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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에 왜 등불이 필요한가?
어둠속에서 길을 갈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등불이다. 인생의 길이란 한치앞도 모르는 어두움이다. 많이 배우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인생을 한치앞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들이다.
엄마전 회사에 출근해서 근무하던 30대 여성이, 책상위의 종이컵에 있는 물을 생수인줄 알고 마셨는데, 열달째 식물인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알고 보니 불산이 들어간 유독성 용액이었다. 동료 직원이 불산이 포함된 유독성 용액이 담긴 종이컵을 책상에 올려뒀는데 그 옆에서 현미경으로 검사를 하고 있던 이 여성분이 자신의 오른손이 닿는 위치에 있는 이 종이컵을 발견해, 물인 줄 알고 의심 없이 마신 것이다. 늘 마셨던 종이컵, 이 단 한번의 실수가 남편과 7살 딸과 함께 단란하던 가정을 무너트렸다. 경기 동두천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는 종종 이런 기사를 만난다. 환히 웃으며 출근하던 아빠가. 수학여행간다고 마냥 신나고 즐거워하던 딸이, 부부싸움을 다투었던 아내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운명이 되어 작별을 고하는 경우를 본다.
아 정말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태어났는가?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은 어느 길인가? 인생 길이 왜 이다지도 괴롭고 어지럽고 모순 투성이인가? 이런 문제들이 우리 마음을 번뇌케하고 어지럽게 하는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이는 인생 길이 너무도 무상(無償)하고 괴롭고 허무하기 때문이다. 옛날 이스라엘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그 일생을 통하여 온갖 영화를 다 누리고 마음에 원하는바 갖은 즐거움을 다 맛보았으나 결국에 가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도서 1장 2-4절)라고 탄식하였다.
또 신약 성경의 야고보는 이르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장 13, 14절) 하였다.
해가 뜨기전 온 세상을 뒤덮고,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양 큰 소리 치던 안개가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것이 인생이라니 참 기가차고 어이 없는 일이 아닌가?
솔로몬이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지고 누려본 왕이 아니었던가! 그런 솔로몬 왕의 영화와 부(富)로도 마침내는 인생의 허무를 저렇듯 느꼈으니, 빈궁의 밑바닥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질고(疾苦)와 염려로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을 어찌할 줄 모르는 대중이야 인간의 무상과 허무를 얼마나 더 느낄 것인가? 인간이란 빈부 귀천을 물론하고 나면서부터 울며 고생 하다가 늙고 병들고 결국 죽고 마는 것, 생로병사(生老病死) 이것은 아무도 벗어나지 못할 운명의 굴레인가?
그러면 무엇이 이 인간의 허무하고 속절없는 운명을 해결해 줄 것인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뒤엎어버릴 사병로생, 죽음을 이기고, 병을 이기고, 늙음을 이기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길은 없을까?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이 비록 달세계는 정복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에 있는 번민과 사망의 운명은 능히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이상의 지식, 인간 이상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될 수없다. 이에 비로소 종교의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종교(宗敎)란 무엇인가?
종교란 인간 이상의 능력자 즉 신(神)이나 어떤 대상에게 귀의해서 그를 신앙하고 그에게 예배하고 그에게 복을 구하는 일을 말하는데, 종교(宗敎)라는 한자(漢字)의 의미로 본다면 으뜸 종(宗), 가르칠 교(敎)라는 한자는 풀이하면 ‘으뜸 되는 가르침’, ‘근본적인 교훈’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 즉 현실 이상의 영원한 문제를 가르쳐 주는 것이 곧 종교이다. 사람은 종교 없이는 살지 못한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종교가 있었다.
프랑스의 한 심리학자는 “사람은 종교적 동물이다” 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사람만이 신앙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식욕과 정욕이 생존욕을 가지는 동시에 종교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이요 자연성(自然性)이다.
제 아무리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위급한 경우를 만나면 자연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실 때 당신을 사모하고 신뢰할 수 있는 본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용의 눈물이란 무엇인가? 비가 내리지 않자, 하늘을 향하여 비를 내려 달라고 탄원한 왕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신 이야기가 아닌가!
태종이 죽기전 이렇게 기도한다.
"하늘이여!
모든 죄는 이 몸에게 물으시오소서. 모든 죄는 이 몸에게 물으시오소서!
이 몸,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기원드리나이다. 비를 내려주시오소서. 비를 주시오소서! 비를 주시오소서! 비를 주시오소서!
