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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는 아시리아인들로부터 민족을 구해낸 유대의 영웅이고, 홀로페르네스는 유대인들을 공격했던 아시리아의 장수이다. 유디트는 밤을 틈타 도시를 빠져나가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술을 먹여 그의 목을 잘라버렸다. 아직 남녀가 평등하지 않았던 시대,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는 힘센 여자가 나타나서 자신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디트는 남성들의 숨겨진 공포, 즉 전-프로이트적인 환상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지금이 아니라 과거의 이야기다.
알로리는 유디트를 아주 육감적이고 파괴적인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에 있는 작은 나비 모양의 보석을 보라. 가장 강한 여자라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노리개일 뿐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반면 하녀는 그녀를 몹시 존경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사람 머리를 잘라내는 일을 훌륭하게 해치웠으니 그럴 만도하다. 그녀를 손상시킬 만한 군더더기는 없다. 이제 사람들에게로 당당하게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영웅이지만, 사기꾼이기도 하다. 그사랑스런 표정 뒤에 불굴의 의지와 피에 굶주린 끔찍한 살기가 서려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알로리는 강하지만 기만적인 남성 작가의 관점으로 유디트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운 좋게도, 같은 박물관에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도 있었다. 이 두그림의 차이는 한눈에 알수 있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좀더 현실에 가깜고, 솔직하다. 알로리가 그린 유디트는 가냘픈 여자아이인데, 이런 어린아이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반면에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유디트는 건장한 처녀로, 남자의 목을 칠 수 있는 힘과, 머리를 자르고 나면 피가 튀고 한바탕 난리가 날 것임을 미리 계산할 줄 아는 지혜를 겸비한 여성이다. 그녀는 머리를 담을 바구니와 피를 닦을 천을 미리 준비해 왔으며, 거기엔 약간의 피가 묻어 있다. 그녀는차분하게 살인을 실행했으며, 지저분한 물건은 하녀에게 넘기고 있다. 또한, 자기가 한 일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두여성은 어깨너머로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다. 알로리의 유디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에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현실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여성이다. 어깨에 칼을 걸치고 있는 그녀는 순진함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르테미시아 자신이 강간 당한적이 있었다는사실을 알고나면. 이 그림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 여성 화가는 자기를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뚱뚱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영리하고 분별력 있으며 활기차 보이는 그림 속의 유디트는 사실 아르테미시아와 닳은 것 같기도 하다. 여성이기 때문에 유디트의 이야기가 그녀에게(그리고 우리에게) 더욱 실감나게 느껴질 수 있다. 남성 화가들은 도저히 그 느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