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떠나려는 가을은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뒤돌아서는 연인의 뒷모습 같기만 하였다.
조금만 더 머물러 달라고, 내게 준비할 시간을 달라하니... 마음약해진 그처럼 한주를 더 머물러 주었다.
불사르듯 봄같은 나날들을 섬에서 보냈으니 다시 돌아올 기약을 남기고 떠나려는 가을을 보내주려 하네...

겨우 10분이면 당도하는 뱃길이라도, 삼목선착장을 떠난 세종호는 웅웅웅~커다란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신도선착장을 향한다.
마치 어린아이 소풍가듯, 누구랄 것도 없이 배의 고물쪽에 자리를 잡고, 한껏 바닷바람을 쐬고... 사람먹거리에 익숙해 달려드는 바다갈매기에게도 인심을 베푼다.
너나할 것 없이 박배낭이 만만치 않아서 우리일행들의 짐만 모아놓아도 어디 이민이라도 갈 수 있을 터이다^^



박배낭메고 트레킹은 지리산이면 족하다며 냅다 버스를 타러 도망쳐 버린 건장한 남자들을 빼고 우리는 바스락거리는 융탄자가 깔린 산길을 오른다.
조금만 올라도 맞은편의 강화며 바로 잇닿은 자매섬인 모도, 시도가 한눈에 펼쳐진다.
낙엽마르는 냄새는 시골할머니 댁에서 늘 맡아지던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던 짚단의 냄새와도 닮아 있다.
방학이면 손주들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할머니에게서는 연기의 냄새와 늘 할아버지를 위해 담가두시던 약주의 냄새가 맡아졌다.
늦가을에 떠나신 조부모님들의 상여가 나가던 날.....
어린 나는 추수가 끝난 논가운데 쌓아 놓은 짚단더미에 숨어 들어가 몇시간을 지치도록 울었나니....
가을조차 서둘러 떠나려 들면 일찍 떠나신 두분이 떠올라 서운함에 가슴이 버석거린다.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착한 숲길이다.
봄이라면 이제 단풍들기 시작한 벚나무의 하얀꽃들이 팝콘처럼 터지며 꽃그늘 아래 우리를 반겼으리라...
선착장으로는 다시 섬나들이를 위해 도시를 벗어난 사람들을 태우고 부지런한 세종호가 오간다.


구봉산의 중턱에 위치한 구봉정은 영종도와 강화도가 모두 보이는 파노라마 뷰네^^
근사한 식당역활을 해줄 구봉정에서 라면과 막걸리 한잔으로 시장기도 달래고, 오늘처음 뵙는 회원분들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아들과의 시간을 위해 아빠는 시간을 내었고, 오늘 생일은 맞은 부부커플도 있으며, 모처럼 혼자 캠핑과 트레킹을 나선 분들도 여럿이다.
모두 각자의 사연으로 모였지만 서두르라고 재촉하지 않는 섬트레킹에서 우리는 아마 모두 친구이리라...


가을볕이 봄볕만 같더니, 때가 이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 모를 철쭉이 활짝이다.
귀한 철쭉이니, 눈맞춤도 제대로 하고 그 분홍빛을 사진으로도 남겨야 겠네.
이제는 음용수로는 부적합하다 하니, 시원한 성지약수를 기대했더니 그는 아쉬운 일....


이제 신도에서 다시 우리 숙영지가 되어 줄 수기해수욕장이 있는 시도로 건너 선다.
다리하나를 건너면 섬을 징검다리처럼 건널 수 있으니 서해처럼 섬이 옹망졸망하니 이 또한 즐거움이네.
가을빛이 여문 칠면초(함초)가 갯가로 풍성하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군데군데 예서 사는 생물들의 은식처가 가득하니, 진흙을 잔뜩 묻혀도 좋을 여름이라면 철벅이며 반나절쯤 아이처럼 놀아도 좋겠다.

바람이 말갛게 부는 시도로 들어서니 염전이 바다습지와 어울어져 넓게 펼쳐진다.
천일염은 작렬하는 뙤약볕아래 여름을 견딘 염부(鹽夫)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다 하였다.
자연인 바람과 햇살....바다가 허락하였다 하였어도 그들의 노고가 아니면 어찌 눈물같이 투명한 결정이 생기었을까....

