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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박목월시인 '시의 정원'
생전 아내와 용인 왔던 박목월, 절절한 시를 남겼다.
'K문학'의 진수, 박목월 '시의 정원'을 가다
지난해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이른바 'K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졌다.
'용인르네상스'를 시정의 핵심 비전으로 삼아온 용인특례시에는 빼어난 시인과 작가들의 자취가 놀라울 만큼 많이 숨쉬고 있다.
말하자면 '문학의 향기'가 곳곳에 배어있는 곳으로 보기 드문 문향이라 할 수 있다.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쓴 최남선 시인 묘역과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쓴 김영랑 시인 묘가 있다.
또 소설가 박완서와 김소진, 수필가 전혜린이 잠들어 있다.
한편 모현면 초부리의 용인공원묘원에는 시인인 박목월, 양주동의 넋이 숨쉬고 있고 아동문학가이자 동시 시인인
이원수-김수남 부부의 묘도 있다.
용인의 인물과 역사, 그리고 문화유산을 찾아 지속적으로 탐사보도를 해온 용인소식은 2025년을 맞아 이지역 곳곳의 문향을
발굴하고 조명하여 시민들에게 용인의 '문예(문학과 예술) 부흥'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번호에 집중적으로 다룰 인물은 시인 박목월과 국학자 양주동이다.
박목월(1915~1978, 본명 박영종)은 이 나라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시인이지만 몇 편의 익숙한 시를 제외하고는
그의 삶과 시세계를 자세히 아는 사람도 드문 편이다.
특히 그가 용인에 묻혀 있고 그의 시들이 이곳에 비석으로 새겨져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 또한 많지 않다.
박목월 시는 생존 당시에도 큰 명성을 얻었지만 K문학을 말하는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 높이와 향기가 사뭇 놀랍다.
이런 시향이 용인에서 감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1월 초 용인공원묘원 양지바른 한편에 자리잡은 박목월 '시의 정원'을 잠시 걸었다.
목월시비가 석판 위에 붙인 유리 위에 붙인 유리 윈에 정갈하게 목월시를 새기고 있었다.
나그네, 먼사람에게, 어머니의 언더라인, 임에게, 청노루, 가정, 정월 초이틀의 생긴 햇살에도 시들은 반짝였다.
이 고즈넉한 뜰(839m2 부지)은 아들인 박동규 선생이 2015년 부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조성한 공간이다.
박목월이 낳은 걸출한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시의 정원'에 소개된 6개의 명시와 용인이야기를 다룬 시를 중심으로 음미하며
함께 감동을 나누고자 한다.
묏자리를 보려온 목월
목사님의 소개로
용인엘 갔었다.
내외가 고속버스를 타고
평당 3000원이면 싼 값이지요.
산기슭에서 소개업자가 말했다.
나는 양지 바른 터전을
눈으로 더듬고,
서녘 하늘 같은 눈으로
아내는 나를 쳐다보았다.
뫼뿌리가 어두워 들자,
먼 마을에 등불 하나 둘 켜지고
그럴수록 황량해 보이는 산하.
여보 그만 가요.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가
가슴에 젖어들었다. 박목월의 '용인행' 중에서
목월 박영종은 경주 서남산 아래 건천읍 모량리 571번지에서 태어나 용인 처인구 모현읍 용인묘원에 묻혔다.
어느날 목월은 아내와 함께 용인에 부부묏자리를 보러왔고 산자락을 둘러보다가 스산한 기분으로 이 시를 썼다.
그리고 63세를 일기로 이곳에 묻혔다.
그가 말한 '가지런한 한 쌍의 묘와 한 덩이의 돌'로 생을 표기하며, 목숨이 돌아갈 자리를 찾던 길에 동행했던 유익순(목월의 아내)은 존재의 무상한 길에 기가 질려서 서녘 하늘 같은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보 그만 가요.
그날의 말은 현실을 정면으로 더 이상 바라보기 싫은 외면의 말이었겠지만 지금 돌이켜 읽으니 그건 이승을 하직하는 제안처럼
괜한 비감을 더 얹는다.
목월은 1978년 돌아갔고 아내 유익순은 1997년 (77세)에 눈을 감았다.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지상에는
아홉 컬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커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컬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이 귀염둥아
우리 막내동아.
