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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실로암의 기적 요한복음 9:1-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실로암의 기적 요한복음 9:1-7(20200202 주)
여러분, 의사는 보통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전교에서 1등해도 의대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도 실수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병원에서 다리 절단 수술을 하다가 의사가 엄청난 실수를 했습니다. 왼쪽 다리를 잘라야 하는데 실수해서 오른쪽 다리를 잘랐습니다. 잘라야 할 다리는 왼쪽 다리인데 오른쪽 다리를 잘랐으니 왼쪽 다리는 안 잘라도 됩니까? 아니죠. 잘라야죠. 그래서 할 수 없이 왼쪽 다리도 잘라서 그 환자는 두 다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머리가 좋다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병원에 갈 때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별것 아닌데 의사가 실수하면 식물인간도 될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실수가 없는 의사입니다. 능력이 충만한 의사이십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들 가운데서 독특한 여덟 가지 표적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본문의 사건은 여섯 번째 표적입니다. 이 표적은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이 열리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놀라운 실력을 가지신 의사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히스기야 터널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예루살렘성이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러한 때를 대비해서 성 밖에 있는 기혼샘으로부터 시작해서 성 안으로 총 길이 533m의 터널을 팠습니다. 수로를 통해서 기혼샘의 물을 예루살렘의 성 안으로 끌어들이고 밖의 샘을 메워 버렸습니다. 이 터널은 완전한 암석지대를 파서 만든 터널입니다. 이터널을 통해서 기혼샘의 물이 실로암까지 완만하게 흐르도록 만들었습니다.
맹인의 눈이 열린 곳은 실로암입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실로암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맹인이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고 보게 된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놀라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그는 주님의 말씀대로 실로암에 가서 씻고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희한한 치유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맹인은 주님의 말씀대로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고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이 사건을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이준행목사님의 설교 중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지금은 필리핀 선교사님으로 계시는 분 사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동기 목사님이 병문안 가서 “회개하시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치료를 받는 동안 그날이 가장 가슴 아픈 날이었고, 15년이 지났어도 그 목사님을 만나면 기쁨이 적답니다. 우리가 그 사모님의 사정은 모르지만 모든 사고가 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죄 때문에 병이 들거나 사고가 나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의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고도 있고, 아픔도 있고, 질병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건강하고 똑똑하고 부요한 사람만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몸이 병들고, 장애가 있고, 지적으로 부족하고,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다.
약한 사람도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혹시 자폐아로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수영 금메달을 딴 김진호 선수를 아시나요? 이 선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선수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자폐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식과 함께 동반 자살을 생각했다가 믿음의 길을 택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간 어머니는 아들의 치료를 위하여 4년간 하나님께 주야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진호의 자폐를 고쳐 주옵소서.” 그런데 4년 동안 기도했지만 아들은 치료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다른 계획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호의 어머니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진호를 사랑해라. 내가 진호를 사랑하니까 그 아이를 내게 맡기고 내가 기르는 대로 따라오라.” 그 음성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진호는 수원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거기서 수영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장애인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영화 [말아톤]이 김진호 선수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하나님은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진호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없는 자를 들어서 있는 자들을 폐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강하냐 약하냐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냐입니다.
우리는 소경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내가 비록 약하고 가난하고 미련하지만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의 소망도 생기고 이 세상에서도 소망을 생깁니다. 1절에 보면 본문에 나오는 맹인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맹인은 눈이 떠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가 맹인의 눈 문제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맹인이 눈을 떴다면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주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9:23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아멘, 빌립보서 4:13을 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우리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죽은 자도 살리신 분이시고 홍해 바다에 길도 내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말씀이 임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그 상황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생활 속에서 소망을 갖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큰 유익이 됩니다. 잭 캔트필드가 쓴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친구 사이인 암전문의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가 나옵니다. 한 의사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자네나 나나 암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으로, 같은 스케줄에 따라 처방을 하지 않는가.”, “그렇지.”, “그런데 내 약을 먹은 사람은 22%밖에 살아나지 못하고, 자네가 주는 약을 먹은 사람은 74%나 살아나오니 무슨 비결이 있는가?”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약을 줄 때 환자에게 ‘이 약은 어제와 똑같은 것입니다. 열심히 드세요’라고 말할 거야. 그러나 나는 약을 주면서 이렇게 말해. ‘여기 당신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 약은 당신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낫게 해 줄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한 의사는 그냥 의무적으로 약을 주었고 다른 한 의사는 약과 함께 희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놀라왔습니다. 그저 약을 주고 처방할 때는 100명 중에 22명이 살아났는데, 약과 함께 희망을 주었을 때는 100명 중에 74명이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소망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소망의 주님 때문에 절대소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인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4:17을 봅니다.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죽은 자에게서도 소망을 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문제나 질병이나 환경이나 사람 때문에 소망을 잃어버리고 절망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는 어떤 문제나 질병도, 어떤 환경이나 사람도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에게는 죽음도 소망입니다. 우리는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3. 예수님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질병 치유를 말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는 차원입니다. 주님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5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리 눈이 좋아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력검사를 할 때 보면 시력검사표에 최고값이 2.0입니다. 그런데 몽골인들의 시력은 평균이 3.0이라고 합니다. 눈이 좋은 사람은 9.0이라고 합니다. 9.0이면 정말 대단한 시력입니다. 그런데 시력이 9.0이어도 빛이 있어야 보지 빛이 없으면 맹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주님 때문에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안 계시면 볼 수 없는 것을 주님이 계시면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몇 가지 예를 들텐데, 주님을 만나면 그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보게 하시지만 어떤 것들은 그 사람의 사명이나 사역에 따라서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1)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18을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의 능력, 승리의 능력, 축복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다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결국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보좌에서 이 땅에 오셔서 낮고 천한 자리에서 고난을 당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대속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를 요약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희한하게도 십자가의 도가 보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믿어진다는 것은 구원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보이는 사람은 복된 존재입니다.
