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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fmkorea.com/6721374866
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훗날 애착실험이라 불리는 유명한 실험을 한다.
이 실험은
새끼 붉은털원숭이를 어미랑 분리시킨 후
철사로 만든 인형과
천으로 덮인 인형
이 둘 중 어느쪽을
새끼가 어미로 선택할까 하는 실험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으로 집적 봐보자 (25초 ~1분 10초)
영상에서처럼 새끼는
우유를 먹을 때만 철사 엄마에게 가고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엄마에게 붙어있었다.
새끼에겐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어미와 비슷한 포근한 감촉이 중요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애정과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건
오늘날엔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꽤 신선한 주장이었다.
당시 부모들은 스킨십을 자제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야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자란다고 생각했다)
심리학계에선 모유수유를 통해 아기가 엄마와 애착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할로우의 실험은 반대로
모유수유보다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걸 밝혀낸 것이다.
사랑의 본질(the Nature of Love)이란 제목으로
나온 이 실험 논문은
4000회 이상 인용되며
심리학 서적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연구로 남게 된다.
하지만
할로우가 뒤이어 한 실험들이
광기와 잔혹함으로 얼룩져 있다는 건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할로우는 헝겊 엄마를 변형시켜
악마 엄마(Evil artificial mother)를 만들었다.
이 악마 엄마들은 헝겊 엄마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새끼에게 좌절감을 주기 위한 장치들이 있었다.
격렬하게 흔들거나
캐터필트가 튀어나와
새끼를 떨어뜨렸고
심지어 가시가 튀어나와
고통 때문에 엄마 인형을 안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악마 엄마에 대한 새끼의 반응은 처절했다.
새끼는 공포와 고통을 느끼면서도 엄마 인형을 포기하지 않았다.
장치가 멈추고 잠잠해지면 다시 다가가 인형을 안았다.
버림받고 고통을 느껴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접촉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것이다.
새끼 원숭이가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자
할로우는 보다 강력한 충격을 주는 장치를 만들기로 한다.
절망의 구덩이(Pit of despair)라 이름 붙은 이 장치는
사람으로 따지면 독방에 감금하는 장치이었지만
그 환경은 훨씬 혹독했다.
벽은 깔대기처럼 기울어진 구조여서
기어올라도 다시 아래로 미끄러졌고
운 좋게 올라간다 해도 뚜껑으로 덮여있어서 탈출은 불가능했다.
장치에 감금된 원숭이는
처음 1-2일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고
이내 곧 비좁은 바닥에 웅크린채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갇혀
어미의 애정도, 다른 원숭이와 사회적 접촉도,
심지어 빛도 차단된 환경에서 30일~1년간 격리되는 실험은
새끼 원숭이의 정신을 완전히 망가뜨리기에 충분했다.
장치 밖으로 나온 원숭이는
몸을 웅크린채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를 껴안거나, 사육장을 반복해서 빙빙도는 이상 행동도 보였다.
그리고 실험한 12마리 원숭이 중 2마리는
장치에서 나온 후 음식을 거부하다가 거식증으로 죽었다.
이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와 어울리지 못했다.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다른 원숭이에게 괴롭힘 당하기 일쑤였다)
공격성을 자제하지 못했다.
(자기보다 훨씬 덩치 큰 수컷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할로우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들의 사회적 노력은 애처로웠고 성적인 노력(짝을 맺으려는 노력)은 처량했다.”
그리고 실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할로우는 이 원숭이들이
어미가 되었을 때 행동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성이 결핍된 이 원숭이들은
짝을 맺고 새끼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할로우는 구속 장치를 만들어 (이 장치를 Rape rack이라 불렀다)
암컷 원숭이를 묶어두고 강제로 임신시킨다.
이렇게 어미가 된 원숭이는 새끼를 돌보지 않았다.
새끼를 안아주지 않고 방치했다.
방치된 새끼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일부 어미는 새끼를 짓누른 채 손발을 잘근잘근 씹거나
새끼의 머리를 으깨서 죽였다.
이러한 할로우의 실험은
당시 기준으로도 윤리적인 문제가 많았고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70년대 미국에서 동물인권운동이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아이에겐 따뜻한 스킨십이 필요하다며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심리학자가
어째서 잔혹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변한걸까?
어쩌면 그 진실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쓸쓸히 죽은 할로우만 알고 있지 않을까?
라고 끝내기엔 섭섭하고
사실 여기엔 숨겨진 배경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로우의 잔인한 실험들은
우울증 치료를 위한 기초 연구였다.
뜸금없는 소리 같지만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보자
원숭이 엄마 인형 실험을 발표한 후
할로우는 순식간에 유명한 학자가 된다.
그리고 할로우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좋은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 압박감은
1967년, 미국 과학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미국 국가 과학상 (National Medal of Science)상을 받으며
절정에 달했고
같은 해 아내가 암까지 걸리자
할로우는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증세는 점점 더 심해져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하다 2차례 응급실에 실려갔고
결국 이듬해, 정신병동에 2달간 입원까지 했다.
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며
할로우는 우울증이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그에반해 병원의 치료법은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당시 항우울제는 효능에 비해 부작용이 심했고
전기경련요법(ECT)처럼 새로 도입된 치료법은 효과 검증이 부족하던 때였다.
이에 할로우는 자신이 집적 우울증 치료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우울증 치료법을 실험하려면
먼저 우울증에 걸린 실험동물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절망이 구덩이는
사회적 접촉을 차단해
우울증에 걸리게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이렇게 "환자 원숭이"들이 확보되자
할로우는 이들을 치료하는 시험을 한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생후 3개월의 어린 원숭이를 치료사로 붙여주는 거였다.
