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약속
최 상 섭
운주산(雲住山) 심심산골 뫼 봉우리엔
바람도 산새도 구름도 쉬어가는
그리 높지 않은 그 봉우리엔
하늘을 베어 물고 천륜을
다아
가슴속에다 담으려는지
와불(臥佛) 두 분이
천년을 묵상하며 개벽(開闢)의 세상을 이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닭 울음소리 들리는 새벽이 다가 와
천불(千佛) 천탑(千塔)을 다 만들고도 마지막 자신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 석공을
단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기인 세월 비바람의 저주와
눈보라의 씻김에도 울지를 몰랐다네.
세상을 구제하고 도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
미륵(彌勒)의 도가 온 누리에 도래(到來)할 날을
또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돌아누우면 천길 낭떠러지
눈으로 눈으로만 바라보고
가슴으로 가슴으로만 손짓하며
그 날을 그리는
무한(無限)의 세월을 숨죽이고 살아온
천년 와불
백성이 주인 된 세상
그 주인이 잘 사는 세상은
바람도 산새도 구름도 운주산의 와불도
촛불 든 우리네 소시민이랑
말하지 않은 천년의 약속이었지.
2008. 12. 25 (화순군 운주사에서)
* 주제 : 미륵세상의 도래를 꿈꾸어 봄
* 제재 : 와불을 통해서 본 소시민의 희망
* 습작노트 : 지난 25일 기독교 신자가 아니드라도 누구라도 성스러워 축하해 주고 축복받고 싶은 그 날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직행버스, 시내버스로 이어지는 종점에서는 걸어서 천불 천탑이 있었던 운주사에 혼자서 다녀왔었습니다. 지금은 100여불 불상과 30 여기의 탑이 남아 있고 더욱 안탑깝게 작년에 운주산에 큰 화재가 나 민둥산이 여기저기이고 지금도 화목을 자르고 있었습니다. 그 날따라 남도땅은 진눈개비에 세찬 바람이 불어 가장 추운 날씨로 감기를 앓고 있는 본인은 신열을 느끼면서도 다탑봉 봉우리에 있는 길이 6m 정도의 길이로 누워있는 와불 두 분을 보는 순간 경이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40 여분을 그 곳에서 보내며 마음 뿌듯한 시간을 가졌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찻속에서 몇자 적어 봤습니다. 혜량하옵소서.
# 미륵 : 석가 세존께서 생전에 미륵은 부처가 되리라 예언했고 현재는 도솔천에서 수양하고 있으며 지구가 멸망의 위기에 처할 때 56억 7천만년 후 쯤 지구와 인간을 구제한다는 미래불
# 와불(臥佛) : 운주산 작은 정상의 너른 바위를 떼어내는 수법으로 바위위에 조각한 부처 두분
# 운주사의 천불 천탑 : 고려시대 11세기 경에 세워진 사찰로 이 때 천불 천탑도 만들어 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정확한 동기나 근거는 미약함. 장길산의 소설 일부와 소설 토정비결에서 황진이의 미모에 빠진 지족선사가 가사 장삼을 벗어 던진 후 속죄의 업으로 천탑 천불을 만드는 도인으로 묘사하지만 이는 모두 문학적 허구요 운주사에 대한 흠집이지요.
#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가 천불 천탑을 세우고 마지막 와불을 세우려는 순간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새벽이 와 마지막 부처를 세우지 못하고 와불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 옴
첫댓글 평소 선배님의 시를 대할 때마다 뿌리조차 캐내는 시심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습작노트를 보니 "40 여분을 그 곳에서 보내며 마음 뿌듯한 시간을 가졌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찻속에서 몇자 적어 봤습니다. 혜량하옵소서." 라는 젊잔하고 품위 높은 글귀가 있습니다. 아!!! 이렇게 한번의 시선으로 한 편의 시를 써낼 수 있었습니다. 탁월하신 시심이 갈수록 부럽기만 하옵니다. " 백성이 주인 된 세상 / 그 주인이 잘 사는 세상은 / 바람도 산새도 구름도 운주산의 와불도 / 촛불 든 우리네 소시민이랑 / 말하지 않은 천년의 약속이었지." --- 신통치 않아 버린 와불이건만 이렇게 좋은 의미를 더해주셨네요. 새해에도 좋은 시 기대하겠습니다.
두분 와불께서 일어서지 못하신 사연과 한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써주신 야생화님의 글 샘의 깊이에 새삼 감탄합니다 좋은 글 고맙게 잘 보고 갑니다.
전남 화순 먼 곳에 있는 운주사를 고속버스. 직행버스. 시내버스를 갈아타면서 다녀오신 야생화님의 문학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외로운 나그네 가는 길. 버스 차창밖으로 얼마나 많은 낯선 풍경과 찬바람이 스쳐가고 세월의 깊은 고갯길도 넘어갔는가? 천불천탑의 유서 깊은 내력이 한 편의 시로 승화되기 위하여 혼자가는 길은 얼마나 고독했던가? '천년의 약속' 시 속에 시적화자가 이루어내고자 하는 꿈과 미래와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와불 두 분이 아직도 비바람에 씻김을 당하면서 천년의 세월 속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 길 가는 나그네가 되어 가보고 싶은 운주사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갑니다.
늘 부러움을 안고 갑니다 언제나 멋지고 자세히 설명을 하시며 글을 쓰시는 모습 저도 본받으려 무던히 애쓰고 있음을 알고 계시는지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