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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집 제3권=문목(問目)-퇴계 선생께 올림 신유년(1561, 명종16)〔上退溪先生 辛酉〕
퇴계 선생께 올림 신유년(1561, 명종16)〔上退溪先生 辛酉〕
문하의 소자 이덕홍(李德弘)이 머리 조아리고 선생께 아룁니다. 저에게는 어려서부터 세 가지 불행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영천(榮川 현재 영주(榮州))의 남촌(南村)에서 태어나 예안현(禮安縣)의 오천(迂川)에서 자랐습니다. 남촌은 이웃에 선한 풍속이 없고 재물 불리는 일에만 힘쓰게 하였으며, 오천에는 저의 집만 홀로 있고 또 학문하는 사람이 없으니 배우려고 한들 누구에게 배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몸은 들짐승과 똑같아서 나가면 초동목부(樵童牧夫)와 장난치고 놀며 매와 개를 따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들어가면 부모를 어기고 형이나 어른에게 거만하여 쇄소응대(灑掃應對)와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거만하고 게으른 일에만 익숙하고 이욕(利慾)을 탐하는 마음만 길러 분주하게 내달리고 사물에만 급급할 때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했으니, 간혹 글을 읽더라도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것이 저의 불행 중에서 첫째입니다.
17세가 되어 부친을 모시고 흥해(興海)에 갔는데 그곳의 풍속이 우리나라의 시를 주된 학문으로 하고 주색(酒色)으로 벗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욱 망녕된 말과 행동을 익히고 전혀 글을 읽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저의 불행 중에서 두 번째입니다.
무오년(1558, 명종13) 가을에 집에 돌아오니 형이 저의 무식함을 민망하게 여겨 청량산(淸凉山)으로 데리고 가서 금난수(琴蘭秀) 공을 뵙도록 하였습니다. 금공이 저의 어리석음을 가련하게 여겨 저에게 문장 짓는 법을 가르쳐 주고 《고문진보(古文眞寶)》 한 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미년(1559) 봄에 금공께서 성성재(惺惺齋)에 거처한다는 것을 듣고 동계(東溪)를 거슬러 올라가 찾아뵙고 한 달을 머물렀습니다. 금공이 늘 탄식하기를 “사람의 성품은 애초에 선하지 않음이 없는데 사욕에 골몰하느라 본체의 선함을 알지 못하니 한탄스럽다.” 하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여쭈니 “《소학》을 읽으면 알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훗날 월란사(月瀾寺)에 머물면서 비로소 《소학》을 읽었는데 두려운 마음으로 지난날의 일들을 되짚어 보니 식은땀이 등을 적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을 찾아뵈니 선생께서 어리석은 저를 염려해 주셨습니다. 비록 석 달 동안 글을 읽었으나 구두와 문자에 대해 아직 환하게 통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의리를 알겠습니까.
기미년 가을에 제가 병이 들어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기질은 더욱 흐리고 어리석어지고 나태함이 날로 심해져서 경박하고 흐트러져 또 본심을 잃었습니다. 다만 이욕(利慾)의 습관이 떠들썩하게 서로 공격하고 사장(詞章)의 말단이 어지럽게 서로 이끄는 것만 보이고, 날로 하류로 내달려 위로 선생을 속이고 아래로 금공을 속이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경신년(1560) 초여름에 봉성(鳳城)에서 형을 곡하였고, 5월에 천사(川沙 내살미)에서 조부[이현우(李賢佑)]를 곡하였습니다. 또 여름 내내 큰 홍수가 이어져 길이 끊겨 문하로 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불행 중에 세 번째입니다.
아, 모습은 사람이더라도 행동은 금수와 같으니, 이는 공자께서 이른바 ‘정직함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요행히 모면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소자의 나이가 이제 스물이 넘었는데, 처음에는 과거에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비로소 〈소학총론(小學總論)〉을 보았습니다. 주 선생(朱先生 주희(朱熹))이 말하기를 “지금은 모두 놓치고 지나쳐버려 다시 되돌아가 공부할 수 없으니, 다만 지금의 처지에 의거하여 곧바로 뜻을 확고히 세우고 공부를 해야 한다. 만일 30세에 깨달았으면 곧 30세부터 뜻을 확고히 세우고 공부를 하며, 곧 8, 90세에 깨달았으면 또한 마땅히 현재 처한 상황에서 공부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소자가 감격하여 고무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금년에 뜻을 확고히 세우고 공부 하고자 했으나, 뜻을 세운 것이 확고하지 않고 기질이 어리석어 공부하는 선후와 순서를 모릅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게 가르쳐 주시어 완고하고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선생 답 사람이 학문하는 데는 목표가 바르고 타당하며 뜻을 세움이 확고한 것을 귀하게 여기네. 여기에서 조목조목 진술한 말을 보건대, 목표는 이미 바르니 반드시 뜻과 기운을 굳게 정하여 경박한 세속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하여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면 어찌 성취하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다만 지난날 배우지 못한 것을 일시적으로 공연히 후회만 하고 훗날까지 지금의 공부를 이어 가지 못하여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게 될까 염려될 뿐이네. 질문한 공부의 선후와 과정을 세우는 규모는 반드시 먼저 《소학》을 공부하고 나중에 《대학》을 공부해야 하네. 규모와 절목은 그 책 속에 각각 갖추어져 있으니, 내가 마음과 힘을 다해 그것을 구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네. 만약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혹은 번거롭게 여겨 달리 지름길이나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면 이는 내가 알 바가 아니네.
