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가 뭐 그리 대수로운가?
어느 날 아들이 재미있는 티브이 프로그램이라며 나에게 권한 게 있다. tvN의 예능 “삼시세끼”다. 그가 나에게 이 프로를 보라고 권하면서 하는 말인즉슨, “아빠 수준에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나”? 글쎄, 왜 나에게 적합하다고 했을까. 아마도 장노가 되어 매일 집안에 틀어 박혀 있는 나의 일상사에 어쩌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티브이 드라마를 그다지 즐겨 보지 않는 나의 성미인지라 들은척 만척 무시할까 했으나 그의 지속적인 강요에 하는 수없이 그동안 녹화한 내용을 장시간 연속적으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좀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회를 거듭할 수록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주 내용은 주인공인 탤런트 이서진과 아이돌 2PM 멤버 택연이 강원도 정선의 어느 산골 마을의 농가주택에서 살면서 삼시 세 끼니를 해결하는 것인데,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便易한 도시생활에 젖은 두 젊은이가 6-70년대의 고전적인 시골생활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흔한 전기 밥솥도, 냉장고도, 개스 레인지도 없이 오로지 장작불을 피워 가마솥에서 밥을 지어야 하고 솥뚜껑 걸어 부침개를 만들고 찌개를 끓여야 함은 물론, 집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로 냉장고를 대신하여 남은 음식물을 상하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 우리네 어릴 때의 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애처로운 생각이 솟구치기도 한다. 그제서야 나는 왜 아들이 그토록 이 프로그램을 보라고 강요했는가를 알 것 같다.
드라마 첫회는 둘만의 삼시 세끼니만 해결하면 되었는데, 2회부터는 그 곳을 방문한 손님들의 숙식까지 해결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궁금증을 더해 간다. 예를 들면, 아침 마다 모닝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되는 손님을 위해 준비하는 서지니(이서진의 이름을 이렇게 묘사함)의 커피 만드는 모습은 가관이다. 커피 원두를 육중한 맷돌의 윗짝 아가리에 넣고 어처구니를 잡아 슬슬 돌리면 아래짝 맷돌의 평평한 곳으로 커피가루가 되어 스멀 스멀 기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정말 어처구니 없었다. 그렇게 만든 가루를 투박한 사발에 넣고 장작불로 끓인 알루미늄 주전자 속의 우유를 부으면 그대로 밀크 커피가 된다. 우유도 그냥 우유가 아니다. 프로그램 첫 회에 두 명의 주인공에게 주어진 양의 젖을 택연이 직접 손수 짜서 나온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유가 아니라 양유인 셈이다. 그걸 마시고 아주 맛있다고 넉살을 떠는 배우들의 표정 또한 볼만 하다. 이와 같이 전개되는 예능이다 보니 처음 몇 회는 그들의 익숙하지 못한 습관 때문에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숙달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예능 프로그램인가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모르나 지상파도 아닌 종편 tvN이 청취율 7.5%를 넘어 섰다는 보도를 접한 뒤 나는 그 까닭을 알 것만 같다. 어찌 보면 요즈음의 내 일상과 비슷한 점이 없지 않아 한국전쟁의 폐허로 암울했던 5,6,70년대를 거쳐 iT의 첨단문화를 두루 섭렵하고 있는 우리 또래의 세대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요즘 젊은이들이 겪지 못했던 지난 시대의 어려웠던 생활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중세의 르네쌍스를 떠올렸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처럼 중세 이전의 유럽은 神들의 세상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神權을 가진 자들의 세상이었다. 인간의 모든 문화와 예술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찬양하고 위하는 행위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리스에서 출발한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 이르는 인문학자들의 끊임없는 “인간의 자아 발견” 노력은 로마의 키케로를 거쳐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그게 바로 르네쌍스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까라바조, 토마스 아퀴나스, 라파엘 등의 인물들이 그 시대를 이끌었던 대가들이다.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표현의 초점은 “인간 본연의 발견”이었다. 건축과 조각 그리고 회화와 문학 작품에서 그들은 인간 본래의 내적 심리와 외적 표정 그리고 숨소리마저 제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가 화두였다. 신에 의해 억눌렸던 인간성을 제대로 회복하려는 운동이 바로 르네쌍스였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이 제2의 르네쌍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神이 아닌 디지털 문화로 잃어버린 인간의 정체성 회복을 바라는 새로운 르네쌍스 말이다. 몇 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인문학 강의 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생활의 편리성과 안이함, 그리고 효율성만을 추구해 온 현대의 우리에게 닥쳐온 인간성의 상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황금만능에 추가하여 스마트폰 만능의 시대는 가족도 친구도 혈연도 친척도 안중에 없게 만들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오직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연약하고 힘없는 노약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오로지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길을 찾아 간다. 필요한 정보는 검색창만 두드리면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말씀보다 스마트폰에 나오는 답을 더 신뢰한다. 사주팔자만 적어 넣으면 나의 운명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 하나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일상화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록 더 할 것이다. 이럴 수록 인간의 비인간화는 더 심각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예견이나 했는지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인문학자들이 이를 경고했는지도 모르겠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이나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고 외친 노자, 너 자신을 알라고 경고한 소크라테스,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이체, 물에 빠져 죽은 매춘녀를 모데로 성녀 마리아를 표현했던 이태리 화가 까라바죠 등 동서고금을 통해 그들이 강조한 것은 한결 같은 ”인간 본연의 추구와 발견“이었다.
고작 ”삼시 세끼“ 예능 프로그램 한 편을 보고 중세의 르네쌍스까지 들먹인 나의 생각이 너무 지나치다고 볼지도 모르겠으나, 은퇴 후 하루 세 끼니 중 한 끼를 책임지고 준비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부스스 눈을 떠 일어나면 먼저 가는 곳은 주방이다.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서다. “삼시 세끼” 프로그램처럼 산간오지의 토속적이고 재래식 주방공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무척 서툴렀고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데 나는 만족하고 있다. 더불어 또한 이런 삶을 통해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생활 속의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아 일거양득이다. 은퇴 전만 해도 돈만 벌어다 주면 그만이라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는 하루 세 끼니 식사를 비롯한 집안 살림이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에게 근본적인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것을 도맡아 했던 주부들의 노동 가치의 중요성도 재발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자아의 첫 발견을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자기 스스로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는 시청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게 무슨 티브이 프로그램이냐고 폄하할 것이 아니라 작으나마 인간성 회복을 위한 밑거름 격의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휴머니티란 소박한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첫댓글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그 동안 마나님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아직도 삼시 세끼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을 하는 중이다. ㅋㅋ
어제 내가 늘 운동하는 헬스장에서 보기에는 7순~8순사이 정도 나이가 들은 아저씨 같은데, 나는 운동을 하려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아저씨들은 운동 후 싸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는 먼저 인사로 안녕하세요? 하니 모두들 반응을 보였다.
그런 후 한 아저씨 말씀! "아이구 이놈 세월이 요즘 시속 80킬로미터가 왜이리 빠르는지 멀미가 날려고 한다." .....
우리들의 삶에 많은 생각을 들게 해주는 대화다. ㅎㅎ
끼니마다 챙겨 먹는게 인생에 길 살아가는 희망 너무너무 중요함더
한기두끼 건너뛰다 보면 체력이 뚝떨어저 험한 인생길이 아주 고달파요...............
하루 세끼 챙겨 먹어야 힘을 쓸 수 있고, 또한 먹는 재미도 있지요.
밥힘으로 살아가는 인생! 무엇으로 대체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대체 수단이 있다면 대박 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