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래도' 당신 제자가 될 수 있겠는지 물으십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이 당신을 에워싸고 길을 가고 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의 지혜와 권위 있는 가르침, 온갖 기적들로 그분께 매료된 군중이 그분을 따르는 상황에 예수님이 냉정하게 들리는 도전장을 던지신 겁니다.
이는 곧이 곧대로 가족과 자기 자신을 미워하라는 의미라기보다, 본능적으로 끌리게 마련인 편향된 사랑을 좀 덜어내라는 뜻일 겁니다. "미워하다"라는 표현을 "덜 사랑하다"로 전환해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겠지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율법을 요약해 줍니다.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로마 13,9)
사도는 사랑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단언합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이웃이지요. 여기서 "이웃"은 복음 속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자기 목숨"에 대비되는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미워해야 한다고(덜 사랑해도 된다고) 한 이들은 그야말로 자기 울타리 속 관계인들입니다. 대체로 혈연이 이어 준 그들은 대단한 노력 없이도 본능적으로 위하고 보호하고 편들게 되는 대상들이지요. 자기의 분신이기도 하고, 또 사실 그들과 자신의 이익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한통속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이웃"은 이기심 너머에 존재하는 타자들로서 보편적 사랑이 필요한 존재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거슬러서, 본능적이고 편협한 사랑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루카 14,28)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루카 14,31)
예수님은 당신을 향해 몰려드는 군중에게 탑을 세우려는 이와 전쟁을 앞둔 임금의 비유 두 개를 들려 주십니다. 당장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달려온 이들에게, 중요한 결정에 앞서 헤아리고 숙고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알려 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
자기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게만, 자기 소유에만 골몰하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에 미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나와 상관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까지, 심지어 나를 해치는 원수에게까지 쏟아부어지는 사랑이고, 그분은 몸소 그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보편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제자의 조건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요청하시는 '보편적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이래도 나를 따르겠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곰곰이 숙고하고, 기꺼이, 흔연히 응답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누구나 하는 '우리가 남이가?' 사랑을 넘어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가 되는 보편적 사랑의 차원으로 성큼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울타리 너머로, 담장 너머로 사랑의 손길을 건네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