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김삿갓(김병연)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가 지은 시 중에 여러분도 잘 아시는 竹詩가 있습니다.
대나무 죽(竹)字로 운을 맞춘 이 시는
그의 번뜩이는 기지와 해학을 나타낸다고 찬탄을 받는 시이죠.
앗, 그런데 이 시는 김삿갓이 태어나기 1000 년도 더 전에
浮雪居士 (부설거사)가 지은 八竹詩를
글자 2개, 한 단어와 한 句의 순서만 뒤바꾼 걸 오늘 알았습니다.
浮雪居士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태어났고 진덕여왕 시절
원효, 의상과 함께 삼대 고승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입니다
두 시를 비교해서 읽어 보세요.
八竹詩 / 浮雪居士
此竹彼竹 化去竹 (차죽피죽 화거죽)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風打之竹 浪打竹 (풍타지죽 낭타죽)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粥粥飯飯 生此竹 (죽죽반반 생차죽)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是是非非 看彼竹 (시시비비 간피죽) 옳으면 옳은대로 그르면 그른대로 보고
賓客接待 家勢竹 (빈객접대 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 歲月竹 (시정매매 세월죽) 시정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
萬事不如 吾心竹 (만사불여 오심죽) 세상만사 뜻대로 안될땐 내 마음대로
然然然世 過然竹 (연연연세 과연죽) 그렇고 그렇고 그런세상 지나가는대로
竹詩 / 김삿갓
此竹彼竹 化去竹 (차죽피죽 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대로
風打之竹 浪打竹 (풍타지죽 낭타죽)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是是非非 生此竹 (시시비비 생차죽) 이거면 이건대로 저거면 저건대로 생긴 이대로
飯飯粥粥 付彼竹 (반반죽죽 부피죽) 밥이면 밥인대로 죽이면 죽인대로 주어진 저대로
來賓接待 家勢竹 (내빈접대 가세죽) 찾아온 손님접대는 집안의 형편대로
市井賣買 歲月竹 (시정매매 세월죽) 저잣거리 물건값 흥정은 해달라는대로
萬事不如 吾心竹 (만사불여 오심죽) 세상만사 뜻대로 안될땐 내 마음대로
然然然世 過然竹 (연연연세 과연죽) 그렇고 그렇고 그런세상 지나가는대로
그의 또 다른 유명한 시 <是是非非> 詩도 이미 300여년 전에
김시습이 同자와 異자로 지은 시를 글자만 바꿔 응용한 거네요.
김삿갓의 是是非非
是是非非 非是是 옳은 것 옳다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옳음이 아니고
是非非是 非非是 그른 것 옳다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옳지 않음 아니네
是非非是 是非非 그른 것 옳다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 그름이 아닐진데
是是非非 是是非 옳은 것 옳다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로구나
김시습의 글
同異異同 同異異 다른 것 같다하고 같은 것 다르다 하니, 같고 다름이 다르고
異同同異 異同同 같은 것 다르다하고 다른 것 같다 하니, 다르고 같음이 같구나
흠~~~ 응용이야 좋은거지만 표절은 하면 안되는 건줄 알았더니...
나도 표절이나 해 볼까...?
천재를 알아보는 눈만 있으면
천재보다 더 천재라는 소리 듣는 것 같은데? ㅎㅎ
풍문으로 들었소 / 장기하와 얼굴들
풍문으로 들었소 (원곡) / 함중아와 양키스
첫댓글 김삿갓은 실존 인물로 본명은 김병연이라고 합니다. 영월군에는 생가와 묘가 있는 그 지역을 '김삿갓면'으로 행정지명까지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삿갓의 시는 몇몇을 제하고는 후대 사람들이 소설로 쓰면서 이것저것 차용했거나 모방하여 사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 김삿갓의 표절이라기보다는 후세 작가들의 표절이라는 생각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하하하
김삿갓(김병연)의 재능이야 물론 인정하고 감탄도 하지요
많은 후대 사람들이 차용하거나 모방한 것도 사실이고요
하다못해 저도 몇년 전에 그의 시를 조합한 풍자시를 써서
이 카페에 풍파를 일으키기도 했으니까요 ㅋ
그런데 저 죽시는 김삿갓이 표절한 것 맞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역시 실존인물인 부설거사가 팔죽시를 쓴 시기는 632년과 654년 사이 어느 때이고
김병연이 죽시를 쓴 시기는 1807년과 1863년 사이의 어느 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