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일탈하는 군상 (42)
제 8장 야승과 산도둑
이때 노지심(魯智深)은 한창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주인이 마음먹고 장만해 낸 안주로 마시는 술이라, 더욱 맛이 각별해 들이붓듯 마시고 있는데 머슴 하나가 뛰어 들어와 알렸다.
"산 위에서 큰 두령이 졸개들을 모조리 이끌고 쳐 내려오는 중입니다!“
"너희들은 너무 겁내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내가 그놈들을 때려눕히거든 묶어다 관가에 바치고 상이나 타면 된다. 내 계도(戒刀)나 가져다주고......."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말해 놓고 다시 윗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가져온 계도(戒刀)를 아랫도리만 입은 허리에 찬 뒤, 선장(禪杖)을 둘러메고 보리타작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장원 문 앞에는 어느새 도둑 떼가 당도해 있었다.
그들 중 긴 창을 들고 말 위에 높이 앉은 게 큰 두령인 듯했다.
"머리 까진 노새 놈은 어디 있느냐? 어서 나와 결판을 짓자!“
긴 창을 들고 말 탄 자가 그렇게 소리쳤다.
성난 노지심(魯智深)이 맞받아 욕을 퍼부었다.
"이 더럽고 하찮은 도둑놈이 무어라고 떠드느냐? 도대체 내가 누군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그리고 선장(禪杖)을 풍차같이 돌리며 우르르 달려 나갔다.
큰 두령이 긴 창으로 맞받으려다 말고 급히 소리쳤다.
"이봐 스님, 잠깐 손을 멈추쇼. 당신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것인데, 도대체 당신 이름이 뭐요?"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노충 경략 상공 밑에서 제할로 있던 노달(魯達)이다. 이제는 출가해 중이 되어 노지심으로 불린다만 왜, 어째 알 만하냐?"
노지심(魯智深)이 무슨 수작이냐는 듯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자 큰 두령이 갑자기 껄껄 웃으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창을 거두더니 몸을 굽히며 뜻밖의 말을 했다.
"형님, 그간 별일 없으셨소? 우리 둘째 두령이 어째서 그 꼴이 났는지 알겠구려. 형님 손에 걸렸으니 제 놈이 어찌 배겨 내겠소?"
노지심(魯智深)은 갑자기 상대가 그렇게 공손하게 나오자 어리둥절했다.
몇 발짝 물러나 선장(禪杖)을 거두고 가만히 큰 두령을 살펴보았다.
불빛 아래 드러난 얼굴을 보니 그제야 노지심(魯智深)도 그를 알아볼 만했다.
장바닥을 떠돌며 창술, 봉술을 보여 주고 약을 팔던 전(前) 교두 타호장 이충(李忠)이 바로 그였다.
이충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게 하도 뜻밖이라 노지심(魯智深)이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절을 마친 이충(李忠)이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형님은 어쩌다가 이렇게 스님이 되셨소?“
"그거야.... 저, 어쨌든 우리 안으로 들어가세.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구."
노지심(魯智深)이 겨우 입을 열어 그렇게 반가움을 나타냈다.
곁에서 보고 있던 주인 늙은이는 덜컥 겁이 났다.
'저 중놈이 원래 산도둑들과 한패였구나...... 이거 정말 큰일 났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충(李忠)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 노지심(魯智深)은 벗어 던졌던 옷을 다시 걸치고 대청에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이충(李忠)과 옛 이야기를 주고 받던 노지심(魯智深)이 문득 주인을 불러냈다.
벌벌 떨며 나온 주인은 자리를 내주어도 감히 마주 앉지를 못했다.
노지심(魯智深)이 그런 주인을 안심시켰다.
"어르신, 겁내실 거 없소이다. 이 사람은 내게 아우나 다름없소."
하지만 주인 늙은이는 아우란 말에 더욱 겁이 났다.
함께 앉지 못하고 떨기만 하다가, 노지심(魯智深)이 가장 윗자리에 앉고, 이충(李忠)이 그 다음 자리에 앉자 겨우 그 끝자리에 앉았다.
노지심(魯智深)이 먼저 그 둘을 상대로 자신이 거기까지 흘러온 경위를 털어놓았다.
"나는 위주에서 진관서를 때려죽이고 달아나다가 대주 안문현에 이르게 되었네. 거기서 내가 구해 준 김노인 부녀를 만나......."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한바탕 늘어놓은 뒤에 이충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두들겨 준 그 사람은 누군가? 그리고 자네는 어찌해서 거기 있게 되었나?"
"그날 형님과 사진(史進) 그리고 나 셋이 술집에서 헤어진 뒤였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니 형님께서 정도(鄭屠)를 때려죽였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나는 사진(史進)을 찾아가 어떻게 할까를 의논하려 했습니다만 그 또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관가에서 사람을 풀어 형님을 잡으려 한다는 말이 돌기에, 나는 정한 곳도 없이 그대로 달아났지요.
그날 우리도 형님과 함께 그 술집에 있었으니 불똥이 튈까 봐 겁이 난 겁니다.
나는 그길로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어느 날 이 도화산 아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도화산은 좀 전에 형님에게 얻어맞은 그 사람이 먼저 산채를 열고 있었지요.
소패왕 주통(周通)이란 아인데, 그가 졸개 몇을 이끌고 산을 내려왔다가 지나가는 내게 덤벼들었습니다.
제가 그를 때려눕혔더니 주통(周通)은 대뜸 나를 산 위로 청해 산채의 큰 두령 자리를 내주더군요. 그리해서 제가 이 도화산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노지심(魯智深)이 문득 생각난 듯 그 집 주인 일을 꺼냈다.
"이왕에 아우가 그 산채의 큰 두령으로 있다니 이 어르신네와의 혼인 문제는 다시 말이 되지 않게 해주게.
저분은 자식이 그 딸뿐이라, 그 딸이 곁에서 돌봐 드려야 하네. 자네들이 데려가 버리면 이 집안은 없어질 판이라네."
"알겠습니다. 제가 주통(周通)에게 잘 말하지요.“
이충(李忠)이 별로 어려울거 없다는 듯 대답했다.
벌벌 떨며 앉아 있던 주인은 그 소리에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 술과 고기를 내어 둘을 대접했다.
졸개들에게도 만두 두 개, 고기 두 토막에 술 한 사발씩을 돌리니 모두 흥겹게 먹고 마셨다.
태공(太公)은 그것으로 파혼이 되었다 싶었던지 전에 주통이 보내온 금덩이와 비단 한 필을 꺼내 왔다.
노지심(魯智深)이 그걸 이충에게로 밀며 말했다.
"이건 자네가 거두게. 뒷일은 모두 자네가 맡아 처리할 것이니 이것도 자네가 거둬야 하지 않겠나?"
"아닙니다. 그 일이라면 따로 마음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형님께서 우리 산채에 가서 며칠만 머무시면 유태공의 어려움은 절로 풀릴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얼른 머슴을 불러 가마를 준비시키고, 선장과 계도며 짐 보따리를 꾸려 노지심(魯智深)이 떠날 수 있게 했다.
이윽고 노지심(魯智深)이 가마에 오르자 이충(李忠)도 말에 오르고 주인도 작은 가마에 올랐다.
이미 날은 훤히 밝아 길을 가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