군 당진읍 구룡리 587-2번지 도곡(됫골) 집에는 農閑期 서당이 있었다. 훈장님은 아버님, 도道자 환煥자 도환 스승님 이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옥천(이근천씨형)이라는 ko와 10살 차이나는 형이 있었다. 이형은 뜰 건너 당골에서 아침 일찍 서당으로 등교(登書當등서당)하여 방안 청결 준비를 하는 시늉을 했었다. 하루는 옥천형이 수수비(빗자루)를 들고 왔었다. 옥천 아버님이 교육비/月謝金 대신에 주셨다는 통역(半聾啞이시다)이 가능 했었다.
막내KO는 나중에 1990년경 서울에 살면서 옥천형이 보고 싶어서 고향 친구에게 근황을 물으니, 나중에 옆 동리 사근절로 이사 간 후 안보여서 알아보니 나이 45여세 쯤 자진(自殺)하셨다 고 전해 주었다. 더러의 어른과 더러의 어린 아이들은 놀리기도 하고 반말도 하며 천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당에서는 매일 당번이 돌아가면서 준비하는 것이 있었다. 집 뒤 덤불 사이에 있는 쥐똥나무를 잘라서 회초리 내지 스승님이 책의 글을 짚는 교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학漢學 공부는 읽고 외우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서예 시간에는 신문지를 구해다 그 위에 쓰는 연습을 했다. 비싼 한지에 쓰는 경우는 아주 드문 날 이었다. 미농지 습자지에도 썼다. 어느 과목 책을 다 마친 날에는 누가 돈을 댔는지는 몰라도 떡 시루가 보이고 일명 책시세 (책씻이-글방 에서 학생이 책 한 권을 다 읽어 떼거나 다 베껴 쓰고 난 뒤에 선생과 동료 들에게 한턱내는 일) 를 하곤 했다. 아마 기천형님도 당진고등학교 졸업 후 라 아마 우등생 이었을 것이다. 형수님 발인날 우연히 여쭤보니 동몽선습童蒙先習 까지 공부 했노라 하셨다.
베꼈다. 한학 단계별 순서 : 1. 천자문千字文, 2. 사자소학四子小學, 추구抽句 3. 계몽편啟蒙萹, 학어집學語集, 동몽선습童蒙先習, 격몽요결擊蒙要訣, 3.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효경孝敬, 4. 4서3경-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周易),
아버님은 서당 훈장을 하면서 가장 잘하신 것 중 하나가 옥천 형에게 서당에 와서 글 교육을 같이 받게 하셨던 것으로 생각한다. 편견에서 평등의 기회를 옥천 형에게 주셨다. 공부시간에 따라 읽을 때의 모습에는 인간 최대의 행복함이 보였다. 하교 후 돌아가는 길에도 복습 하는 양 “하늘턴(天) 따디(地) 라고 큰 목소리로 자기를 대변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디 갔다 오냐 하면 어어어.. 어 여디....하면서 어깨에 세로로 질러 맨 책보를 가르쳤다. 큰 주먹으로 훈장 선생님을 표시 했었다. 모든 천시賤視를 대변 항변 했었나보다. 나 공부 하노라고, 철모르고 까부는 어린애들에게 책보속의 천자문을 보여줌은 보배 이었을 것이다. “하는 턴 따디..” 그 뒤는 검을현玄 누루황黃 인데 어떻게 옥천 형은 발음 했었는지 KO는 기억이 안 난다.(이게 기억이 개그인데) “하늘턴 따디.” 외에는 아마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 옥천형은 동네 3부락의 애경사에 개근 참석해 선달 강추추위체도 삼복 더위에도 물을 져 나르는 것부터 해서 하루 종일 궂은일을 도맡아서 솔선수범하던 천사였다.
그러던 중 1961년 가을, 훈장이신 아버님의 작고 시 남들이 옥천이가 울고 있다 하여 나가 보니 옥천 형은 아주 목 놓아서 천둥치듯이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지주같던 스승님과의 이별에…….
생전의 둘째큰형님 석기형님께서는 아버님의 작고로 진로가 바뀌셨다고 이야기 하셨다. 대전의 육군통신학교에서 진급대상 교육을 받고 있는데 동네에서 면회를 왔다기에 나가보니 처음에는 아버지가 위독하다 하더니 자꾸 물으니 동네청년 기천의 전갈은 아버지의 부음 이었다. 영관급으로 진급 하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데 장례 일정과 겹쳐 망설였었다 하셨다. 육군 통신장교 이셨다.
계순누님은 매형 차응만(국군묘지에 안장)과의 1955년 결혼으로 서울 마포구 염리동 148번지에 정착 이후 서대문구 북아현1동에의 정착은 우리 김가의 서울 한양 정착 발전의 시발점이 되었다.
IV
막내KO는 서울로 진학하여 공부를 마치고서 1976년 11월 공군 제대 후, 1977년 1월초에 본가를 들렀더니 장형(큰형님) 용기형님(당진군청과 농촌지도소근무)께서는 나를 따르라 하셨다. 형님은 자전거를 타시고 막내아우KO는 걸었다. 태어나서, 동네 길을 걸으면서 가장 긴 시간의 담소 시간을 둘사이에 가졌었다. “얘가 서울서 공부 잘하더니 취직 했댜! 취직 했댜!” 동네 아저씨들이 잘 들어 주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1시간여의 동생 자랑 로드쇼 가 끝나고 완수네 집 정도로 올라오시면서 “막내야!” 부르셨다. 세상에서 평생 처음 들어보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자전거에서 내리셨다. ‘막내야! 미안 했다!“ “네???” 순간 짐작이 갔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형님이 하신 이야기는, 40년 뒤의 2017년 06월 30일 과 07월01일 에도 더러의 문상객들로 부터 들었다. 큰형수님이 가끔 남기셨다던 이야기와 같았다. 막내 삼촌KO에 관해서 했다던 이야기를 주고 받으셨던 분들이 더러 있었다. 상주 조카들의 이모님들에게도 가끔 하던 이야기였다. 여기에는 쓰지 적지 아니 하련다. 우리 형제들은 신기하게도 한 번도 다툼이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한두마디 세마디 말. 막내ko는 과거에도 매일 행복했고, 지금도 매일 행복 하도록 걸어가고 있다. 팔자대로.. 아니, 팔자를 개척 하면서... 재능 기부, 아는 것을 펼치는 것, 국가든 가족이든 옆집이든 외국인이든 간에 많은 족적을 남기고 있다. 1990년 어느날 자카르타의 “크리스티나 대학”에서 막내KO는 출장 중 강의도 펼쳤는데 학생들 기록이 있다. “한국의 급속 경제와 치맛바람교육의 영향”
어느 선사先師의 말씀을 옮긴다!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나? 사용하다 두고 갈 뿐인데…….”