어린 원숭이를 사용한 건 아직 어려 공격성이 없고
(비슷한 또래 원숭이를 쓰면 괴롭혔다)
어미에게서 떨어지면, 어미 대신
주변의 다른 원숭이를 안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우울증에 걸린 원숭이가 거부했음에도
어린 원숭이는 끊임없이 안아주었고
같이 놀자고 졸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 원숭이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였고
같이 놀기 시작했으며
6개월이 지나자 정상적인 원숭이와 동일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이러한 회복은 가장 잔인했던 실험에서도 나타났다.
강제로 임신해 새끼를 돌보지 않았던 어미들이 기억날 것이다.
어미가 새끼를 철처하게 무시했음에도
새끼들은 어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어미에게 달라붙고 애정을 구걸했다.
그렇게 약 4주가 지나자 어미는 결국 새끼를 받아들였다
새끼를 안아주고 정상적인 어미들처럼 새끼를 돌봤다.
새끼의 끈질긴 노력이
어미의 모성을 회복시킨 것이다.
실험이 상당히 비윤리적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 끔직한 점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생각한다.
관계의 단절과 고립이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그렇게 망가진 사회성이
누군가의 따뜻한 포옹과 손길로
회복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엄마와 떨어지자
인형을 엄마처럼 껴안던 새끼 원숭이처럼
사람도 무언가 대체제를 통해
그 허전함을 채우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그만큼 관계의 욕구는 중요하고 강력한 것 같다.
## 뒷 이야기 ##
1 심리학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있다면 댓글로 지적해주세요.
2 할로우 본인도 실험의 잔인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치료법 개발을 위해선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몇몇 실험은 잔인한 면이 있지만, 10마리 원숭이의 희생으로 100만명의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원숭이를 성공적으로 재활시켰습니다. 이 기술들은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
1978년 The Capital Times에 기고한
할로우의 글 (의역)
참고한 자료 및 사진 출처
댓글펌
잔혹한 실험이 있었기에 과학적 근거를 인정받은 아이러니한 경우지
오늘날 진화심리학이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공격당하는 이유도
통계나 추론이 아닌 과학적 근거를 대라는 비판에 대해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임
저런 식의 격리나 학대를 통해 오염되지 않은 실험체를 확보해 관찰하는 식으로
근거를 제시할수도 없는 시대이거니와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인간의 감정이나 본능, 기질 영역의 발현 과정을 스캐닝하듯 파악하기도 어렵거든
미친놈이네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절망의 구덩이라는 건 왜 실험계획을 저렇게 극단적으로 했을까요.. 만약 사회적 격리, 단절을 바랐던 거라면 저것보단 넓은 공간을 할애해도 괜찮았을 텐데요. 글에서도 지적하셨듯 연구윤리에 대한 문제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절망의 구덩이의 실험 세팅은 사회적 단절 + 신체적 구속 +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을 한꺼번에 우겨넣은 듯 해서, 목적 자체가 극단적으로 우울한 원숭이를 만들고자 한 것으로 보이네요. 때문에 저 실험 자체만으로는 사회적 단절이 우울증을 야기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rape rack 같은 표현을 쓰는거 보니까 원 자료 출처가 실험동물 해방주의자들로부터 온거네.
https://www.urbandictionary.com/define.php?term=rape%20rack
과격한 동물권주의자들이 농부나 과학자들이 인공수정에 쓰는 지지대를 비하하려고 만든 용어임.
이런거 보면 그냥 전체적인 내용의 신빙성이 훅 떨어짐.
참고한 논문에는 없고, 할로우 실험에 대해 쓴 책에서만 나오는 단어여서 좀 찜찜했는데 그런거였군요. 찾아보니 책 저자가 님 말처럼 동물보호쪽으로 활동한 저널리스트였네요(데보라 블럼). 링크 걸어둔 자료 보시면 알겠지만 할로우 본인이 쓴 논문을 대부분 참고했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첫댓글 글 잘봤어 가져와줘서 고마워 그래도 원숭이들이 회복했다는거에 맘이 놓인다.. 거식증으로 죽은 원숭이들 불쌍해 ㅜㅜㅜ
마음이 복잡해지네..
와 흥미롭게 잘봤어 ㅜ
의미있는 실험이지만 너무너무 불쌍하고 마음아프다....ㅜㅜ 마음이 복잡해
10마리의 죄없는 동물로 100만명의 어린이가 치료받으면 괜찮다고? 별로 안와닿아ㅎ(글써준 여시에게 한말 아냐 오해하지마 ㅠㅠ) 걍 죄수들로 하지 그랬노
인간이 뭐라고? 인간 살리자고 동물한테 지랄이야? 존나 악마같은 새끼네 저정도면 싸패아님? (글쓴 여시한테 화내는 거 아님!!) 말년에 존나 고통스럽게 아프다 뒤졌길 바란다...
아 존나 못됐다 진짜 하;
자살시도할때 성공했어야되는데..
근데 우리가 먹는 의약품도
수백수천 햄스터,마우스,랏,비글,원숭이 다 어마어마하게 실험하고 감염우려로 가스실에 넣어 죽여 만드는거라 옳다 그르다 할수가 없는듯
222222
우리가 누리는 모든곳에 희생이 있는거같아 의약품은 물론 샴푸 린스 염색약 화장품 같은 인체가 닿는 모든 물건들도 결국엔 동물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으니까...비난은 못하겠어 그저 희생된 모든 동물들에게 고맙고 미안해
에휴 ㅋ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뻔뻔하다면 그냥.. 고통스럽게 죽어라
인간은 멸종 언제되나…
진짜 너무 화나고 스트레스 받아서 심장 존나 뛴다.... 너무해
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