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고별
1 부처님은 아난을 따라 왼손에 바리때를 들고 성중으로 들어가 걸식을 마치신 뒤에 비구들과 같이 간다 촌으로 향하셨다. 그런데, 저 비사리를 떠나실 때에, 몸을 돌이켜 성을 돌아보시고 웃으시면서
"이것이 내가 이 성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다. 이 몸으로서는 다시 이 성에 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때 하늘에는 한 조각의 구름도 없이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며 소낙비가 쏟아졌다.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 땅에 거꾸러지며 탄식하였다. 이런 일은 여러 리차 인들 사이에도 전해졌다. 사람들은 놀라서 가슴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아, 슬픈 일이다. 중생은 이제부터 누구의 법에 귀의하여야 좋을까? 이제 가서 부처님을 만나 뵙고 세상에 더 계셔 주기를 애원하여야 하겠다.' 하고, 곧 수레를 몰아 성을 나서서 멀리 부처님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아난과 여러 비구들이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더욱 슬픈 생각에 황급하여서 부처님에게 달려가, 발에 절하고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이제 만일 부처님이 돌아가신다면, 일체 중생은 그 눈을 잃은 것과 같이, 다시 두 번 무명의 어둠길에 헤맬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의 도를 판단하여 가릴 수가 있겠습니까? 원하건대 일 겁이나 반 겁 동안이라도 수명을 더 이 세상에 머물러 주소서."
이렇게 세 번이나 애원했다.
2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유위의 법은 다 무상한 것이다. 설사 내가 이제 일 겁이나 반 겁 동안을 수명을 연장한다 하더라도 필경에는 죽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리차 사람들이여, 수미산이 높지마는 마침내는 무너질 것이요, 큰 바다가 깊지마는 또한 반드시 마를 때가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밝게 비치고 있지마는 오래지 않아서 저쪽으로 빠져 잠기고, 대지가 굳어 일체의 물건을 싣고 있지마는 겁이 다하여 업화가 타오르면 또한 멸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인 자는 모두 다 이별을 하게 마련이요, 과거의 모든 부처의 몸도 또한 이 세상을 떠나 돌아가셨다. 그렇거늘, 나 혼자만이 어찌하여 유위의 멸망하는 법칙을 거슬러 죽음을 면할 수가 있겠느냐? 너희들은 다만 내 일에 대하여, 그와 같이 걱정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보일 것이다."
모든 리차 사람들은 슬픔을 참고
"원컨대 말씀하여 주소서. 우리들은 꼭 가르치심을 실행하겠나이다." 하였다.
"리차 사람들이여, 너희들은 즐겁게 화목하여 서로 거슬러서는 아니 된다. 다같이 서로 가르치고, 착한 일을 생각하고, 계율을 지키고 예절을 실행하고,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친척과 친목하여, 각각 서로 순종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나라 안에 있는 조상이나 성현의 사당에 제사를 잘 모셔라. 그리고 여래의 정법을 받들고, 비구와 비구니를 공경하고, 깨끗한 신앙심을 가진 남녀를 애호하라.
사람들이여, 올바른 정법에 의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삿되게 백성을 학대하지 말며, 인과의 이치를 배우고 진실한 도를 믿어라. 설사 육신은 없어졌을지라도 정법 가운데 살아 있는 여래의 멸하지 아니함을 알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참괴의 옷을 입은 사람이다. 여래는 항상 그 사람을 두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오래지 않아서 도를 이룰 것이요, 그리하여 나라가 번영하고 백성의 살림이 풍족할 것이다. 너희들은 죽을 때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이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라."
"부처니이시여, 저희들은 죽을 때까지 반드시 이 가르침을 지키겠습니다."
3 부처님은 계속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들도 즐겁게 화목하여 물과 젖과 같이 색은 달라도 맞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항상 함께 모여서 도를 강론하고 또 계율을 지켜 범하지 말라. 스승과 상좌를 공경하고 고요한 곳에서 도를 같이 배우는 도반을 사랑하여라. 또 사람을 권하여 도량에서 법의의 예식을 잘 지내고 여래의 정법을 두호하게 하라.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재가한 보살과 같이 산업을 경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희롱의 말을 하지 말고 잠자기를 좋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그리고 수도에 아무 이익이 없는 일은 의논하지 말고, 악한 벗을 멀리 여의고 착한 벗을 가까이 하라. 삿된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법에 대하여 얻은 바가 있거든, 다시 힘써 항상 얻도록 마음을 쓰라.
비구들이여, 여래를 믿고 정법을 믿고 성중을 믿으라. 항상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많이 듣기를 즐겨하며, 마음을 어지럽게 말고 즐겁게 가르침을 실행하며, 기뻐게 지혜를 닦아라.
비구들이여, 몸으로는 항상 자비스러운 행을 힘쓰고, 입으로는 항상 자비스러운 말을 하고, 뜻으로는 항상 자비스러운 생각을 품어라.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들에게 보시하거든 이것을 평등하게 나누고 도법을 강설하기를 싫어하지 말며, 여래의 가르치심의 밖에 있는 세속법이나 외도의 법을 가르치지 말라. 그리고 다같이 여래의 도를 배우지 않는 자를 보더라도 미워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잘 교법을 판단하여 가릴 줄을 알고, 잘 의미를 깨쳐 익히되 기회를 잃지 말고 행하며, 행ㆍ주ㆍ좌 ㆍ와에 항상 법을 어기지 말라. 남을 위하여 도를 설하려고 생각하거든, 자기의 익숙한 특징을 헤아려서 가르치고, 사람이 와서 법을 들을 때에는 그 정도에 맞추어 적당한 교법을 설하고, 슬기로운가 어리석은가의 인품에 대하여 주의하라.
비구들이여, 너희들이 이것을 잘 행하면 공덕과 지혜가 날로 커질 것이다. 이렇게 하는 자야말로 나의 정법을 지키는 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