누가 여쭈었다. “저의 전생이 무엇이었나요? 너의 지금을 봐라! 네?? 그러면 저의 다음 생은 어떻게 무엇이 될 것 인가요? 그것도 지금의 너를 봐라!” 해답은 하나다. 각자의 위치에서 형편을 빨리 이해하고 긍정 하고 때때로 철이 들어 지금을 바로 사는 것이다. 협력 하면서…….
1977년 1월 용기 큰형님과의 멋진 데이트를 마친 후, 서산 기숙 누님 네를 거쳐서 서울에 와서 근무 하고 있는데 15일 뒤에 큰형님의 별세 부음을 접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무엇을 아셨었나? 본인(당신) 스스로 上天 하실 것을 아시고 막내아우와 작별 전 마지막 인사和解?를 하셨었나? 의아 했다. 그렇다면 만약 계속 사셨더라면, 1년여 뒤에는 아우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회사를 빽도 없이 들어가서 빽도 없는데, 한국에서 외국에서 일을 잘해서 상을 많이 받으면서 일을 했었다는 사유를 아셨다면 이번에는 같이 지구를 한 바퀴 도셨을지도..??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가정했다.
큰 형님은 사태말 선영묘에 매장으로 모셨었다. 그런데 2004년 종중 묘 건립 후 형님 매장 묘를 파묘할시 파묘축문도 올려 드린후 파고서 유골을 습골 하는데 쇠가 정강이 뼈 위치에 있었다. 막내ko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1966년이나 1967년 봄방학 때였었다. 어디선가 교통사고가 나셔서 서울 신촌의 서강정형외과에 입원 시 보철 삽입 수술시 넣었던 쇠였다.
V
그런데, 여기에 다 적기는 그러하지만, 형님과의 4차원의 소통 거래에 관해 조금만 적는다.
1983년 가을 막내KO는 저 멀리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의 페카바루주(州)의 두마이(Dumai)라는 면面소재지에서 해외 출장 근무를 4개월째 하던 가을에, 버마에서 전두환 대통령 수행원 랭군 폭발 사고(83,10,09)가 있던 다음날 새벽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큰 형님이 삼신할머니와 함께 산사람이 아닌 저쪽 세계의 돌아가신 어른으로 등장해서 나는 꿈속에서 산사람으로 역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짧은 안부 뒤에 “막내 아우KO야! 너는 지금 서울에 있는 윤OO라는 아가씨와 사귀고 있지?” 아가씨 이름이 정확했다. “네” “어떻게 결혼도 생각 하나?” “예! 약혼 하자고 했는데 조금 뭐 해서 출장 오느라 시간도 촉박 하다고 이유를 대고 미루고 출장 와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결혼 하면 집안이 아니 좋을 듯 한데.....” “네! 실은 저 막내KO도 결혼조건으로 조금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형님도 그렇고 ko 나도 그렇고 된다. 안 된다 둘이 절대 주장도 없고 우기지도 않고 서로 수긍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계신 삼신할머니는 안고 계신 책의 한쪽을 넘기며 가리켰다. 아마 신비한 것을 적은 책 같았다. 한자를 認知 읽는 것은 형님 몫이었다. 아마 이승에서 확인 해보라고 사연 10가지를 하나씩 알려 주셨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 내용을 외우려 적는데 7가지 만 생각나고 3가지는 모르겠었다. 12월 달에 여차 저차해서 싱가포르를 거쳐서 서울 종로의 본사로 돌아왔다. 여자 친구 근무지인 김포공항에서 워커일행 리무진버스 600번을 타고 데이트 하면서 몇 가지 물어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저씨(그때는 오빠라는 단어를 안 쓰고 이 두자매는 나를 장난스레 아저씨라 불렀다)가 무서운데 해외에 있으면서도 우리집 가정사를 조사 했나요?” 하면서 언짢아 하면서도 그래도 질문 중 4가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꿈이 맞았다. 신통했다. 상대에게 꿈 이야기는 안 해 주고 작전만 짰다. 못나게 보이고서 차이자 여자한테!. 해서 차였다. 차인 후 카셑트를 틀어노사연 가수의 “님 그림자”를 6개월을 들었다. 외국의 숙소에서... 보고싶었다.
1. 아마 조상님들이 막내KO를 선택 했었나 보다 생각 하고서, 이때부터 가족 행사 중 조상님을 위한 행사나 일이라면 먼저 솔선 중이다. 태어나기 전 저쪽에 있을 때 과거 업 만큼 대로 내가 택해서 이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니! 김 씨 가문에 태어난 인연因緣의 업業에 보답을 하자!
2. “인화 와 단결”, “화해와 사랑”, “내림과 올림” 은 예수님이 성경에 남긴 말씀과 석가님이 불경에 남긴 이야기로서 모두 같다 여긴다. 나를 내리면 잠시 내려가나 영원히 올라간단다.
3. 모든 조직과 사회와 가정을 이끌어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고 시행착오도 있다. 누구든 살다보면, 공功도 있고 찬讚도 있고 더러는 과過도 있고 오誤도 있다. 남의 허물을 많이 들추지 말자.
4. 인생人生이라는 漢字 중 생生자를 파자破字 해보면 사람인人 변에 소우牛 와 한일一자, 그래서 “인생은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만큼 어렵다고 해서 인생人生 이라고 썼다 한다. 그것도 두사람(人)이 만나서 사는게 힘이 든다 하니...!
