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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서 흥왕하는 주의 말씀
사도행전 19:1~20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세 번째 전도 여행을 나서서 마침내 튀르키예의 서남부 저지대의 이오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 에베소 시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에베소 시는 주전 1000년경에 아테네 시의 군주와 시민들이 에게해를 건너와서 식민시로 개척하여 시작된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처음부터 헬라 문명의 강력한 영향 아래 세워진 것입니다. 그들은 그 후에 페르시아의 정복을 당하여 그 압제 아래 있다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회복되고 다시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등 많은 역사적 변천을 겪어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복음을 전할 당시의 에베소는 사실상의 로마 제국의 아시아 수도의 역할을 감당하는 상업도시로서 인구만 30만에 달하는 거대 도시였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이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강이 에베소 도시까지 흘러들어와서 에게해로 나아가는 항구 도시였지만 지금은 산사태 등으로 인하여 흘러들어온 토사로 강이 메꾸어져서 항구로부터 떨어져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이 도시는 상업도시로서 동서양의 갖가지 물품들이 시장에서 대량으로 매매 되었습니다. 또 그 도시에는 고대의 7대 불가사의라고 일컬어지는 가장 큰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어서 그 신전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들이 각처에서 몰려와서 경배하느라 매년 5월이면 에베소 도시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큰 개인 학교가 있었는데 투란노스라는 사람이 세운 큰 서원이었습니다. 거기서 많은 헬라 철학의 강좌가 베풀어지곤 했습니다. 또 이 도시에는 유대인들도 많이 있어서 버젓한 유대인 회당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잠깐 회당에 들어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가면서 주의 뜻이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였는데, 하나님의 손길로 이 3차 전도 여행에 이곳으로 사도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에베소서에 놀랍게 3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에베소뿐 아니라 그 인근의 소아시아의 많은 도시들, 예를 들어 버가모 시, 두아디라 시, 서머나 시, 사데 시, 빌라델비아 시, 라오디게아 시, 골로새 시에게까지 널리 복음이 전파되어 그 도시마다 교회가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이 에베소 시에서 복음 전도를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 소아시아 지역 전체에 영적인 큰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이 에베소 도시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증거되었고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시리아 안디옥을 떠나 삼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였을 때 그는 튀르키예 동쪽 아나톨리아 고산 지대에 자리잡은 도시들이었던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등의 교회들을 들러서 그들의 교회들에 세웠던 장로들과 성도들에게 믿음을 든든히 세웠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점점 서쪽으로 와서 마침내 에베소 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도는 에베소에서 전도하다가 일단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어떤 제자들’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제자라 함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라 할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전형적인 사두개파와 바리새인들의 지도를 받는 유대인들은 아니고, 회개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이 그들을 만났을 때에 그들의 신앙에 대하여 의심쩍은 부분들이 많았기에 이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 바울로서는 주 예수를 믿는 것은 곧 성령을 받음으로써 확증되는 것이고, 성령을 받는 자는 곧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자임이 확증되는 것이기에, 그 점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대답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수많은 구절들에서 성령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기에 그 유대인들이 성령이 계심을 듣지 못했다는 말은 성경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하심에 대하여 자기들은 전혀 경험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대답한 듯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그러자 그들은 대답하기를
“요한의 세례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사도 바울은 이들이 세례 요한의 제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을 알지 못하고 나사렛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음을 미처 듣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닐 이 당시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증언들을 믿는 자들과 신약 시대의 복음의 증인들인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섞여 존재하는 일종의 영적인 과도기적인 시대였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즉 옛 언약 시대와 새 언약 시대가 바뀌어가는 영적 전환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 세례 요한이 사역할 때에 그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한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여 주었습니다. 4절과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사도 바울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자기 뒤에 오실 이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면하였던 말씀을 전해주면서, 세례 요한이 증거했던 바 자기 뒤에 오실 자가 바로 주 예수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곧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제야말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고 거듭난 이 성도들을 위하여 축복의 안수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6절과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진실한 신자들은 이미 그 심령에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열두 사람쯤 모인 사람들은 성령에 대하여서도 전혀 체험도 없고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축복하는 안수 기도를 한 것입니다.
