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네 번째 기도 내용은 거룩함입니다.
“그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육신 안에 들어와 인격화(말씀이 육신)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거룩함으로 세상에서 보전이 됩니다.
그 안에서 거룩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버지의 말씀(호 로고스)은 진리입니다.
인간이 거룩해 지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을 우리 인간에게 사실화 시키는 원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실제로 나타내는 역사성이십니다.
진리와 성령 이 둘이 합쳐져서 성도는 거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진리이시기 때문에 증언하는 이가 셋인데 성령과 물과 피가 한 세트이십니다(요일5:6-8)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성령은
바깥에서 표적이나 은사로만 나타나므로 진리가 그 안에서 내주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시지 않으면 주의 지상사역의 효력이
그 안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성령학자라고 부르는 겁니다.
'호 로고스'(요1:1)가 진리이면서 또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이라고 합니다.
곧 성령이 진리와 함께 온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거룩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 그 몸에 적용이 되지 않으므로 영광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사활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그 능력이 나타나야만 평생
죽음의 종노릇 한데서 놓임을 받아 주의 손에 붙들렸음을 감지하게 됩니다(히2:11,15-16)
아버지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에겐 ‘거룩’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
진리 안에서 우리는 거룩해 지는 정신작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벧전1:16)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거룩함으로 부름을 받은 것을
깜빡하고 육체를 따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진리로 거룩하게 되었고 계속 거룩해져 갑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9)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죄와 사망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생명과 거룩한 땅으로 믿음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십니다. 진리 안에서는 중단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는 완료수동분사현재형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미 완료가 되었으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현재 진행 중이며 그 분에
의해 피동(말미암아)되어 진행이 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기가 막힌 원어의 표현입니다.
‘아버지의 거룩하심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우리는 점점 완성적인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저력은 거룩함에 있다는 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과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그러므로 이젠 그리스도인이 거룩함을 얻은 자격에서 완성적인 거룩함을 진리를 따라
이루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거룩함과 영광으로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non-verbal-communication을 요구하는 때이므로 말이 아니라
거룩한 능력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나타나는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받고 주께 붙잡힌 자신으로 발견이
되어 주의 임재하심과 우리를 이끌고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신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파악하여(히3:1) 그의 영으로 주의 형상을
입고 그 영광으로 영광에 나아가는 새 언약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고후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