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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선의 사(死)
1
“수덕(秀德)언니, 일본 가면 맘들이 다 그렇게 변할까요?”
“왜요?”
“글쎄 이상스러워서요.”
“응 안정자(安靜子)씨 말이구려!”
“아니야·…… 그 내 공연한 말을 했네!”
“왜 어쩐가. 그래 니 얘기를 해요.”
“기아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언니가 그러니 말이지 나는 처음 보아도 어째 별(別)해요. 대체 정자라니 그건 무슨 이름이야.”
“본래는 정자가 아니구 정숙(貞淑)이라오, 곧을 정자 맑을 숙자. 정숙이라고 저를 몹시 사랑하시든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있다오.”
“정숙이가 좀 좋아!”
“그러구 하는 말을 당초*에 알 수가 없지 않아요?”
벌써 한 오 년 전 여름 일이다. 서울 S여학교 기숙사에, 다른 학생은 방학이 되어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에, 북간도(北間島)서 온 학생 세 사람과 함흥서 온 학생 한 사람과 같이 적적하게 남아 있는 임혜선(林惠善)은 방금 저녁을 해 먹고 한방에 있는 함흥학생 (김수덕)으로 더불어 이런 이야기를 꺼내었다.
혜선이 S학교에 온 지는 퍽 오랬다. 중간에 병으로 인해서 몇 해 쉬었다가 그해 봄에 다시 올라왔다. 혜선의 집은 과히 멀지도 아니하다. 수덕이는 온 지도 오래지 않았거니와 집이 너무 멀고 길이 불편해서 아니 갔으나 혜선의 집은 기차 연변(沿邊)*에 있고 십 여 시간이면 갈 수가 있다. 그 집안 형세도 꽤 넉넉하다. 그리고 그 시집이 경성 안에 있음으로 거기 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에 있는 것보다 학교에 있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부러* 아니 가고 있는 것이다. 혜선은 방학하기 며칠 전에 자기 집에 이런 편지를 하였다.
아버님 전상서
요새 일기 몹시 덥사온대 아버님 기체후* 강령하시오며, 온 댁내가 태평하시온지 문안 아뢰옵나이다. 불효식은 염려 하옵심으로 별일 없이 지내오니 복행이올시다. 아버님께서는 과려치* 마시옵소서. 이번 하기휴학은 재명일*부터 시작되옵는바 제가 감히 아버님 앞에 말씀드리기 어렵사오나 저는 방학에 집에 돌아가지 아니 하옵기로 마음에 결심하였습니다. 저 같은 불효의 자식은 자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하였던 것이 좋사올 것을 우리 가운(家運)이 사나워 불행히 세상에 나와서 갔다가나 근심으로 세월을 보내시는 아버님을 더욱 상심케 하고 괴롭게 하오니 저 같은 자식은 도리어 아버님 눈앞에 보이지 아니함만 같지 못하다 생각할 뿐 아니오라, 사감께서도 아니 갈 터이면 남아 있는 학생을 좀 돌아보아달라 하옵기로 그리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사오니 죄송천만이오나 기다리시지 마옵시기를 바라나이다.
아버님 기후* 내내 강령 하옵시기를 바라옵나이다.
*
수년 전부터 동경(東京) 가서 여자미술학교 동양화과에 들어 공부하는 안정자는 혜선이가 기예과(技藝科)를 졸업할 때에 본과를 졸업하였고 두 사람은 기왕에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든지) 기숙사에서 늘 한방에 있었기 때문에 정분이 매우 가깝다. 여름방학에 돌아왔던 정자는 혜선이가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아니하고 학교에 그냥 있다는 말을 듣고 인천서 부러 찾아보려고 왔었다. 종일 놀고 오후 네 시에 갔다. 말 잘하고 썩 다정한 천질(天質)을 가진 정자는 더위에 기숙사에서 적적하게 지내는 두 사람을 위로하노라고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동경 갔던 친구들의 소식 이며, 자기 친구 몇 샤람과, 어떤 남자와 처음으로 제국연극장에 가서 「하물렛트」* 연극을 보던 이야기와 음악학교 음악회에 가서 로시아 처녀의 소리 지르는 독창을 듣던 이야기며 ‘시로도(私主人)’에 혼자 있을 때에 밤이면 무섭던 이야기며 전차를 잘못 타서 종일 고생한 이야기며 활동사진과 소설이 재미있던 이야기로 혼자서 종일 지껄이다가 마그막*에는 이 다음 보름날은 자기 어머니 생신이니 놀기 겸하여 인천 자기 집으로 오라고 신신부탁을 하고 갔다. 꼭 절간 같은 이 기숙사에서 몹시 갑갑하고 괴롭게 지내던 두 사람은, 정자로 하여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지내었다. 그러나 정자의 방문은, 혜선이와 수덕에게는 마치 잔잔하던 호수에 돌을 던져 물결을 일으킨 셈이었다.
“공부나 좀 했다는 재센*지 영어와 일어는 절반이나 더 섞어 말하대!” 이것은 수덕이 대답이다.
“참말 우리같이 무식한 사람은 당초에 알아들을 수가 없어! 에그 우리도 어서 동경이나 갑시다.”
혜선이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은 정자의 말보다도, 그 말의 속뜻이었다. 그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덕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으로 대답을 하니까 혜선이는 이렇게 말하고 혼자 씨익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깐 침묵이 있었다. 이때에 마침 이제부터 잠시 멎었던 장맛비가 가늘게 소리 없이 내린다. 혜선이는 무심히 그것을 바라보고 앉아서 아까 정자가 말하던 것을 생각한다. 정자가 종일 지껄인 이야기를 다 잊어버리더라도 혜선에게는 한 가지 잊을 수 없고 내버려둘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지금 혜선의 머리에는 그 말이 마치 활동사진 모양으로 떠나온다. ――남자들이 이혼을 한다고 세상에서 몹시 욕들을 하지마는 욕하는 사람은 제가 당해보지를 못했으니까 그래.
