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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 ⓒ프레시안(박세열) |
대학생들의 집회가 열리는 곳에 보수 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70대 남성 3~4명이 "XX놈들"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난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촛불 집회가 열린 곳 맞은편인 동아일보사 앞에서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 단체 회원 100여 명이 '맞불 집회'를 열고 "빨갱이들이 박근혜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고 목청껏 외쳤다.
촛불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구호는 간명했다. "민주주의 지켜내자", "박근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를) 책임져라", "원세훈을 구속하라", "평화 행진 보장하라"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국회 의석만을 지키면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며 "주말이면 이곳에서 끝장날 때까지 촛불을 들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으로 '촛불 집회 광우병대책위원회 공동상황실장'을 지낸 적이 있다.
2008년 촛불이 2013년에도 재현될까. 이날 집회가 열린 청계광장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경찰의 물대포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청계광장 주변을 꼼꼼하게 둘러싼 수십 대의 차벽이 거리로 나서려는 대학생들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87년에 직선제 쟁취해 후배들에게 넘겨줬는데 아직도…"
시민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한 40대 여성은 발언대에 나와 "1986년에 대학교 1학년이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자녀를 둔 엄마"라고 본인을 소개한 후 "후배 여러분, 정말 감격스럽고 고맙다. 제가 대학생 때 쟁취하려고 했던 것은 아주 당연한 문제였다.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우리가 많은 고통을 겪고, 여러 선배들이 죽고, 겨우 대통령 한 사람 직선제로 뽑을 수 있도록 해서 후배들에게 넘겨줬는데, 2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지 못하고 여러분들이 거리에 나와야 한다는 데 대해 선배로서 너무 부끄럽다. 여러분들의 열정에 동의하고 앞으로 지원하겠다.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여러분들이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가두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연행됐다가 22일 오후 5시에 석방된 29명 중 한 명인 단국대 1학년생 김현정 씨(가명)는 발언대에 서서 "20년 동안 살면서 광화문 사거리에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본 적이 없다. 경찰에 처음 잡혀갔을 때 나온 밥반찬에 미나리무침이 있었다. 먹으면서 경찰에게 들으라고 '아, 맛있다'라고 외쳤다. 미나리무침을 먹으며 TV를 보니 뉴스에 국정원 얘기는 하나도 없고 'NLL이 어떻다'는 얘기만 나왔다. 아무도 내가 한 일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제가 좋아하는 백범 김구 선생이 한 말이 있다. 중요한 일을 할 때는 그 일이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옳은가 그른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제가 한 일이 옳은 일이라고 믿고 있다. 나중에 박근혜, 원세훈, 이명박이 미나리무침을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오후 9시 무렵, 집회를 끝낸 대학생들은 청계천을 따라 광교 방향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평화 행진 보장하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원세훈을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무교동 사거리에서 행진을 이어가려는 대학생들과 방패를 든 경찰들이 잠시 대치 상황을 연출했다. 경찰에 막혀 돌아선 대학생들은 동아일보사 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세종대로 쪽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 측은 네 차례에 걸쳐 가두 행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해산 명령 방송을 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내일 저녁 7시에 다시 모이자. 매주 주말 청계광장에 촛불이 켜질 것이다"라고 말한 뒤 오후 10시 무렵 해산했다.
▲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맞불 집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
▲ 집회가 열리는 곳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무교동 사거리 인근에 물대포차가 등장했다. ⓒ프레시안(박세열) |
▲ 집회가 열리는 곳 너머로 <조선일보> 간판이 보인다. 차벽이 시위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
▲가두 행진을 하려는 시민들이 방패를 든 경찰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부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프레시안(박세열) |
/박세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