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도관 세척현장을 가다-이순형사장의 세척공사 난맥상
관내부에는 모래로 가득 가득 쌓여있고
세척공사지 준설공사는 아닌데 공사는 해야하고
관로속에는 돌출부위등 복명들이 숨어있는데
이순형/수도이앤씨 대표
평생 해보지도 않은 상수도관 세척사업을 시작한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산 넘고 물 건너기를 벌써 수십 번은 했지만 아직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보이지 않는다.
어제도 밤을 새워 상수도관을 세척하였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세척공사에 고가의 장비는 물론이고 인력은 8명이나 동원되었다. 밤에는 공사현장에서 밤샘작업을 하고 낮에는 잠을자야하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비몽사몽간에 일을 하여 사고위험이 상존했다. 인사사고라도 나면 대표이사가 구속된다는데 사장은 사표 낼 수 없느냐고 자문해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S시에 세척공사를 하고 있다.
예상대로 관의 상태가 녹버섯이 많아 기계가 전진하는데 애로 사항이 겹겹이다. 억지로 밀어 넣어 세척은 완료했지만 그리 시원하지는 않다.
처음 관로를 부설할때 들어간 모래가 D150 관의 바닥에 40mm가량 쌓여 있다.
세척공사는 세척을 전문으로 하는 공사이지 준설공사가 아니지 않는가. 세척기를 두 번이나 넣어 시공했지만 잔모래만 나올뿐 굵은 모래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할 수 없이 준설노즐로 재시공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공사비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참 난감하다.
4년 전 어느 날, 상수도 관련 사업만 평생 한다는 지인이 찾아와 상수도관 내부가 무척 더럽다고 해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물때가 많아서 언젠가는 사회문제가 될 것이니 관 세척기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다.
함께 중지를 모으고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몇 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다. 임시 배관을 길게 설치하고 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서울시 ‘수도사업소’에서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강서구에서 민원이 있으니 세척해 보라고 주문까지 받았다. 신나게 달려가 맨홀을 열고 세척기를 투입해보니 복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방해를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료하니 진땀이 흘렀다.
그날 밤, 첫 시공을 하면서 우리는 큰 경험을 했다. 막상 세척하고 나오는 물은 시뻘건 녹물에 물때 찌꺼기가 섞여 검붉은 색이고, 호스를 만진 목장갑에서는 시궁창 냄새가 났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생활의 필수품인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 세척을 나의 인생의 사명으로 삼고 싶어졌다. 늘그막에 좋은 일거리가 생겼다고 가슴이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상수도관과 인연을 맺다 보니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다. 과목도 무려 14과목이나 되었다. 공학을 총 망라한 듯 보였지만, 결국 관망관리사 1급 자격증을 받았다. 역시 시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상수도관에는 곡관, 하월관, 분기관, 편락관, 이음매, 녹버섯 등, 이름도 처음 듣는 단어들이 많아 난관도 많았다. 우여곡절과 숱한 실험을 하며 제법 쓸만한 로봇을 만들어내는데 근 삼 년이나 걸렸다. 환경부는 상수도관을 매 10년 주기로 세척하라고 법까지 바꾸었다. 큰 시장이 열릴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다시 시들해졌다. 냄비 근성의 한국사람 특징이라고 할까.
하수도가 생활 영역의 정맥과 같은 구실을 한다면 상수도는 동맥과 같다. 집집마다 우물을 파서 물을 먹던 시절에는 배탈도 잘 나고는 했지만 요즈음은 과학적인 물 공급으로 그런 일은 드물다. 주부가 물동이 이고 다닐 일도 없다.
수돗물이 적당한 유속으로 흐른다면 물때가 낄 일은 없다. 그러나 물은 시간 별 최대 필요량에 맞추어 시설이 설계되어 있으므로 물을 적게 쓰는 시간대에는 파이프 속에 물이 정체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미생물이 발생되고 관의 내벽에 붙어 미끄러운 물때가 자라게 된다. 오래된 상수도관은 빨간 녹버섯이 꽤 높게 자라 있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관을 세척하면서 내부를 촬영해보면 적지 않은 곳에서 관로바닥에 모래와 자갈이 깔려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상수도관을 부설할 때 인부들이 대충 해버린 결과이다. 작금의 건설현장에는 외국인부들이 담당하는 것이 실태인데 속이 보이지 않는 수도관 매설에 무슨 정성을 들일 수 있는지 불문가지이다. 보이지도 않는 관 속에 모래는 그대로 남아 있어 미생물의 안식처가 되고, 잔모래는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수도꼭지로 흘러나온다. 그런 관을 밤새워 세척해서 깨끗해진 관 내부의 동영상을 보면 희열마저 느낀다. 역시 기술개발 하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자축해본다,
오늘도 아내가 밥을 지으려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다. 주방의 수도꼭지 물은 개숫물로나 쓴다. 화장실 수도꼭지에 달아놓은 필터는 조금씩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힘들어도 국민건강을 위해 수도관 세척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다짐해본다. 결국 팔자가 바뀌었다.
*이순형(사진)은 서울대 농업기계학을 전공(74년)하고 동아건설 중기사업소,국제상사 기계부,수산중공업등을 거쳐 현재는 세척전문회사인 ㈜ 수도이앤씨를 경영하고 있다, 계간수필로 등단(2010년)하여 수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