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쟁한 경력의 베테랑들이 판치는 유럽의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 유학 한 번 하지 않은 한국 청년이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프랑스 푸조(Peugeot)사의 카 디자이너 구민철(30)씨.
15명밖에 안 되는 푸조 카 디자이너 중 유일한 한국인인 그는 곧 선보일 ‘푸조 207’ 모델의 뒷 부분을 디자인해냈다. 구씨의 아이디어는 수석 디자이너의 작품과 끝까지 경합을 벌인 끝에 채택됐다.
프랑스 파리 시내 샹젤리제 거리에 자리한 푸조 아브뉴 전시장에서 만난 구씨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제 아이디어 중 절반만 채택되어 아쉽지만 ‘앞으로 기회가 많으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그는 지난 2001년 푸조사에 입사했다. 유럽 자동차 회사에 순수 ‘국내파’ 한국인이 입사한 건 구씨가 처음이었다. 누구의 추천이나 소개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를 회사마다 직접 우편으로 보내며 문을 두드린 저돌적 노력의 성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는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잖아요.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도전하니까 길이 열리더군요.”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 따라 이민간 브라질에서 낯선 외제차들을 보며 자동차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어른이 되면 멋진 차를 만들겠다”고 꿈꾸던 소년은 마침내 한국에 돌아와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조선일보와 모 자동차 회사가 주최한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에서 입상했어요. 해외 연수 기회도 얻고, 주최한 자동차 회사에 취업도 보장받았지만 가장 큰 수확은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었죠.”
▲ 구민철씨가 디자인한 푸조 207 모델의 뒷모습.
그는 교내서클 ‘카스텍’을 만들어 마음 맞는 동료들과 본격적으로 차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1년간 연수를 하며 영어를 익히고 다양한 차들을 눈요기하기도 했다.
졸업 후 구씨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는 국내 회사를 마다하고 유럽 자동차 회사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대학 시절 만든 카 디자인 작품들을 여기저기 우편으로 보냈다. 1주일 만에 푸조사로부터 ‘당신의 작품에 흥미가 있으니 파리로 와서 인터뷰를 하자’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불어라곤 간단한 인사말밖에 모르던 구씨는 파리에서 1주일간의 긴 면접시험을 치렀고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다. 푸조의 카디자이너실에 한국인이 최초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어 배우랴, 작품 제작하랴 어떻게 3년이 갔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아이디어가 반영된 차를 거리에서 만나면 타국 생활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져요.”
지난 5월 구씨는 모처럼의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학교 후배들을 만나 열심히 공부하고 또 당돌하게 도전하라고 일러줬습니다.”
푸조에서의 생활이 싫증나면 독일차 회사에 입사해 더 넓은 안목을 기르고 싶다는 구씨는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 멋진 국산차를 꼭 디자인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첫댓글 와..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