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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주/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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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만 해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살았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필리핀에 가면 엄청난 빈부 격차와 낡은 차량들로 아수라장인 길거리를 보게 된다.
잘살던 나라가 왜 이렇게 됐을까?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어느 필리핀 인사의 얘기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초기 이민시절 교포들이 하와이에서 피땀 흘려 고생하며 어렵게 번 돈으로 모국에 대학교(인하대)를 세웠다는 얘기를 듣고 이 나라는 희망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반면에 필리핀에서는 유력인사들이 자제들을 모두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교육시키고 스스로 인재를 키우는 능력을 저버렸기 때문에 이 모양이 되었다. 사회의 리더들이 오히려 미국의 속국이 되자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기적 같은 경제발전은 국가의 리더십과 함께 근본적으로는 교육의 힘 덕분에 가능했다. 특히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교육열이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원동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할 수도 있다. 지나친 교육열은 그것을 성숙된 교육문화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오히려 이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인 암적 존재로 변모되었다.
매년 반복되는 입시지옥, 대학의 단순 서열화와 교육의 질 저하, 엄청난 사교육비, 조기유학, 무역적자의 큰 요인인 교육 서비스 수지 적자, 기러기 아빠, 가정파탄, 청소년 자살, 늘어나는 이민, 이공계 위기, 청년실업, 노사갈등, 빈부격차,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 부동산 투기까지도 근본에는 교육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누구나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개인적인 힘으로는 옴짝달싹 할 수 없이 서로의 발목을 쥐고 있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교육문제만큼 모든 사람을 분노케 하면서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나 자신도 문제가 심각한 것을 알면서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차라리 잊고 싶어했다.
교육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얘기만 무성할 뿐 대책이 별로 들리지 않고 사회 지도자들도 태연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대통령특별위원회가 되었든, 대학 연구팀이 되었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방안을 내놓았을 법한데 우리는 고교평준화, 특목고 설립 등 몇 가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슈 외에는 모두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비난만 하고 있지,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기미가 없다. 그 동안에도 각종 위원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판이 실패한 기존의 교육전문가 중심의 접근방식으로는 더 큰 실망만 안겨줄 뿐이며, 이제는 혁명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우리나라 만병의 근원인 교육을 총체적으로 수술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특별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자. 이 팀은 업적에 연연하거나 정치적인 이해집단의 사람들이 아닌 순수한 정열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하자. 여기에는 교육학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자연과학, 공학, 경제학, 경영학 등 많은 분야를 망라해 온 나라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명실상부한 통합팀이 되는 것이 좋겠다.
이 특별팀이 할일은 여론조사나 화려한 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에 의해 사실을 밝히는 작업이다. 암 수술을 느낌이나 여론 조사로 할 수 없듯이 철저한 과학적 진단과 처방만이 교육의 암 부위를 도려낼 수 있다.
더 이상 어설픈 아이디어로 교육을 실험대상으로 하여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보다는, 정확한 자료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최상의 해답을 어렵더라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온 힘과 지혜를 합쳐 우리의 핵심역량인 교육을 다시 살리자. 사회와 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그래도 교육에서밖에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성주·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