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신 22: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율법에 따르면 불륜을 저지른 남자와 여자는 둘 다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이 법이 지금도 적용된다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돌로 쳐 죽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물론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 율법이 적용되지 않지만(이것도 정말 놀랄 일이죠!) 죽이는 것도 사람의 일이니 불륜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큰 고통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래와 같은 조건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 17:6)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그러니까 사람을 죽일 때는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죽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요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 8:7) ...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 곤경을 어떻게 승리하셨는지 아시겠지요? 주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는 지혜로운 말씀으로 그 수많은 증인들을 다 내 쫓으셨습니다. 그리곤 그 자리에 그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고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요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렇지만 한 사람으로는 증언이 될 수 없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여인을 정죄하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하셨다'라기 보다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 뿐이기에, 말하자면 율법에 따라 증인의 수가 모자랐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이 간음하는 현장을 보시진 않으셨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이 여인을 정죄하실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당시는 아직 율법 아래였으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즉 시간의 한계를 뛰어 넘으시는 예수님께서, 비록 구약 아래에서 율법을 따라 행하셨지만 동시에 시간을 뛰어넘어 은혜를 선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정죄란 마치 공기처럼 어디나 있는 것이기에 정죄함이 없는 마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으로 부터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다름 아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나 설교자들이 ‘이 여인은 간음했다기 보단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판 창녀였다, 바리새인들의 계획에 넘어간 억울한 경우다’ 등등, 많은 말을 만들어 내지만 말씀은 이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요 8:3).
혹시 여러분 중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보신 분 계십니까? 간음 아니라 사소한 죄라도 현장에서 잡힌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이 여자는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옵니다. 그리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은혜에 대해 전한다는 젊은 전도자 앞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예수님 영화들을 보면 주로 이 여인이 옷을 입고 등장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간음이 ing로 진행되는 순간 잡혀왔는데 무슨 옷을 입었겠습니까? 그러나 수치심도 잠시, 이제 돌에 맞아 죽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으로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그분의 지혜로운 한 마디에 돌을 치켜 든 남자들이 하나 둘 사라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저처럼 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의 경우, 간음은 고사하고 자잘한 죄도 그다지 짓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책감은 내가 행하는 그 행동보다는 내가 인간이라는 그 사실, 거기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의 영향인데 그냥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갖는 것, 이것이 원죄가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오직 인간이 아닌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는데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그 죄를 완전히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나를 만드시고 나의 모든 죄, 모든 악을 다 아시는 그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정죄감에 시달리는 내 눈을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이 자유, 이 해방, 우리 모두가 계시된 지식으로 알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