나는 이혼할 사람은 해버리는 것이 옳은 줄 알아. 나더러 나쁜 년이라고들 할는지 모르겠지마는 좀 생각을 해보아!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물건은 조선여자야! 사나이는 싫다는데 어쩌자고 부득부득 살자고 한단 말이야? 그 사나이 아니면 사나이가 없다고, 흥. 열녀(烈女)는 불경이부(不更二夫)*니 무어니 하는 말은 몇천 년 전 옛날에 정신 빠진 사나이들이 제 마음대로 함부로 한 말이야, 그따위 말 때문에 우리나라에 참혹하게 한평생을 보낸 사람이 얼마나 많을 테요. 아이구 구역나, 혼자 살지 혼자 살어! 그러구 대체 결혼이라는 법이 먼저 생겼겠소? 남녀의 사랑이 먼저 생겼겠소? 조선사람은 모두 그 아니꼬운 법의 종이 되어서 어쩔 수가 없어! 말하면 사람이라니 제 끈으로 제 목을 매는 셈이야. 이왕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지내는 사람은 몰라도 한 번 눈을 뜬 다음에야 누가 그 어리석고 무의미한 결혼생활을 하려고 하겠소. 남자들도 동정할 만하기야 하지! 제일 불쌍한 것은 여자야! 정자가 이렇게, 얼굴이 빨개져가면서 연설처럼 한 말을 생각하다가
“언니 무슨 궁리를 그렇게 해요?”
수덕이가 무릎을 툭 치며 하는 말에 비로소 머리를 돌려 수덕을 향하여
“글쎄 정숙이가 본래는 퍽 얌전했다오. 교장께서 늘 칭찬을 하시고 누구든지 정숙이를 본받으라 했다오.”
“글쎄 품행에 늘 갑(甲)을 했다지!”
“럼텀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아주 칭찬을 하시고 정숙이 같으면 학교 보내도 조금도 남부끄럽지 않다고 자랑을 하셨다는데. 그러던 아이가 아이구, 동경을 가더니 그렇게 변했어요. 태도든지 말하는 게든지. 아까 지껄이던 말이 그게 다 무슨 말이요. 하나도 당치 않은 소리를…….”
“글쎄 좀 사람이 교만해 보여요!”
“전엔 그렇지 않았다오.”
“자기 어머니 생신날 오라는 것은 어떡해요. 가요?”
수덕은 나는 아니 가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언닌 어쩔 테요?”
“나는 가기 싫어.”
“왜? 가보아!”
“연니가 간다면 나도 가지.”
“동경 이야기나 좀더 듣습시다그려 가서.”
“언니는 그런데 왜 집에 안 가고 있어요? 이제라도 가요?”
“글쎄 집에는 가서 무얼 해? 이거 좋지 않소?”
“좋기는 무엇이 좋아. 저러니까 저렇게 신세가 되지, 언니는 꼭 금강산으로 가는 것이 좋을 테야.”
“또 저런 소리를 하네. 내가 중이 되면 좋겠소?”
“좋고말고 언니가 중이 되려거든 언니 머리는 깎아서 날 주어.”
“나는 언니 아니면 못살겠소” 하고 혜선은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웃었다.
이때에 경복궁 대궐 안 송림(松林) 속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부인학교에 울려서 이상스럽게 무섭게 들린다.
“그새 벌써 밤이 들었나보아! 몇 시야?”
“아흡 시 반이야, 그만 잡시다.”
“무서워 어떻게 자나.”
“무섭기는 무엇이 무서워, 나는 원 당장 무엇이 와서 잡아간대도 무서운 것이 없어!”
“언니는 꼭 할머니 같아요.”
하고 수덕이는 심겁게* 껄껄 웃는다.
혜선이는 일어나서 잘 준비를 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어느새 멎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한다. 여태도 종로서는 야시(夜市)에서 싸구려 싸구려 외치는 소리가 요란하며 부인네들, 청년들, 옆에 계집 붙은 신사들이 우물우물 제가끔 구경거리가 되면서 오고가고 할 것이다. 전차는 요란하게 땡땡 소리를 치면서 달아날 것이오, 음식집에서는 술 먹고 떠드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의 발을 멈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혜선이와 수덕이가 이야기를 그치고 자리에 누우매 조용하던 기숙사는 더 한 겹 무섭게 고요해졌다.
혜선이는 자리에 누우면 으레 한 시간이나 지나야 잠을 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꼭 전등을 켜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수덕이는 불을 꺼야 잠이 드는 때문에 처음에 얼마 동안은 충돌이 되어 싸움도 많이 하였으나 혜선이가 신경쇠약으로 인해서 자지 못하고 앨 쓰는 것을 동정하여 수덕이가 양보하여 전등은 켜두고 수덕이는 돌아누워 자는 것이 두 사람 사이에 한 규례(規例)가 되었다. 수덕이는 어느새 옷을 벗고 소매 없는 자리옷을 갈아 입고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서
“나는 먼저 잘게! 또 혼자서 책 보겠지!” 하면서 한편짝으로 돌아눕는다.
“응” 하고 멋쩍은 대답을 하고 혜선이도 따라 누웠으나 오늘 저녁은 책도 보기 싫고 마음에 새로이 처량한 생각이 일어나고 몹시 신경이 흥분되어 졸연히* 잠이 들 것 같지 아니하여, 혼자 속으로 수덕을 보고 에그 부러워하였다.
평상시 같으면 항용* 네 사람씩 있고 사람이 많아지면 여섯 사람까지 지내던 방에, 방학이 되어 사람도 없거니와 덥다고 단 두 사람만 있으니까, 방 안은 별로 쓸쓸하고 고요한데, 잇다마큼* 모기소리가 가늘게 들리는 외에는, 수덕이 숨소리가 들릴 뿐이다. 혜선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전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혜선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오늘 정자가 한 말이 정녕 자기에게 무슨 뜻이 있는 것 같다. 고 약은 것이 날더러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그야말로 저는 당하지를 않았으니까 쉽게도 말하지. 제가 당해보아라. 암만해도 무슨 곡절(曲節)이 있는 말이다. 그 말이. 이제 저희 집에 가거든 좀 자세히 물어보아야지― ―혼자서 이리저리 생각을 한다.
