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는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서, 12월 4일 인권주일부터 한 주간을 제1회 ‘사회교리 주간’으로 삼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사목의 중요한 영역으로 삼기 시작했다. 가톨릭사회교리는 1891년에 레오13세 교황이 반포한 <새로운 사태> 일명 <노동헌장>라는 회칙을 효시로 삼아서 교황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관심을 드러내고, 사회문제에 대한 지침을 발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노동자, 노동문제는 당연한 중심주제였다. 모든 인간은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획득하고 생계를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서 노동사목의 모범적 사례 중 하나가 천주교 인천교구의 부평과 부천 노동사목인데, 오는 12월 10일은 부천노동사목 30주년을 감사하는 미사가 봉헌된다. 인천교구 노동사목은 지난 30년 동안 벌여온 노동사목을 정리하면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이 참에 장동훈 신부(인천교구 노동사목 전담)를 만나 고민과 성찰의 그리고 대안에 대한 모색을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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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사목 전국 노동자교육. (사진출처/가톨릭노동사목동지회 카페.) |
인천교구 ‘통합’노동사목 준비
인천교구 노동사목은 노동자인성센터를 탈바꿈한 부평노동사목, 소모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부천노동사목, 그리고 주안에서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노동자센터로 나뉘어 활동해 왔는데, 지난 11월부터는 노동사목 활성가들이 단일한 통합사무실에서 함께 머물며 고민을 나누고 있다.
장동훈 신부는 이와 관련해 “그동안 노동사목은 어려운 시기에 노동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면서 제각각 고유한 색깔을 갖고 일해 왔지만, 이제는 노동문제의 대부분을 조직 노동자들이 해결하게 되면서 변화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며, “이제는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는 사목에서 벗어나 ‘현장으로 찾아가는 사목’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부평, 부천, 주안의 세 군데 공간사목을 폐기하고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자는 뜻이다.
장 신부는 “그동안 노동사목은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해 오면서 시대적 요구에 충분히 응답해 왔지만, 교회용어로 ‘신앙’이며 사회적 용어로는 ‘세계관과 인간관’에 속하는 가치를 그들과 공유하지는 못했다”고 반성하면서, 인천교구 노동사목 활성가들이 공동의 비전을 지니고 교회 노동사목으로서 그리스도교적 가치관과 결합된 노동사목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신앙적 가치 위에 실천적 내용을 접목시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 후미지고 낮은 곳으로
그동안 한국사회 안에서 노동자의 편에 서서 발언할 수 있는 곳은 교회 밖에 없었고, 그래서 민주노조를 건설하는데 노동사목이 참여했지만, 정작 노동사목 자체는 기술적 부분은 비대해진 반면, 교회적 내용은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그 결과 30년 넘게 노동사목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우리만의 고유한 노동신학도 노동관도 갖추지 못한 아쉬움을 장동훈 신부는 털어놓았다.
장 신부는 “이제 노동사목은 일반 노동조합과 노동단체에서 손대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지나쳐 버리기 쉬운 더 후미지고 낮은 곳으로 가서 노동자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예전에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며 조직운동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이런 노동문제 뿐 아니라 그 뿌리에 해당되는 인간의 탐욕과 무자비함을 비판하고 새로운 경제관, 가치관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데까지 나가는 마지막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철학적, 신학적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노동사목을 꿈꾸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 인간에서 ‘전인적 인간’으로 노동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사목이 분명하게 복음적 가치관으로 무장해 진리에 순종하는 운동이라고 선언하고, 이를 처음이자 마지막 좌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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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엠대우 현장미사에서 발언하는 장동훈 신부.(사진출처/장동훈 신부 블로그 '바깥') |
현장미사에서 만나는 그리스도
장동훈 신부는 통합 노동사목을 통해 노동자들의 인성과 영성, 인권과 생활마저 돌볼 수 있는 ‘토탈 케어’(통합적 배려) 차원의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를 위해 통합사무실에 모인 활성가들을 노동상담, 인성교육, 영성강화, 인권팀 등으로 세분화하고, 특정지역에 제한되지 않는 활동을 희망했다. 그래서 통합사무실을 중심으로 필요한 현장에 파견소를 둘 계획이다. 통합사무실은 나눔공간과 강의실 등 교육시설을 갖추고, 사방에서 노동자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교통요지에 설치될 것이다.