모든 악업은 이 몸에게 물으시오소서. 비를 주시오소서. 비를 내려 주시오소서. 이 나라 사직과 왕실의 근심을 덜게 하시옵소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주게 하시옵소서. 비를 내려 주시오소서. 비를 내려 주시오소서. 비를……주시오소서……"
하늘이 감동하여, 그날 비를 내려주었고, 비속에서 태종 이방원은 마지막 숨을 거둔다.
태종이 승하한 해인 세종 4년(1422년) 음력 5월 10일에 비가 내렸다는 사실은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매년 태종의 기일 음력 5월10일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한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에게만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께 봉사하고 당신과 교통할 수 있는 특권과 존귀성을 주셨다.
어떤 종교(宗敎)를 믿어야 할까?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종파도 많다. 그러면 아무 종교나 믿기만 하면 되는가? 비록 길이 다를지라도 결국 도달하는 목적지는 다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종교는 사회 교화(敎化)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거기에 천국이 있거나 영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종교가 단순히 그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참된 의미의 종교가 아니며 교화의 참된 효과도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현실 이상의 만족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영원으로 통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일 수 없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4장 12절)고 말하였다. 어느 종교나 다 참된 길이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가르쳐 주지 않는 종교는 사망의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것이 바른 길이며 생명의 길인지 상고하고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 성경의 한 기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가를 얻으리라”(예레미야 6장 16절)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영원으로 통한 옛적 길(특히 옛적 길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품성의 변화를 가져오는 선한 길, 마음의 형안과 안정을 주는 희망의 길이라야 선한 길이요 참 도리요 믿을 만한 종교인 것이다.
가장 권위 있는 종교
종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연 종교’라고 해서 금,은,목,석(金銀木石)의 우상을 섬기는 원시 종교요, 둘째는 ‘계시 종교‘라고 해서 신의 계시를 받아 이루어진 경전을 가진 종교이다.
그리고 섬기는 신에 따라 민족 종교, 국민 종교, 세계 종교로 구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민족만 이 신앙하는 종교보다는 세계적인 종교가 우수한 종교요 여러 종류의 신을 섬기는 범신교나 다신교보다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신앙하는 종교가 가장 우수하고 발달한 종교라고 종교학자들은 추천한다. 그러면 어느 종교가 이 조건에 필요충족조건을 이루어주는가?
우리나라에는 크게 3가지 종교가 있다. 공자로 인한 유교(儒敎), 부처로 인한 불교(佛敎),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독교(基督敎)가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인생의 바른 도리를 가르쳐 주기에 유익되는 내용들이 많다. 그런데 사후(死後)관이 분명하지 않다. 공자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 모른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나이 69세 때 아들 리(鯉)가 죽고, 그 이듬해에는 애제자 안회를 잃었을 때 공자의 슬픔을 <논어>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안연이 죽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선진 11.9)
그는 좋은 스승은 되었지만, 우리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줄 하늘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기의 뜻을 알아주는 왕을 만나지 못해, 결국 뜻을 실현하지 못하고, 기원전 479년 노나라 곡부(曲阜)에서 73세로 생을 다하였다. 역사서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가 사망하기 일주일 전, 제자 자공(子貢)을 만나 슬퍼하며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태산이 무너지는가! 대들보가 부러지는가! 철인은 죽어가는가!" (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
이 노래는 자신의 죽음을 태산이 무너지고, 집의 대들보가 부러지는 것에 비유하며 크게 탄식한 내용으로, 공자가 자신의 시대적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비통함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부처에게 생사의 질문을 던지면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흔히 잘알려져 있는 키사 고타미의 일화에서 자기 아들이 죽은 어미에게 부처는 이런 제안을 한다.