(.......)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의 '가정' 중에서
시 '가정'은 초고와 함께 두 개의 돌 위에 실려 있었다.
초고는 특히 시인의 굴씨체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공개된 시 '가정'과는 달리 '문수가 다른 아홉 컬레의 신발이/오종쫑긋하게 모였다'라고 뙤어 있다.
오종종하고 쫑긋쫑긋한 신발들 또한 가족이 되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품으며 현관 혹은 들깐에 놓여있다.
들깐은 경주 부근의 사투리로 여러 기자 허드렛 물건이나 가구를 놓아두는 간이 창고같은 곳이다.
목월은 스스로의 신발 치수를 오래전 그 물건을 재던 문수로 밝혀놓았다.
19분반, 1문은 2.4cm쯤 되니 46.8cm다.
발도 컸겠지만 무겁고 큰 구두를 신지 않았을까 싶다.
그 큰 구두애 말로 가장이 이끌어야 할 삶의 무게이기도 했으리라.
막내 아이의 신발은 6문 3, 15.12cm다.
저 앙증맞은 삶을 내려다보는 목월의 형언할 수 없는 감화가 여지없이 느껴지지 않는가.
저 6문3을 보며 목월은 가정의 중심이자 마루에 있는 자신이, 그 19문반 신발이 어떤 존재인지를 돌이키게 된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고 중얼거리며 그는 19문반을 6문3 곁에 조심히 벗고 있다.
그 가족을 향하여, 말한다.
걱정마라.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너희들은 아무 걱정 없다.
내가 다 지켜불 거니까.
하지만 그 말들이 너희들에게 든든한 믿음이 되기 위한 것이지, 아버지란 존재의 실상은 아니다.
지상에는 아버지란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는 소리없는 고백이 그 속엣말이다.
'어설픔'을 추스리며 현관에서 활짝 웃는 아버지를 보아라, 너희들은 괜찮다.
나도 괜찮다.
나그네와 완화삼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 의저녁 노을이여
이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 '완화삼'-목월에게
경주 건천읍 모량리에 사는 박목월(본명은 박영종,1915~1978)에게 1942년 3월 중순 조지훈(본명은 조동탁, 1920~1968,
경북 영양 출신)이 방문했다.
그때 조지훈은 목월에게 '원화삼'을 지어 건넸다.
영양 사람 지훈이 '완화삼'에서 묘사한 나그네는 경주 사람 목월이었으리라.
700리 물길은 낙동강이다.
700리(280km)는 경북 상주 낙동면에서 부산 낙동강 하굿둑까지 이르는 물길이다.
그 상류인 안동댐에서부터 잡으면 1200리이고 원류인 태백시 황지연못부터 시작하며 1300리 물길이다.
한강보다 더 긴 강이다.
그 시에 화답하여 박목월은 다시 시를 지어 부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저녁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
목월은 경주 모량리에서 '완화삼'을 받은 뒤, 1년쯤 지난 1943년쯤에 화답시를 쓴다.
이것이 '나그네'다.
'구름에 달 가듯이'는 시의 눈이면서 이 작품을 절창으로 밀어올린 묘구다.
구름에 달이 가는 건, 그냥 구름이 흘러가는 것과는 다르다.
구름은 기류에 따라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고 뭉칠수도 있으며 빠르게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름을 지나가는 달은, 구름의 저항을 받지도 않고 구름의 지원을 받지도 않는다.
그냥 제 속도로 무심히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채 서늘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구름에달 가듯이'다.
이 말을 '달에 구름 지나가듯이'로 바꿔보라.
거기엔 어떤 법칙성을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구름은 임의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달이 구름을 지나가는 것은 어떤 인연과 곡절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와 무심의 경지다.
나그네가 '구름에 달가듯이' 간다는 말은 그냥 천천히 흘러간다는 말이 아니다.
구름에 구애받지 않고 제 속도로 갈 길을 그냥 지나가는 태무심한 양상을 표현한 것이다.
아까 조지훈의 시에서 미련과 아시움이 보폭의 속도르 떨어뜨리던 장면을 떠올려 보라.