파견소는 공단지역의 성당을 이용할 수도 있겠고, 천막 하나 치고 노동상담을 할 수 있는 이동식 파견소일 수도 있다. “두세 달 전부터 노동사목에서는 활성가들이 한 주일에 두 번 씩 주안공단과 남동공단, 부평농장 등에서 천막을 치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신흥공단이라고 할 수 있는 김포와 시흥지역도 파견소를 설치할 생각이다. 일종의 ‘찾아가는 사목’을 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사목이 가장 상징적인 행위로 떠올린 것이 ‘현장미사’다. 이른바 ‘뚜껑 없는 미사’를 다급한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하자는 것이다. 예전에는 노동사목센터 등에서 주변 노동자들과 월례미사를 봉헌했지만, 이 미사를 ‘고통받는 노동현장’ 한가운데 봉헌함으로써 세상과 교회가 직접 만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해 겨울부터 노동사목은 이미 지엠대우와 콜트 콜텍 악기공장에서 미사를 봉헌해 왔으며, 이 미사를 통해 교회를 떠났던 신자 노동자들도 만나고, 신앙과 노동이 어우러지는 감동적인 순간도 경험했다. 장 신부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장에서 가장 그리스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현장미사다. 가장 첨예한 싸움으로 힘겨워 하는 이들에게 찾아가는 미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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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엠대우 미사에서.(사진출처/장동훈 신부 블로그 '바깥') | 본당과 결합되는 노동사목을 위해
그러나 무엇도 ‘교회 안에서 노동사목이 특별한 이들만이 참여하는 일’로 치부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장동훈 신부는 ‘교회와 노동’ 사이의 상호교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공감대를 넓히면서, 노동사목이 교회의 사목영역에서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로 편입되길 기대한다.
“가톨릭사회교리도 총론은 있지만 각론이 없다. 노동자주일에 선언적 의미를 담은 담화문이 발표되면 그뿐, 잠시 노동문제를 생각하지만 곧 잊어버리기 일쑤다. 노동사목을 일상적인 신앙생활과 상관없는 아주 특수한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교님과 사제, 수도자들에게도 분명한 노동관이 있어야 하는데, 노동사목을 노동자를 단순히 지원하는 시혜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교회는 깊이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서 빵만 나눠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통합 노동사목에서는 ‘본당 직업군 실채조사’를 통해 노동문제와 신앙생활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노동자들이 본당 활동을 얼마나 참여하는지, 안 된다면 왜 그런지 등등. 그래야 교구 및 본당사목의 정책을 세울 때 사실상 신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동훈 신부는 노동사목과 관련된 내용이 본당정책에 반영되고, 교리서에도 노동문제를 다룬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실상 예비자교리서 등에는 믿을 교리만 다루지 행할 교리인 ‘사회교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편 노동사목은 1년 두 차례 열리는 본당사무장교육에서 노동상담 기본 소양교육을 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인천지역에 공장들이 공단이 아닌 곳에도 선재해 있어 이따금 노동자들이 본당에 찾아와 노동문제를 호소하곤 하는데, 어떤 사무장들은 이들을 노동사목에 연결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사목 자체를 모르는 사무장들이 더 많은 편이다. 그래서 <노동사목>이라는 회지도 만들어 본당에 돌리고, 사무장을 대상으로 노동사목 서포터즈 사업을 하는 것이다.
또한 본당 사목회의 구조 안에 사회사목분과를 설치하고, 노동사목 파트가 사목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예전에 없던 사회복지나 홍보분과가 본당에 생겨났듯이, 노동사목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이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노동사목은 교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임을 알려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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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함안보 생명평화미사에서 문정현 신부와 함께.(사진출처/장동훈 신부 블로그 '바깥') |
성탄미사는 콜트 콜텍 공장에서 봉헌한다
마지막으로 장동훈 신부는 뜻있는 분들이 ‘노동자 두레 새빛 새날’에 참여해 주길 호소했다. ‘새빛 새날’은 노동자 권리향상과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다가 해고, 구속, 임금 가압류 등으로 생계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노동자 가족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기금이다. 현재는 특수고용 노동자 학습지 해고 노동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있는데, 순전히 소액후원자들의 자발적 기부에 의존하고 있는데, 여유가 생기는 대로 폭을 넓힐 예정이다.(후원계좌: 국민은행 647101-01-405174 예금주 장동훈-새빛 새날. 문의: 032-679-1308)
한편 인천교구 노동사목은 12월 7일 오후 7시 30분 인천교구청 지하강당에서 월례 수요미사 ‘사람’을 봉헌하는데, 이날은 문규현 신부를 초대해 ‘원전과 생태민주주의, 하느님나라’를 주제로 강연을 듣는다. 12월 10일에는 오후 5시50분 부천시청 3층 소통마당에서 정신철 주교 집전으로 부천노동사목 3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한다. 그리고 12월 24일 오후 8시에 콜트악기공장(인천 갈산역 1번출구)에서 오후 8시에 성탄밤미사를 노동자들과 봉헌하고 축하의 자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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