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 목간
은작산 한간
마왕퇴 백서 서한
중국회화(20) - 二. 간독예서(簡牘隸書)
(서예 이야기도 조금 합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와 나무 판에 글을 썼다. 대나무에 쓴 글자를 竹簡이라 하고,나무 판 위에 쓴 글자를 목독(木牘이라고 하였다.(사각형이 나무 판을 版이라 하고, 목판 위에 쓴 글자를 牘이라고 한다.) 비단 위에 쓴 글씨는 帛書이다.
간독은 모필로 묵적을 직접 남기는 것이므로 글을 쓴 후에 刻을 하는 비석 글씨와는 다르다. 비각은 공정의 과정에 여향을 받고, 풍우에 마모가 됨으로 직접적인 묵적의 자체를 느낄 수 없다. 최근에 간독이 많이 발굴됨으로 한대의 묵적을 직접 직접 만나고, 당시의 사람의 손으로 쓴 글을 볼 수 있다. 직접 쓴 글씨이므로 서예의 의미가 더욱 깊다. (비각문은 당나라 때 모각한 것을 송나라 때 탁본한 것이 많으므로 본래의 글자를 맛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간독에 쓰여진 예서는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 빠르게 쓴 흔적이 보인다.
<武威漢簡> -- 전문적인 書史가 쓴 글씨이다.
<居延漢簡> -- BC 52(서한)에 한의 하급 관리가 쓴 기록이다. 글자체가 자유분방하다.
대체로 서체는 꾸밈이 없고, 솔직하다. 비문은 공적을 새긴 것이거나, 유교적 가르침을 적은 것이 많아서 장중하면서 아름답다고 한다면, 간독은 민간에서 실용적으로 쓴 글이 많아서 자융스럽다.
<銀雀山漢簡>은 글자의 왼쪽인 낮고, 오른쪽이 위로 올라가게 하였고 힘이 넘친다.
대나무와 목판 위에 쓰기도 하고, 비단 위에 직접 쓰기도 한다. 帛書이다.
<마왕퇴 백서> -- 많은 사람이 관여하여 쓴 글자라서 서체가 일치하지 않는다.
예서는 하급 관료의 기록물이거나, 실용적인 글자체이고, 많은 사람이 글을 사용함으로 자체가 다양하고, 변화가 많다. 이런 이유로 글자의 발전이 나타난다.
<하북성 창현 출토 벽돌 위에 쓴 朱書文字五行은 예서가 해서로 변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예가 서체의 다양한 변환을 겪으면서 자신도 여러 서체를 나타낸다, 章草(초서의 시작)도 그 중의 하나이다. 간독에서 초서체의 경향을 보이는 것이 있다.
첫댓글 내 주변의 서예 하시는 분들이 예서를 노예가 쓴 글씨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나라가 중앙집권제도로 정치체제를 굳히면서 중앙 정부에서 지방 정부로 내려 보내는 공문서가 많아집니다. 전서는 한자, 한자에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공문서를 쓰기 좋은 서체를 개발하고, 공문서를 전문으로 작성하는 하위 관리를 양성하였습니다. 그들은 노예가 아니고, 정부 관리였습니다.
어쨌거나 고위직이 아니었기에 노예가 썼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