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연한 기회에 2002년에 개봉된 <존 큐(john Q)>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소박한 서민가정의 이야기로 비정규직 노동자인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의 심장이식 수술비용이 없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아들을 살릴 길이 없는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을 점거하여 인질극을 벌이고 결국 체포,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는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로 아들이 심장 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입한 의료보험이 심장이식 수술은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파트타임 노동자는 보험적용이 제한적이란 사실을 늦게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에 이런 부당한 보험제도에 분노하며 마지막 수단으로 병원 응급실을 점거하여 인질극을 벌이고 심장을 아들에게 주려고 자신이 소지한 총으로 자결하려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심장 이식을 하라고 유언장을 쓰고 죽으려는 순간, 신장이식에 적합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나타나 자결 상황은 면하게 됩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내용은 생명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관객도 이에 대하여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주목했습니다. 미국 영화지만 우리나라 현실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일이 진행되고 있으며 실제 그렇게 죽어가고 있고 구체적 현실이 현재 진행형으로 실재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수입이 다소 차이가 나고 생활환경이 약간 불안정하고 경제능력이 취약해도 삶은, 생존은 권리입니다.
‘아빠, 엄마가 잠들어 이틀 동안 일어나질 않아’
수도원 아침 전례가 끝나면 아침 식사하기 전 까지는 약 10분간의 시간이 있습니다. 식탁을 차리고 준비된 음식들을 식탁으로 꺼내는 시간이 약 10분 안팎입니다. 이 10분 사이에 마당에 가서 새벽에 배달된 일간신문을 집어옵니다. 그리고 잽싸게 굵은 글씨의 기사 제목만 훑어본 후 식사를 마친 후 기사 몇을 선택하여 읽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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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있다.ⓒ참세상 | 지난 11월 11일, 그날은 흔히들 ‘빼빼로데이’라고 하는 날, 언론은 농민들을 생각하자면서 ‘가래떡데이’라고 말하고 2000여년 만에 찾아온 2011, 11, 11일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을 생각하는 가래떡데이는 의미가 있으나 얄팍한 상술이 만든 빼빼로데이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는 재미거리를 만드는 수단입니다. 수도원 형제들도 ‘오늘은 빼빼로데이’라며 장난거리를 만듭니다. 빼빼로데이, 바로 그날 몇몇 일간 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 전날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당당히 걸어 내려온 부산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씨 사진이 실렸습니다.
10개월 이상을 고공 크레인에서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고 사회의 관심을 촉구한 그녀의 용기와 결단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해고의 위협과 고용불안으로 삶이 위태로운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내고 희망의 소식을 전한 그녀의 행동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실제화 시킨 것이며 권세 있는 사람을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시는 그분께서 김진숙씨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1%에 저항하는 99%의 눈물겨운 몸짓을 하느님께서 승인하신 사건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은 언론이 당연히 이 사건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루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날, 그러나 11월 11일 조간신문 1면을 읽고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지는 사건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겨레> 김지훈 기자의 이름으로 보도된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2살 딸 ‘아빠, 엄마가 잠들어 이틀 동안 일어나질 않아’> 엄마가 이틀 동안 일어나질 않았다. 효은(가명·12)이는 아빠한테 “엄마가 잠들어서 일어나질 않아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 음성만 돌아왔다. 효은이는 엄마가 토해 놓은 밥 냄새가 진동하는 집안에서 5살짜리 동생을 안고 아빠가 올 때까지 이틀 밤을 지새웠다. 쌍용자동차 희망퇴직 노동자 차진우(가명·40)씨의 아내 오선민(가명·41)씨가 지난 6일 강원도 원주 자신의 집에서 숨졌다. 오 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에서 11일 만난 남편 차 씨는 “아내가 평소에 밥을 잘 안 먹다가 이날 밥을 먹어 급체한 것 같다”며 “병원에서는 구토를 하다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차 씨는 6일부터 휴대전화가 고장 나 연락이 안 되다 8일 오전에 휴대전화를 고치고 나서야 딸의 문자를 봤다. 차 씨는 그길로 곧장 충남 천안에서 원주로 달려가 아내의 주검을 수습했다. 그는 “딸의 문자만으로도 무슨 일인지 감이 왔었다”고 말하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대충 마치고 보도된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세상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저 아이들은 어찌 할 것인가? 저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는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인간 존엄이 짓밟혀도 된단 말인가? 이틀 동안 아이들이 경험한 공포의 무게는 얼마나 될 것인가? 천안에서 원주로 가면서 차 씨가 흘린 눈물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고 이틀 동안 아이들과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차 씨는 어떻게 자신을 추스를 것이며 배우자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차 씨는 괴로움을 어떻게 견딜까? 아니 또 다시 죽음이 계속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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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 퇴직자 차아무개(가명)씨의 아내 오아무개(˝)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로 분당 차병원 영안실 밖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모여 장례 일정 등을 의논하고 있다. 성남/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 |
수도생활이 우울하고 불편한 이유
이 사건과 나의 수도생활은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 것일까?’ 무척 우울하고 하루 종일 좌불안석, 몹시 불편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도원에 소속되어 있어서,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어서, 수도자의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면피가 되는 것일까? 나는 어느 현재 어느 입장에 있는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얼마나 더 죽어야 우리 사회가 반응할 것인가? 도대체 몇 사람이 더 죽어야 상식을 회복할 것이란 말인가?
