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할렐루야 !!
- 오늘도 참으로 복되고 좋은 황금 같은 금요일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어둠과 절망에 가득 찬 이 땅 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사 치료와 평안의 물결로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실 줄 믿고 기도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거룩함과 신실함이 능력이며,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긍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감사하며 복음과 함께 주어진 현장에서 신실하게 파수꾼의 삶을 사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이사야 21장1-13절}
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 도다.
◑◑◑◑ 제 목 ◑◑◑◑
◗◗ 바벨론과 에돔과 아라비아에 대한 심판 예언 (모든 세계 위에 계신 하나님)
◑◑◑ 본문 이해와 요약 ◑◑◑
◗ 그동안 이사야 선지자는 13장과 14장에서 1차 교만의 죄를 심판하시는 예언을 다시금 21장에서 또 다시 재차 바벨론과 그 연합하는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에게 그들의 탐심과 야망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이 예언은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모압, 다메섹과 사마리아, 에디오피아, 애굽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그런데 오늘도 선지자가 21장에서 다시 바벨론을 언급하고 그 뒤로 연합하는 에돔과 아라비아에 대해 더 언급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해 이사야 선지자는 본장에서 모든 열방을 집단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경고의 대상은 해변 광야와 두마 그리고 아라비아인데, 그 경고는 하나같이 그들의 교만과 야망과 탐욕으로 멸망당하게 될 것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이제 21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10절에서 메대와 바사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11,12절에서 두마(에돔)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며, 한편 13-17절에서 아라비아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 예고가 있습니다.
☞ 이제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세상은 아무리 번영하고 화려해도 실상은 의지할 수 없는 메마른 광야와 다름이 없습니다.
- 그리고 2절에서 타인을 근심과 탄식에 빠뜨리는 자는 자신이 행한 그대로 받게 될 것입니다.
- 한편 3절에서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자를 외면치 않고 함께 아파하는 그가 참 성도입니다.
- 그리고 5절에서 심판의 날은 누구도 예기치 못할 때 갑작스럽게 우리 중에 임할 것입니다.
- 또한 6절에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입니다.
- 한편 7절에서 메데와 바사에게 바벨론이 속절없이 파멸되는 상황에서 긍휼한 마음이 녹아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9절에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높이는 자들은 결국 교만함으로 한 순간에 멸망할 뿐입니다.
◗ 결론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과 개인들은 마치 그들이 우연히 이 세계에 왔다가 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 뜻대로 살고자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며 행동입니다.
- 전 세계와 모든 열방들 위에는 살아계시고 영원히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엄연히 주권과 계획하심으로 나라가 세워지고 무너지는 세계관이 있습니다.
-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할 때 누구든지 멸망하며, 그를 인정할 때 누구든지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 이것은 열방 나라들에게 인간적인 동맹관계나 혹은 인간들이 자랑하는 뉴-토피아의 막강한 힘과 능력으로 인간의 코로나 질병과 바이러스 확진을 막을 수 없기에 먼저 겸손히 항복하고, 은혜와 긍휼을 구할 때에, 직면한 문제들을 완전하게 해결 할 백신도 개발되는 지혜도 주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긍휼히 여기는 아픔이 있어야 사명자다. (이사야21장 3,4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자를 외면치 않고 함께 아파하는 그가 참 성도요, 사명자입니다.(3,4절)
▷ 3,4절을 살펴보면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 이사야 선지자의 깊은 영성은 앞으로 바벨론이 일어날 것과 그들이 또 다른 강자에게 허무하게 속절없이 망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 여기서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고통 중에서 가장 혹독한 고통의 하나입니다.
- 해산을 하는 여인은 206여 개의 모든 뼈마디가 이완 되면서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큰 고통을 당한다고 합니다.
- 그런데 본 절에서 그러한 해산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사야 선지자 자기 자신입니다.
- 그러면 이사야는 왜 이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앞으로 하나님의 계시로 본 바벨론이 매데와 바사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너무 혹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 바벨론이 어떤 나라입니까? 장차 유다를 멸망시킬 나라입니다.
- 유다의 원수 나라이므로 이런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환상을 보았다면 기뻐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 그러나 이사야는 기뻐하기는커녕 도리어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 이는 원수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도 기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참혹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사야가 이처럼 바벨론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목도하고 그로 인해 그들 각각의 사람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 이사야가 바벨론에 임한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에 대한 환상만을 보고도 해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면 실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 바벨론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 그것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 일 것입니다.
- 비록 이방인들이라 해도 바벨론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슬픔, 처절한 비극을 이사야는 공감하고 있었고 그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이처럼 마음이 아파한 것입니다.
- 이러한 이사야의 자세는 오늘 내가 가져야 할 소중한 삶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질병과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보면서 무감각한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같이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 그리고 풍요를 누리고 있기에 그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일들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의 눈을 좀 더 크게 떠서 이 사회의 어두운 곳과 낮은 곳 복지의 사각지대를 돌아봅시다.
- 사랑과 애정으로 양육되어야 할 가정에서 학대 받으며 멍든 몸, 멍든 마음을 안고 자라야만 하는 우리 이웃의 자녀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 우정과 신뢰를 배우고 세상을 더욱 폭넓게 배워 가야할 학교에서 폭력과 소외, 소위 왕따를 당하며,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도덕이며 천륜이라 불리는 효가 무시됨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소외되어 고독하고 고통스런 노년을 보내야 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 코로나로 인하여 실직하고 뚜렷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헌 하다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지 못해 천금보다 소중한 젊은 나날을 절망과 비관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 그야말로 고통 중에 처한 사람들, 슬픔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비이비재 하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뿐입니까?
-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영적으로 메말라 기갈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결국 자신들이 알지 못할 미래에 파멸의 자리에 떨어져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이 또한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 그런즉 지금 내가 이런 사람들을 외면한다면 과연 참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나와 상관없는 이웃과 열방들이 당하는 환란과 질고와 기근을 보면서 어떤 마음과 감정을 느끼는지? 장차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의 영혼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심판을 생각하고 그 영혼을 사랑한다면,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지? 무슨 말을 전해야 할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아픔이 있어야 사명자입니다. 주님의 사명 자는 고난과 고통의 좁은 길을 묵묵히 가슴을 치고 눈물을 머금고 가는 것입니다.
- 앞으로 주의 심판 앞에 표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통스런 삶의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사랑이 끊어지는 아픔 속에 신음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할 것입니다. 여기에 영혼을 보고 해산하는 고통을 느끼는 아픈 마음을 긍휼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 마태복음9장 36절에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지금 이들의 고통과 슬픔, 절망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을 보면서 무감각하다면 나의 심령에 성령께서 임재 해 계시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왜 무엇 때문입니까? 지금 내가 주님의 마음을 소유하지 않고 내 안에 자아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지닌 성도라면, 주님께서 섬기신 것처럼 지금 우리 이웃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결코 외면할 수 없습니다.
- 베드로전서3장 8절에서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가난한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 고통 받는 자, 소외된 자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의 육신의 고통과 영혼의 곤고함을 말씀으로 구원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울며 웃으신 것처럼 지금 우리도 낮은 자로 섬겨야 합니다.
- 그러므로 지금 구원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주님께서 희생하고 섬긴 것처럼 저들의 영혼의 고통과 아픔의 문제를 위하여 우리 자신의 삶과 헌신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희생을 감수할 수 있도록 결단하고, 우선 작은 것부터 실천하므로 이웃의 고통을 더불어 체휼하는 긍휼의 마음과 따뜻한 사랑과 자기희생의 삶을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추구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