5. 남의 좋은 이야기라도, 아직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레벨이 다르면, 들리기는 하되, 가슴에 간직이 안 되고 실천이 안 된다. 나만의 울타리를 치지말자! 멀리서 보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인다. 남이 손가락 질 보내고 거울을 보여주는 데도 본인만 모른다. 지식보다 지혜가 막히면,,,
VI
2017년 07월 02일 큰형수님 발인날, 일요일 아침 7시 반,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손주들과 밤샘을 한 막내KO는 딱 한 시간 의자에 앉아서 숙면을 했다. 앉아서 자는 쪽잠5도숙면 방법으로 자는 것은 국내에서 해외에서 근무중 40년 숙달된 노하우다. 오는 비를 환영 한다. 혹여 발인날 문상 조문객이 오심에 불편하더라도, 요즘 서산 당진의 40여년만의 가뭄으로 아주 곤욕을 치루니 말이다.
12시 쯤 홍성군 금마면 봉서리 117의 화장장을 떠나서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동(리) 사태말 경주 김가 선영 상완(5대조부)계의 종중 묘에서 고 이강희 여사님의 유분함 입실식을 거행 했다.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의 사태말 산에 조성한 경주 김가 종중 묘 이른바 납골묘는 2004년 10월 27일 조성 준공식을 마치고 당일 10기의 기존 묘를 파묘하여 유골을 습골 하여 화장을 하여 유분함(납골함)에 담아서 여법하게 일가친척을 모시고 조상 혼백(魂魄)을 다시 모신 곳이다.
이 종중 묘를 조성하는 데는 이제는 고인이 되신 큰형수님께서 발의 결정 하셨다. 조카들은 석실 준비를 하려 규모와 자재를 벤치마킹 연구차 보령군 석재공장을 방문해 계약 하였다. 이 막내숙부KO는 서울에서 나머지 제례절차 및 파묘축문들을 만들고, 간략 선망조상족보도 석물로 만들었다. 석물에 들어갈 글자문자를 도안하고 보령군의 석재공장도 방문하며 준비하였고, 석물에 글씨를 타공(금석문자 새김은 보령이 유명 하다)으로 새기기 전에 써서 건넨 한자 글씨는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 갈 정도의 서예솜씨를 가진 넷째 기준형이 근서(謹書–써서 받침)하여 종중 묘를 완공 후 여법如法하게 동네 유지와 친지들을 모시고서 선망 조상들을 모셨다.
조금 엉킨 사연이 있었다면, 이 사태말 선영이 있는 동네의 면천면 사기소리 주민들은 무슨 큰 납골 공원이라도 설치되는 줄 알고서 방해 작전을 2주 동안 폈다. 경운기 콤바인 등으로 길을 막고 플래카드를 써 붙이고 방해 하는 것을 의호 조카와 25여명의 가족들의 양동 작전, 1.타협과 2.초저녁에 엔테베(entebe)공습작전 같이 허를 찌르면서 굴착기를 반입하고 석물石物들을 차로 나르면서 별 문제없이 준비했었다. 적당한 금액의 동네 발전 기금을 전달하고서 허를 찔려 화가 났던 동네 주민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조성한 종중 묘 다. 2004년 11월 27일 토요일 조성건립하고 10분의 조상님 유분함을 안치 하고나니 후손으로써 조금 책무를 한 듯 했다. 파묘축문과 안치축문도 읽어 드리면서, 여법 하게 해드렸었는데 모두 만족들 하셨는지?는 뭘 잘못했는지?는 모른다.
경주 김가 63세손 조카항렬(호鎬) 중심으로 보면, 5대조 상완 조부님은 3형제중 막내 이셨고, 아들로 4대조 독자 윤제를 두셨고, 독손자로 3대조 태봉(호적상 태봉, 족보상 동민)을 두셨고, 다시 2대조 독증손자로 도환을 두셨다., 그 뒤 고손자로 1대조 용기, 용석(족보상 석기), 기헌. 기준, 기억을 두셨다. 이번에는 용기의 처 전주이씨 강희의 작고로 종중묘의 납실에 입주를 허락하심을 청해야 하기에 선망 조상 영가들께 정중히 바르게 자손이 영가끼리의 대화를 주선 했었다.
* 참고로 6대조 와 7대조의 매장묘는 당진시 정미면 신시리(어시미) 선영에 모셔서 시제로 올린다. 8대조는 용인에.
2017년 7월2일 일요일 여기에 모여 주신 문상 조상객 여러분! 그리고 후손 여러분!
지금부터 망자의 시신 매장 대신에 화장한 유분함(습골-화장 후 가루를 수습하여옴)을 종중묘 안치실에 모시겠습니다. 풍습이 매장 유교장례 문화에서 신식 화장 납골묘 안치실 에 모시는 풍습으로 바뀌어 어떤 정례화 된 절차 예식이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우선..
1. 망자의 영가(혼백)를 제단으로 모시는 招魂式으로 경배(敬拜-절-拜禮)2배 와 일 배(술 한 잔)
2. 그리고 잠시 고인의 양력과 막내아우로서의 소회所懷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 고인이신 저희 왕(큰)형수 이강희 여사님은 일제 강점기 때 충남 서산군 부석면 읍내부락 취평리 277번지에서 1926년(범띠) 08월 18일에 부(아버지) 전주이씨 득춘 과 모(어머니) 인동 장씨 여사를 부모로 하여 태어났습니다. 소학교를 마치고서 16세에 부석면 면사무소에서 일을 하시다가 19세에 당진 구룡리 142번지 경주 김가 용기형님과 1945년 결혼하여 1947년 3월25일 신고를 하였습니다.
51살 3대독자 시부(시아버님)의 이른 1961년별세 와 91살 독자시조부(시할아버님)의 1972년 별세와 49살의 남편의 이른 1977년 별세의 세월 후 40여년을 홀로 사시다 2017년 92세로 영면 하셨습니다. 이제 형수님이 해주시던 게꾹지는 어떻게 먹을 수 가 있으며? 이제 배추김치 곰삭은 멀렝이는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올 때 마다 늘 힘들게 농사 지으셔서 싸주시며 인자하게 반겨주시던 형수님! 아! 때때로 전화를 주셔서 안녕을 물으시던 형수님 이셨습니다. 나이든 우리에게도 차비를 주시려던 형수님...! 이라고...