차 씨는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에 밀려 희망퇴직을 하고 평택에 마음을 둘 수 없어 연고도 없는 원주로 이사를 한 후 가족과 떨어져 천안 일대에서 공장을 전전하며 월 120만 원 정도를 벌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죽음을 안 날은 벌이가 약간 나은 다른 업체에 면접을 보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2년 전부터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목숨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일부는 스트레스에 따르는 질환으로 갑작스런 죽음이며 이번 오 씨의 죽음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3년 동안 계속된 죽음의 행렬을 급히 인터넷을 검색하여 찾아봤습니다. 아! 2009년부터 쌍용자동차문제가 터진 후 그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죽음의 행렬을 하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2009년 초부터 쌍용자동차를 경영하는 중국의 란싱그룹이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문제는 그동안 우려했던 모든 문제가 폭발하는 상황이 되었고 순차적으로 고용을 약속한 쌍용자동차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면서 노동자들은 갈 곳 없이 죽음으로 내 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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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이 지난 7월1일 경기 김포 영화사 주변 숲길을 함께 걷고 있다. 김경호 '한겨레21' 기자 ⓒ한겨레 |
2009년 1월 9일에 쌍용자동차는 서울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4월 8일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이 죽음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4월 8일 쌍용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 씨가 자살을 택했습니다. 그날은 전체인력의 37%(2,646명)의 구조 조정안이 발표된 날입니다. 5월 27일에는 조합원 엄 씨가 신경성 스트레스로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6월 11일 조합원 김 씨는 구조조정의 압박을 못 이겨 스트레스 등으로 허혈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7월 2일에는 희망퇴직자 김씨, 경제적 어려움을 못 이겨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7월 20일 노동조합 정책부장 이 씨의 아내 박씨(29)가 사측의 회유로 인한 스트레스로 화장실에서 목을 맸습니다.
2010년 2월 20일에 3주 동안 행방불명이던 조합원 김씨(50세)가 차안에 연탄불을 피워 죽은 채 나타났습니다. 3월 2일 구조조정 후 매형 회사에 다니던 김씨, 경남 진해에서 차 안에서 역시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4월 25일 조합원 임씨의 부인 00씨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을 겪다가 아파트에서 투신해서 이승을 하직했습니다. 5월 4일 분사된 시설 팀 노동자 김 씨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11월 19일 희망퇴직자 김씨(46) 역시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12월 14일 의족으로 생활하는 장애인이며 희망퇴직자 황대원(39)씨는 정리해고 후 취업의 고충으로 화장실에서 목맸습니다.
2011년 1월 13일 희망퇴직자 서씨(37)는 이혼과 생계의 고통을 겪다가 다섯 살, 두 살 아들을 세상에 남긴 채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2월 26일 조합원 임씨(44)는 집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17세 아들이 발견한 통장은 잔고가 4만원, 카드 빛 150만원, 10개월 전 아내 임씨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이미 저 먼 곳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남겨진 17세 아들과 14세의 딸은 10개월 만에 부모를 쌍용자동차에 제물로 바친 셈입니다.
