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의 선봉에 선 600여 명 흑인, 용기·자긍심·인종차별 등에 초점
바그너 요새 탈환은 실패했으나 사회적 멸시·편견 깨는 데 기여
남북전쟁 배경 실화 소재
영화 ‘가을의 전설’로 잘 알려진 에드워드 즈윅 감독 연출 맡아
정상급 흑인배우들 열연 빛나
미국의 남북전쟁(Civil War)은 내전이다. 노예해방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사실 같은 인간으로서의 노예에 대한 관심보다는 노예제도가 유발하는 남부와 북부 간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에 일어났다.하지만 흑인 해방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흑인들은 참전할 수 없었다.
이런 배경에는 흑인의 군 복무를 허용할 경우 예상되는 흑인의 지위 변화 등 복잡한 정치 사회적인 요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2년 흑인 징병이 허용됐으며 흑인들로만 구성된 매사추세츠 54보병연대가 처음으로 결성됐다. 연대장은 25세의 젊은 백인 대령 로버트 굴드 쇼(Robert Gould Shaw).
그의 지휘 아래 600여 명의 흑인 병사들은 1863년 7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바그너 요새(Ft. Wagner)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비록 요새를 탈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불굴의 용기를 보여줘 흑인 부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링컨 대통령은 이들 흑인 병사들이 전세를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백인 초급장교가 이끈 흑인 부대
쇼 대령이 이끈 흑인 54보병연대의 바그너 요새 전투를 그린 영화가 ‘영광의 깃발’(Glory)이다. 영화는 매사추세츠 54보병연대의 창설 배경과 쇼 대령이 신참 초급장교에서 지휘관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노예 근성의 흑인들이 군인으로 변해 가는 모습, 전쟁에 헌신하려는 흑인들의 용기를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자긍심과 명예심을 지니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전쟁에 나서고 싶은 흑인들의 갈망과, 이들에게 참전 기회를 주려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백인 지휘관으로서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주인공 쇼(매슈 브로데릭)는 보스턴의 부유한 노예 폐지론자의 아들로, 23세에 남북전쟁에 참전하지만 부상을 당한다. 그는 진급과 더불어 최초로 흑인 군인들로 창설되는 54연대의 연대장으로 발탁되면서 대위에서 일약 대령으로 진급한다.
그가 처음부터 흑인 부대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흑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과 차별에 눈을 뜨고 그들의 용기와 열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서히 그들과 혼연일체가 돼 간다.
애초에 상부의 지휘관들은 흑인들이 참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군인으로서 그들의 능력을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쇼 대령은 흑인 부대에 대한 상부의 이런 편견과 무시, 그리고 흑인들의 냉소와 불만에 대항해 싸운다. 백인 출신의 애송이 초급장교에서 흑인 부대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지휘관이자,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쇼는 백인 병사와는 달리 봉급이 차등 지급돼 흑인들이 반발하며 수령을 거부할 때 “(흑인)병사들이 봉급을 받지 않겠다면 나도 받지 않겠다”며 봉급 명세서를 찢어버리며 그들과 뜻을 같이한다.
이처럼 쇼 대령이 병사들과 소통하는 동안 흑인 부대 병사들은 흑인으로서 받는 사회적 멸시와 편견, 또한 자신들의 내부에 도사리는 열등감과 싸운다. 상부에서 54연대에 기대하는 것은 흑인들이 전투병으로서 적과 용감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백인 군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흑인 병사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미국 육군의 매사추세츠 54연대를 이끌었던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의 실제 모습.
쇼 대령 지휘아래 전투의 선봉에 서다
마침내 쇼 대령과 54연대 흑인 병사들은 바그너 요새 전투의 선봉에 선다. 이 전투에서 54연대는 쇼의 지휘 아래 북군 부대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며 쇼 대령을 포함해 600여 명의 부대원 중 절반가량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거나 실종된다.
북군 총사령관이 “귀하 부대는 지난 전투로 이틀 동안이나 잠을 자지 못했는데 괜찮겠나?”라고 묻자 쇼 대령은 “우린 싸울 때 힘이 생깁니다. 우리 부대의 특징이죠. 그건 의지의 힘입니다”라고 답하며 앞장선다.
영화는 ‘가을의 전설’ ‘커리지 언더 파이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덴절 워싱턴, 모건 프리먼 등 현재 할리우드의 정상급 흑인 배우들이 나와 30여 년 전의 젊은 연기를 보여주며, 로버트 굴드 쇼 대령 역을 맡은 매슈 브로데릭도 뛰어난 연기를 통해 젊은 군인의 기백을 한껏 살려내고 있다.
우리도 남북으로 갈라져 6·25전쟁을 치렀다. 두 번 다시 6·25전쟁 같은 비극적인 내전은 없어야 한다.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것에는 북한보다 더 강한 군사적 우위밖엔 답이 없다. 마침 6월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군사적 우위에 강한 정신력을 기르는 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