얘기 하는데 갑자기 슬픔이 북 받쳐 올라오고 눈물이 나와서 이야기를 더 이상 못할 지경이 되어서 눈치 못 채게 막내아우KO는 소회(所懷)를 스스로 중지 하였다.
3. 그리고 종중 묘에 안치되신 선망 12분 혼백(영가)을 제단으로 모시는 경배(절) 2배 와 일주씩(술 한 잔씩)
4. 그리고 선망 고혼들의 새로운 영가를 반김을 바라며 경배(절) 2배 와 일주(술 한 잔)
5. 고별 추념식 : 상주와 친인척 과 동네 분들과 고별 경배(절) 2배 와 일주(술 한 잔)
6. 유분함(납골함) 입실(入室)의 절차 와
7. 종중묘석실의 문을 닫는 함문(闔門-문을 닫음)의 절차를 끝으로 하여
8. 장례 절차를 마치고
9. 모두들 산자락에 준비한 나들이 뷔페를 들었습니다.
10.그리고 2004년 종중 묘 조성 후 2010년도에 심은 왕뽀루수(보리수) 달게 익어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 채 꺾어 가기도 했다.
* 참으로 신기하게도, 영정사진 하고 위패를 택원 손자가 들고 다니기에 “식사 후 모셔 가자” 고 제단에 놓고서는 내려와서 식사를 했다. 모두 식사 후에는 모두 잊은 채 집으로 와서 다른 일을 하는데, 큰 자부(조카며느리)가 두고 온 생각이 나서 손자를 다시 보낸 일이 발생 했다.
2004년 종중 묘 건립 후 몇 년 뒤에도, 어느 봄에 무슨 행사를 한 후 모두들 집에 와서 쉬고 있는 어둠녁에 산소로 부터 혼자 걸어 오셨다면서 들어오시던 사연이 있었는데, 오늘도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웃지 못 할 결례 사연이기에 고인을 다시 생각 했다.
장례식장에서 첫날 오후에 보니, 본시 우리 친지 형제들은 조상대대로의 방법대로 유교식으로 장사 예법을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영가제단에 제물이든 드실 것이던 마실 거리던 아무것도 안보여서 속으로 이해하고 생각을 접고 있자하니, “형수님도 목이 마르실텐데!” 하면서 누구에게 이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하고 식혜 한 컵을 따라서 제단에 드렸다. 그 후 계속 올렸다.
둘째 날 염습시간이 되어서 모두들 마지막으로 망자/사자의 신체와 작별을 하는데, 보통 있어야할 여비증정풍습 소위 말하는 노잣돈을 넣어 드리는 기미가 안보였다. 유리창 밖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망자의 염옷(壽衣)은 주머니 와 매듭이 없게 하기에 망자의 가슴위에 안보이게 조금의 노잣돈을 넣어 드리고 나왔다. 형수님은 나이 먹은 막내에게도 올라갈 차비를 걱정 하면서 매번 주려고 하셨었는데, 혹 저쪽에 가셔서 노잣돈이 없으셔서 차를 못 타시거나 통과비를 못내 시거나 무엇을 남에게 사줄 돈이 필요 할 텐데 아쉬웠다. 망자께서 노후에 겪은 잠시 눈을 감지 못할 사연의 두(2) 여식의 생각에 기독교에 귀여 하셨기에 아들딸 자손들이 망자의 뜻을 따라 드리기로 했다 해서 장례 절차가 그러했다 했다. 잘못 하면 불화가 있을까 봐서 조용히 지켜보며 따랐다. 그래도 예수님 빽이라 해도 더울 땐 주스 한잔이라도 드셔야 할 텐데……. 올라 가셔서 선망(先亡) 부모님들과 속세의 선망 지인들을 만나시면 어리광도 부리시며 받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길동무라 도 만나면 아마다마 십리사탕 하나정도는 이승에서처럼 사서 줘야 할 텐데 …….
VII
* 잠시 장례 절차와 49재까지의 간단 예식을 소개 하려한다.
우리 “慶州 金家는 1. 1세”알지“시조, 2. 28세손”부“경순왕, 3. 34세손”인관“태사공파조, 4. 42세손”자수“상촌공파조, 5. 44세손”영원“좌랑공파조, 6. 45세손”신“판관공파조, 7. 58세손”상완“5대조부계”의 구룡리 후손들은 다음을 응용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로 6대조 와 7대조의 매장묘는 당진시 정미면 신시리(어시미) 선영에 모셔서 시제로 올린다. 8대조는 용인에.
장례의 예법 중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제례 범위 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저승의 절차 이니, 상주로서 가족친지로서 인간이 원 할 수 있는 사항을 서원/추념 하며 천혼薦魂(극락/천당)을 염원한다.
발인식(영결식)-노제-화장-안치식-(입실식-종중묘안으로 入門) 순으로 진행된다.
** 발인식 : 장례에서, 상여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갈 때 치르는 의식
* 영결식 : 산 사람 과의 영원한 이별식
* 노제 : 路祭 영구를 실은 영구차나 상여를 살던 문 앞 에 놓고 지내는 제
* 화장 : 화장장에서의 화장
* 안치식 : 장사 절차 중 화장을 마친 영혼을 종중 묘 납골묘 안 에 모시거나 혹은 매장 하기 위해 치루는 장례의식
* 반혼식 : 소상 대상 혹은 요즘 같으면 49재까지 혼백을 모시는 것
* 삼우제 : 사망1일째 초우제, 3일째 발인날 재우제, 5일째 삼우제.
* 49재(제) : 사망후 49일째 49제
*** 김가 종중 묘 에서 2017년 07월2일 일요일 13시
홍성 화장장에서 선영으로 도착 하여 영정과 위패를 종중 묘 앞 제단에 모시고서 상주와 친지 동네 어른들과 다음과 같이 거행 하였다.
산신제 : 山神祭 : 주과포 와 곡주 1배를 올렸다.
1. 초혼식 : 招魂式 : 고인 영가(靈駕)의 영혼을 종중 묘 제단에 모시는(착혼-倒着魂) 것이다.