2
자는 줄 알았던 수덕이가 무슨 생각이 났던지 돌아누우면서
“언니! 인젠 잡시다. 무슨 생각을 해요?”
“졸음이 와야지 자지……”
“나도 어째 잠이 안 와요. 언니 이야기나 해요.”
“할 이야기가 있어야지, 글쎄 부디 계집애로 태어날 것이 무엇이겠소. 사나이가 좀 못되고.”
“에그 갑자기 별소리를 다 해요 어서 이야기나 하나 해요.”
“참말이야. 수덕언니도 이담에 애 낳거든 애여 계집앨랑 낳지 말아요…….”
“듣기 싫어!”
“아니 웃는 말이 아니야. 내 이야기를 하지. 자지 않을 테요?” 하는 혜선의 말에는 깊은 슬픔이 띠었다.
“자기는!”
“나는 계집애로 난 것이 평생에 원(怨)이니깐 말이요. 내 이야기를 하지요. 우리 어머니께서 우리 오래비 죽여버리고 그만 심화*로 종내* 돌아가셨다오. 우리 오래비가 어떻게 튼튼하고 잘생겼었는지 손님이 오시면 안고는 놓기를 싫어했지요. 그리고 어린것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고 똑똑한지 크면 총리대신이 되거나 재판관이 되리라고 늘 그랬어! 그러던 것을 내가 열두 살 먹는 해 가을에 친정 할아버지께서 보고 싶으시다고 데리고 오라고 너무 그러시고. 어머니께서도 친정에 가신 지가 근 십 년이 되셔서, 나는 할머니하고 집에 있고 아홉 살 먹은 오래비를 데리고 가셨다가 그해 겨울을 지나고 그 다음해 삼월에야, 오셨는데, 그렇게 잘 놀고 튼튼하던 애가 거기서 수토불복(水土不服) *이었는지 무슨 병이 올랐는지 밥도 잘 안 먹고 기운이 없이 느릿느릿하더니 그만 병이 났지요. 암만 약을 써도 낫지는 않고 빼빼 말라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요. 그러더니 꼭 병난 지 한 달 만에 그만 죽겠지오.”
“아이구一 저걸 어째!” 하면서 수덕이는 입을 딱 벌리고 아물질* 못한다.
혜선은 말을 이어 “아이구 참 그때 어머니께서 아주 실성을 하시고 애를 쓰시는 것은 차마 못 보겠어요. 오래비가 살았을 때부터 나 같은 것은 우습지만 그러노라니까 나 같은 게야 어디 성명이 있어요? 어린 마음에도 모두들 (그 애가 죽지 말고 저거나 죽지!) 하는 것 같아요. 계집애라니 참 천합디다. 어머니는 밤낮 울기만 하고, 아버지는 매일 약주만 잡수시구 공연한 일에도 덜컥 성을 내시니까 나는 어떻게 무서운지 도무지 기운을 못 펴고 자랐어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시골서는 갑갑해서 못살겠다고 해서 가을에 서울로 이사를 하셨지요. 이사한 지 석 달 만에 감기같이 병이 나시더니 종내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몰랐어도 지금 생각하니까 꼭 울화*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께서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도 자궁병으로 그 애 난 후로는 아기를 낳지 못하시니까 다시 나으실 희망은 없는데 그렇게 잘났던 것이 죽으니까 어째 울화가 안 나셨겠소?”
수덕이는 여기까지 잠잠히 듣다가 후ㅡ 숨을 내쉬고
“그러니까 언니 하나만 불쌍해졌구만.”
하고 동정을 한다.
“우리 할머니는 퍽 팔자가 사나우신 이야. 일흔이 넘도록 돌아가시지 않고 계셔도 우리 할머니는 워낙 나이 많으시니까 당신 잡수시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모르시고―누워 계시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본래부터 말이 적으시던 데다가 그렇게 불행한 일만 당하시니까 하루 종일 가야 말 한마디를 아니하시지오. 나는 그 새에서 간신히 자라나서 열여덟 살 되는 해 봄에 출가(出嫁)라고 했지요. ……아이구 인젠 그만둡시다. 에구 더워!” 하면서 말을 멈춘다.
“왜요? 어서 마저 이야기해요.” 수덕은 이렇게 재촉을 하면서 “그런데 참 서방님께서는 동경 가서 공부하신다지요? 그때에야 재미들 보았겠지요? 사랑도 많이 받으시고” 하고 혜선을 바라본다. 혜선은 얼굴에 쓴웃음을 띠면서
“흥! 사랑받았지요. 나 같은 팔자에 사랑이 다 무엇이겠소, 사랑 대신에 밤낮 안방구석에서 종노릇만 하고, 남편이라고 말도 별로 못해보았는데요. 당초에 만나야 말을 하지요.”
“왜 휘문의숙 우등생이시라지요?”
“누가 압니까, 언니는 잘도 압니다.”
“그래!” 수덕이는 또 재촉을 한다.
“전에는 평생 다정한 말 한마디 아니하시던 우리 아버님이 나를 보고 싶으시다고 오라고 하시겠지요. 그래 그때는 어떻게 기쁜지 삼 년 만에 친정엘 갔지오. 그때 우리 집에서는 또 시골로 내려갔었어요. 가니까 위로의 말도 하시고 무얼 다 물어보시기 그저 좋다고 했지요. 그러고 며칠을 지내는데 하루는 우리 아버님이 부르십디다그려! 부르시더니 별안간에 공부하고 싶지 않으냐고 믈으셔요. 그래 처음에는 웬 셈을 몰라 싫다고 했지만 종내 공부를 하게 안되었어요? 그러니깐 그때 내가 스몰한 살이지. 이내 서울 와서 이화학당에도 가보고 정신(貞僭)학교에도 가보아야 결혼한 사람이라고 잘 받아야지요. 그러다가 어떻게 이 학교를 찾아왔더니 고마운 양반들이 입학을 시킵디다그러. 그래 이내 짐을 가지고 기숙사로 들어왔지요. 그때 그 방이 지금 이명선(李明善)이랑 있던 팔 호실이야. 그때 사무실 앞에 섰노라니까 양쪽 찐 학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아요. 저게 웬 시골썩이가 무얼 하러 왔나 하고. 처음에 한 두어 달 동안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어리하면서 세월만 보냈지요. 에그 몹시도 부끄럽더니! 그러다가 이럭저럭하더니 여름방학이 되어
서 집엘 내려갔지요.”
