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 580 ~641로 보니까 서사시와 연대는 비슷하네요. 그냥 짐작컨대 백제나 신라나 딱 하나씩이 아니라 몇개의 부류가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경상도에 산재해 있는 정교한 석조물들과 페르시아 계통 인물부조들을 보면 어느 시점에 신라의 지배층과 종교집단이 경상도로 이주해온것 같기도 해요. 특히 석굴암 같은 경우는 비잔틴 돔 구조인데 이게 그 전단계에 좀 수준이 떨어지거나 발전단계에 있는 다른게 하나도 없이 갑자기 석굴암이라는 완성태가 나타나버렸거든요. 신라계의 이주민이 있었거나 아니면 정말 아눈나키급의 기획에 의한 역사이전이던가...암튼 위의 기사를 읽어보니 경상도가 신라였을 가능성은 0
전에 우리 카페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반도와 페르샤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신라는 서토지방(중앙아세아)을 강점했던 나라였다고 봅니다. 이는 신라의 전신인 "진한" 이전의 유랑집단은 "진(秦)의 망인"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한(秦韓)이라고 스스로 호칭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지요. 역사서 기록은 모두가 "진(秦)"의 후국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보아집니다. 이러한 결과로 보면, 신라와 페르샤는 문화, 무역등으로 상호 소통할 수 있었던 지리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도라는 데는 회의적입니다. 일부 이주자들에 의해 반도 땅에 흔적은 남아 있을 수 있겠지요.
<페르샤는 신라>라는 주장이 간혹 있습니다만, 그 근거는 아주 불확실한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많은 논거를 찾기 전엔 그저 "의견"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집단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주장에 대한 기록이나 고증, 증거 될 만한 것들이 없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페르샤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가능하면 조선사는 조선사 그대로 봐주는 것이 조선사를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이것을 각색하면 결국 씨나리오에 의한 창작 소설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역사이야기가 될 수 없습니다. 좀 더 연구하여 그 논거를 찾은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감사합니다
한반도 경상남도 경주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와는 무관합니다. 그 첫번째로 금관유적인데요. 신라는 금관을 쓰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유적을 신라의 것이라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문헌에도 안 나오는 것을 가지고 우리거라고 우기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오히려 스키타이들의 유물과 장묘문화가 같으며 그들의 유물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것만 봐도 한반도는 이주된 사람들이 땅이었으며 최후에는 조선인들이 이주를 해서 찾이한 땅이 된 마지막 주인이 바로 대한제국의 후손들이 우리들입니다. 언제 부터 우리의 땅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상당히 오래 전 부터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첫댓글 백제왕자 신라공주인가요? 서동요랑 비슷?
백제 무왕 580 ~641로 보니까 서사시와 연대는 비슷하네요.
그냥 짐작컨대 백제나 신라나 딱 하나씩이 아니라 몇개의 부류가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경상도에 산재해 있는 정교한 석조물들과 페르시아 계통 인물부조들을 보면 어느 시점에 신라의 지배층과 종교집단이 경상도로 이주해온것 같기도 해요. 특히 석굴암 같은 경우는 비잔틴 돔 구조인데 이게 그 전단계에 좀 수준이 떨어지거나 발전단계에 있는 다른게 하나도 없이 갑자기 석굴암이라는 완성태가 나타나버렸거든요. 신라계의 이주민이 있었거나 아니면 정말 아눈나키급의 기획에 의한 역사이전이던가...암튼 위의 기사를 읽어보니 경상도가 신라였을 가능성은 0
전에 우리 카페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반도와 페르샤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신라는 서토지방(중앙아세아)을 강점했던 나라였다고 봅니다. 이는 신라의 전신인 "진한" 이전의 유랑집단은 "진(秦)의 망인"들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한(秦韓)이라고 스스로 호칭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지요. 역사서 기록은 모두가 "진(秦)"의 후국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보아집니다. 이러한 결과로 보면, 신라와 페르샤는 문화, 무역등으로 상호 소통할 수 있었던 지리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도라는 데는 회의적입니다. 일부 이주자들에 의해 반도 땅에 흔적은 남아 있을 수 있겠지요.
<페르샤는 신라>라는 주장이 간혹 있습니다만, 그 근거는 아주 불확실한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많은 논거를 찾기 전엔 그저 "의견"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집단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주장에 대한 기록이나 고증, 증거 될 만한 것들이 없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페르샤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가능하면 조선사는 조선사 그대로 봐주는 것이 조선사를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이것을 각색하면 결국 씨나리오에 의한 창작 소설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역사이야기가 될 수 없습니다. 좀 더 연구하여 그 논거를 찾은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감사합니다
한반도 경상남도 경주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와는 무관합니다.
그 첫번째로 금관유적인데요. 신라는 금관을 쓰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유적을 신라의 것이라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문헌에도 안 나오는 것을 가지고 우리거라고 우기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오히려 스키타이들의 유물과 장묘문화가 같으며 그들의 유물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것만 봐도 한반도는 이주된 사람들이 땅이었으며 최후에는 조선인들이 이주를 해서
찾이한 땅이 된 마지막 주인이 바로 대한제국의 후손들이 우리들입니다.
언제 부터 우리의 땅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상당히 오래 전 부터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