즉 '나그네' 당사자인 조지훈은 한없는 망설임으로 산만한 발길로 이리저리 해찰하듯 떠나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나그네를 뒤에서 바라본 목월에게는, 가는 조지훈이 '구름에 달 가듯이' 어김없이 주저없이
흘러가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지훈 자네가 뭐, 가기 싫어 망설이면서 갔다고?
내가 보기엔 구름이 막아도 개의치 않고 가버리는 달처럼 그렇게 훌훌히 가버리던데?
뒤에서 배웅하던 사람의 시선에는, 저 사라지는 등짝만 강조되어 보일 뿐이다.
서로가 그 입장에 따라, '다른 속도'를 본 것이다.이 두 개의 시를 읽으면서 같은 이별을 놓고 천양지차의 논평을 내놓는
그 감정의 편차를 읽어내야 이별에 대한 두 사람의 내면 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달빛 아래 읽은, 어머니라는 책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니의 유품은
그것뿐이다.
(....)
동양의 깊은 달밤에
더듬거리며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박목월 '어머니의 언더라인' 중에서
박목월은 달빛 좋은 추석날 밤에, 돌아간 어머니가 남긴 성경책을 문득 펼쳐본다.
그때까지는 유심히 보지 않았는대 이제 보니 어머니가 마음에 담고자 했던 구절마다 똑똑히 그어놓은 붉은 밑줄이 보인다.
늘 품고 다니시던 그 성경책에는 오래 베어든 어머니의 시간이 있고 그 글귀들을 읽고 살피던 눈빛이 들어와 있다.
어머니가 표시해놓은 주기는 그가 이 성경의 말씀들을 마음에 옮기고져 했던 자취이기도 하다.
'모전자전'하는 언더라인이 감동적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따라 읽어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늘 어리석기만 한 아들의 마음 속에도 기도소리가 옮아왔다.
마치 돌아간 어머니가 속삭여주는 것처럼 안타깝고 답답해도 간절한 가도로 밀어주는 것처럼 그는 생생한 체온을 느꼈다.
지고하신 분 앞에 함꼐 엎드린 모자처럼, 한가위가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먼 삶'과의 사랑
팔을 저으며
당신을은 거리를
걸어가리라.
먼 사람아,
팔을 저으며
나는 거리를
걸어간다.
먼 사람아.
만 사람아.
내 팔에 어려오는
그 선운한 반원.
(.....)
아아
연한 채찍처럼
채찍이 운다
먼 사람아. 박목월 '먼 사람에게' 중에서
박목월이 말하는 '먼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지만 굳이 멀리 헤어져 있지 않더라도
마음이 멀어져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물리적인 거리로도 말지 않고 마음도 결코 멀어진 것이 아니지만 만날 기약이 없고 재회할 이유가 없고
마음이 돌아서 있는 거라면 그 또한 '먼 사람'이다.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말아야 하는 사연이 그 거리를 좁히는 일을 뜯어 말리는 경우도 '먼 사람'이다.
세상의 질서와 도덕과 규율이 정해놓은 거리를 위반할 수 없는 저쪽의 사람도 먼 사람이다.
슬며시 '나'를 쓰다듬듯 내 팔을 느껴본다.
있어야할 사람이 없음을 눈치채는 서운함이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투명한 반원이다.
그없음의 팔뚝을 내려다 보며, 그 반원의 형상을 한 보랏빛 무지개를 떠올린다.
내 팔뜩이 내 안쪽으로 기울어져 돌아가있구나.
해와 달이 부드러운 채찍이 하늘을 때리며 도는 것처럼 돈다는 것, 당신을 부르는 나의 소리가 채찍의 한쪽을 이루고
나를 부르는 당신의 소리가 채찍의 다른 쪽을 이루어 먼 사람과 만 사람이 서로의 끝없이 비어있고 아픈 자리를 부드럽게도
떄리겠구나.
체찍이 울겠구나.
나는 울지 않고 당신도 울지 않고 내가 부른 당신 이름과 당신이 부른 내 이름이 서로를 떄리며 울겠구나.
강나룻배가 흔들이는 까닭
안타까운
마음은
은은히 흔들리는
강나룻배
누구를 사모하는
까닭도 없이
문뜩 흔들이는
강나룻배 박목월 '임에게'
'임에게'라는 시비에는 이 시를 필사한 허영자 시인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허시인은 목월의 이름난 제자이기도 하다.