“왜 시댁에는 아니 가고요? 동경 가셨던 어른이 귀국하셨을 텐데.”
“그런 말은 말아요! 나는 아무도 없어요. 그 양반은 한 번 가고는 당초에 아니 온다오. 집이라고 가야 재미가 있어야지요. 반년이나 객지에 있다가 하루 종일 차를 타고 가서 집에 들어가야 어느 누구 다정한 말로 반갑다고 하나요.”
“왜 할머니 안 계시든가요.”
“벌써 돌아가셨지요. 그 이야기는 뺐구만.”
“그날 저녁은 밥도 안 먹고 그냥 대구 울었어요. 실컷 울고 제 풀에 멎어서 어떻게 잠이 들었던지 그 이튿날 아침에야 깨었더니 눈이 퉁퉁 부었어요.” 잠시 멈추었다가 한숨을 한 번 짓고 다시.
“우리 집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서 밥 걱정이나 옷 걱정은 하지 않았어도 나는 참 여태껏 털끝만치도 따뜻한 사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했어요. 그날 저녁에는 참 별생각이 다 납디다. 도로 서울 가고 싶기도 하고 칵 물에 빠져 죽고 싶기도 하고―― 덥기는 몹시 더운데 설상가상으로 병원에를 매일 다니게 되었지요.”
“왜 무슨 병으로?”
“병 이름도 몰라요. 머릿골이 몹시 아프고 그리고 눈이 아프기 공립병원에 가 뵈었더니 콧속에 병이 났다나요. 매일 오후 세 시면 병원에 갔다 오는 것이 할 일이었지요. 시골이 되어서 양머리하고 다니기가 어떻게 불편한지 아버지는 남부끄럽다고 걱정은 하시고, 아이구― 참 속상해서 죽겠어요!”
“혼자 댕겼어요?”
“어떻게 혼자 댕겨 계집애 하나 데리고 댕겼지…… 그때 마침 해주(海州) 우리 사촌오라버니가 동경서 공부하다가 하기휴학에 귀국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들르셨는데 어떻게 반가운지,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더 위인데 쪼그맸을 적에 보고는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재미있게 지냈는지. 그러구 그이가 꼭 여자 같아서 퍽 친절하고 재미있어요. 무얼 열심으로 가르쳐주고―― 일어(日語) 많이 배웠지요. 그러고 그다음부터는 오라버니하고 병원엘 댕겼지요. 며칠 댕기니까 병이 깊이 들었다고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여야 되겠다나요. 그래 오라버니가 입원을 시키고 아주 같이 와 계셨지요. 입원한 이튿날 수술을 한다는데 무서워서 참 혼났어요. 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오라버니를 따라 아래층 모퉁이에 있는 이상스러운 방엘 들어갔지요. 지금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요. 간호부 셋하고 일본의사 하나하고 조선의사 하나하고 죄다 흰옷을 입고 들어붙어서 나를 수술상이라는 데다 누이너니 수술할 자리만 남기고는 온통 흰 거즈로 덮은 다음에 죄다 동여맵디다그려. 그러고 조선의사가 와서 코에다 솜을 넣더니 병(甁)을 가지고 약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는 그만 정신을 잃었어요. 그새 몇 시간이나 지났던지 깨보니까 옷이 온통 땀에 젖고, 본래 있던 병실인데 침대 옆에 오라버니가 우두커니 앉아서 들여다보시는 것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꼭 꿈결 같아! 그리고 그날 저녁은 열이 나서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더니 번열증*이 몹시 나서 못 견디겠어요. 밤이 들수록 열은 점점 더 오르는데, 간호부라고 어디서 그따위를 데려왔는지 키가 커다랗고 얼굴이 뚱뚱한 게, 침대 밑에서 잠만 자겠지요. 오라버니께서 간호부 대신으로 꼭 앉아서 얼음을 연해 갈아대고, 약을 떠넣어주시면셔 밤을 깨깨* 새웠지요. 그때 나는 어떻게 고마운지 말은 못하고 번번 쳐다만 보다가 괴로운 가운데도 눈물이 시르르 솟아나와요. 오라버니는 왜 그러느냐고 물으시는 것을 겨우 머리를 흔들어서 ‘아니’라는 뜻을 표하였지요. 그러구는 속으로 ‘하나님 복 많이 내리소서’ 하고 빌었어요. 이럭저럭해서 날이 밝았는데 오라버니 말씀이 얼굴이 몹시 부었다고 해요. 이틀* 위에 광대뼈를 때려내고 수술을 한 모양이에요. 그때 죽었으면 안 좋소?”
“아여 별말을 다 해요. 그 어른 참 친절도 해라. 우리 오빠는 벌써 칠 년 전에 죽었어요. 만주 들어갔다가 청인(淸人)의 도적놈에게 칼에 맞아 죽었다오.”
“에구 끔찍해라. 몇 살에 그랬어요?”
“스물한 살에 .”
“아까워라” 하고 혀를 차고 혜선은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구 오라버니가 아침진지도 아니 잡숫고 집에 잠깐 댕겨온다고 하시면서 침대 위에 (내 가슴 옆에) 걸어앉으시더니* 내 손을 만지고 별하게 나를 들여다보시겠지요. 그래 나도 어쩐지 맘이 이상해서 가지 말라고 했지요. 그러니깐 잠깐 다녀서 곧 오신다고 하시면서 이불을 꼭꼭 덮어주시더니 나를 주목해보시면서 문을 열고 나가셔요. 나가신 담에는 이내 자꾸 기다려져요. 얼마 있더니 집에서 계집애가 와요. 그래 일본서방님 왜 아니 오시냐 물으니까 댁으로 아침차에 떠나셨다고 그러겠지요. 아이고 참 무정도 해요. 남자라니, 그만 눈물이 쏟아져나와서 자꾸 울었어요. 그렇게 울어보기는 처음이야요.”