"여인이여,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약이 있소. 마을로 가서 겨자씨 한 줌을 구해 오시오. 단, 그 겨자씨는 지금까지 사람이 한 번도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에서 얻어야 하오.“
키사고타미는 해가 질 때까지 성안의 모든 집을 돌아다녔지만, 단 한 집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은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부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
"<키사 고타미>야 어찌 네 아들만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나도 죽고 너도 죽고,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다 죽는 것이다. 그것이 법칙이니라"- 불교를 묻는 이에게, 33/ 반야심경
부처가 죽기전 그를 수제자 아난다가 물은 내용이 “42장경”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당신과 함께 40년을 지냈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걸어다녔고, 당신과 함께 잠들었으며, 당신과 함께 음식을 먹었고, 당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실 때 그의 수제자인 아닌다가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껏…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이 떠나시니 나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붓다께서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대의 빛은 그대 안에 있다. 나는 그대의 빛이 아니었다. 만약 그대를 깨닫게 하는 것이 내 손안에 있었다면, 그대는 깨달았을 것이다. 깨달음은 그대 내면 깊은 곳의 능력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라. 아난다. 그리고 그대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그 유명한 가르침, "자등명 자귀의 (自燈明 自歸依)"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에게 귀의(歸依)하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부처는 자신이 빛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그의 제자에게 자신을 빛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숨을 거둡니다. 인간의 한계, 생사(生死)필멸(必滅)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순응하며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 인생의 등불이 되고, 생명이 되고, 답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질문에 당당히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스스로 우리의 답이 되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3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한 삶(요 10:10참조)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인생의 등불
우리 인생은 마치 캄캄하고 어두운 밤에 등불도 없이 더듬어 나아가는 것같이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하여 매일매일 더듬어 나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돌에 부딪치기도 하고 혹은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여 고통과 실망과 번민을 당하는 예가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등불을 가지고 걸어 나아가야 하겠다. 그러면 그 등불이란 무엇인가?
옛날 이스라엘 나라의 한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편 105 절)라고 노래하였다. 여기서 ‘주의 말씀’이라 한 것은 곧 성경을 말하는데, 그리스도의 성경 ‘바이블’ (Bible)이 우리 앞길에 빛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 son)은 말하기를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니, 이는 그대의 마음, 그대의 행복 그대의 의무의 열쇠가 이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라 하였고, 또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나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내가 성경을 얼마나 충실히 연구하는지 그 비례에 따라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한 저명 인사인 ‘J. 에드가 후버’씨는 “성경은 사람에게 완전한 인생을 지시해 주는 확실한 인도자이다. 그것은 영적 양식의 근원이요, 선량한 생활로 인도하는 영감(靈感)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상과 같이, 우리보다 먼저 산 위대한 인물들이 그 경험을 통해서 성경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선경을 그렇게 가치 있게 인정하고 그 내용을 검토하고 그 진리를 연구한다면, 우리 인생 길을 아주 안전하고 명랑하게 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성경을 읽었던 많은 이들은 말씀속에서 예수를 만나고 참 생명과 행복을 찾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는 사자성어를 아시나요? - 열자의 설부편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전국시대 양자선생 이야기
전국 시대 어느 마을에 양자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덕망이 높아 많은 제자들이 그를 추종했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이웃동네에 양한 마리를 잃어 버렸는데 동네 50명 이상이나 되는 장정이 양한 마리를 잡아 오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양은 잡았더냐?”
“잡지 못 했습니다”
“어찌 그렇게 정정한 장정들이 양한 마리를 잡지 못한 다더냐?”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동내에서 나가는 길이 하나라서 한 길로 나갔는데 가다보니 길이 나누어져서 25명씩, 그 다음에 길이 또 나누어져 12명, 그 다음엔 6명,3,2,1..길이 사람 수보다 더 많아 양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후 양자선생님이 식음을 전패하고 고민해 하셨습니다.
“아니 그깟 양한 마리로 그리 고심하십니까?”
“잘 들어 보아라. 이것은 양 한마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 참 진리를 가졌었는데 그 생명, 진리를 잃어버린 길은 한 길 아니겠니, 참 생명에 이르는 길은 한 길이라는 뜻이다. 제각기 자기가 길이라고 길만 내면 나중에 참 생명을 찾아갈 사람들이 어떻게 길을 찾겠느냐, 참 생명의 길은 하나 뿐 인데 그 생명의 길을 내가 모르니 어찌 너희들을 가르치겠느냐? 하산하라”
참 생명의 길은 하나뿐입니다. 양이 간 길도 하나 뿐 이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참 길이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나를 믿고 참 행복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를 따라 다니고 경험했던 제자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려보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향기는 5권으로 되어진 희망의 소리 성경통신학교 교제입니다. 인터넷으로 공부하실 수도 있고, 책을 주문하시면 무료로 받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신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https://www.vop.or.kr/bbs/content.php?co_id=onlinestudy_list
https://youtu.be/jJ8tY8l7SE4?list=RDjJ8tY8l7SE4
https://youtu.be/uVuwdf6YatA?list=PLaLfC_Mdht_CkPdwav7ViGvDOMTlF4an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