2. 고조식 : 告祖式 : 선망(先亡 先祖 영가(靈魂) 들께 금일부터 금일 장사 지낸 영혼이 종중묘 안에서 동거하게 됨을 알리는 의식
3. 추념식 : 追念式 : 이별식, 상주와 문상객들의 추념시간 절2배와 곡차(술) 일 배 와 향초사름
4. 안치식 : 安置式 : 상주나 장례 위원이 유분함을 종중묘 안에 입실 안치함.
5. 함문식 : 闔門式 : 종중 묘 닫기 - 읽기는 함문, 쓰기는 합문(闔門-문을 닫음)
6. 반혼식 : 返魂式 : 본래 살던 집이나 절에 위패나 영정을 49재까지 모시기 위해 취하는 장사 후 집으로 모셔와 올리는 첫 제례 . 소위 탈상(脫喪) 때가지 모실 때.
7. 삼우제 : 三虞祭 : 사망 후 세 번째 큰 제 의식 초우(初虞), 재우[再虞], 삼우(三虞),
초우제 : 사망 당일(1일) 저녁제,
재우제 : 발인식(3일째) 때
삼우제 : 사망 후 5일째 산소에서 祭 혹은 절에서 드리는 齋를 말한다.
8. 49재(49일째의 제) 사망일을 1일로 하여 49일째가 되면 어디로 가실지 판명을 받는 것이라 한다. 해서 불가 유가 에서는 일주일 마다 중천에서 염라대왕과의 심판이 일곱 (7)고개(입문) 가 있다 하여, 입재(7일째-1재), 2재~6재, 7재(49일째)를 지낸다.
중요함 : 2017년 입재(1재)―7월 6일, 2재-7월 13일, 3재-7월 20일, 4재-27일, 5재-8월3일, 6재-8월10일, 7재(49재)―8월 17일(음력 6월26일) 목요일입니다.
* 참고 사항은 혹 추후에 사후 몇 년 뒤에 천도재라는 49재를 올려드리는 경우에는 1일째를 입재일 이라고 하고 7일째를 1재라고 하는 것 외애는 위와 같다. 절(寺刹)이 아니니, 재(薦度齋-명복을 비는 재)라 안 쓰고 유교식 제(祭祀)라 씁니다.
요령 이라면, 집에서는 영정과 위패를 놓고서, 위패의 지방을 “현모 유인 전주 이씨 강희 신위”라고 다시 써서 붙이고, 아침에 조찬 상식(上食)도 좋지만, 간편한 예로 입재날(첫7일째) 부터 6재에만 6번 해당일 저녁에 다과와 술 한 잔을 올리고 향과 초를 사르고 7재에는 산소에서 지낸다.
VIII
고 이강희 여사님의 태어난, 유년에 살던 고향은 서산군 부석면 취평리 277 이고
결혼 후 이사 없이 70여년 살던 곳은 당진군 당진읍 구룡리 142 됫골(道谷)이다.
1958~1965년도 당시의 가가호호를 대강 그려보면
1길영(부박재동), 2찬호(부김용기/조부김태봉), 3영호(형김철호,김병호), 4우준(부한철동)
5우식(부송영창,조부), 6창복(부김기환,조부김학동), 7영식(부송영준), 8 태흥(형김기흥),
9인수(부한기남.영만,조부한종수), 10완수(부박월성), 11갑수(부박월태), 12태종(부박월영),
13종신(부백승익), 14상운(부송찬복), 15만호(부배수경)16기범(부김순환,조부김학순),
17수영(박준택), 18간난(부송재문), 19천래(형박흥래), 20신복(부김 ),
21완수할아버님(한의사박 ), 22노만(부박경래,조부,증조부), 23기헌(부김도환),
24상철(부송재성), 25신내(부박윤갑), 26필호(부오수학), 27인권사촌(부박득순),
28승전 물방앗간 김할머니, 29도식(부백승철) 30긍수(부이종만),
31승복(부백좌현,조부백필기), 32진화(부송갑순), 33근천(부이춘한), 34박노섭(본인),
35박홍(부박대근), 36노복(부박변내), 37종렬(부백종하,조부백청운), 38의내(부박덕순),
39선만(부황순학,조부), 40종분(부백순태), 41백승업(순태아우), 42백승봉(순태아우),
43기문(부김옥봉), 44상군(이만식), 45복현(부백동기), 46재옥(부허룡), 47종록(부백흥운),
48종순(부박활성), 49승춘(본인,모친), 50용배(부박 ), 51광수(부백승군,조부),
52종덕(부백승옥), 53명섭(부백달현,조부), 54병구(형강승구), 55종섭(부백승운),
56승덕(조부백 ), 57승욱(부백보현,조부), 58근식(부임인호), 59백승우(부백근우,모친),
60창호(부원병기), 61길동큰아버지(박재봉), 62종익종철(부이민규), 62용만(부박춘식),
63동식(부김재관,조부), 64철래(부박 ) - 이것 조사에 도움 준 박 의래 친구만세
마을, 산 과 고을 이름
유째(이웃재), 황토백이, 감나무골, 00골?, 큰골, 고라니묻은골. 불당골, 글치기, 지박골, 수미고개, 수청골, 원골입구, 산밭들, 00골?, 호지봉, 작은골, 집미티, 샘안집, 산밑, 모과나무집, 안내미, 방아다리, 오봉산, 과골(곽골), 사근절터, 구마바위, 쇠종고랑골, 당골, 당고개, 둠벙배미, 동미(용의여의주), 두루봉, 대바위, 구수밭집, 광술티, 오금이, 안배미, 승전목. 대바위 상여집이다
5일장-
1일, 6일 – 천의장(정미면) -이십리길 - 7.5km 110분 도보
2일, 7일 – 여미장(운산면) -십리길 - 4.0km 60분 도보
3일, 8일 – 틀모시장(송악면) -삼십리길 - 12.3km 210분 도보
4일, 9일 – 면천장(면천면) -시오리길 - 5.4km 80분 도보
5일,10일 – 당진장(당진읍) -이십리길 - 8.1km 120분 도보
IX
그리고 요즘의 대개의 통신 수단은 메일(mail-전자우편)과 카톡(kakao talk-messenger-전자 심부름꾼)으로 문자(text)와 화면(picture & photo)을 대신전달 하고 대신수신 하는 세상이다.