“저런 속였구만!” 수덕이 놀란다.
“일본 가신 지 사 년 만에 첨 나오셨는데 나 때문에 중간에서 보름이나 지체가 되었어요. 나* 많으신 우리 큰오마니가 오죽 기다리겠어요? 가시긴 가셔야 해요.”
“그런데 신선생(혜선의 남편)은 그때도 아니 오셨던가요?”
“말해 무얼 합니까. 나중에 들으니까 지나가면서 여관에서 묵어가고 우리 집 은 들여다보지도 않았어요.”
“…….”
“자기 집에 있던 종이 그 근처에 있대도 한 번 찾아보지 않겠어요? 사나이는 사람 아니야요…….”
혜선이는 감정이 극(極)하여 여기까지 말하다가 수덕이 얼굴을 보니꺄 어느새 두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잔잔하고 얼굴의 근육이 이따금 훔짓훔짓 하는 것은 벌써 무슨 단꿈을 꾸기를 시작한 모양이다. 혜선이는. 그 동무의 만사태평이라는 듯한 자는 얼굴을 잠시 들여보다가, 황천길을 혼자 가는 듯한 고독의 비애와, 가슴을 욱여내이는* 듯한 새로운 자기 신세의 설움을 깨달아 눈물은 멈춤 없이 솟아나서 예원 두 눈두덩 을 넘어서 이리저리 마음대로 흐른다.
밤은 몹시 고요한데 방 안은 죽은 듯이 침묵하였다. 혜선은 곱게 살진 왼편 팔을 높이 들어 돌아누우면서 후一 한숨을 짓는다.
몇 시인지는 모르나 남대문 정차장에서 밤기차 소리가 빽 하고 밤공기를 올려들렸다.
3
혜선은 지난밤에 사감방 시계가 두 번을 치는 소리를 듣고야 잠이 들어서 자다가 꿈에 동욱(東旭, 사촌오라비)을 보았더니 과연 동욱이가 기숙사엘 찾아왔다.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머리를 빗고 앉았는데 잠깐 돌아보려고 왔던 황선생(서기)이 명함을 가지고 와서 “반가운 손님 오셨소, 혜선씨” 하면서 드려뜨리고 나가는 것을 혜선은 얼른 집어보고,
“아이구 오빠!”
하면서 머리를 급히 빗어 틀고 뛰어나갔다.
혜선은 사무실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는 동욱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벙글벙글 웃기만 하고 말도 아니 나온다. 동욱은 먼저 입을 열어
“잘 있었니. 더운데, 갑갑하지?”
“네!”
혜선은 그냥 무슨 말을 할 줄을 모른다.
“시골댁에서는 안녕하시더라. 하루저녁 묵어 왔다.”
“아버지 무어라고 하세요?”
“아니.”
“저리 가서 학교 구경하시지요.”
사무실에 서기가 그냥 앉아 있음으로 그것을 피하여 조용히 이야기하기 겸 하여 혜선은 동욱을 인도하여 상방(上傍) 교실로 올라갔다. 고등보통과와 기예과의 빈 교실을 대강 들여다보고 두 사람은 동편 쪽 맨 끝에 있는 기예과 한 교실로 들어가서 유리창을 열고 그 밑에 의자를 갖다놓고 마주 앉았다.
동욱과 혜선이 사이에는 여러 가지 문답이 있었다. 동욱이는 이내 “그새 동경 갔던 여학생들이 오지 않았었느냐”고 물었다. 혜선은 정자밖에 온 이가 없는데 아주 거만하더라고 하는 말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는 말과 정자에 대하여 평판이 좋지 못하더란 말까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동욱은 잠깐 머리를 기울였다. 이렇게 대강 한 회화(會話)가 끝난 다음에 동욱은 혜선의 일신상에 대한 일을 묻기를 시작하였다.
“그래 왜 집에 아니 갔니?”
“돈만 없애고 나 같은 것이 왔다 갔다 하면 무얼 해요. 공부도 한 것 없이.
“그럼 평생 학교서 샬테니?”
“그래도 좋지요.”
“학교가 퍽 재미있는 게로구나!”
“재미있구말구요.”
"그래서는 못써! 그래도 방학이 되면 집에 가 있어야지. 남들은 다 갔는데 갑갑한 줄도 몰라? 그러고 아버지가 기다리실 생각도 해야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나는 무신경이야요. 나는 집도 없어요.”
“생각을 그렇게 곡하게 먹어서는 못써. 이제라도 집에 가거라.”
“싫어요. 오빠는 공연히 그러네.”
“정말 안 갈 테니? 그러면 다시는 너한테 찾아오지도 아니하고 편지도 아니하겠다.”
“왜요? 아버지한테 무슨 부탁받고 오셨나요?”
“아니.”
“그럼 왜 그러세요. 동경 건너가실 때 또 오세요.”
“아니 온다 인젠. 그런데 신씨댁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더니?”
“소식은 무슨 소식이요. 이번 온 후에 내 인사로 두어 번 갔었지요.”
“그래 방학에 와 있으라고 아니 하더니?”
“싫어요!”
“그럼 너도 마음이 변하였구나.”
“…….”
“그럼 혜선아! 내 말을 들어라.”
“말씀을 하세요.”
“너도 그만한 마음을 가졌으면 정식으로 이혼을 하지!” 동욱은 엄정한 목소리로 이 말을 하고 혜선을 보았다.
“싫어요. 이혼이 다 무엇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혜선의 얼굴에는 별로 불쾌히 여기거나 놀라는 빛은 없다. 그러나 동욱을 만나 반가워서 잠시 밝아졌던 얼굴빛은 스러지고 차차 컴컴해진다.
