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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종교에 대한 비판(34-41)
기억은 하나님께서 누구시며 무엇을 하셨는지를 되새기며 즉각적인 순종을 위한 고도의 영성입니다. 기억과 순종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 경청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날도 서로 자기 말을 하려고 할 뿐 들으려고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들음에서 신실한 순종이 나옵니다.
34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5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37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 38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40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34-41)
34-41절에서 열왕기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평가하는데, 이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열왕기 저자는 지금까지도 이런 혼합주의가 계속되는 것을 질책하며,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들과 언약을 세우시면서 여호와만을 경외하라고 명령하셨다고 합니다.
35절과 36절에서는 이방신을 섬기지 말 것과 여호와만을 섬기라는 것을 대조하기 위해,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고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고, 그에게 제사하지 말라고 사중적으로 금지한 후에 여호와만 경외하고 그를 경배하고, 그에게 제사 드리라고 말합니다. 36절에서 ‘예배하다’라고 번역한 단어는 35절에서 ‘경배하다’로 번역한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37-38절에서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39절에서 다시 여호와만을 경외하라고 말합니다.
35-39절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것과 여호와만을 경외할 것을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40-41절은 지금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호와만 섬기지 않고 당시의 풍습대로 여호와도 섬기고 자신들의 조상들의 신도 섬겼습니다. 결국 신명기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열왕기 저자는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이 결론은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 사람을 성전 건설에서 배제하는 이유가 되며, 신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6:24에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비단 눈에 보이는 우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며,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열왕기 저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배움은 회심을 낳고 회심은 배움을 통해 일어납니다. 배움은 사실에 대한 얄팍한 읊조림이 아니라 죽음을 거부하려는 생명을 향한 투신과 몰입입니다. 배움이 멈춘 곳에는 두 마음으로 충만한 영적 간음이 계속됩니다. 회심은 근본적인 사상의 전환이고 욕망의 재조정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