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미봉 내리면서 바라본 공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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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쌍두마차(雙頭馬車)가 지나는
욱어진 풀 속에서
나는 푸르른 진리(眞理)의 놀라운 진화(進化)를 본다.
산협(山峽)을 굽어보면서 꼬불꼬불 넘는 영(嶺)에서
줄줄이 뻐든 숨 쉬는 사상(思想)을 맛난다
――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쌍두마차(雙頭馬車)」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3월 4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6명(버들, 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한계령, 수담, 사계, 상고대, 두루, 향상,
해마, 제임스, 해피, 오모육모, 무불,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거리 17.8km
▶ 산행시간 : 8시간 57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15 - 홍천군 화촌면 장평리 홍천축협생축장, 산행시작
08 : 38 - 547m봉
09 : 06 - 안부, 임도, 큰솔치
09 : 24 - 499.5m봉, 첫 휴식
09 : 58 - 작은솔치, 생태이동통로
10 : 12 - 557.1m봉
10 : 40 - 안부, 임도
11 : 38 ~ 12 : 13 - 686.9m봉, 점심
12 : 45 - 661.6m봉
13 : 02 - 임도 삼거리, 된덕고개
13 : 25 - 630.6m봉
13 : 56 - 임도
14 : 40 - 앞고개, 생태이동통로
15 : 12 - △491.5m봉
15 : 56 - 492.6m봉, 바른재
16 : 19 - 갈미봉(△532.0m)
16 : 02 - 홍천-양양간 고속도로 공사장 굴다리
17 : 12 - 홍천군 화촌면 외삼포리 양지말, 양지교, 산행종료
17 : 28 ~ 19 ; 17 - 홍천, 목욕, 식사
20 : 4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갈미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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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행시작 첫 봉우리인 547m봉 오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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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7m봉
산자락 첫발자국부터 되게 가파르다. 이 첫발자국으로 오늘 전개될 산행의 대강을 짐작한다.
성긴 잡목 붙잡아가며 한 피치 오르자 거대한 민둥산의 잣나무 묘목 조림지가 펼쳐진다. 가
파른 능선과 사면을 나무숲의 숨김이 없이 민둥하게 보는 것이라 대단히 위압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불에 탄 소나무 그루터기가 보인다. 산불이 크게 났었다.
그랬다. 재작년의 일이었다. 여러 신문에 그 당시의 사정을 소개했으나 2015.4.29.자 신아일
보의 기사가 가장 충실하다.
“지난 28일 오후 1시 58분께 강원 홍천군 장평리 산1-10번지 솔치재 입구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2.8㏊의 산림을 태우고 6시간 만에 진화됐다. 산림당국은 불이 나자 소방헬기 12대
와 소방차 20여대, 산불진화대 등 38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불을 껐다.
큰 불길은 이날 오후 6시5분께 잡힌 데 이어 오후 8시께 잔불마저 잡혔지만 산세가 험하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 불길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인근 밭두
렁에서 이모씨의 쓰레기 불법소각으로 화재가 시작된 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산불 피해 면적이 2.8㏊라는데 이렇게 광활한 면적이 8,470평에 불과하다니 아무래도 축소
한 것 같다. 산불이 난 곳을 정리하고 잣나무 묘목을 심었다. 그냥 오르기도 힘든 사면에 대
꼬챙이를 일일이 세우고 잣나무를 심었다니 그 수고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잣나무가 밟히
거나 다칠라 조심스럽게 살펴 오른다. 길고 긴 23분이 걸려 547m봉에 오르고 잠시 숨 고른
다. 산행은 이제부터 본격적이다. 도상 17.8km, 갈미봉 1좌를 포함하여 표고점 또는 삼각점
이 있는 봉우리 13좌를 넘어야 한다. 물론 각각의 사이에도 여러 무명 봉우리가 있다.
547m봉 북사면을 내린다. 낙엽이 복병이다. 북사면 낙엽 밑은 빙판이다. 미끄러져 넘어지더
라도 다치지 않도록 자세 낮추고 살금살금 내린다. 그러고 나서 평지 나오면 줄달음한다. 지
도 보며 산줄기 찾아가는 재미 또한 각별하다. 봉마다 외길이 아니라 그럴듯한 지능선이 분
기한다. 547m봉 내린 520m봉에서 선두그룹은 잘 난 능선을 따라 직진하는 바람에 후미였
던 내가 잠시나마 선두가 된다.
아침 깊은 골 안에 비추는 직사의 햇빛과 은은한 산 빛이 곱다. 원경은 나무숲에 가렸고 어쩌
다 나뭇가지 사이가 트여도 안개로 흐릿하다. 고개 돌려 발밑의 골짜기를 구경하며 간다. 조
지훈의 「유곡 (幽谷」 같은 데를 간다.