2) 성경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성경은 윤리와 도덕책 정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성경은 진리의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때부터는 성경은 영혼의 양식이며 영혼의 음료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한 것입니다.
시편 19:10에서 다윗의 고백을 봅시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나서 영적인 눈이 열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금보다 더 사모하였고 꿀보다 더 달게 먹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린 결과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경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 있는 보화가 보이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경 말씀이 금보다 귀하고 꿀보다 달기를 축원합니다.
3) 천국과 지옥
요한복음 3:3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천국과 지옥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천국과 지옥이 보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보이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목적을 두고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고,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을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석봉토스트의 김석봉장로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분은 달리기를 잘해서 세계대회에서 1위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황영조 선수에게 양보를 했습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선수 아시죠? 김석봉장로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늘의 면류관을 위하여 세상의 면류관을 포기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는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천국과 지옥을 열어주십니다.
4) 사람의 영혼
고린도후서 5:16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과거에는 사람을 육신을 따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나고 영적인 눈이 열리고보니 육신은 옷과 같고 영혼이 진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영혼의 가치를 발견한 것입니다.
영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사람들임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도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보배로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여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나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나 동일한 가치가 있음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존중합니다. 아무도 막 대할 수 없습니다.
영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상대의 영에 관심을 둡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영혼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사람을 육신대로 알지 않고 영을 보게 됩니다.
5) 비전
꿈을 꾸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꿈에도 질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꾸는데 자세히 보면 욕망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들이 꾸는 꿈은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사도행전 2:17을 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님은 믿는 우리들에게 오셔서 꿈을 꾸게 하십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기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없다면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전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6) 지성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지성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지성적인 은혜도 임합니다. 이사야 11:2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여기서 지혜, 총명, 모략, 지식은 지성적인 면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만나면 지성적인 열림이 있습니다.
다니엘 1:17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에게 학문을 주셨습니다. 서적을 깨닫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지혜도 주셨습니다.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닫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지성적인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누구든지 머리가 좋아지고 지혜가 충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는 지성적인 은혜를 주십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고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야고보서 1:5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는 구하는 자가 받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잠언 3:16입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여기서 그는 지혜를 의인화시킨 것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장수도 오고 부귀도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암전문의인 원종수박사는 대전고등학교를 다닐 때 480명 중에서 350등을 했습니다. 바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하다가 은혜를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지성적인 은혜를 주셨습니다. 책을 읽으면 책이 머리에 복사가 되는 지성적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의대를 들어갔고, 수석 졸업을 했습니다. 의사고시도 수석 했습니다. 원종수 박사가 그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성적인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그는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기도하다가 지성이 열리면서 초자연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지성적인 면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7)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
이사야 45:3을 보겠습니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흑암 중에 있는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은 사람들이 눈이 열리지 않아서 보지 못하는 물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흑암 중에 있는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경제적인 축복은 눈이 열려야 합니다. 부천 반석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최석희 목사님 간증입니다. 개척교회 시절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때였습니다. 사모님이 불치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이 때 사모님이 산삼 할 뿌리만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70만원 꾸어가지고 한약방에 가서 아내가 죽어 가니 산삼 한 뿌리만 달라고 사정하였습니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 하는 산삼을 어떻게 70만원으로 주느냐며 웃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정하였더니 갓난아이 손가락만한 것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사모님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한 뿌리만 더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한약방에 가서 사정하였더니 이제는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네가 캐면 될 것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산에 갔더니 정말 산삼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한 해에 수백 뿌리를 캔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청년들을 산삼이 많은 곳에 데리고 가서 찾아보라고 하여도 못 찾는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면 눈이 열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경제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업가들에게는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보물찾기를 생각해보세요. 보물찾기는 보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아무리 많은 보물을 숨겨뒀어도 보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업도 돈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업가는 아니지만 재정적인 부분에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왜요? 재정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에게는 다양한 무기가 있습니다. 영적인 전쟁과 영적인 사역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다양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재물입니다. 돈은 굉장히 중요한 자원입니다. 여러분에게 초자연적인 재물의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초자연적인 재정의 축복을 받은 사람 중에 케빈 제다이(Kevin Zadai)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재정 축복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이 여러분의 재정분야에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기를 축복합니다. ➀십일조 드리기 ➁가난한 사람들을 아무도 모르게 도와주기 ➂성령이 주라고 하시면 믿음으로 드리기 ➃재정을 축복하실 때 축복받은 그 재물을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리기(ex. 월급인상 시, 첫 월급 인상분을 드리기) ➄재물을 드릴 때 그 재물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⑥사탄, 마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에서 손을 뗄 것을 선포하기 ➆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기(절대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이렇게 꾸준히 살아가기)입니다. 케빈 제다이는 이런 원칙으로 살아서 엄청난 재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초자연적인 재정이 오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실로암의 기적]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맹인의 눈에 흙을 이겨서 발라주시고 실로암에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실로암 물로 씻고 눈이 열렸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2. 예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3. 예수님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1) 십자가의 도
2) 성경
3) 천국과 지옥
4) 사람의 영혼
5) 비전
6) 지성
7)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내 눈을 열어주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실로암의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