마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성에 빌립 집사님이 가서 복음을 전하자 그곳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지만 성령의 은사는 그들이 받지 못했음을 알고 그곳 사마리아 교회에 가서 성도들에게 안수하였더니 그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아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사도 바울도 이곳 에베소에서 이제 갓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에게 안수하여 그들도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도 바울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그 열두 사람들쯤 되는 갓 거듭난 신자들에게 방언의 은사도 주시고 예언의 은사도 베풂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체험적인 신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은 성령이 누구신지 압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알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깊이 인식하고 그 이름으로 죄사함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거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심으로 자기의 주님으로 시인하는 자는 성령이 이미 그 사람 안에 내주하며 그 사람과 함께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자는 이미 성령을 받은 자라는 점을 확고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을 통하여 주 예수님을 영접한 자에게 성령께서 다양한 은사를 더해주실 수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도 주시고 예언의 은사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초자연적인 은사만이 성령의 은사의 전부는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는 각종 봉사의 은사도 있고 섬김의 은사도 있고 가르치는 은사도 있고 위로와 격려의 은사도 있고 전도의 특별한 은사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믿을 때에 성령을 다 받은 자요 성령이 계시는 것도 다 아는 자이지만, 성령의 각양 은사는 사실 무궁하고, 그 은사의 체험의 세계 역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1절과 12장 31절과 14장 1절에서 이른 말씀에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권면의 말씀대로 성령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주시는 바 이 은사의 체험적 선물들을 늘 간절히 사모함으로 성령의 은사를 풍성히 받아서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롭고 질서있게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였던 사도 바울은 이제는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에서 본격적인 복음 전도의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8절로부터 10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전례를 따라 설교의 권한을 얻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 누가는 여기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맨 처음 세상에 나가 구원의 진리를 증거하실 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1:14 말씀 이하에 이르기를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되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증거하신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부터 예고하셨던 메시야가 오시면 세워질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의 그 나라 곧 공의와 공법이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걸으며 소경이 눈을 뜨며 가난한 자가 복음을 들으며 벙어리가 말하며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흐르는 놀라운 생명과 기쁨의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포악한 자들의 악행이 그치고 약한 자들의 눈물이 닦아지고 그 대신 기쁨과 평강이 강같이 흐르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나라의 왕은 그리스도요 그 나라의 백성들은 죄가 없는 자로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왕노릇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도 이미 예언한 바와 같이 그 나라 백성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들어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리도, 창기도, 도적도 그 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헬라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모든 말씀들은 구약 성경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쉽게 반박하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가르쳐주는 사도 바울의 이 가르침에는 배울 점도 많구나 하고 매주 안식일마다 몰려와서 그 가르침을 듣기를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에서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도래하도록 할 그리스도가 바로 이십년 전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나타나시어 활동하신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고 밝히 증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과 그의 가르침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차례로 증거하면서 그가 바로 구약 성경에서 그토록 자주 언급하셨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실 어린 양같이 희생당하신 여호와의 종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증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점점 유대인 회당에서는 찬반 양론이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완고한 자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을수록 더욱 굳어져서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이 생명의 도를 비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택하신 자들만이 듣고 받아들이기에 이러한 일은 언제나 전도의 현장에서 반복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할 때에 들을수록 예수님을 비방하고 대적하고 죽으려고 들었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이르신 말씀이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0:26~28)
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양이 아닌 자들은 그 속에 거짓 영, 대적하는 영, 미혹하는 영이 있기 때문에 결코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들을수록 더욱 예수님을 대적하며 미워하며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죽이려 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나며, 우리가 전도할 때에도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아무리 열렬히 전해도 도리어 대적하고 반발하며 핍박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할 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에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태복음 10:23)