(…)
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무르녹는 봄
고요한 산 골로
파릇한 마파람
귓결에 감고
(…)
차거운 물소리
밟으며 간다.
2-1. 2015.4.28. 대형 산불이 난 곳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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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행시작 첫 봉우리인 547m봉 오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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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행시작 첫 봉우리인 547m봉 오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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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15.4.28. 대형 산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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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멀리 설산은 수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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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15.4.28. 대형 산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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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쪽 멀리 희미하게 공작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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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등로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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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덕고개
466m봉 내린 안부는 큰솔치로 임도가 지난다. 솔치가 근거 없는 이름이 아니다. 등로 주변
의 쭉쭉 뻗어 오른 아름드리 소나무가 볼만하다. 그들의 위호를 받으며 간다. 오늘 산행의 콘
셉트는 잔봉우리를 무수히 오르고 내리는 것이다. 큰솔치에서 숨 할딱여 오른 499.5m봉에서
첫 휴식한다. 입산주가 걸다. 탁주는 해피 님이 공수해 온 덕산의 명주이고 안주는 셰프인 수
담 님이 즉석 요리한 복껍질이다.
약간 취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나무이며, 먼 데 첩첩 산이며, 고요한 산 골이며 다 가경이다.
483.6m봉 내린 안부는 작은솔치다. 2차선 아스파트 도로가 뚫렸다. 멀리서 낭떠러지인 절개
지를 보고 도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려면 아주 녹아나겠다고 각오했는데 생태이동통로
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건너편 절개지 가장자리 오르막이 계속 수직이다.
557.1m봉이 첨봉이다. 기어오른다. 휴식. 잔물결이 출렁이듯 봉봉을 넘는다. 표고점 봉우리
는 큰 파도다. 임도가 지나는 안부로 내리고 절개지 피해 잘 다듬은 낙엽송 숲 사면을 오른
다. 산허리 길게 두른 철조망과 맞닥뜨린다. 산양삼 재배지다. 철조망 따라 돈다. 한두 번 산
등성이를 돌면 끝나겠지 했던 철조망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빙벽 다름 아닌 북사면을 돌아내리고 다시 오르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열 걸음이 멀다하고
철조망에 붙여 놓은 접근하지 말라는 플래카드와 경고문에 마음이 조급하다. 산양삼 농장을
빠져나가는 데 무려 40분이 걸린다. 실로 어렵게 오르는 686.9m봉이다. 그 정상 250m를 남
겨두고 다시없을 널찍한 명당을 만나 점심자리 편다.
밥에 라면에 만복이 되니 비로소 눈에 초점이 잡힌다. 살 것 같고 걸을 만하다. 봉봉 오르내
리기를 재개한다. 뚝 떨어졌다가 길게 오른 705m봉은 고지답게 그 북사면에는 눈이 수북하
게 남았다. 636m봉에서도 여러 갈래 능선이 서로 유혹하여 우왕좌왕한다. 뚝 떨어진 안부는
임도 삼거리 된덕고개다. 된덕고개란 아마 준령이란 뜻일 것. 점심 때 라면과 커피 끓이느라
식수가 달랑달랑하다. 두메 님에게 전화하여 앞고개로 배달해줄 것을 부탁한다.
된덕고개에서 한 피치 바짝 오르면 무인산불감시스템이 있다. 북쪽 가까이 보이는 송곡대산,
매봉산, 백우산 연릉이 장릉이다. 남쪽으로 눈 돌리면 아침에 서쪽으로 작고 흐릿하게 보이
던 공작산이 위치 이동하여 남쪽의 뭇 산 중 발군의 준봉으로 보인다. 630.6m봉을 길게 내리
고 만난 임도는 570m봉을 간단히 돌아 넘는 우회로이기도 하지만 몇몇은 직등한다.
비록 인적이 드물어 잡목 숲을 헤치지만 멋있는 소나무들을 우러르며 그 사이로 저 멀리 나
래 펼친 공작산의 우아한 모습을 본다. 선두그룹이 휴식하는 산모퉁이 도는 임도와 만나고
덕산의 명주인 탁주를 마저 마신다. 타는 목마름에 박주 미주를 가릴까. 아까 두메 님에게 식
수배달을 부탁할 때 탁주를 끼워 넣지 않은 것이 크나큰 실책이다.
10. 큰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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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세먼지인지 원경은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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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낙엽 길, 등로는 내내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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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세먼지인지 원경은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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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작은솔치, 생태이동통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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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수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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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낙엽송 사면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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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임도삼거리, 된덕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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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백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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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수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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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공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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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소나무 뒤는 산 첩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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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소나무가 아름다운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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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소나무가 아름다운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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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앞고개, 멀리는 공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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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미봉(△532.0m)
가시밭길을 간다. 아직 어린 아까시나무라 가시가 여간 사납지 않다. 앞뒤에서 내지르는 마
조히즘적 비명소리를 한참동안 듣는다. 갑자기 사방이 환해지더니 자작나무 숲에 든다. 바닥
친 안부가 앞고개다. 고갯마루에 두메 님이 몰고 온 노란 차가 보인다. 수대로 자작나무 숲을
누비며 내린다. 그런데 주위를 가만 살피자 생태이동통로가 보인다. 더구나 그 통로 위에서
메아리 대장님이 목청 높여 모두 내려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말리고 있다.
