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지방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온 일본식 정원이 유달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해서 찾아가 보았다. 맨 처음 일본인이 만들었으나 우리나라 사람이 소유하면서 개인 정원으로 유일하게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곳이다. 돌아보면서 정말 대단한 정원임을 느껴볼 수 있었다. 목포에 가면 꼭 한번 들러봐도 괜찮은 볼거리라 생각이 들었다.
이훈동정원( 전남 문화재자료 제165호)
1930년대에 일본인 내곡만평(內谷萬平)이 지은 정원으로, 우리나라의 서원양식으로 꾸며 놓았다. 안뜰정원에는 잔디로 마당을 만들어 후박나무와 후파향나무·종가시나무 등을 심어놓았다. 임천정원에는 히말라야시이다·주목·삼나무·편백나무·종가시·위성류·다매화 등을 빈틈없이 심었는데, 수풀 속으로 좁다란 시냇물이 흐른다. 후원은 언덕 위의 평편한 잔디마당을 중심으로 그 위쪽과 아래쪽에 갖가지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문화재청-
이훈동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성옥 기념관은 성옥 이훈동의 88세 미수를 기리기 위하여 2004년 자녀들이 건립한 문화공간이 있었다.
이훈동 정원의 이훈동은 누구인가 궁금했다.
고 이훈동은 해남출신으로 (1917~2010) 조선내화 (주) 창업주로 높은 온도에 견디는 물질인 내화물의 원료인 납석을 채취하는 광산 직원으로 취직한 뒤 평생 '내화물 개발'이라는 한우물만 판 내화물 업계의 산증인이다 그는 37세 젊은 나이로 조선내화 대표이사에 취임하여 국내 제철사업 발전에 힘을 쏟은 사람이다 또 차남인 고 이정일 회장과 함께 '전남일보'를 창간한 인물이다. 그가 살아생전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으로 인재 양성을 위해 성옥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학생 4천여 명에게 장학금 35억여 원을 나눠줬다고 한다. 고 이훈동 회장은 각종 훈장과 상을 받았던 존경받는 CEO였다.
이곳은 늘 대문이 잠겨 있는데,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정원으로 들어서자 굉장한 정원을 가진 저택으로 보였다. 이 정원은 유달산을 감싸 안은 분지의 정원으로 편안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풍수지리상으로 알을 품은 형상이란다. 정말 대단한 정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된 정원으로 언덕으로 오르는 가파른 곳까지 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훈동 정원은 유달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1930년대 일본인 우찌다이 만페이가 만든 일본식 정원이다. 해방 후 해남 출신의 박기배 국회의원이 소유하였던 것을 1950년대에 이훈동씨가 매입하여 6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일본식 정원의 특징과 백제 양식의 정원으로 가꾸었다고 한다. 개인 정원으로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입구 정원, 안뜰 정원, 임천 정원, 후원으로 가꾸었다고 한다. 나무 종류도 113여 종에 이르며 한국 야생종 37종, 일본 원산종 69종, 중국 원산종 25종, 기타 12종이 있으며 이 중에서 상록수는 69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곳 정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원과 일본 정원의 차이였다. 우리나라 정원은 사대부의 정원이다. 주택의 입지부터 배치, 장식적 요소까지 풍수지리 사상과 음양오행설 및 유교사상에 따른 공간으로 조상 숭배, 장유유서, 남녀유별의 관념이 철저하게 반영되었다면 일본 정원은 산과 강의 자연적 경관을 축소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일본 정원의 3가지 기본 원칙이 있는데. 규모의 축소, 상징화, 경치의 차용이란다. 말하자면 기본 골격이 바위가 모여있다는데 이는 고대 일본인들은 바위로 둘러싸인 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바위가 있는 곳은 천국으로 가는 문이었고 울창한 나무숲은 신의 울타리라 믿기 때문에 일본 정원을 보면 대부분이 바위와 나무가 주를 이루는 게 특징이란다.
정원수 중에서 현관 앞에 있는 일본산 향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자생 목으로 일본의 화산 폭발 때 그 씨가 목포까지 날아와서 싹이 텄을 것이라 하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것도 씨앗이 나란히 날라와 두 그루가 된 것일까?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살포시 믿기지 않은 웃음이 나오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이곳 정원에서는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있기도 했다고 한다. 또 신혼부부들의 웨딩사진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란다 정말 이런 정원 하나 갖고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만큼 대단한 정원이기도 했다.
8 .15 광복 후 조경이 크게 변하여 원형을 잃었다고 말하는데.. 여전히 일본식 정원 분위기는 남아 있었고 남부지방의 특색을 가진 난대성 상록수가 심어져 있어 더욱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정원이었다.
언덕으로 오르자 더는 오를 곳이 없어 보이는 곳에 또 다른 정원이 있었다 고 이훈동님의 흉상이 마련되어 있고, 푸른 잔디가 심어진 널따란 정원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정원규모가 대단하여 돌아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호지슨 버넷이 쓴 '비밀의 화원'이 생각나기도 했다. 울창한 정원으로 걸어 들어갈 수록 주인공 메리와 디콘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물거리지만 콜린이 그 화원에서 병이 치유되었던 기억과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퍼졌던 그 비밀의 화원에서의 동심이 오버랩 되어 가슴 두근거림으로 전해지듯 나도 이 정원을 거닐었다 그렇게 비밀의 화원에는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자연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던 그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을 다시 느껴보던 시간이었다.
"분명히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마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마법이 어떤 건지, 어떻게 일어나게 하는지 몰라, 어쩌면 멋진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하는 것이 첫 시작일지도 몰라, 정말로 멋진 일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말하는 거야..."
"뭔가를 배울 때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고 생각해야 머릿속에 자리 잡는 것과 같이 마법도 똑같다고 생각해....."
-비밀의 화원 중에서 -
정원이 언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 놓여 있었다.
정원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일본식 5층, 7층 석탑과 백제양식의 석탑까지 참 다양한 식물과 함께 어우러진 정원의 모습은 한국식 서원 양식이며 수풀 속으로 좁다란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은 또 일본식 정원처럼 느껴지는 참 독특한 정원이었다.
처음에 일본인이 만든 것이라 그런지, 집이고 정원은 일본 냄새가 강했다. 석등과 석탑, 연못, 정원 등은 일본 여느 곳보다 더 일본의 전통을 품고 있으며 일본식 정원에 없던 벚나무, 동백나무 등 여러 꽃나무들을 심어 자신만의 뜰로 꾸며 놓았다.
정말 넓고 아름다운 저택 정원이었다. 참 욕심을 낼 수도 없을 정도의 규모여서 놀라웠다. 이곳 정원과 저택을 관리하는 분들이 묵을 법한 별채 또한 무려 5칸으로 되어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 대 저택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에 수고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고... 그리고 정원이 끝나는 지점에는 따로 외부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돌아보는 내내 거대한 정원을 잘 꾸며놓은 풍경에 감탄하였다.
정원이 하도 넓어서 대주택이 가려진 느낌이 들 만큼 정원 규모가 대단했다.
정원을 돌아보고 내려오다 뒤돌아본 풍경 속엔 유달산 대학루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호남에서 가장 큰 개인 정원이라는 이곳을 돌아보면 조선내화 창업자이자 전남일보 발행인으로서 성옥 이훈동이 목포, 전남 경제권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짐작하게 하고 나아가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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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영혼이 아름다운 날들... 원문보기 글쓴이: 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