편지처럼 건네는 시라면, '나는 지금 강나룻배와 같소'라는 말일 것이다.
이 시의 눈은 '흔들리는 강나룻배'에 있다
2연의 '은은히 흔들리는'은 그 흔들림이 미세하며 출렁임이 스스로 감내할 수준이라는 의미를 담는다.
4연의 '문뜩 흔들리는'은 지금 일어나는 어떤 출렁임에 영향을 받은 것을 고백하는 말이다.
같은 흔들림이라도, 견뎌낸 흔들림고 감당이 안 되는 흔들림은 다르다.
그 잔잔한 물살이 같고 고요한 포즈는 같다 하더라도 강나룻배의 내면이 흔들리는 심각성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음'은 그렇게 다잡았는데, '몸'이 흔들린다.
바람도 물결도 없는 데 흔들리는 나룻배가 영문 모를 일인 것처럼, 지금 이 마음을 이 몸이 알 수 없다.
이토록 생생한 마음의 풍경으로 마음 속의 '이율배반'을 그려 '임'에게 고백한 아프고 저린 러브레터다.
'임에게'를 필사한 제자도 '임에게'란 시를 썼다.
우연히 썼을까.
'남도 아닌 옛말투의 '임'으로 쓴 이 시가, 스승의 저 시에 대한 원천적인 감동에서 다시 빚어진 건 아닐까.
당신 앞에 서면
나는 비로소 총명한 여인이 됩니다.
(....)
임이여
당신 앞에 선 나는
가슴이 입술에 온통 핏물이 돌아
다시금 살아있는 여인이 됩니다. 허영자' 임에게' 중에서
이 시는 그대로 목월 스승에게 보넬 수 있는 고백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을 살아있게 하는 원천수를 젖줄처럼 대고 있는 제자의 진솔한 감사는 아직도 떨리며 번지는 목월시의 잔물결이기도 하다.
기느마음이 마음을 떠미는 강나룻배의 '흔들림'만큼 이프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또 어디 있으야.
청록파는 청노루파였다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박목월 '청노루'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박목월과 박두진, 조지훈은 공동시집 '청록집'을 간행했다.
잡지 '문장'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단한 세 사람은, 식민지 시절이 할퀴고 간 산하를 돌이키며 그곳에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찾아내려 했다.
문단의 별로 떠오른 '청록파'의 탄생이다.
청록은 바로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나왔다.
청록은 푸른 물결 푸른 숲의 청록이아니라 '청노루 정신'같은 것을 담았다고 해도 될까.
지금은 보기도 드문 어여쁜 짐승 '청노루'가 무슨 정신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토함산 불국사에 봄눈이 녹는 풍경을 박목월은 절간의 느릅나무 속에서 들여다본다.
놀라운 투시력이다.
거기 들여다 보니 떨면서도 몰래몰래 일어나는 속잎이 있는데, 얼다 녹다 하면서 열두 굽이를 돌아 겨우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느릅나무의 이 깊은 속사정을 누가 알겠는가 싶지만, 청운과 자하의 푸르고 붉은 구름들이 알고 있따.
그들이 흘러 바람을 만들고 그들이 뭉쳐 눈비를 만드니까 말이다.
저 구름이 열두번 돌면서 느릅나무 속잎을 만드는 걸 또 누가 알수 있으랴 싶지만, 토함산 청노루는 모를 수 없다.
하늘을 바라보며 그 크고 둥근 눈망울에 맑은 구름을 매일 담고 있지 않은가.
노루도 새싹이 돋아야 뭔가 먹을 게 생기고 언 눈이 가셔야 뛰어다닐 수 있지 않던가.
그러니 기상청에 방불하는 저 구름이 열두 번도는 걸 놓칠 수 있겠는가.
느릅나무 속잎과 청노루 눈망울이 시시각각으로 감응하는 가운데 구름들이 그 뭉게뭉게의 질감과 희고 푸르고
붉은 색감으로 마침내 이렇게 방송하고 있는 것을,
'얘들아, 서둘러! 이제 시작이야.'
이렇게 '봄'을 발견한 시인이 또 누가 있었을까.
이 땅의 박목월 외에. 용인소식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