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코회 수사인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경-1455,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는 수도원 형제들의 기도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각각의 방과 복도에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최후의 만찬 그림은 12제자 중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예고한 장면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이 그림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체를 주는 성찬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각 제자에게 성체를 직접 먹이신다. 제자들은 경건한 자세다. 이 가운데 여덟 명은 긴 식탁 주위에 서 있고, 나머지 네 명은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다. 공간 구성 때문에 화가는 여덟 명만을 긴 식탁에 배치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8이란 숫자다. 숫자 8은 영원의 수로, ‘구원’과 ‘부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구원을 받은 8명의 노아 가족, 죄의 사함을 위한 조건으로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 주간 첫날(8일째) 예수님의 부활. 따라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는 우리의 덧없는 시간적 개념에 ‘영원’을 담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이 일치돼 신성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 순간이다. 바로 여덟 번째 날, 부활한 날이다. 방 안 공기는 긴장과 흥분이 감돈다. 왼쪽에 성체를 이미 받은 제자들은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지만, 아직 성체를 받지 못한 오른쪽 제자들은 초조한 기색이다. 영성체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는 빵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 사랑을 함께 나누려 한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도 포함된다.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네 제자 사이에 다른 제자들 얼굴 뒤에 노란색 후광이 그려진 것과 달리, 유다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색처럼 어두운색 후광이 그려진다. 예수님을 수난의 길로 접어들게 한 유다지만, 그의 눈빛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하염없이 체험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식탁에 모인 여러 제자에게 같은 잔에 같은 빵을 나누어 모두가 같으며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신다. 아무런 조건 없이 식탁에 둘러앉아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모두는 같은 식탁에서 하나의 빵에서 비롯된 빵조각을 떼어 받아먹고 마시며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 화가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5)처럼, 성체를 나눠주는 예수님의 움직임을 통해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오른쪽 뒤쪽 회랑 중앙에 두레박이 있는 우물은 성찬례와 연결해 볼 수 있다. 모든 갈증을 없애주는 우물, 전혀 목마르지 않을 물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성체이다. 왼쪽에 성모 역시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 예수가 전해줄 생명의 양식을 간절히 기다린다. 화가는 하느님의 어머니, 영적 모친, 교회 어머니인 성모를 교회와 공동체 중심에 등장시켜 예수님의 존재와 성체성사의 은총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주일마다 성찬의 식탁을 준비한다. 우리는 예수님 자신의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몸을 온전히 내어주심을 통해 생명의 양식을 얻는다. 하느님의 생명이 채워진다. ‘내어줌’과 ‘채워짐’의 신비가 성찬의 식탁에서 이뤄진다.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