이런 때는 산행에 왕도가 있다. 생태이동통로로 앞고개를 지난다. 식수가 보충되니 물을 마
시지 않아도 목마름을 덜 느끼고 씩씩하게 간다. △491.5m봉 가는 도중은 왼쪽이 벌목한 사
면이라 조망이 훤히 트인다. 하늘금은 병무산 연릉이고 설산인 수리봉 뒤는 운무산이리라.
△491.5m봉 오르기 전에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로가 있으나 또 다른 조망이 있을까 하고 직
등한다.
△491.5m봉 정상. 사방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이 없다. 항공장애등 옆의 삼각점은 오래되어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드디어 종착지인 갈미봉이 보인다.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오
른쪽으로 우람하게 솟은 곤봉을 나뭇가지 사이로 기웃거리며 503.0m봉을 오른다. 푹 꺼진
안부는 바른재다. 낙엽이 엄청 미끄러운 가파른 사면을 엎어지며 기어오른다.
등로 옆에 커다란 자루가 있기에 들여다보니 겨우살이가 그득하다. 얼마 가지 않아 겨우살이
채취꾼을 본다. 한 사람은 끝에 낫이 달린 긴 장대를 들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겨우살이가 달
린 참나무를 오르고 있다. 보기 드문 묘기다. 10m가 넘을 저 높은 나무를 다람쥐마냥 금방
오른다. 겨우살이를 따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무거운 자루를 지고 마을로 내려가자면 보
통 힘든 일이 아닐 것 같다.
마침내 갈미봉이다. 산불감시망루가 있다. 삼각점은 ‘어론 442, 2005 재설’이다. 조망이 아
주 좋다. 남쪽으로 공작산이 한층 가깝고, 서쪽으로는 구절산, 연엽산, 녹두봉, 대룡산이 아
스라한 하늘금이다. 북쪽에는 가리산의 기상관측소가 있는 997.2m봉이 듬직하다. 오래 휴식
한다. 하산! 서진한다. 기분 좋은 소나무 숲을 지나며 쭉쭉 내린다. 군업1터널이 뚫린 한 성
깔 할 것으로 보이는 319.1m봉은 그만 놓아주기로 한다.
홍천-양양간 고속도로 공사장의 아찔하게 가파르고 깊은 절개지와 만난다. 3단계로 엉금엉
금 내린다.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지나고 빈 밭 지나고 양지말 농로 따르다 양지교를 건너 두
메 님이 기다리는 56번 국도에 다다른다. 오늘도 즐겁고 무사한 산행을 자축하는 하이 파이
브는 차안에서 나눈다.
25. 공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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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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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앞 왼쪽이 응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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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멀리 왼쪽이 수리봉, 그 오른쪽 앞은 응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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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소나무가 아름다운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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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겨우살이 채취꾼의 작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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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멀리 왼쪽은 구절산, 오른쪽은 연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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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멀리 왼쪽은 연엽산, 오른쪽은 녹두봉, 대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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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가리산 기상관측소(997.2m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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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공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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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공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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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홍천-양양간 고속도로 공사장 절개지 내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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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양지교에서 바라본 319.1m봉, 산행계획상 마지막 봉우리였으나 놓아주었다
첫댓글 맨 마지막 절개지가 엄청 가파른가 보네요. 그래도 부러워요~!
몸은 서울에 있으면서 마음은 등산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거든요.
저희도 산행하면서 자주 총대장님을 얘기했습니다.그 마음을 읽으면서..
잔봉이 제법 많은 코스일텐데
수고들 하셨슴다...갈미봉 나중에 꼭 가봐야겠네요
한국의 야트마한 산줄기를
굽이굽이 따라 거닌 날입니다.
소나무 즐비한 산길.
낙엽이 듬뿍이라
푹신한 느낌의 발길.
몸이 호사를 접한 산행입니다.
산행 후에
오지의 영원한 건각 청년 !
악수 형님의 산행기를 접하는
이 시간이 항상 즐겁습니다 ~~~
가랑비에 속옷이 젖은,, 따스한 봄볕에 산행하기에 아주 좋았고, 공작산을
일 바라보며, 가는 겨울을 발로 느낀 하루였습니다...수고많으셨습니다
악수형님께서 키워드를 들어주시면 산행의 기억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이번 산행의 포근함을 봄 햇살로만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싶었는데 바로 솔길이었네요. 폭신했던 능선 길. 봄이 오는 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