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하고 실행 하라
마26;1-13 사56;1-8
시골에서 한 할아버지가 달구지를 몰고 장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교통경찰이 앞을 막으면서 달구지는 시내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따졌습니다. "왜 들어가지 못하는지 이유를 대시오!"
그러자 교통경찰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
할아버지! 차번호가 없잖아요?"
소달구지에 차번호 없다는 핑계로 거리가 지저분하니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달구지를 몰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도 교통경찰이 달구지를 막아서며 못 들어오게 막았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가락질 하면서 말했습니다. "
이봐! 이것을 보고 말해!"
교통경찰이 손가락질 하는 나무판을 보고는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달구지 나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차량번호: 경북 우-0125
할아버지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다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통경찰이 꼼작 못하고 아무런 말도 못하고 진입을 허락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첫째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준비합니다.
그런데 준비하는 것도 살펴보면, 준비할 것이 참 다양하기만 합니다.
1) 결혼을 앞둔 사람은 결혼식을 위해서 준비합니다.
혼수품을 준비해야 하고 신방을 꾸며야 할 집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갈아입을 옷이 있어야 합니다. 화장품과 세면도구도 준비해야 합니다.
거기에 여행에서 사용할 돈과 먹을 것까지 준비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래야 행복한 여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는 아무런 준비가 없습니다.
2)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슬픔을 당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중국의 여자 수영스타가 탕이가 있습니다.
당시 18살인 탕이는 수영선수로서 여분의 수영복을 더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젊은 기분에 자신을 믿었습니다.
그는 여분의 수영복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탕이는 여자수영 200m 자유형 결선경기에서 수영복 뒷부분이 크게 파열했습니다.
결국에는 중도에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탕이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후보로 지목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경기 도중에 수영복이 찢겨져서 실격 처리된 것입니다.
그런데 탕이처럼 수영 경기 도중 수영복이 파손되는 일은 많이 있었습니다.
08년 이태리 지중해대회에 (여)플라비아 조카리가 수영복이 찢어져 포기한 바 있고
그해 로마대회에 (남)릭키 베런스가 400m 계영에서 엉덩이를 노출해 실격되었습니다.
이렇게 꼭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지 못하면, 영광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우리가 사모하는 영원한 천국에는 준비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연합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왜요?
그만큼 유다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합할 사람을 찾은 겁니다.
당시 극도로 타락한 이스라엘에는 신탁이 선포 되었습니다.
하지만,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백성들은 애써서 이사야 선지자를 외면했습니다.
아니, 이사야 선지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눈을 피한 것입니다.
왜요?
지금 누리는 것이 좋은데 굳이 준비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된 자가 없었습니다.
아니, 하나님 마음에 든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베다니에 들르셨습니다.
베다니에는 예수님께서 나병을 고쳐주신 시몬의 집이 있었습니다.
시몬이 초청해서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인이 나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위에 매우 값비싼 향유를 부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값비싼 향유 옥합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준비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무엇이든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한 이유는 세상에 정의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정의를 행하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민족끼리 종을 삼았습니다.
희년이 되어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교묘한 방법으로 희년을 피해갔습니다.
그런데 공의를 회복하라고 선포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의를 지키는 일은 충분히 훈련되어 있어야 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천성이 악해서 항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하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부은 사건을 보십시오.
당시 중동지방의 처녀들은 결혼식을 위해 값비싼 향유를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이 자신의 결혼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결혼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 향유 옥합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도 귀중한 향유 옥합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말라야에 가면 높은 기류를 타고 넘는 새가 있습니다.
바로 높고 높은 창공을 아무렇지도 않듯이 유유히 헤엄치듯 나는 독수리 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산소가 부족해서 높은 곳은 고사하고 그보다 낮은 곳에도 힘이 듭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북쪽의 티베트 루트는 편안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차로 티베트까지 올라가면서 쉽게 적응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남쪽 네팔의 트레킹은 고산병과 맞닥트리며 죽음을 넘나들어야 합니다.