이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3:2 말씀에 이르기를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믿음을 갖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마귀에게 속한 자들도 있어서 아무리 전도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리도 대적하는 자들에게도 충분한 전도를 통하여 기회를 준 다음에는 주님께서 일러주신 바와 사도가 행한 바대로 그들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나자 그들을 떠납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이끌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 두란노 서원이란 ‘투라누스’라는 헬라 철학자가 개인적으로 세운 큰 학교 건물인데, 그 사람이 죽은 뒤에 여전히 그곳에서 강론과 교육이 이루어지곤 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을 빌려서 예배와 신앙 교육 장소로 사역했던 것입니다. 그 건물은 후에도 매우 유명해서 셀수스 도서관이라는 유명한 장소로 개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사도 바울 당시에 두란노 서원은 에베소의 학문적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사도 바울은 매일 복음을 강론할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이년 동안 열렬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여 그 이년 동안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1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1절에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해변에서 당부의 말을 나눌 때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사도행전 20:31,32)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년을 넘어 삼년 동안이나 사도 바울은 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기회가 되는 대로 날마다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이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서게 하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복음을 전할 때 눈물로 증거하곤 하였던 것 같습니다. 공중을 향하여 증거하기도 하고 각 사람을 향하여 눈물로 호소하기도 하면서, 그들이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사도 바울이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간절히 전했던 바 말씀은 바로 우리가 듣고 받아 우리의 신앙과 삶의 기초로 삼고 있는 동일한 진리의 말씀인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우리도 이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사도가 전해준 이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받을진대, 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쇠하지 않고 썩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기업인 천국을 동일하게 장차 상속하게 해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이렇게 사도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복음을 증거할 때 어떠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을까요? 의사 누가는 그 때 사도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일어났던 영적인 사건들을 여기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1절로부터 19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가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는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사도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만 열중을 하였는데, 성령께서는 그의 말씀 증거할 때에 담대함도 주시고 자유롭게 힘있게 말씀을 증거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 듣는 자들의 귀에 말씀이 잘 알아듣게 하시고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말씀을 듣는 자들 가운데 주 예수를 믿는 구원의 역사도 크게 일어나고 복음의 진리를 열렬하게 듣고 진리 안에서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은혜가 더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를 힘쓰며 듣기를 갈망하며 은혜받은 이들이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이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당시 튀르키에 에베소 지역에서는 오전 11시부터 4시까지는 너무 더위가 심하여 사람들은 낮잠을 자는 것이 거의 습관화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탈리아는 오후 1시에서 3시까지, 스페인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낮잠 시간이랍니다. 그리스도 너무 낮이 더워서 시에스타라고 하는 낮잠 시간을 지키곤 한답니다. 그래서 밤 늦게 저녁 9시에 저녁 식사 하는 것도 늦은 것이 아닐 정도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그 에베소에서도 낮 열한 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다들 낮잠을 자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늘 비어 있는 두란노 서원의 강당을 사도가 빌려서 복음을 강론하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은 낮잠을 희생하고 몰려 들어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열심을 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침 일찍에나 오후 저녁 늦게에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지냈고, 낮 시간의 더운 시간에는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몇 시간씩 강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이나 에베소 성도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내고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 자리에 늘 부지런히 모이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듣는 일에 열심을 내는 중에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시니, 바울의 손을 통하여 많은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일할 때 땀을 닦는 손수건이나 앞치마까지도 병자의 가족이 가지고 가서 병자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귀신이 떠나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과거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사역할 때에 그가 지나가는 길목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으면 사도가 그 곁을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병자에게 덮힐까 기대하였는데, 그러면 병자들이 다 낫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자 영적인 충격이 그 지역에 있는 주술가들에게 임했습니다. 