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수족관을 좋아한다.
잠수통을 맨 사람이 들어가서 돌고래와 수중쇼를 한다거나 하는
우스꽝스럽고 요란한 수족관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수족관이라는 말이 내게 환기시키는 것은
어두운 조명,
바닥에 깔린 두껍고 낡은 카페트,
그리고
마치 모든 소음이 물에 흡수되어 버린 듯 기이한 적막 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상어나, 넙적하고 커다란 가오리들과
기이하게 생긴 심해어들이
조용히 떠다니는 짙고 푸른 물이다.
그런 곳을 사람이 드문 평일 오후에 혼자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딱, 한번 그런 수족관에 가 본 적이 있다.
대학때의 일본 여행에서 들른
오사카의 수족관.
무뚝뚝하리만치
요란한 치장이라곤 전혀 없는 그 수족관은
커다란 건물 전체를 어항으로 만들어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구경하게 되어있었다.
비가 내리는 평일 저녁의 수족관엔 당연히 아무도 없었고
마치 5억년전의 화석처럼 생긴 이름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조용히 주변을 떠다니고 있었으며
정말 차갑고 깊은 바닷속에 들어온듯한 묵직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난 소도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 곳이라면 한 2-3년쯤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가끔, 사람이 없을 저녁쯤에
선사시대처럼 조용한 수족관을 산책하고 싶다.
오늘 울반 애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으로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왔다.
입장료가 단체 할인으로 만원이니
없는 동네 애들에게 무리를 시킨 셈이지만,
가능하다면, 사람이 줄을 선다는 휴일을 피해 꼭 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역시 너무 많이 꾸며놓은 수족관이었다.
통로는 마치 롯데월드처럼 꾸며져 있었고
너무 많이 구획지어
물고기들은 너무 작은 어항에 들어가 있었다.
테마파크처럼 꾸며놓은데다가
극성맞은 울반 애들에 유치원의 단체 견학까지 있어
오사카에서의 가슴 떨릴만큼 차가운 침묵 같은 건
절대 느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수족관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꼼짝 않고 있는
물고기들의 텅 빈 눈을 보고 있으면 슬퍼지기까지 한다.
눈이 없는 심해어들은 훨씬 더 슬프다.
깊은 바다의 어둠 속에서 눈이 사라져버린채
몇억년을 살아왔을 그것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알록달록한 테마파크식 수족관에서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통로에는 아이스크림과 핫도그를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팔고 있어도
역시
그 곳은 본질적으로 침묵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늘 내가 가장 오래 구경한건 문젤리라는 심해 해파리들..
투명한 겔 타입의 얇고 둥그런 막 끝에 미세한 술이 가득 달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오래 보고 있노라면
허무해질만큼 기이한 광경이다.
몇억년 전부터 의미없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그것들의 존재방식을 대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사카의 수족관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폐관 시간이 다 되어가는
비내리는 초가을의 어느 저녁에 문득 말이다.
카페 게시글
Solo Tango
수족관에 대하여..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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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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