요즘은 애경사哀敬事를 치르고 나면 빠른 시일 내에 방문객, 조문객, 축하객, 참여객 등 에게 감사의 인사를 핸드폰으로 대신 전하여야 하는 시대(2012~2017현재)이다. 이것도 컴퓨터(1995년이래보편화)와 무선 시스템(2010년 WIFI~)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 한 것이다.
요즘 2017의 전세계의 먹거리 : 4차산업, 四次産業, Industry 4th 란?- AiViFB – 즉 AI 인공지능, IoT 사물인터넷, VR 가상현실, ICT 정보통신, Fintech Pay, Big Data 시대이다.
막내 할아버지KO는 졸병(손주)들과 장례식장 특실의 가족실 뒷방에 모여 회의부터 시작했다.
우선 적발(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하게 적어 둠)을 위해서 노트를 만든다. 전체 1,500개(명) 부의금 봉투를 예상 한다. 노트 한권에 20칸*2쪽*20장=800명, 고로 노트가 2권(20장짜리)+1권(조화)필요.
한명은 노트 한 페이지에 일련번호를 쪽마다 20칸만 볼펜으로 써라. 3칸은 소합계 칸이다.
두명은 싸인펜을 사용 하여 봉투에 일련번호 부터 메겨라(1에서 1500까지 적을 것이다).
봉투에 일련번호가 써진 것만 집어서, 돈이 얼마인지 세서 적는다. 돈을 꺼내어 세서 봉투 상단에 적는다. 50,000원 이라고 다 쓰지 말고 5만원 혹은 5만 이라고만 쓴다. 그리고 돈을 다시 봉투에 넣는다.
봉투 열 개씩 하나의 고무줄(band)로 묶어라 고무줄은 250개를 준비 하라.
그리고 다시 10개씩(1~10) 묶은 봉투의 맨 앞에 1번이라고 쓴다. 즉 11~20 까지 묶는 봉투는 11 봉투상단에 2번이라고 쓴다. 1번에서 10번까지 10개씩 묶을 때는 고무밴드 두꺼운 것을 써야 하는데 없으니 3겹으로 끊어지지 않게 돌려라/묶어라/Banding .
해서 노트3권, 고무줄250개, 싸인펜10개, 볼펜10개을 준비하고
밥상을 하나 준비해 들여와라. 글씨 쓰는 작업용
단 봉투 겉에 일련번호 1에서 1,500까지 쓰는 것은 고참1명과 믿을 만한 젊은이가 한다. 주소 성명을 한자로 갈겨 쓴 사람, 한글을 나 혼자 만의 서체 로 쓴 사람, 이름을 적지 않은 사람 때문에 old man 과 freshman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동용 노트북 1개를 준비 하라. 아주 중요 하다
부의금액/조의금액을 알려는 목적이 아니고, 누구와 관련된 조문객인지 파악하여 상주들은 다시 상대방에게 적절한 인사를 내일 모레에 빨리 하여야 하기에 목록이 우선 필요 함이다. 누구의 문상객 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상주와 자식들 모두 각자의 삶터 일터로 돌아가면 누구와 관련 된지 모르기에 그들도 궁금해 하니 빨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아니면, 만들어 놓은 목록이나 혹은 봉투 1,500여개를 나중에 다시 와서 모두 보아야 하기에…….
전산 작업은 엑셀(EXCELL program)을 사용 하여 첫째는 sheet 1에는 무작위 봉투 순서 1에서 1500까지 번호를 또 쓴다. 1금액, 2이름, 3주소, 순으로 기입 둘째는 sheet 2에 다시 복사 하여서 이름 가나다 순으로 분류(sorting) 작업을 한다. 셋째는 sheet 2에 주소의 우측에 상주1, 2, 3, 4로 별로 이름을 쓴다. 즉, 상주1 부처 자1. 자2, 상주2 부처 여1. 여2, 상주3 부처 자1. 자2. 여3, 상주4 부처 여1. 여2. 자3, 5 동네공통조문객, 6 일가친척가족공통, 이렇게 하면 분류(전산sorting)시 내게로 오신 조문객이 누구인지 동네 혹은 친척을 빨리 파악 할 수 있음은 전산의 힘이다.
빈 박스는 라면 박스 크기를 4개 확보 한다.― 각자의 작업중 한 것과 안 한 것을 구분 하여 혼잡과 실수를 줄이기 위함이다.
14. 즉 수기(손으로)로 노트에 한번 적어서 원본등본을 만들고 그 뒤 컴퓨터에 옮겨서 누구누구의 조문객 파악과 부의금 액을 쉽게 알 수 있음이다.
15.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산 작업이 끝나서 프린트 해준 것에 상주 4명은 모여 앉아서 나의 조문객에 표기를 해 주고 내 것인지 아내/처 것인지 혹은 자녀들 것인지만 적은 후 모르는 이름 중복된 이름을 바르게 알고서 확인 후
16. 다시 전산으로 각자 상주 몫으로 표기 한 후 컴퓨터를 이용 하여 상주별로 금액등 명단을 확보하여 감사의 표시 등등으로 사용한다.
* 7월1일 저녁 8시40분경부터, 화기애애하게 막내할아버지KO 와 손주들의 봉사가 시작 되었었다. 천천히 지시하고 이유를 설명 하였다. 다음에 자기 집의 애경사를 치르던 남의 애경사를 돕던 간에 봉사 해줄 수 있도록 경험의 기회를 받는 것임을 각자 이해하며 봉사했다.
이에 앞서 막내ko는 저녁 5시경부터 조문객 방문록을 보면서 몰래 무엇을 세면서 숫자를 적어 놓고 있는데, 서너 사람이 와서 묻는다. 무엇을 세세요? 조금 무안 하다 염탐꾼처럼…….
보통 200명, 300명, 500명 정도는 보통 가족의 상주들이 모여서 10시간 정도 하면 할 수 있으나 이렇게 1,500여명의 명단을 정리 하려면 적극적 활동의 경험 있는 상주라도 3일 일거리 이다.
ko는 조화 50여개의 목록을 오후 5시에 어느 졸병을 시켜 소리 없이 만들도록 했다. 애먹은 한자‘有龍 자 가 문제였다, 용자여? 유자여? 왜 합쳐 놓고서 뻐기는지 애愛용有龍회會 애용회 회장님~
** 경영관리자 經營管理者는 언제나 생각한다.
관리의 묘미는 무엇을 함에 있어서 최소 시간 내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것이다. 최단시간의 CPM(critical path method)을 이용하여..
