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이시(棗栗梨枾)와 조율시이(棗栗枾梨) 차이점
1. 과일 종류 : 대추 밥 감 배
2. 과일별 의미
과일종류 | 대추(棗) | 밤(栗) | 감(곶감,枾) | 배(梨) |
의미 | 다산(자식) | 조상 | 부모 | 나, 노랑=흙(土) |
관직 | 왕1 | 3정승 | 6판서 | 8도관찰사 |
씨앗갯수 | 감은8개, 배는10개 씨방이 있는데 자라지 못한 씨앗이 1~2개 있음 |
실물사진 | 감(씨앗 8×1=8) | 배(씨앗 5×2=10) |
3. 실제 과일 모양
① 감(먹감) 씨앗 사진 : 곶감도 동일함( 2.4번 씨방은 씨가 자라지 못하고 6개 씨앗이 있음 )
② 배 싸앗 사진(한개 씨방에 씨앗이 2개들어 있는데 다 자란 씨앗은 8개 정도임 )
4. 진설 사례
① 경북 영양 연당마을 동래정씨 개인집 상차림 사례 : 떡, 대추 밤 곶감 배 순서차람 사례
5. 문헌 자료
① 제사상에 조율시이(棗栗枾梨). 조율이시(棗栗梨枾) 진설 – 5열
㉠ 격몽요결(擊夢要訣)』의 제찬도(祭饌圖) - 밤(율). 대추(조). 곶감(시). 배(이). 은행 순으로 진설
㉡ 감과 배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는데 한자로 배는 이(梨)라서 이조 왕의 성씨가 오얏 리(李)로 발음이 비슷하여 감보다 윗전으로 올리는 풍습도 있음.
② 하정공 진설은 조율시이(棗栗枾梨)로 진설하고 있음.
㉠ 감은 3년~5년쯤 지났을 때 기존의 감나무를 잘라서 이 고욤(쌍떡잎식물 감나무모목) 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다음 해부터 감이 열리기에 감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임.
㉡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는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르기에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善人)의 예지(叡智)를 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임..
㉢ 하정공의 가정교육을 중하게 여긴 것임.(하정시에서 시질사눌(示姪思訥)과 암하소계(巖下小溪)
○ 示姪思訥(조카 사눌에게 보임) : 청백으로 살아라는 가정교육
此夜燈前酒數巡(차야등전주수순)
汝年三十二靑春(여년삼십이청춘)
吾家長物惟淸白(오가장물유청백)
世世相傳無限人(세세상전무한인)
이 밤 등불 앞에 술을 주고 받거니
너의 나이 32세 청춘이로다.
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사물은 오직 청백(淸白)이니,
대대(代代)로 서로이어 끝없이 전하라.(3, 4행은 하정공의 유훈(遺訓) 시로 자주 사용되기도 함)
○ 현재는 작은 자신이지만 큰바다로 가는 위대한 꿈을 가져라.
巖下小溪歸海意(암하소계귀해의)
庭前穉栢拂雲心(정전치백불운심)
바위 아래 작은 개울물은 바다로 가고 싶은 뜻을 가졌고,
뜰 아래 어린 잣나무는 구름을 휘어잡고 싶은 마음이 있네.
6. 조율이시(棗栗梨枾)와 조율시이(棗栗枾梨)는 어느 진설방법이 옳다할 수 없고 각 집안 방법대로 진설합니다.
① 약 20여년전 하정공 시제(묘제) 때 산신제 상차림에서 당시 종중 진설하신 분께서 현장에 늦게 오셨기에 다른분께서 “홍동백서”로 진설해 놓고 시제를 막 시작하려는데 그분이 오셔서 큰소리가 나고 서로 진설방법이 맞다고 삿대질하고 있어 제가 홍동백서도 맞다고 중재하여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고 다시 조율시이로 상차리고 산신제를 지냈는데 상차림보다 제사에 첨석하는 정성이 중요합니다.
② 다례(茶禮)란 임진왜란을 전후한 조선의 배불승유정책 시기인 16세기경에는 음다의 유풍과 차문화의 쇠퇴로 차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어 영조가 왕명으로 차(차 종류로는 찻잎을 말린 형태인 잎차) 대신 술이나 끓인 물로서 대신 사용하게 하여 관혼상제나 명절 때에 차 대신 술을 올리게 된 연유입나다.
그래서 홀기의 헌다(獻茶)에서 차 대신에 숭늉을 올리는데 차 대신 커피를 올리는 집안도 있습니다.
③ 관청으로는 다방(茶房)과 다군사(茶軍士)를 두었고 사헌부에서는 하루에 한 번씩 다시(茶時)를 가지기도 했기에 요즘 회사에서 차 타임 시간이 있기도 합니다.
④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원한다면 충분히 차를 마실 수 있었는데 고종이 커피 애호가였던 덕분에 궁중 음료로 차 대신 커피를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