이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를 쌍용자동차에 제물로 바친 이틀 후 2월 28일, 조합원 조씨(36)는 차 안에서 연탄불 피워 쌍용자동차 쪽을 향한 채 숨을 거둔지 1주일 만에 발견 되었습니다. 3살 딸과 첫 돌 아들을 두고 제 2 금융권의 2000만 원 짜리 채무 확인증이 그의 손에 있었습니다. 5월 10일 퇴직자 강씨(45)는 다른 공장에 겨우 일자리를 얻어 일하다 휴게실에서 두통을 호소하면서 돌연 사망하여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해야 했습니다. 10월 4일 고씨(40)는 가계 빛에 눌려 차량에 연탄불을 피워 자는 듯 누운 채 세상과 이별 했습니다.
10월 10일 이미 한번 자살을 시도했던 희망퇴직자 김철강(35)씨는 자신의 방에 목메어 있는 것을 밤에 식당일을 마치고 돌아온 홀어머니에 의해 새벽에 발견되었습니다. 11월 19일 윤씨(46)는 10월 29일 실종 후 안성휴게소 하행선 뒤편 야산 나무에 자신의 몸을 기대고 목을 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난 빼빼로데이에 차 씨의 아내 오 씨는 숨을 멈춘 채 이틀이나 남편을 기다리다 사랑하는 남편과 이별의 인사도 없이 한 맺힌 이 세상을 하직한 것입니다.
19명의 생명(2009년 5명, 2010년 6명, 2011년 8명)은 쌍용자동차에 일했던 노동자와 가족들입니다. 누가 죽인 것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1년이 채 못 된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에서는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철거민들이 공권력의 폭력에 부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른 봄부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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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비준안을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통과시키자, 시민들은 당일 밤 반대시위를 벌였다. | 죽음의 행진을 강요하는 이명박 정부
일반적으로 실업은 질병, 사망, 노령, 장애와 더불어 사회적 리스크라고 합니다. 이런 위험이 많이 발생할수록 사회는 매우 불안하고 위험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린다면서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복지비용을 축소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죽고 철거민들 죽고 계속되는 해고와 넘치는 실업문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급기야 한미 FTA를 날치기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미국에 저당 잡히고 미래에 심각한 양극화만을 남겨놓았습니다. 권력은 소수의 부자들과 미국만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자국민의 목숨은 파리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명박 권력은 부자들에게 퍼줄 만큼 퍼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더 퍼주려고 이 광란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인가요?
부자감세, 공공부채 400조원 이상을 퍼주었고 환율을 떠 밭치며 대 기업들의 뒷감당을 다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피를 말리는 일이었으며 그래서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갔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리기를 원합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재벌들과 고 소득층에게 더 내놓아야 한단 말입니까? 가난한 촌로들의 얄팍한 호주머니를 빼앗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빼앗아 재벌의 호주머니로 넣어주려는 이 죽음의 행진은 언제 멈추려는 것입니까? 일부 대기업은 환호하며 기쁨에 넘쳐 표정관리를 하고 억울하면 출세하라 합니다. 그러나 더 뺏길 것 없는 분노한 시민들은 영하의 날씨에 거리에 나와서 물대포를 맞으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권력이 손잡은 끝없는 탐욕은 인간 존엄을 약탈하고 굶주린 승냥이처럼 노동자들의 목숨을 무참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피를 흘린 국민들을, 더 이상 피를 흘리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 맡길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생명을 가졌기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의 기본권인 생존권리 만큼은 약탈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무절제한 탐욕의 엔진은 언젠가 당신들의 목숨을 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국식 체계가 위기의 파도를 타고 있음을 보면 파국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을 것이라곤 몸뚱이 밖에 없는 99%의 노동자들에게 그 몸뚱이마저 내 달라면 다 내주겠으나 그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의 국회 최루탄 투척은 지극히 당연한 저항의 행위입니다. 힘의 균형을 상실하고 불평등 구조가 일상화되고 깊어지게 되면 지배와 굴종의 구조만 남는 것은 필연입니다. 이때 불의한 권력에서 자신을 지키고 굴종의 구조에 대항하는 저항은 정당방위이며 최루탄 저항보다 그 이상의 행동도 정당합니다. 더 이상 국민들의 피를 요구하면 1%의 강자들을 상대로 분노와 투쟁을 유보하고 참아왔던 99%는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의 축복이 1%의 부자 권력에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름에 불 붙이지 마시오! 제발 더 이상 죽이지 마시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