그만큼 힘들게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베이스캠프까지 가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떤 훈련을 어떻게 받았느냐의 차이에 있습니다.
독수리는 살기 위해서 많은 연습한 결과 히말라야를 쉽게 넘나들었습니다.
생존 본능이라는 목표가 훈련하게 만들었고 히말라야를 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냥 훈련이 아니라, 목표 있는 훈련입니다.
그 훈련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 훈련이 우리들을 열매 맺는 신앙생활로 인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 사전에 준비되어 있으면 다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셋째로; 아무리 준비를 잘 했어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헛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공의는 약자도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려면 마음으로부터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공의"는 때때로 손해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면 약자도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저들은 공의를 회복하라고 해도 하지 못한 겁니다.
아니, 충분히 훈련되어 있었어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공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머리 위에 향유 옥합을 부은 사건을 보십시오.
당시 중동지방의 처녀들은 값비싼 향유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어준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향유는 결혼을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니, 마음의 준비가 없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은 결혼보다도 더 소중한 판단이 서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사전에 준비해둔 옥합을 주님을 위해 깨트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평생 한번 있을 결혼보다도 주님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한 남자가 무술을 배웠습니다.
열심히 수련했어도 스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스승을 이겼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이긴 기쁨에 취해서 환호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쓰러져 있던 스승이 제자의 다리를 후려쳐서 넘어뜨렸습니다.
꿍하고 제자가 나무토막처럼 쓰러졌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따졌습니다.
열심히 수련해서 이기라고 해서 이겼더니 이럴 수 있습니까?"
그러자 스승은 손사래를 치시며 정색을 하면서 말씀하십니다.
"무술은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해. 이겼다고 생각하면 진거야!"
그 스승에게서 배운 제자는 그 말씀을 가슴에 새겼더니 특수요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술을 배우는 준비도 필요하지만, 마음의 준비도 중요한 것입니다.
넷째로; 사전에 준비해서 마음을 다스리기만 하면 다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잘 준비하고 마음을 잘 다스려도 행동이 없으면 끝입니다.
1) 하나님이 택한 유대인이었지만, 저들은 공의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강같이 흘러야 할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뻐도 겉으로 표시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도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끝장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회복하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부은 사건도 보십시오.
아무리 예수님을 소중하게 생각했어도 향유를 붓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좋아하며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여인들 중에 향유를 부은 여인은 한 사람입니다.
왜요?
마리아는 향유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주님께 부었기 때문입니다.
행동은 목표가 있을 때에 나옵니다.
목표는 마음을 다스려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행동입니다.
한 아버지가 나약한 아들을 유도 체육관에 보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아버지가 아이에게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
아빠, 넘어지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는 크게 웃으면서 아들에게 충고해 주었습니다.
"넘어지는 법을 배운 네가 대단하구나. 넘어졌으면, 일어날 수 있는 거란다.
세상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지만, 사람은 누구나 넘어지며 살아간단다."
그렇습니다.
넘어지는 법을 배운 사람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유도를 처음 배우면 집중적으로 훈련받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낙법입니다.
낙법을 제대로 배워야, 유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낙법은 잘 넘어지는 훈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연습된 사람은 툭툭 털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툭툭 털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한 사람만이 큰 성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실패 때문에 괴로워하십니까?
믿음으로 주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결론으로; 행한결과와 행치 않은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1) 행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심판이 선포된 대로 망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귀감거리가 되었습니다.
2) 반대로 향유 옥합을 부은 여인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증거했습니다.
아니, 성경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지금까지 좋은 교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남자 집사님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아이러니하게도 기계를 만든 달인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기계를 가까이 할 때에 안전사고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혼을 내셨습니다.
정작 본인은 안전사고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따라 기계가 말썽 부렸습니다.
동력연결 피혁을 감다가 그만, 팔이 감겨들어갔고 그날부터 술과 담배로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전에 훈련되고 준비된 행동은 사고를 막아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행하는 믿음이 되십시오.
잘 훈련되어 준비된 마음을 행동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