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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의태자의 풍경산방 원문보기 글쓴이: 풍경 송은석
대구향교 춘계석전대제를 다녀와서
(대구향교 청년유도회 조직부장 송은석) 지난 2009년 3월 3일(孔紀 2560년 2월 上丁日).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구향교에서는 춘계석전대제(春季釋奠大祭)가 봉행되었습니다. 우중(雨中)인 관계로 금번 석전은 제관(祭官)들은 대성전에서 그리고 유생(儒生)들은 유림회관에서 봉행을 했습니다. 오랜 겨울가뭄 끝에 내린 반가운 봄비. 대성전 뜰에 서서 눈 맞은 강아지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비를 맞으며 석전을 참관했습니다. 석전대제(釋奠大祭)는 ‘충’과 ‘효’를 가르치는 체험학습 석전대제는 유학(儒學)에서 선성선사(先聖先師)에 예(禮)를 올리는 제례(祭禮)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례라는 것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이해의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저의 경우 제례는 ‘추모(追慕)’와 ‘효’에 그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기복(祈福)이 아니라 조상을 그리워하는 추모의 정을 禮를 갖춰 표현하는 것이라고. 또한 후손들에게 효를 가르쳐주는 교육의 장이라고. 저에게 禮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 말씀으로 제례의 정신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돌아가신 조상님조차도 그 은혜를 잊지 못해 정성껏 추모의 정을 담아 제사를 모시는데 하물며 산사람들에게야 오죽하실까?’ 제례를 통해 후손들은 자연스럽게 효를 체득하게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2007년 발행된 ‘대구향교지’ 석전대제 항목의 251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국가가 석전을 통해 도덕을 숭상하고 효행을 권면하는 효과를 가짐으로써 ... 석전은 공자의 도와 덕을 숭상하는 것을 보이는 것이며 이로써 모든 유자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게 하고자 하는데 그 큰 뜻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교육이라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과 동시에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작년 추계석전 때에는 일반 참관객들이 제법 있었습니다만 올해는 비가 온 탓인지 작년만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유학(儒學)에 있어 석전대제는 누가 뭐라 해도 성스럽고 엄숙한 행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석전을 體와 用이라는 양 측면을 놓고 한번 고심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用에 해당하는 석전봉행의 절차는 관례화된 의례행위이니 앞으로도 큰 무리 없이 그 전통은 잘 이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석전의 體에 해당하는 ‘도덕을 숭상하고 효행을 권면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석전대제 참관이라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석전 당일 비 내리는 대성전 뜰에 서서 한번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대구향교 대성전 뜰을 가득 메운 유생들과 일반 참관객들. 유생들은 집례의 창홀(唱笏)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석전대제를 성스럽게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손에 석전대제 안내 팜플릿을 들고 있는 많은 참관객들이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석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禮가 끝나자 참관객들은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방금 석전을 마친 대성전 내부를 관람합니다. 관람객과 유생들 간에 질문이 오가고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초헌관이였던 대구시장은 이미 禮는 끝났으나 시민들과 좀더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눈치입니다...’ 神門神道通行 禁律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으면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러했습니다. 석전 당일 유생들을 제외한 참관객 중 일부는 대성전 내삼문(內三門)의 신문(神門)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나들곤 했습니다. 또한 대성전 뜰의 신도(神道)를 따라 걷거나 넘나드는 일도 있었죠. 행사 때마다 한두 명의 유생들이 내삼문 앞에 서서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내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참관객들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나타내기도 하죠. ‘뭐가 그렇게 까다롭냐? 문이면 다 문이지 뭘 동문으로 들어가고 서문으로 나오라고 하는거냐? 왜 그렇냐? 등등...” 三門 앞에 三門과 神道의 통행방법 대한 안내문을 하나 세워두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