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동피랑을 둘러 볼 예정을 바꾸어 중앙시장과 강구안을 둘러 보고
일행 중 한 분의 지인과 만나기로 한 다찌로 바로 가기로 한다.
중앙시장은 서호시장과 함께 통영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싱싱한 횟감을 고르느라 북적인다.
사람에 밀려 있는 활어회 코너를 지나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 본다.
인천의 연안 어시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팔리는 생선이 다르다.
병어처럼 보이는 돔벵이가 눈길을 끈다.
저녁 약속이 있으니 구경만 할 뿐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둘러보기만 한다.
강구안에 정박중인 배
저멀리 미륵산이 보인다.
건어물을 말리는 풍경은 여느 항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전통의 뽑기
설탕을 녹이는 기술이 신기에 가깝다.
설탕을 붓고 어느 정도 녹은 시점에서 젓기 시작하고 그 후에 소다를 넣는 동작 하나하나가 일정하다.
눌어붙는 것 하나 없이 철판 위에 �K아 붓고 누른 후에 모양을 만드는 동작을 보고 있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 앞에 앉아 심혈을 기울여 모양대로 뜯어내기 여념이 없는 아이들
집중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이 곁에는 아빠들이 하나씩 달라붙어 거드는데
승부욕은 남자들의 전유물인 듯 엄마는 뒷전이고 아빠들이 열성이다.
세월호는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국민의 마음속에 있다.
서해안 남해안을 가리지 않고 바다모래채취가 문제가 되고 있다.
바다모래를 채취하면 산란장이 없어져서 수산자원이 고갈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육지에서 4대강 사업이 강을 죽인다면
바다에선 해사 채취 사업이 바다를 죽인다.
단지 수송비가 싸다는 이유로 사대강에서 퍼낸 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바다에서 모래를 퍼올린다.
다찌는 어디서 유래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통영의 술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전주의 막걸리집이 막걸리 한대에 안주 포함해서 1만원을 받는 것과 같은 시스템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맥주와 소주만 취급하고 안주는 주로 해산물이라는 것
나름 통영에서 유명한 집이라는데
먹는 집은 유명한 집 치고 이름값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다.
일행의 지인은 술을 전혀 드시지 않는 분인데
친구가 왔다는 이유로 부하직원에 알아봐서 특별히 예약을 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다는 집인데
현지인보다는 외지인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다.
험담을 하는 입장이라 술집 간판을 올리지는 않는다.
다찌가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면 일본어에서 온 말이 아닌가 싶다.
서다라는 일본 말이 다쯔인데 우리네 선술집이 서서 먹는 집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다찌도 선술집처럼 간단히 한잔하고 가는 집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인천에도 인천역에서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 밴뎅이집이 있는데
예전에는 다들 서서 먹었다.
안주도 한가지 술 한되 시켜 놓고 막걸리 간단한 것 시켜서 서서 마셨던 집들이었는데
지금은 탁자를 놓고 영업을 한다.
여기도 소주 한병에 1만원 간단한 안주랑 나온다.
또 한 병을 시키면 따라 나오는 안주는 조금 전의 안주보다 더 고급스럽게 나온다.
그렇게 시키다 보면 이 집이 준비한 안주종류가 모두 끝나고 술자리도 파하게 된다.
우리는 일인당 3만원자리와 5만원짜리 두 종류 중에 친구분이 대접한다고 5만원짜리로 예약을 해 놓았다.
마지막 안주로 귀하다는 털게찜이 나왔다.
첫날 연대도에서 먹은 훌륭한 회에 길들여진 혀가 실망을 더해갈 때
나온 털게찜 이 것이 없었다면 정말 욕나올뻔 했다.
얻어 먹는 입장에서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술을 산 분이 다음날 아침에 슬쩍 말을 꺼내, 그에 동의했다.
이틀을 재워주고 저녁까지 거하게 산 착한 친구분에게 감사를 표한다.
세 시간에 걸친 만찬을 마치고 충렬사 주차장에 두고 온 차로 이동하는 거리는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도시 통영답게 거리에 조각품들이 즐비하다.
두 연인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의자
실제 앉을 수 있어 길가는 여행객들에 인기가 있을 것 같다.
걸어가시는 분은 함께 간 일본중앙대 교수이신 마츠하시 토오루.
고양이와 새
이것도 의자와 벤치라 앉을 수 있다.
충렬사에 불이 밝다.
저 계단에 앉아 시를 �㎱� 백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 하다.
통영의 이틀 째 날은 이렇게 저물고 있다.
일행의 친구네로 이동하기 위해 대리기사를 불렀다.
너무 많은 업무로 특별히 오천원을 더 준다고 한 후에야
기사 배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