“싫기는 왜 싫어. 그까짓 아니꼬운 민적(民籍)은 그 집에다 왜 두어, 공연히 아무개 아내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으면 무얼 하니?”
“이혼을 하면 무얼 해요?”
“하면 좀 좋아, 너는 아주 자유의 몸이 되고 맘대로 할 수가 있지 않니? 그러면 그 사람도 마음대로 할 수가 있고.”
동욱은 혜선의 장래를 생각해서 이 말을 꺼냈으나 혜선이가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오장(五臟)이 타서 나오는 듯한 한숨을 지을 때에 말한 것을 후회하였다. 잠깐 만나보고 가는 길에, 반가운 이야기나 하고 위로나 해주고 갈 것을 쓸데없는 말을 해서 온정(穩靜)하던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번민을 일으키게 하였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혜선이 아직 구사상(舊思想)에 젖어서 그냥 두었다가는 일평생 불행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생각하고 말을 이어
“내가 편지로도 그 말을 늘 한 듯싶다마는 자기의 운명은 자기 손에 달렸느니라. 너는 아직도 나이도 과히 많지 않은데 이제라도…….”
“그럼 어떡하란 말이에요. 개가(改嫁) 한다는 말이에요?”
“할 수만 있으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짐승도 아니고! 그리고 나 같은 것에게 이제 무슨 낙(樂)이 돌아오려고요. 사람의 팔자란 그림자같이 앞서 간다는 말이 옳아요.”
“아니다. 그것은 옛날 말이지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디 지금 세상에 그따위 생각만 하다가는 살아보겠니. 예수교에서도 그것을 허락하고, 그러구 사람의 운명은 물론 제 손으로 개척하기에 달린 것이다.”
“예수교에서는 허락하더라도 아버지가 그것은 죽어도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개가하여 또 그렇지요. 이젠 사나이란 당초에 미덥지를 않아요. 오빠는 내놓고.”
“하여간 이혼해주는 것이 신(申)에게 대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 그 사람은 평생 혼자 살겠니?”
“왜요, 좋은 사람하고 결혼해 잘살겠지요. 나는 나 혼자 살아요. 그러고 잘사는 모양을 좀 보겠어요.”
“그것은 법률상 허락지 않는 것인데.”
“이혼해도 이담에 해요.”
“여태도 고정(古情)을 난망(難忘)인가보구나” 하고 동욱은 잠깐 웃고 다시 은근한 태도로 무릎 위에 놓은 가련한 혜선의 손을 잡으면서 엄정하고도 정다운 목소리로
“그럼 어쩔 테니 장차? 그러지 말고 오늘 저녁에 잘 생각을 해보아라” 하고 잡았던 손을 꼭 쥐었다.
“생각 많이 해보았어요. 별수 없어요, 죽을랍니다. 접때 신문에 누가 한강에 빠져 죽었다기에 동무들하고 산보(散步)겸 가보았지요. 죽을 만한 데가 있나 보려고.”
“그게 무슨 쓸데없는 말이야.” 동욱은 무심히 이렇게 대답하고 시계를 꺼내 보았다.
“아이구 벌써 열두 시야” 하고 깜짝 놀라 일어서서, 여름 동안 장난이나 하고 재미있는 책이나 보고 아무쪼록 잘 있으라고 작별을 하면서 같이 내려갔다.
장맛비가 금시에 퍼부어, 동욱은 인력거를 불러 타고 여관으로 갔다.
인력거가 담장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보고 혜선은 고였던 눈물이 내리는 비와 같이 쏟아져나온다. 기숙사방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도로 두 사람이 이야기하던 교실로 올라가서 동욱의 앉았던 의자에 칵 쓰러엎드러져서 설움과 눈물 나오는 대로 실컷 울었다.
실컷 울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채찍같이 내리던 비는 어느새 가늘어지고 경복궁대궐 안 송림에서는 흰 연기 같은 김이 무럭무럭 올라가고 까마귀가 한 마리 기운 없이 어디로 날아간다. 교실은 자는 듯이 고요한데 한편 담 염판(染板)에는 누가 장난한 것인지 ‘남대문’이라 ‘한강’이라 하고 커다랗게 씌어 있는 것이 혜선이 눈에 띄었다. 혜선은 언제까지 그대로 있었는지?
4
혜선은 상층교실에서 내려와서 교무실 앞을 지나다가 마침 왔던 체전부*에게 옥색 양봉투 편지 한 장올 받았다. 어제 왔던 정자의 편지다. 얼른 뜯어서 보더니 별안간에 얼굴이 까매지고 입수*가 파래진다. 두 손으로 들었던 편지를 한편 손에 꾸겨쥐고 좌우손과 파래진 입수를 파르르 떤다. 그러고는 입수를 깨물고 바깥 공중을 향하여 마치 그 앞에 선 사람올 칼로 찌르려는 듯이 노려보고 섰다.
"에구 분해 !”
이렇게 한마디를 부르짖고는 정신없이 마루 위에 꼬꾸라졌다.
수덕이는 혜선이가 자기의 오라버니가 왔다고 반가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자기가 열네 살 적에 만주지방에서 칼에 맞아 죽은 오라버니를 생각하고,
“아이구一 우리 오빠도 살았으면…….”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그러고 희미한 기억을 가지고 오라버니 얼굴을 상상하여보았다. 키가 훨씬 크고, 얼굴이 기름하고* 버얼겋고, 눈이 동그란 것이 파래서 퍽 무서웠다. 그래도 빙긋 웃을 때는 매우 다정하였다. 수덕이는 이런 생각을 하고, 꼬리 늘어지고 손톱 긴 청인(淸人) 한 떼가 왁 밀려나와서 번쩍 하고 칼을 내어 자기 오라버니를 푹 찌르는 것을 보고 끔쩍 놀래었다.