본래 에베소 지역에 수많은 주술가들, 점술가들이 많은 지역인데 그들은 특별히 주문들을 외면서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 주후 46년경 그리스에서 태어난 유명한 역사가 플루타크가 쓴 “모놀리아”라는 글을 보면, 당시 에베소에서는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는 주문들을 기록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에베소는 영적인 악령의 세력들도 많이 활동하였던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영적으로 혼미한 도시 한복판에서 사도 바울이 그처럼 열렬하게 복음을 증거하자 성령께서도 강력하게 역사하므로 그렇게 따르는 표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자 충격을 받은 주술가와 점술가과 점치는 자들이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일어나는 기적을 보고서 호기심을 느껴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축귀 사역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들 자신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속에 있는 악령이나 주문의 힘을 믿으면서 그냥 예수님의 이름만 빌려서 축귀 사역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고 웃기는 일입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 유대인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그렇게 악한 일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한 귀신들린 자에게 와서 귀신을 내쫓는 사역을 하는 중에 그들도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떠나가라고 그 환자에게 소리쳐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던 악한 영이 그들을 볼 때 하는 짓이 너무 어리석고 우스웠던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누웠던 그 병자가 번쩍 일어나더니 그 제사장들의 아들들 위에 뛰어올라서 힘으로 제압하여 그들을 잡아 죽이려듯 달려드니까 그들이 너무 놀라서 겁이 나서 옷도 벗은 채 혼비백산 도망쳤으니 아마 그 귀신들린 자는 그 사람들을 잡으려고 뒤쫓고 그들은 도망치려고 벗은 몸으로 도망치니 온 도시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그 일이 소문도 크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로 인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이 아니요 진실로 믿는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거룩한 이름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큰 영적인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혹시라도 점치는 일을 했거나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범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움을 느끼고 사도 바울에게 와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도시에 수많은 마술가들이 자기들이 귀신을 쫓을 대 사용하던 주문 방법들을 기록한 비싼 책들을 다 모아서 사람들 앞에서 불살랐습니다. 그 때 태운 책값을 따져보니 그 당시의 은값 오만 량이었습니다. 그 ‘아르구리온’이라는 은전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라고 하니, 지금 시세로 치면 적어도 오십 억이요 백 억원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책값만 따져도 그렇게 많은 주술에 관련된 책들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다 태워버렸다는 것은 그들이 이제 그 동안 행하던 악한 미신과 잡신 숭배를 그만두고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에베소 도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영적 변화요 두란노 서원에 모이는 사도 바울과 수많은 성도들에게는 큰 기쁨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영적인 대 승리가 일어나고 주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게 되는 놀라운 영적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에서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그 말씀에 굳게 서서 그 진리를 사랑하고 주님의 구속의 비밀을 더 깊이 알고자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며 기도에 힘쓸 때에는 성령께서도 기뻐하시며 그 따르는 표적으로써 주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증거해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마지막장 마지막 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구속의 진리를 사랑하며 굳게 믿고 이 진리를 더욱 알기 힘쓰고 이 구원의 진리의 복음을 전하기를 늘 힘쓰면,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도와주시어 깨우쳐주시고 더 깊은 복음의 비밀을 드러나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과 기도에 힘쓸진대, 성령께서도 우리를 통하여 그 말씀의 확실함을 입증해주실 것이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 복음의 진리가 확실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진리요 예수님만이 참 주가 되시고 다른 모든 신들과 우상들과 인간의 종교와 철학들은 다 불완전하며 헛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미신의 도시, 각종 종교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도시 에베소에 도착하여 사도 바울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증거한 대로,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이 오실 자라고 증언한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진리 위에 우리도 더욱 굳게 섭시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방언과 예언의 은사로써 임하신 것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진리가 확실함을 입증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라는 진리를 확증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삼년 내내 증언한 것은 성령께서 그에게 증거해주신 바 복음의 각종 깊은 진리의 말씀이니 곧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풍성한 은혜들이니 우리가 지금 복음서의 편지들에서 배우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 있을 때마다 성경을 자주 읽고 교회에 시간 있을 때마다 모여 주의 종을 통하여 강론하는 진리의 말씀을 자주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요즘 주일 저녁에는 이사야 강해를, 수요 저녁에는 히브리서 강해를, 금요기도회에는 신명기 강해를 주의 종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낮잠 시간을 희생하면서 하루 다섯 시간을 내어 두란노서원에 모여 계속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우리도 냅시다. 결국 그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나 그 에베소 시의 영적 터주대감들이었던 수많은 주술가들, 축귀 사역자들, 무당들이 많이들 회개하고 주님의 복음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게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더욱더 복음의 진리에 집중합시다. 그리할진대 우리 심령에 큰 힘을 얻고 성령께서도 우리의 믿음에 따르는 표적을 주셔서 믿지 않는 우리의 가족, 친척, 이웃, 직장 동료, 학교 친구들을 주님께로 인도해들여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을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