문 호 문정공(胡文定公 호안국(胡安國))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뜻을 세우는 것은 정명도(程明道 정호(程顥))와 범희문(范希文 범중엄(范仲淹))처럼 되기를 스스로 기대하거라.”라고 하였는데, 명도와 희문의 뜻이 어떤 뜻입니까? 소자가 본문의 주(註)를 보았으나 아직 환하게 통하지 못했습니다.
선생 답 호 문정공이 그 아들에게 정명도와 범희문처럼 되기를 스스로 기대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은 본문의 주에 이미 자세하게 보이네. 대개 정명도는 성인(聖人)도 반드시 배울 수 있다고 여겼고, 범희문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자기의 책임으로 여겼네. 비록 문정공이 본받으려 한 것이 한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대체는 여기에 있다네.
문 마음가짐[立心]은 충신(忠信)과 속이지 않음으로 근본을 삼으라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 답 충신과 속이지 않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려면 반드시 《논어》의 주충신장(主忠信章)과 《대학》의 성의장(誠意章)을 자세히 읽고, 깊이 잠겨서 맛을 보고 젖어들어 체험하여 오래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네.
문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음은 음식과 남녀로써 절실하고 긴요함을 삼아야 한다는 것은 또한 무슨 말입니까?
선생 답 음식과 남녀로써 절실하고 긴요함을 삼는 것은 음식과 남녀에 지극한 이치가 담겨 있고 큰 욕망도 그 속에 있기 때문이네. 군자가 인욕(人慾)을 이기고 천리(天理)를 회복하는 것이 이 때문이고, 소인이 천리를 없애버리고 인욕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네. 그래서 몸을 다스리고 몸을 닦는 데에 이것을 절실하고 긴요하게 여기는 것이네.
문 이국필(李國弼) 군이 “나는 문을 나서면 귀한 손님을 대하듯이 하고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으로 근본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공부하는 순서에 합당합니까? 어쩌면 단계를 건너뛴 것이 아닙니까? 소자는 구용(九容)과 구사(九思)에 따라 공부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답 구용과 구사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바로 방심(放心)을 수습하는 방법이니 매우 좋네. 이비언(李棐彦)이 말한 것은 참으로 단계를 건너뛴 것이네. 정자(程子)가 말한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대하듯 하라.”는 것은 곧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지는 것이니 움직이고 주선하는 것이 예에 맞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네. 또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그 경지가 매우 높아서 초학자가 갑자기 발붙이기 어려우니 이것을 공부하기보다는 차라리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非禮勿視聽言動]는 단계에 힘쓰는 것이 낫네.
문 소자가 비록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나태한 생각이 쉽게 생겨서 하다가 말다가 하는 병통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선생 답 《중용》의 ‘널리 배우고[博學之]’에서부터 ‘남이 열 번에 능하면 자기는 천 번 노력하라.[人十己千]’까지 내용이 바로 기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네. 그래서 “과연 이 방법대로 잘 행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반드시 밝아지고, 아무리 유약한 사람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게으른 생각이 생겨 하다가 말다가 하는 병통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어찌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관여할 수가 있겠는가. 공자가 안연에게 “인(仁)을 행하는 것이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어찌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네.
[주-D001] 오천(迂川) :
현재 안동시 녹전면 원천2리에 속하는 마을로, ‘외내’라고도 한다. 토일천(吐日川)과 구천(龜川)이 마을을 감싸고도는 외내는 영천 이씨 습독공파(習讀公派)의 세거지로 알려져 있다. 습독공 이현우(李賢佑)는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아우로, 부내[汾川]에서 내살미[川沙]로 분가하였다. 이현우의 아들 충량(忠樑)이 1520년경에 다시 이 마을로 옮겨 산 이래 그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 왔다.