그러는 새 시간이 퍽 지났지만 혜선이가 여태 아니 들어오므로 갑갑해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노” 하였다. 그러고 지금 찾아온 혜선의 오라버니를 상상해본다. 키는 좀 작고 얼굴은 동그스름하고 살갗은 희고 볼에 살이 좀 지고 눈은 가늘고 코는 좀 높고 머리는 한가운데를 가르고 목소리는 똑똑하고,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그려놓고는 정답게 생각하였다. 이것이 수덕의 이상적 남자인 듯싶다.
“에그 이야기가 길기도 하다!” 하고 혼자서 점점 적적한 생각이 나서. 자연 집생각이 나고 마음이 처량해졌다. 지리하게 내리는 장맛비에 성을 내고 혜선이 오래 있음을 원망하였다. 그러고 자기 어머니에게 편지 쓰기를 시작하였다. 편지를 마치고 보니까 열두 시가 지났다.
“웬일 이야. 어째 여태 안 들어올까!”
사무실로 나가보았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고 텅텅 비었다. “필경 둘이 어디를 간 게로다. 간단 말도 아니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을 하고 도로 들어왔다.
수덕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북간도서 온 학생들 있는 방으로 가서 점심을 같이 먹고 앉아서 간담(間談)*을 하다가 문득 혜선이 생각이 나서 자기 방으로 와보았으나 여태 안 들어왔다. 수덕은 혼자서 슬금슬금 사무실 있는 쪽으로 나가보았다.
수덕은, 사무실 앞에까지 가서, 혜선이가 문간마루에 넘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구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보아야 사람의 흔적은 없다. 달려들어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집어 흔들면서,
“언니! 언니!” 불렀다.
눈은 허여멀겋고 입수를 꼭 물고 한편 쪽 젖이 드러나고 아래는 치마가 좀 벗겨져 백옥 같은 종다리를 드러내놓고, 그냥 정신을 못 차린다. 수덕은 무엇이나 있나 보려고 뒤적뒤적 보다가 혜선의 바른편 손에 구겨진 종이를 발견하였다. 그것이 정자에게서 온 편지인 줄을 알고 우선 안심을 하였다. 그리고 기숙사로 뛰어들어가서 동무들을 청(請)해다가 여럿이 떠메어 방에다 갖다 뉘었다.
다른 사람더러 물올 끓이라고 하고 수덕이는 정자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본다, 편지 사연은 이렇다.
밤 사어 언니께서는 안녕하시지요. 어제는 실례 많이 하였어요. 공연히 쓸데없는 말올 했어요. 용서하세요. 얼마나 번민을 하셨나요, 그러나 저는 언니를 사랑함으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 몇 자를 올리나이다.
여자고등사범 학교에서 공부하는 윤정희 (尹貞熙)하고 신선생하고는 오래 전부터 서로 사랑하였었지요. 그러나 언니를 꺼려서 마음대로 못하다가 이번에 정희가 졸업할 임시(臨時)*에 신선생이 언니와 이혼하지 않으면 교제를 끊겠다고 해서 신선생은 즉시 언니 아버지께 이혼청구를 하고 정희와 아주 결혼을 하였는데 지금은 일광(曰光)*으로 둘이 피서를 갔지요. 이제 구월에는 동부인을 하시고 귀국을 하신답디다. 나도 기왕에는 정희를 퍽 사랑해서 친형님같이 지냈지요. 그러고 신선생한테는 영어도 배우고 선생님 겸 오라버님으로 섬겼어요. 그러나 이번 행사를 보고는 어떻게 분한지 절교를 하였나이다. 어제는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나이다. 총총 이만. 칠월 십팔일 동생상서
5
종로에 내왕하는 사람이 차차 적어지고 여기저기서 상점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한 시간 전까지 번잡하고 소요하던* 거리는 어느새 고요해지고 빗물 고인 데 장명등*과 전등불이 비쳐서 얼른얼른하고 하늘은 모퉁이모퉁이 퍼렇게 구름 새로 틈이 가고, 별이 한 개 두 개 무슨 의미가 있는 듯이 이상하게 반짝거린다. 종로 쪽에서 전차가 새문안*을 향하여 땡땡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호랑이 눈 같은 불빛을 내쏘아 앞길을 비추고 ‘레일〔鐵路〕’ 에 고인 물을 지익직 좌우로 헤치면서 부살*같이 따라온다.
혜선은 전동(磚洞) 바깥――양화점 있는 데까지 무사히 나와, 대원상점 (大元商店) 앞을 돌아서 종로 큰 거리로 나섰다. 뒤를 한 번 슬쩍 돌아보고 종로 네거리를 향하여 수깃수깃* 가다가 왼편 쪽 영수점 (永水店)에서 중얼중얼하는 소리를 듣고 흠칫 놀라고, 발걸음을 빨리 옮겨 앞만 향하고 간다. 빨간등 단 자전차 탄 전보배달부 같은 사람이 방울을 따르르 울리고 지나간다.
전동(典洞) 골목에서 술 취한 사람 둘이 하나는 파나마*에 두루마기 입고 하나는 맥고*에 흰 양복 입고 비틀비틀하면서 일어로 무어라고 주절거리고 나온다. 혜선은 무서워서 얼른 뛰어 보신각 앞으로 가서 남대문 가는 전차를 집어탔다.
혜선은 대체 무엇 하러 어디로 가려는고?
아까 사무실 앞에서 정자의 편지를 받아보고 어제 저녁에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고민하고, 낮에 동욱을 만나 이야기할 때에도 몹시 정신이 흥분하였거니와 작별한 뒤에 혼자서 (점심도 잊어버리고) 거의 세 시간이나 울고 초민(焦悶)*을 한 끝이라, 너무 분한 김에 상혈(上血)*이 되어 졸도를 하였으나 한 삼십 분 지나 겨우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깨어난 혜선은 이미 이전 혜선이가 아니었다. 그는 벌써 검은 옷 입은 사자(使者)의 포로가 되었다. 수덕이가 끓여다주는 미음을 권에 못 이겨서 억지로 몇 술 떠먹고 가만히 누웠다가, 밤이 이윽해서 멀리서 기차소리가 폭폭 하고 빽 소리를 길게 울리는 것을 들을 때에 ‘한강!’이라는 생각이 번쩍 나서 본능적으로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 속으로
‘죽어 !’ 하였다. 그러고 털썩 누웠다.