살짝 방문록에 표시해 놓은것을 보면서 어림해보니 300여명의 조문객의 이름이 올려졌다. 공대생 工大學生 모양 덧셈 뺄셈 곱셈을 한 결과는 식객 900여명=600여명*1.5끼, 즉 조문 봉투는 내일 발인날까지 1,500여개(명단300명*4배수 + 여분300명)라는 통밥(추측,어림셈, estimation)이 나옴.
그리고 1,500명을 노트에 1)적은 후 2)컴퓨터 전산 작업을 위해 옮기고, 3) 총합셈 하는 시간과 누구와 관련된 조문객인지 알 수 있는 4) 봉투순서 와 5) 이름순서 2가지를 만들고 6)인쇄 하는것 까지 6시간을 잡았었다. 상주들이 다음날 모여서 수기(손)로 하려면 이틀 사흘거리의 일이기에.
시작은 8시 40분부터 막내 상주가 열쇠로 함을 열어서 방에 봉투를 같다 놓고서 시작 했다. 그런데 새벽2시까지 노트에 적는 게 끝이 안 났고 후속작업용 노트북(컴퓨터)도 확보 못했다.
손주 졸병들과 협력 하여 아주 좋은 분위기를 띄우면서 일을 하기에 그들 스스로 뿌듯해 했다.
1. 장조카 찬호여식 연성손주, 2. 은호조카 아들 택균손주, 3. 의호조카여식 연주손주, 4. 그리고 연주 와 같이 일하는 상산 김 씨라던 인턴사원, 5. 원호조카 아들 택형(개명후 건하)손주, 6. 그리고 원호조카 큰사위, 7. 의호 조카아들 택원손주 도 부분적으로 참석 하여 화기애애하게 막내할아버지KO 대장의 협력하에 모두 자기 몫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고급스런 국제적 멘트에도 재미있어하고 강제적 압력성 조크에도 웃으며 봉사했다. 든든하고 아주 smart한 손주들이다.
중간에 여러 상주들이 문을 열고 한마디씩 우려와 격려와 자기 경험 방식을 얘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방법의 일부분 코끼리 다리 이야기여서 모두 긍정적으로 이해 흡수 하는 양 “예” “예” 하면서 작업을 하는데, 이게 밤 12시 새벽 1시가 되니 한두 청년들 아가씨들의 모습이 아니 보였다. 졸린것은 임금님도 못 말린다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졸음이 손주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2시 넘어서도 노트북 준비가 아니 되었다. 안 되면 되게 하는 막내할아버지KO의 국제적 감각으로, 촉을 세워서, 장례식장 사무실을 쳐들어갔다. 다행히도 숙직 하시는 분이 계셨다.
컴퓨터 사용을 허락받고서, 컴퓨터 사용을 잘 알고 있는 손주두명에게 1.엑셀사용 입력내용과 2.방법을 알려주었다. 방에서 노트기재가 아직 덜 끝난 고로 노트가 한권뿐이니 시간절약상 4부분으로 찢어다가, 사무실에서 두 팀이 전산 입력을 하도록 했다. 그사이 다시 방으로 가서 노트에 적기 작업을 끝내려 하니 다 세고 다 적었다더니 미 기입된 봉투들이 200여개가 나와서 남은 2명과 작업하였다. 사무실에 가서 전산을 들여다보니 모두 다 적었다던 명단 400여개가 남아 있었다.
결국은 책임감의 큰손녀 연성 과 막내 할아버지KO만 남아서, 둘이서 4시반 까지 컴퓨터에 입력을 마쳤다. 1.이름별 분류 작업과 2.총금액 계산을 하는데 3.전산의 실수가 계속 나왔다. 4.직접 검산을 하는데 1시간여가 걸려서 마쳤다. 5.인쇄를 1)봉투별 그리고 2)이름별로 2부씩 인쇄함으로서 대장정의 일을 마칠 때가 아침 5시반 이었다.
1. 정다현 엄마 서울 강남구청 에 근무 중인 손녀 김연성 만세! 2. 김택원 만세! 3. 김택균 만세! 4. 김택형(개명후 건하) 만세! 5. 김연주 만세! 6. 상산김씨 사원 만세! 다. 그리고 중간에 일하다 나가버린 7.삼성맨도 만세다! 다음에는 중간에 일하는 도중 말씀하시는데 나가지 말자!.
그리고 방을 기웃거려 주면서 격려 해준 상주들 만세다! 손주들의 실력을 협력적 봉사마인드도 볼 수 있었고 우애도 볼 수 있었다. 훌륭한 김가! 5대조 상완, 4대조 윤제, 3대조 태봉, 2대조 도환, 1대조 용기/이강희 님 들의 후손들이다. 여러분들은... 장하다.
그런데 막내 할아버지KO 혼자 생각건대, 빗나간 예상이 있었다. 5~6시간 잡았는데 8시간 걸렸고, 1,500개 봉투 예상했는데 1,200개의 봉투로 마감 했다. 그래도 99% 성공 짬밥 만세…….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처해진 환경이 남하고 연관이 있다면, 혹은 가족과의 연관이 있다면, 인과因果의 경제經濟 그리고 인과의 불편함이 있다면, 먼 길을 간다고 보고서 무엇이 바른길인지? 무엇을 묵음(消音除去) 해야 하는지?를 알고서 화해와 화합을 해야한다. 물론 필요시 지헤로 표현하며.
어디에 씌어있다. “나의 억울함을 밝히지 마라 밝히면 상대방이 다시 억울해져 싸우게 되느니라.”
