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박정란
화약고 짊어지고 바이러스
몸 깊숙이 침투
허벅지까지 살금살금 숨어들어
후끈후끈
찌리릭 찌익
온몸 며칠째 전율하며
피 터지는 전쟁 중
붉은 지뢰밭 점점 확산 중
누군가에게 아프게 했던 말
밀물처럼 나에게 돌아와
사정없이 찔러댄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모두 용서하소서*
그동안 저지른
철없음과 과욕을 반성하겠나이다
오늘 비로소
참을 수 없는 고통 앞에서야
터져 나오는
잊고 있던 나의 기도
*성당의 기도문 중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어떤 외부의 적이나 크고 작은 내란이나 혁명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가 망하는 것은 어떤 외부의 적이나 크고 작은 내란이나 혁명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힘을 기르지 못하고 상호간의 믿음과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병이 들거나 사망하는 것은 병 때문이 아니라, 그 병을 퇴치할 수 있는 건강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다. 원인을 결과로 착각하거나 결과에서 원인을 잘못 찾아낸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우리는 종종 그 나쁜 결과를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는 한다.
박정란 시인의 [대상포진]은 그 병의 원인을 자기 자신의 잘못에서 찾고 있지만, 그러나 그 병을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외부의 신에게 기도를 함으로써 그 문제가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대상포진]은 피부병이며,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피부에 발진을 일으킴으로써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을 말한다. “화약고 짊어지고 바이러스/ 몸 깊숙이 침투/ 허벅지까지 살금살금 숨어들어/ 후끈후끈/ 찌리릭 찌익”이라는 시구가 그것이고, “온몸 며칠째 전율하며/ 피 터지는 전쟁 중/ 붉은 지뢰밭 점점 확산 중”이라는 시구가 그것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화약고가 되고, “붉은 지뢰밭 점점 확산 중”은 “피 터지는 전쟁 중”의 그토록 처절한 참상을 말해준다. 고통은 끊임없이 원인과 결과를 따져묻고 그의 마비된 의식과 감각을 일깨우며, 따라서 어떤 꾸밈이나 장식도 없이 제일급의 시구들을 저절로 양산해낸다. 고통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고, 질병은 가장 훌륭한 ‘명시의 원산지’라고 할 수가 있다.
박정란 시인의 [대상포진]의 장점은 대상포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은 것이며, “누군가에게 아프게 했던 말/ 밀물처럼 나에게 돌아와/ 사정없이 찔러댄다”라는 시구에서처럼, 그토록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자기 반성과 참회를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회주의자나 민주주의자, 또는 불교인과 기독교인들마저도 모든 고통의 원인을 타인의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데에서 그 잘못을 범하고 있지만, 그 반대방향에서, 박정란 시인처럼 책임감이 강한 인간은 진정한 시인이자 문화적 영웅의 전범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모두 용서하소서/ 그동안 저지른/ 철없음과 과욕을 반성하겠다”는 것은 어쩌면 기독교인들의 상투적인 문구 중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의 [대상포진]의 자기 반성과 참회의 모습은 그만큼 처절하고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박정란 시인의 [대상포진]의 장점 중의 장점은 “오늘 비로소/ 참을 수 없는 고통 앞에서야/ 터져 나오는/ 잊고 있던 나의 기도”에서처럼 자기 자신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가차없이 까발리고, 이 반성과 참회를 통해서 더욱더 선량하고 올바른 인간으로 거듭 나겠다는 ‘미래의 희망’에 맞닿아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박정란 시인의 [대상포진]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라, ‘인생의 획기적인 대전환점’을 마련해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의 삶에의 의지가 각인된 ‘희망의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진정한 시인은 바보와 멍청이, 또는 세 살 짜리와 강아지들로부터도 배우고, 모든 나쁘고 사악한 적들과 친구들과 병으로부터도 배우며, 그 ‘앎에의 의지’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높이 높이 끌어올린다. 이 세상은 ‘자연의 학교’이며, 고통과 질병과 사악하고 나쁜 적들과 친구들마저도 모두가 다같이 ‘전인류의 스승’이기도 한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기쁨을 창출해내고, 불행으로부터 행복을 창출해낸 인간만이 고귀하고 위대한 시인이 될 수가 있고, 그의 시는 전인류의 희망의 등불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대상포진]은 질병이고 건강이고, [대상포진]은 슬픔이자 기쁨이고, [대상포진]은 불행이자 행복이다. 이 질병과 건강, 슬픔과 기쁨, 불행과 행복 중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영원히 앞 못 보는 봉사이자 구제불능의 백치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고귀하고 위대한 것은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에게 돌아가고, 더럽고 추한 것은 더럽고 추한 인간에게 돌아간다.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인과 미국인, 또는 중국인과 독일인 등에서 그들의 고귀하고 위대한 점은 조금도 배우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그들의 약점과 나쁜 점만을 그토록 더럽고 추하게 물어뜯는다.
진정한 시인이 아닌 백치들에게는 박정란 시인의 [대상포진]은 대상포진일 뿐, 그토록 더럽고 추한 정쟁으로 이웃국가와 이웃민족, 또는 자기 자신의 동료와 이웃들을 헐뜯고 물어뜯기에 바쁠 뿐인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앎에의 의지와 이빨이 없고, 수많은 정쟁과 [대상포진]으로 모두가 다같이 자멸과 공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남북분단은 [대상포진]이며, 이 [대상포진]을 박정란 시인처럼, 미래의 행복, 즉, 전인류의 행복으로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 수많은 모래알과 돌멩이들, 모기와 파리, 암적 종양과 질병들마저도 전인류의 스승이고, 우리 한국인들은 이제부터라도 공부하고, 또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군을 철수시키고,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전인류의 존경과 찬양을 받는 일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