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
최선자
영주 무섬으로 여행을 갔다. 고택에 행랑아범이 고의춤을 묶으며 나올 듯한 초가가 딸린 민박집을 발견하고 마당에 들어섰다. 둥근 지붕, 둥근 장독, 주인의 둥근 마음씨, 옛집에 들어선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침 초가에만 빈방이 있어 하룻밤 묵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무섬 마을을 둘러보다가 눈앞이 환해졌다. 강둑길을 걷는데 길가에 크고 작은 박이 세 덩이나 덩굴에 달려 있다. 오랜만에 보는 박이 반가워서 쓰다듬어 주고 카메라에 담았다. 뭉게구름이 살짝 주황색과 분홍색을 띠자 건너편 숲이 서서히 수묵화를 친다. 무섬의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데, 어린 시절 옛 풍경이 떠오른다.
우리 집은 방이 세 칸인 일자형 초가집이었다. 안방은 겨울이면 동네 할머니들 사랑방으로 변했다. 별명이 우체부인 아랫집 할머니와 윗집 할머니는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했다. 도란도란 호호 하하…. 그칠 줄 모르던 할머니들 웃음소리. 외할머니 옛날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등잔불 아래 올망졸망한 형제들이 둘러앉았으니 밤낮없이 이야기꽃이 피었다.
부모님이 쓰던 작은 방은 수숫대를 엮어서 둘러친 한쪽에 고구마가 천장 닿게 들어 있었다. 설 명절에 떡이나 한과, 조청 등 별미를 보관하던 윗방 옆 광, 달콤한 유혹에 몰래 훔쳐먹던 엄마의 유과는 아이스크림처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추수가 끝나면 방문도 겨울 채비를 했다. 문고리 옆에 꽃이나 쑥, 댓잎을 놓고 창호지를 바르던 친정엄마 손이 그립다.
봉긋한 지붕은 가끔 수탉의 노래자랑 무대였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용마루에 서서 온 동네 암탉들이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 연가를 불렀다. 그뿐인가. 어른 머리보다 훨씬 큰 박들이 떡하니 주저앉아서 가을볕을 쬐는 통에 지나던 바람마저 발이 걸려 넘어졌다. 초가지붕의 절정은 박꽃이 피어 있을 때다. 한밤중 마당 끝 화장실에 다녀오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활짝 핀 박꽃들이 널린 달빛 속의 초가지붕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어린 몸을 휘감아 발을 떼지 못했다.
초가지붕 처마 끝에서 떨어지던 낙숫물은 요술쟁이였다. 땅에 떨어지자마자 비눗방울같이 크고 작은 물방울을 만들었다. 겨울이면 고드름이 열렸다. 형제들은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을 따서 놀았다. 남동생은 끝을 빨아 먹어 뾰쪽한 창을 만들기도 하고, 언니랑 나는 토막 내서 핥고 빨며 아이스케끼라고 했다.
당신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세상만사가 다 귀찮았을까? 농사일은 팽개치고 독서하거나 술독에 빠져 살았던 아버지는 추수가 끝난 커다란 짚가리가 마당에 있는데도 이엉을 바꾸는 걸 소홀히 했다. 초겨울에 접어들면 노르스름한 이엉으로 단장한 다른 집 지붕과 달리 엷은 회색으로 변한 우리 집 지붕은 학교에서 돌아오던 신작로에서 봐도 한눈에 들어왔다. 너무 낡은 옷을 입은 가난한 집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지붕의 이엉을 다 걷어내고 슬레이트로 바꾸고 있었다. 이제 차곡차곡 쌓인 처마 끝 이엉 사이에 구멍을 내고 겨울밤이면 거기서 잠을 잔다는 참새의 잠자리도 없어지고, 엄마는 지붕에 박 덩굴을 올리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에 심통이 났다. 굼벵이를 찾아 놓고 구구거리며 병아리들을 부르는 암탉이 괜히 미워서 발을 구르며 쫓아버렸다.
비 오는 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보던 버릇이 없어졌다. 더는 고드름을 따먹지도 않았고, 달밤에 나가 지붕을 올려다보거나 햇살이 쓰다듬던 박을 보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수탉도 긴 몸매를 뽐내는 용마루에 서서 연가를 부를 만도 한데 무대를 포기한 듯 올라가지 않았다. 바람만 신이 나서 활개 쳤다.
외할머니는 솜씨 좋고 얌전하고 인자한 사람이었다. 서른여섯에 홀로되어 딸 다섯을 길렀으니 고단한 삶에 지치기도 했으련만 평생 보름달 같은 마음을 잃지 않았다. 사위의 심한 주사에도 역정 내는 걸 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과 다투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외할머니의 인정 많은 성품 덕에 해거름 동네에 들어온 옷감이나 옹기 채 등을 팔러 오는 아줌마들은 우리 집이 숙소였다.
지붕에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산다는 초가집. 한 번도 보지 않아서인지 무섭기는커녕 정겨웠다. 겨울밤, 뒤란 감나무에서 부엉이가 울면 밤새 따라 울던 문풍지. 이불 하나로 서너 명이 서로 당기며 자던 방은 성인이 되어서 보니 왜 그리 작던지. 초가집 아랫목에서 한 이불 덮으면서 구들장 두께만큼 정이 두터워지고 인성도 아랫목 온기만큼 따뜻해졌다.
지붕이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소녀의 단발머리처럼 단정하던 처마 끝. 곡선의 아담한 초가집, 그 안에서 둥글게 자란 마음은 동네 고샅길도 나무가 서 있으면 품에 안고 돌아서 갔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비와 함께 살고 겨울이면 마당 손님 기척을 뙤창문으로 먼저 내다보던 집. 외할머니 흰 고무신이 깨끗이 닦여 한쪽 끝에 엎드려 있으면 오일장 날임을 알았던 반질반질 윤나던 마루가 눈에 선하다.
지금은 도시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산다. 모든 집이 각지고 모가 났다. 그래서 각진 아파트가 키운 모난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부딪힌다. 가끔 위 아랫집 소음분쟁이 벌어진다. 이런 불협화음이 들릴 때마다 나는 둥근 마음들이 그리워진다. 둥글고 푸근한 마음들은 다 어디로 떠났을까.
유년의 추억 몇 페이지를 펼쳐는 동안, 어느새 땅거미가 스멀스멀 다리 위로 기어오른다. 그 시절 풍경을 고이 접어 가슴에 품고 외나무다리를 다시 건너온다. 꿈길에 어린 날로 돌아갈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4년 동서문학상 금상 수상 등단
경북일보문학대전 수상
부천신인문학상 수상
복사골예술제 산문부 수상
2022년 동서문학상 시 맥심상 수상
동서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산문작가회원, 수향문학회 회원
저서 : <어두운 길이 더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