드라마셋트장으로 지어졌다 하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세련되게 지어져 웅장하나 황폐하다.
다만 그 절벽에서 바라다 보이는 수기해변만은 절경이니...


여름성수기가 지난 철지난 해변에는 우리말고는 세동의 텐트말고는 호젓하다.
해송이 이쁘게 자라서 그늘도 낭창낭창한 해변위쪽에는 평평한 사이트가 온통 우리차지다.
좋은 환경에서 캠핑을 하려고 대여섯시간의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늘 떠나지만 어쩜 우린 집안에 파랑새를 두고 찾아 다니는 아이들과 다름없지 않을까..



요리에 일가를 이룬 친우들이 많은 덕분에 캠핑와서 이렇게 요리도 않고 한가해 보기는 처음....
어미새가 물어다 준 모이를 냉큼 집어먹는 아기새처럼 이렇게 어쩌다 한번은 대접받는 것도 신나는 일일쎄.
이제 섬으로 들어오는 배조차 끊어진 고요한 해변은 밤바다 특유의 알싸한 향과 보기드문 레드문이 떠올라 맘조차 설레게 만들고 있었다.

팀을 따라 초대를 받고 영국인인 제이미가 함께 캠핑을 한다.
제이미도 캠핑이 처음은 아닐 터이나, 우리가 먹는 방식을 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좀 많이 먹어야 말이지....
더군다나 음식의 간을 보라며 한수저로 서로 입에 떠넣어 주는 것을 보더니 두 눈이 똥글~~~~ㅎㅎㅎㅎ
얘야...한국사람은 이래야 정이 쌓인단다.
코리안 스타일로 캠프화이어를 하고, 노래 좀 해달라는 제이미에게 한국식은 손님이 노래를 먼저 한다며 비틀즈의 'Let it be'를 청하니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고, 잘생긴 영국청년은 은은한 모닥불 앞에서 나즉히 노래를 부른다.
그에 화답하는 우리의 노래는 은은한 '아베 마리아'....
별빛과 달빛으로 일렁이는 밤바다로 반주도 없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다시 섬구석구석으로 트레킹.
시도를 거쳐 오늘은 모도의 배미꾸미 조각공원까지 걸을 요량이다.
호텔처럼 으리번쩍한 펜션들 사이로 서툴게 '민박'이라고 써붙인 여염집 마당의 꽃들이 곱다.



말랑말랑 해진 가을햇볕 사이로 모도의 바람이 살랑인다.
조각공원에는 이일호 작가가 열정을 가지고 꾸몄다는 조각품들이 바다를 기대고 서 있다.
하염없이 벗거벚은 몸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이 있고, 서로의 육체를 부서져라 껴앉은 연인의 모습도 이채롭다.
아름답지만 인공의 조각들 사이에서 바다가 만들어 놓은 가장 어여쁜 조각품... 하얀 조가비들을 주워 가만히 손에 올려 본다.
참 햇볕에 데워져 참 따스하네.

아지랑이 처럼 건너편의 강화도가 일렁인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어느새 부지런한 섬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뭍으로 떠나야 하는 시간....
아쉬어 하듯 거센 바람이 일며, 파도가 높아진다.
홍시처럼 붉게 영근 가을의 태양이 어느새 떠나는 우리에게 안녕을 고한다.
어느 별이 총총한 날......
따스한 사케 한잔을 앞에 두고 다정한 사람과 두런두런 도시에서 살면서 고단한 이야기를 나누러, 다시 돌아오고 싶은 섬.
금방 다시 찾아올께.
이날 날이 맑아서 낙조도 정말 근사했어요.
너무 반갑네요. 신도 2리. 제 고향이거든요. 구봉산은 어릴적 제 놀이 동산이었답니다. 그땐 지금처럼 잘 닦겨진 트레킹 코스가아닌 구불 구불 가파른 좁은 산길이었지요. 정상쯤 다다르면 양옆으로 자라는 작은 나무틈으로 산새들이 참 시끄럽게도 울어대곤 했었답니다.
호젓하고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시군요. 함께 가셨으면 고향에 얽힌 이야기도 곁들여서 더 좋은 여행이 되었을텐데요. 다음에는 함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