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양반이라 하면 높여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잡아 보는
용어로 전락했다. " 이 양반아 저리 좀 비켜!" 혹은 "이 양반이 무슨 소리야?"
하면 시비조로 내뱉은 말이다. 내 어릴 때만 해도 우리집에서는 사람의 됨됨이를
양반과 상놈으로 구별했다. 부모 말씀 잘 듣고 성실하면 양반이고 그렇지 못하면
상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때만 해도 몰락한 양반가문인 우리집에서는 고모님 4분중에서 셋을 상놈집안에
시집을 보냈었다. 어머니가 시집왔다가 친정에 가셨을 때 집안 어른인 까꼬실 할배한테
인사 드리려 갔더니 집안 내력을 물어보시더라고 하셨다. 남편 형제분이 어찌되느냐 하셔서
1남4녀라고 했더니 "그럼 제일 큰 시누이는 어디로 치웠는고?"물어서 이반성 청주한씨한테
시집을 보냈습니다했더니 거기는 양반, 다음 둘째는? 금산면 중촌 수지 김씨라 했더니 ,
그넘은 상넘, 셋째는? 일반성 상촌 밀양손씨로 치웠습니다.했더니 그넘도 상넘, 막내는?
동산이 경주김씨로 치웠답니다 했더니 그넘도 상넘 하시더라고 어머님이 말씀 하셨다.
공자왈 맹자왈 하고 서당식 교육을 받은 우리부모님 세대에선 삼강오륜이 삶의 덕목이었고
뼈까지 유교사상에 젖어 있었다. 따라서 사농공상의 신분 계급이 확실했다. 그러다가 일제를 거쳐
신문물이 들어 오면서 사람들의 의식구조도 점차 깨게 되었고 우리 아래 세대에선 양반 상놈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부산으로 내려오셔서 진외가 외사촌들과 가끔
어울렸셨는데 모실 아지매는 며느리가 영 마음에 안들어 하시면서, 양반가문에서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더니, 며느리왈,"양반이 밥 먹여 주나요?" 하면서 대꾸를 하더란다.
이조말까지만 해도 벼슬과 양반을 돈으로 살고 팔 정도로 양반 상놈의 격차가 엄격했다.
그러던 것이 점차 개화가 되면서 구분이 없어지고 우리가 결혼할 나이가 됐을 때
가문의 내력을 한번 물어볼 정도였다. 가문의 전통이나 법도가 아무래도 상민집안 보다는
양반집안이 조금 나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피하고자 했던 성씨가 '천방지추 마골피"였다.
양반이란 본래 고려, 조선시대에 지배층을 이루던 신분으로서 관료체제를 이루는 동반(동반)과
서(서)반을 일렀으나 점차 그 가족이나 후손까지 포함하여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 또 '자기 남편을 남에게 이르는 말', 그리고 '남자를 범상위 또는 홀하게
이르는 말' 비유적으로는 '사정이나 형편이 좋음'을 이르는 말을 지칭하고 있다.
한편 영감이란 옛날에는 정3품과 종2품의 벼슬아치를 영감이라고 일컬었으며 그 이상의 벼슬아치를
대감이라고 하였다. 해마다 정월에 80세 이상의 관원 및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나랏님이 온전으로
베풀어 준 벼슬인 수직(수직)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제로 맡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노인을
우대해서 이름만 내려준 벼슬에 불과했다. 수직이라는 벼슬을 받은 노인들도 영감이라고 부르다가
차차 나이든 어른을 높여서 모두 영감이라고 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꼰대처럼 늙은 남자를
일컫는 말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군수영감, 판사영감 하듯이 관료사회에서 자신들
끼리 서로 높여 부르는 말로 쓰기도 한다.
영감의 사전적 의미로는,1.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2. 나이 든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그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남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
로 풀이하고 있다. 나는 아직 집사람으로부터 영감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않았지만 앞으로도 듣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영감탱이라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