누웠다가 (다른 방 사람들은 벌써 가고) 수덕이가 잠시 나간 틈을 타서 얼른 일어나서 학교 모퉁이를 돌아서 걸어둔 학교 대문을 가만히 열고 살짝 나섰다. 그리고 대문을 한 번 힐긋 돌아볼 때에 갑자기 울음이 재우쳐*나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큰 거리까지 단숨에 나온 것이다.
여태까지는 아무 정신없이 나왔으나 전차를 타고 앉으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차서 (次序)* 없이 떠오른다.
수덕이가 둥그런 눈이 더 둥그레져서 걱정할 생각, 동욱이 자기 손목을 잡고 잘 생각하라고 하고, 잘 있으라고 하고 일어서던 모양, 나중에는 신원근(申元根) 이와 정희가 일광인가 하는 데서 어떤 여관에 자빠져서 별 지랄을 다 하고 좋아할 생각을 하고, 자기 같은 것은 바람에 날리는 검불이나 길에 구르는 돌짜개*만큼도 여기지 아니하는 것이 너무 분해서 몸을 한 번 파르르 떨었다.
전차는 어느새 남대문 정차장을 지났다. 자기 옆에 드문드문 앉았던 사람들이 다 내리고 일본여자 둘이 남아서 유심히 들여다본다. 용산 와서 하나가 내리고 술내 나는 사람들이 서너 사람 오른다. 혜선은 그놈들에게 욕을 볼까 걱정을 하였으나 다행히 몇 정차장 지나서 내리고 말았다. 그러고 혼자 남은 여인이 연해 쳐다보고 차장도 이따금 이상스럽게 들여다본다. 혜선은 어서 전차가 빨리 달아나기만 바랐다.
종점에 왔다. 내렸다. 마침 길에 사람이 없으므로 혜선은 무사히 한강다리까지 왔다.
혜선은 컴컴한 ‘아카시아’ 나무 옆에 발을 멈추고 우두커니 섰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잠시 터졌던 하늘은 다시 검은 구름으로 온통 덮여서 별 하나 보이지 아니한다. 앞에는 꺼먼 강물이 소리 없이 흘러간다. 물 위에서 보이지 않는 물귀신이 철썩철썩 하는 것 같다. 혜선은 금시에 무서운 생각이 나서 소름이 쪽 끼치고 치를 떨었다.
그러고 컴컴한 가운데 원근의 얼굴이 보인다. 술퍼하지도 아니하고 비웃지도 아니하고 그냥 번번 바라본다. 혜선은 죽올 악(惡)올 다 써서 평시에 보지 못한 무서운 목소리로,
“이놈아!” 불렀다.
원근은 싱긋 웃고 어두운 데로 스러지고 만다. 혜선은 비슬비슬* 두어 걸음 나아가서 펄썩 주저앉았다.
얼마 있다가 훈훈한 강바람이 얼굴을 스쳐갈 때에 눈을 떴다. 덮였던 구름이 조금 터지고 명랑한 달빛이 내리비친다. 컴컴하던 강물에 달이 비쳐서 벌건 것이 흐늑흐늑한다. 여기저기 훤한 것이 얼른얼른 한다. 혜선에게는 그것이 퍽 아름답게 보인다. “좋다!” 하였다. 마치 저 속에 용궁이 있고 산호와 진주로 단장한 선녀들이 춤을 추며 반기는 듯하다. 그러고 정신이 깨끗해진다.
혜선은 느물느물 흘러가는 강물을 번번 바라보고 섰다. 아버지 얼굴이 획 지나간다. 동욱이 얼굴을 보인다. “아버지! 오빠! 오빠 저는 갑니다. 갑니다. 용서하세요 오빠.” 붙잡으려고 손짓을 하였다. 그림자는 없어지고 무성한 잡초가 기운 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 혜선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 한 번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리 위로 힘있게 걸어 올라갔다. 잠깐 섰다가 신을 벗고 입을 딱 물고 몸을 솟아뛰었다.
혜선올 받아먹은 한강물은 부글부글 거품을 일으키고 혜선은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숨이 탁 막히는 동시에 생존의 본능의 작용으로 팔다리틀 허우적거리고 다시 떠올라온다. 물 위는 컴컴하다. 하늘은 검은 구름에 온통 덮였는데 구름 터진 사이로 월광(月光)이 조금 비쳐 나온다. 혜선은 충동적으로 빙긋 웃었다.
지옥에서 타는 불김 같은 훗훗한 바람이 지나가고 검은 구름이 조금 비쳤던 달을 가린다. 장맛비에 창일(漲溢)한* 센 물결이 내리밀 때에 혜선은 아래로 밀려가다가 다시 쑥ㅡ 잠겼다. 얼마 있다가 세상을 향하여 마그막 일별(一瞥)*을 주고 마그막 인사를 하려 함인지 혜선의 몸은 다시 물 위에 나타났다.
혜선은 물 위에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분명 히 어머니다. 깨끗한 소복을 입고 벙긋벙긋 웃으면서 다정하고 인자한 목소리로
“이애! 이애! 큰아가 이리 오너라.”
부르고 손을 내민다. 혜선은 무슨 든든한 것을 디딘 것도 같고, 몸이 평안해지더니 위로 쑥― 떠올라간다. 말도 없이 어머니 손을 잡았다.
가렸던 달이 다시 나와서 혜선이 얼굴을 비춘다. 밀려오던 큰 물결이 내리덮였다. 작은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났다. 한강의 강면(江面)은 다시 잔잔해지고 아무것도 없어지고 엠티! (허무)로 돌아갔다.
헛되다. 헛되다! 헛되다!
『창조』 1호(1919. 2); 『전영택 창작선집』 (어문각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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