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버릇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없나를 먼저 확인한다. 가끔 내가 사는 11층에서 내려가는 단추를 눌렀는데 10층이나 9층 정도에 이 엘리베이터가 서더니 그냥 1층으로 내려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같이 갔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올라올 텐데 좀 기다리면 되는 걸 가지고 억울해 하진 않았다.
그래서 위층에서 인기척이 나면 내려가는 1층을 안 누르고 좀 기다리면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위층 부인이 쓰레기 Box를 들고 냉큼 타신다. “선생님! 1층 누르셔야죠!” 그러면서 같이 1층까지 내려가는데 부인은 모르겠지만 난 그만큼 전기 아꼈다고 속으로 좋아하고 산다. 어떤 때는 무슨 소리가 나서 14층까지도 올라간 적이 많다.
내려가는 사이 한마디 한다. “바깥 양반이 쓰레기는 치워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시잖아요! 저도 이렇게 하는 거! 몇 년 안된걸요! 사실 지금은 집사람이 어쩌다 대신하면 제가 죄를 짓는 느낌입니다.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서로 웃기만 하고 쓰레기장까지 즐겁게 걷는다. 사실 같은 골목에서 20여년을 같이 살면서 바깥 양반이 쓰레기 나르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면 그만인 것을 내가 왜 시비를 거나? 그냥 죠크joke!
언젠가 쓰레기 박스 들고 타는데 15층 사는 젊은 40대 초반쯤의 아줌마와 낭군이 같이 타고 내려온다. 부인 왈 “신랑님! 좀 보세요! 아래층 아저씨 들고 있는 게 뭔지 아시죠? 얼마나 좋아 보여요! 좀 보고 배우세요!” 두 분한테 좀 여유롭게 한마디 했다. “저도 70 넘어 시작했습니다. 근데요 지금은 제가 안 하면 큰일 날 것만 같은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좀더 일찍 해줬으면 좋았을 걸! 하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양쪽을 그런대로 배려한 한마디였다고 생각한다.
난 6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 두었으니 남보다 몇 년 더 직장생활을 한 셈이다. 그 뒤 한 2년 정도 30여년간 종사한 업무였던 원가관리 분야의 컨설팅과 강의를 프리랜서freelancer로 활동하면서 마하님 감시가 전혀 없는 알짜의 수입을 챙기는 즐거운 나날을 지낸 경험이 있다. 얼마나 좋았던지 마하님께 용돈을 거꾸로 드리면서 그 좋아하는 술을 꾼들과 같이 더욱 야무지게 즐기면서 한마디로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고 재롱을 피웠던 것이다. 이것이 매가 된 것은 당연한 얘기다.
사람이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평생 같을 것이란 믿음으로 산다. 요 아름다운 부수입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란 믿음으로 친구들 대소사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마당발 놀음을 하는데 친구들이 왈 “야! 너 아직도 잘나가나 보다!”라고 딴지 거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좀 겸손해야 하는데 경솔했음을 시인한다. 알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서울에 친구가 몽탕 있으니 무슨 핑계거릴 찾으면 서울로 튀는 내가 술 건수 찾는 비책이었음을 고백한다. 친구들과 술 한잔? 인생 살만한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먼데서 친구가 찾아 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 1-1 인생삼락 중 하나지만 친구를 만나 한잔하고 즉 금상첨화錦上添花란 이를 이름이다.
그러나 그 프리랜서Freelancer도 갈수록 전문 컨설팅 업체들의 글로벌global화로 경쟁에서 자연히 밀리게 되고 또 선생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밀리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접게 되었다. 남보다 오래 했다고 자위하면서 즐거운 노후의 내 인생을 찾아보자는 핑계를 앞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드디어 매가 불어나 감당이 불감당이란 속담 즉 서슬 퍼런 전주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건 무시무시한 태풍전야의 고요함 속에서 나날을 지내며 전전긍긍하는 불쌍한 백수로 전락 당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 보게 되었다. “그래! 너무 오래 그리고 많이 마셨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새 삶을 산다는 것은 50여년간 즐기던 술을 과감히 끊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하님에게 공표하는 것이다.
이 좁은 청주 바닥에서 집을 못 찾은 적이 얼마였든 가? 파출소엔 얼마나 신세를 많이 졌고 다니던 단골 술집의 큰 고객이라 면했던 주책바가지는 또 얼마였든 가? 이를 옆에서 사랑으로 바라 보면서 모든 것을 신랑이라 참으면서 반드시 개과천선하리란 믿음으로 버틴 아내는 무슨 죄인가? 그 많은 친구들이 술값 잘 내고 만나기 좋아하는 나를 칭찬하며 바랐던 것은 자중이 아니었든 가? 특히 돌아가신 어머님은 얼마나 가슴을 졸이 셨든 가? 이 모든 것의 희미한 그림자가 지나가기 시작하는 데 그 끝은 허망한 내 남은 인생의 보잘것없는 결과일 뿐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사건을 일으키기엔 너무나도 큰 사건이기에 유일한 청주 술꾼 고교 2년 선배와 기념식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못 먹게 된다는 회한에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단골 술집 주인은 아쉬워서 난리다. “무슨 병이라도 생겼냐? 어디 외국에라도 몇 달 다녀올 셈이냐? 그렇게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딱 끊는 게 가능이나 한 것이냐?” 등등 전부 종합하면 얼마 지나면 반드시 다시 시작할 것이고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선배도 자신했다. 얼마 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그날 또 너무 격해서 선배가 집에 데려다 주었다. 물론 기억도 못하고 나중에 알았지만 다음날 아침 드디어 마하님께서 폭발하신 것이다. “정말 술을 끊을 것이냐? 같이 안 살 것이냐? 결정하란다. 간단하게 대답했다. “오늘부터 술 끊을게!”
그렇게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지가 벌써 만 4년이 넘었다. 그렇게 요사와 재롱을 떨면서 마시던 술을 정말로 안 마시게 된 것은 물론 내 잘못이다 라고 나름대로 팔을 안으로 굽히면서 성현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논어의 인仁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즉 사랑을 말씀하신 것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자비慈悲 예수의 사랑 등 모든 종교의 근본이 사랑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래 모든 것의 결론은 “사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