조카 중 한명이 걱정을 했다. 상기의 조의금 적발 봉사를 막내 작은아버지KO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Please do not that service by uncle yourself).. 심지어는 자기 친조카를 봉사자에서 제외 시켜 달라 했다. 맞는 이야기 일수 도 있다. 허나 경주 김가 가족을 위한 좋은 일인데... 물론 그 조카의 친형의 이해도 있었기에 잘 마쳤다. 해야 하는 이유는 상주 조카들의 부탁으로 이런 일은 여러 번 했던 일인데 그 조카는 잘 모른다. 뭐든지 나의 시각(mind)으로 보거나 나의 잣대(unclearness)로만 재면 아니 되는 것 같다. 결국은 국제적 일군uncle KO를 둔 상주 조카들의 바람대로 잘 되었다. 다음날 발인 후 본가에 모인 네 상주 조카들과 배우자들의 감사하다는 미소를 가슴으로 안고 서울 홍대입구로 올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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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는 사람聖賢들도 있다.
큰형수님은 50 여 마지기의 대가의 맏며느리가 되어 가솔들과 일하는 식솔들을 껴 안으셨었다.
오가는 식객들과 동네에 사랑을 많이 남기셨다. 혹 더러는 관계 불편했던 인과도 있었겠지만..
많은 타인 가족들과의 인연이 평생을 같이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심의 사랑방에 머물렀었다. 장례 3일 내 내 그들은 남겼던 정을 다시 가지고 와서 고인의 넉넉했던 베품을 다시 추모 했었다,
부지런 하셨다. 저녁 9시 정도에 앉아서 쪽잠 몇 십분 몇 시간만 취하시고는 새벽 3시부터 일을 하셨다. 평생을... 외손들도 훌륭하게 장성 성가 하여 서울에서 미국에서 와서 애도 했다. 증손자도 와서 재롱을 부렸다. 외증손자도 와서 재롱을 부렸다.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기에, 줄여 적으면..
1. 대한민국 금융계(은행) 업무를 40 여 년간 역임한 사위의 봉사와 김가네와 인연이래 장모님을 위한 사랑이 45년 넘게 국내외로 이어졌었다. 외국에서 교수를 하는 부부박사와 외손주들과 국내 제일 회사를 다니는 외손주 와 외증손주도 있다.
2. 국내의 유수有數한 전자통신대학의 무선통신학과의 학사가 되어 대한민국의 통신산업발전에 이바지한 아들과 서울 강남구청에 근무하고 제약사에 근무하는 친손주 들도 있다
3. 경주 김가를 위해 60여년 넘게 고향에 남아서 발길을 유지한 사업주 아들과 손주들도 있다.
4. 일찍이 대한민국의 공무담당 을 맡아 일하면서 면장과 동장업무도 임하고 정년은퇴한 아들과 대를 이으려는 손주도 있다, 교사를 하는 친손주와 손주사위선생도 있다.
5. 잘 생겼다고 외삼촌들과 모든이 칭찬 하던 외손주도 있다.
6. 대한민국의 유수한 사학, 이화여대 영문과 학사인 여식을 슬하에 두었다.
“집집마다 금송아지가 다 있다”고 여겨진다. “집집마다 사립문 을 열면 다 사연이 있다” 했다.
왕 형수님! 훌륭한 시대 와 세대와 세상을 사시다 가신 분 중의 한 분이십니다. 초근목피, 보리고개, 근대화새마을시대, 올림픽 과 월드컵 유치 행사 와 인터넷 통신시대의 스마트폰을 안고 전 세계를 여행하신 여행자로. 구룡리 큰집 이라 불리우는 구룡리 와 당진의 선임 주인공 이셨습니다.
천상의 꽃이 되소서! 형수님!
극락왕생! 천국에 임하소서! 형수님!
혹 사랑과 발복(發福)의 여력이 있으실 때, 이승의 가솔들을 한번 내려 보아 주시길 바랍니다!
막내 아우 KO 올림
XI
혹 이글을 읽는 분들은 조금 읽기가 뭐 할 것이다. 그러나. 큰 형수(고 이강희 여사)님의 별세는 한세대의 이야기가 아닌 여섯 세대의 역사 이야기 가 담겨 있기에 시대 이야기를 길게 적었다.
그저 기록물(Documentation) 정도로 만 이해 주셨으면 한다. 맘 불편한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새삼 2000년도에 KO의 주선으로 만들어서 2001년도에 구룡리 의호조카소유의 승전주유소의 정원에 모여 경주김 60세손 조부 함자 태자 봉자를 따서 만들었던 63세손 호鎬자 돌림 항렬의 泰奉會 멤버 25명의 직계가족 90여명이 모여서 밤새 아주 큰 가족 행사를 할 때 KO의 여식 정미.정은의 듀엣 무대 중 “왁스‘라는 가수의 ”머니“ 라는 노래 열창이 꽃이었고, 모두들 계셨었는데.. 이제는..
광박廣博(호) 조카사위 창규님, 成實천사 조카사위 남서방, 智天천사 범진 손주도 평생만세다...
슬픔만 적어서도 아니 되고 너무 자세하게 적어도 좀 그러해서, 조금의 과거 풍경을 가미 했다.
이승과 저승의 매체 역할도 표기했다. 이해하기 어려우시면 양해 바란다. 조금 더 내공을 쌓으면, 예수님, 석가님, 공자님, 마호메트님들이 각 성현들이 무슨 사명(예수-사랑, 마호메트-자비, 공자-질서, 석가-너 스스로 깨달아 홀로서기)으로 지구상에 오셨다 가셨는지를 알 것이다. 내 종교를 위해 싸우고 편 가르고 죽이는 것은 죄악이다. 무슬림과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은 2000년을 싸운다. 지금도 싸운다..
누구도 나를 위해 싸워줘서 고맙고, 나를 위해서 가정불화를 일으켰고, 내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상대방도 죽였다는 것을 좋아해 주는 성현(예수님, 석가님, 공자님, 마호메트님)들은 없을 것이다. 우매함을 안고 살지 말라!.
일을 하든 가정생활을 하든 종교생활을 하든 10미터 위에 cctv드론카메라를 띄워 놓고서 자기가 하는 언행등을 남들이 본다고 여기고 살아야 한다. 인류 공존을 위해서는 바보 같다고 여겨지는 이웃도 이해하고 거친 놈도 안고 살아야 함이다. 밉다고 차버리면 아니 된다고 여겨진다. 나만의 생각을 너무 주장해서도 때깔이 아니 난다. 모순도 순리임을 알고 안고 살아야 함이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말들,
구업(口業)을 짓지 말자!
줄이자.
2017년 07월 08일 토요일 집에서 쓰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