[주-D002] 부친을 …… 갔는데 :
당시 이덕홍의 부친 이충량(李忠樑)이 흥해 교수(興海敎授)가 되었기 때문에 따라간 것이다.
[주-D003] 금난수(琴蘭秀) :
1530~l604.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성재(惺惺齋) 또는 고산주인(孤山主人)이다.
[주-D004] 월란사(月瀾寺) :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遠村里) 내살미 왕모산(王母山) 기슭에 있는 정사로, 역대 월란암(月瀾菴), 월란사(月瀾寺), 월란정사(月瀾精舍) 등으로 불렸다. 후대에 개건되어 현재 ‘월란정사’로 되어 있다.
[주-D005] 봉성(鳳城)에서 형을 곡하였고 :
이덕홍의 형 이명홍(李命弘)의 죽음을 말한다. 이명홍은 자가 인중(仁仲), 호가 곤재(坤齋)이다. 참봉을 지냈으며, 공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주-D006] 정직함이 …… 것이다 :
《논어》 〈옹야(雍也)〉에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정직함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요행히 모면하고 있는 것이다.[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라고 하였다.
[주-D007] 호 문정공(胡文定公)이 …… 기대하거라 :
《소학》 권5 〈가언(嘉言)〉에 나오는 내용이다. 호 문정공은 호안국(胡安國, 1074~1138)으로, 문정은 그의 시호이다. 남송 초의 경학가로, 1097년 진사가 되어 태학 박사ㆍ보문각 직학사 등을 역임하였다. 정이(程頤)의 학문을 사숙하고 사양좌(謝良佐)ㆍ양시(楊時)와 교유하였으며, 송대 이학(理學)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춘추좌씨전》을 연구하여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을 저술하였다.
[주-D008] 본문의 주(註) :
《소학》 권5 〈가언〉의 광입교(廣立敎)에 달린 주석이다. 정호에 대해, 주자는 “그가 열네댓 살에 곧 성인(聖人)을 배웠다.”라고 칭찬하였고, 추호(鄒浩)는 “그가 뜻을 얻으면 능히 만물로 하여금 각각 제자리를 얻게 할 것이다.”라고 칭찬하였고, 여대림(呂大臨)은 “그는 자임(自任)하기를 무겁게 하여, 차라리 성인을 배우다가 이르지 못할지언정 한 가지 선(善)함으로써 명성을 이루고자 하지 않았으며, 차라리 한 사물이라도 은택을 입지 못함을 자기의 병으로 삼을지언정 한때의 이익으로써 자기의 공을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호안국에 대해, 주희는 “그가 수재(秀才)가 되었을 때부터 그 뜻이 곧 천하로써 자기의 임무를 삼았다.”라고 칭찬하였고, 구양수(歐陽脩)는 “그가 어려서부터 큰 절개가 있어 부귀와 빈천, 비방과 칭찬, 기쁨과 슬픔에 조금도 그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으며, 일찍이 ‘선비는 마땅히 천하가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해야 한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주-D009] 마음가짐은 …… 삼으라 :
《소학》 권5 〈가언(嘉言)〉에 나오는 내용으로, 호안국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주-D010] 주충신장(主忠信章) :
《논어》 〈학이(學而)〉에 “충성스럽고 신실함을 주로 삼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하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11] 성의장(誠意章) :
《대학장구》 제6장을 말한다.
[주-D012] 마음을 …… 한다 :
《소학》 권5 〈가언〉에 나오는 내용으로, 호안국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주-D013] 이국필(李國弼) :
1540~?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비언(棐彦)이다.
[주-D014] 구용(九容) :
《예기》 〈왕조(玉藻)〉에 나오는 군자가 지녀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으로 “걸음은 무게가 있어야 하고, 손놀림은 공손해야 하며, 눈의 모양은 단정해야 하고, 입의 모양은 조용해야 하며, 소리의 모양은 고요해야 하고, 머리의 모양은 곧게 해야 하고, 기상의 모양은 엄숙해야 하며, 서 있는 모양은 덕이 있는 기상이어야 하고, 얼굴빛의 모양은 장엄해야 한다.[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라고 한 것이다.
[주-D015] 구사(九思) :
《논어》 〈계씨(季氏)〉에 나오는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으로 “보는 데 밝게 볼 것을 생각하며, 들을 때는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며, 낯빛은 온화할 것을 생각하며, 태도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며, 말은 충직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 일은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며, 의심난 것은 물을 것을 생각하며, 분이 날 때는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을 생각하며,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해야 한다.[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라고 한 것이다.
[주-D016] 인(仁)을 …… 것이겠는가 :
《논어》 〈안연(顔淵)〉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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