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솔들을 데리고 영국 카디프에 나갔다가 돌아온지도 벌써 4반세기가 넘었다.
생전에 미국으로 한번 더 나갈려고 했으나 도중에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나가지 못했는데
기회가 영영 흘러가고 말았다. 우리가 영국에 나가자마자 곧 IMF사태가 벌어져
내가 받는 월급은 환률이 급등하는 바람에 원화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방세도 모자랐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쉽게 움직을 수 없어 빚을 내더라도 버텨보기로 하였다.
우리가 얻었던 집은 단독주택으로 카디프 골프장 울타리와 바로 맞닿아 있어 낮에는
우리집 거실에서도 라운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드물게는 골프공이 뜰안으로 날아 오기도 하였다.
집은 2층인데 방이 3개로 아래층에는 거실과 갤리및 식탁이 그리고 큰방 하나가 있고
2층에는 아이들방 2개와 목욕실이 있었다. 화장실은 현관입구 구석에 하나만 있었다.
남향집인데 거실 바로 앞쪽이 8평쯤 되는 잔디밭이고 뒷쪽 식당방 뒷쪽에도 잔디밭 정원이 있었다.
영국은 비가 자주 오므로 잔디가 잘 자랐다. 일주일만 지나면 수북하게 자라서 잔디깎기 기계로
깎아야 한다. 내집 잔디인데 깎든 깎지 않든 뭔 상관이야 할지 모르지만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으면 보기에도
좋지 않아 이웃집에서 고발을 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제때에 깎아야 한다. 우리집과 바로 붙어 있던 집은
중동의 어느 부호가 샀다고 들었는데 여름철만 와서 살고 다른 때는 비어 있었지만 잔디밭은 항상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잔디 깎아주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부탁을 해서 정기적으로 깎기 때문이었다.
잔디와 수염은 시간이 가면 길어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원에 있는 잔디도 깎아야 하지만 골프장, 테니스코트,
축구장 등지의 잔디는 길면 경기에 지장을 주므로 규정대로 깎아서 관리를 해야 한다.
서양 사람들은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제법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없다.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도
자주 손질을 해야 하므로 면도를 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 나의 경우는 수염을 기른다고 누가 이야기 할 사람도
없지만 수염이 길면 괜히 거추장스럽다. 매일 질레트 면도기로 비눗물이나 폼을 묻혀 면도하기도 귀찮아
브라운 전기면도기를 꺼내 몇번 문지르고 만다. 그러다 보니 한 두개가 잘리지 않고 길게 자란 놈도 있어
화장실 거울 앞에서 가위로 자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