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도서관이 온다
네이버 도서관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최첨단 시대일수록 아날로그적 감성에 이끌리는 것일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전용 단말기로 전자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종이책이 주는 따스한 느낌은 대신할 수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차원을 넘어 종이의 감촉을 느끼고, 책장을 넘기고, 책의 두께를 가늠하고, 종이 냄새를 맡는 등 다양한 요소가 하나로 종합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고 책을 펼치는 것이 때로는 기분 좋은 휴식이 되기도 한다. 새롭게 등장한 도서관 두 곳이 반가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두 도서관 모두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빼어나고, 소장 도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희귀본이라고 하니 더욱 기쁜 일이다.
네이버 도서관(왼쪽)과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오른쪽)
도서관에 싱그러움이 가득, 네이버 도서관
네이버 도서관은 성남시 정자동에 자리한 네이버 사옥 안에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이 도서관이다. 왼쪽은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각종 잡지들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로 꾸몄다. 도서관은 신분증을 소지해야만 입장이 가능하고 음식물 반입은 금지된다. 대신 북카페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여유로운 독서가 가능하다.
네이버 도서관은 IT(정보통신기술)와 디자인 전문 도서관으로 2010년에 개관했다. 지난여름 잠시 문을 닫았다가 내부 구성과 도서를 정비해 11월 초에 다시 문을 열었다. 많은 지식과 정보가 디지털화하는 시대이자, 그런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터넷 기업의 선두주자 네이버가 종이책을 위한 도서관을 세웠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 노하우나 즐거움을 나누는 온라인 공간 '네이버'와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이 담긴 '책'이 서로 닮았다는 점에 착안해 사옥 로비 전체를 도서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ㄷ자, ㅁ자로 구성된 디자인 서적 코너
도서관 곳곳에 초록 화분이 많아 싱그럽다.
도서관 1층은 안내데스크, 로커, 신간도서, 디자인, 건축/인테리어, 소규모/독립출판 코너로 이루어졌다.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디자인 코너는 예술, 일러스트, 그래픽, 산업디자인/UX로 세분된다. 책장을 ㄷ자, ㅁ자, ㅡ자 등으로 배치해 마치 책으로 된 숲에 들어선 느낌이다. 책장 사이로 꺾어진 길이 마치 오솔길처럼 구불구불하다. 책장 위에 초록색 식물이 자라는 화분을 올려 실제로 싱그러운 향기가 난다. 디자인 서적은 국내 최대 수준을 자랑하는데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거나 관심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전 세계 주요 디자인 서적을 모아두었다고. 잡지들은 대부분 북카페에 있지만 디자인 관련 잡지는 디자인 코너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표지가 보이도록 비치해 원하는 잡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책장 사이 간이 테이블에 앉은 이용객
[왼쪽/오른쪽]소규모/독립출판 코너의 서적들 / 2층의 백과사전 코너와 이용객들
2층에는 종합백과/총서, IT 서적이 모여 있다. 두툼한 백과사전을 끼고 앉아 편안히 읽을 수 있도록 다락방처럼 꾸민 공간도 있다. 노트북을 연결하기 좋은 1인용 책상이 줄지어 있기도 하고, 책을 여러 권 펼쳐놓고 봐도 좋을 만큼 큼지막한 책상도 있다. 책상과 의자를 독서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 디자인으로 준비한 게 인상적이다.
2층 한쪽은 ‘장벽 없는 웹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한 손 혹은 두 손 모두 쓸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어떻게 웹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에서 내려다보면 초록 화분을 머리에 이고 선 1층의 책장들이 마치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도서관 곳곳에 싱그러운 화분들을 놓아 책을 읽다 지친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왼쪽/오른쪽]장벽 없는 웹을 경험하는 공간 / 책상과 의자마저도 감각적이다.
[왼쪽/오른쪽]네이버 도서관 정문 / 잡지들을 볼 수 있는 북카페
형식과 내용 모두 ‘디자인’에 독보적인,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둥지를 틀었다. 안국역에서 도서관까지 이어진 골목길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아 걷는 게 즐겁다. 북촌 한옥마을에 어울리게 한옥 건축 기법을 가미한 도서관 외관이 눈길을 끈다. 검은 전돌을 쌓아 올린 입구, ㅁ자형 중정, 한지를 입힌 창문과 대들보 등 전통적인 건축 기법이 곳곳에 살아 있다. 더없이 간결하고 모던한 건물이자 자연 채광과 여백의 미를 잘 살린 건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문 북 큐레이터와 함께 전 세계를 대상으로 디자인 관련 희귀본과 주요 도서 등 1만 1,500여 권을 선정했다고. 무엇보다 속도와 효율성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단순히 반응만 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갖자”며,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생명력이 강한 책에서 아날로그적인 몰입과 새로운 영감을 얻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현대카드의 철학이 마음에 와 닿는다.
가운데는 중정, 위에는 한옥 형식을 차용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왼쪽/오른쪽]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 희귀본은 장갑을 끼고 봐야 한다.
도서관은 현대카드 회원 전용 공간이다. 입장하려면 본인 명의의 현대카드가 있거나, 현대카드를 소지한 회원과 동행해야 한다. 만 19세 이상 성인만 입장할 수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안내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아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면 전시장이 나온다. 다양한 전시와 소규모 영화제, 강연 등이 열리는 공간이다. 지금은 윌리엄 이글스턴, 낸 골딘 등 세계적인 사진가들이 평범한 디지털카메라로 작업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 옆은 커피를 곁들여 책을 음미할 수 있는 북카페다.
도서들은 주로 2층에 집중돼 있다. 분야별로 고유의 색을 지정해서 책 라벨에 표시하는 등 남다른 운영 시스템을 갖춘 점도 독특하다. 2층은 1, 2, 3존으로 구역이 나뉜다. 1존에는 희귀 도서들과 디자이너 도서들이 있고, 2존에는 브랜드 디자인, 비주얼커뮤니케이션 관련 서적들, 3존에는 산업디자인과 건축/공간 디자인 서적들이 있다. 3층에 자리한 4존에는 사진 서적이 구비돼 있다. 희귀본은 매달 주제에 따라 전시 서적이 바뀌는데, 책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장갑을 끼고 봐야 한다. 책장 사이사이에 도서를 검색하거나 서가 위치를 출력할 수 있는 아이패드가 비치돼 있고, 현대카드에서 직접 제작한 감각적인 메모지와 책갈피도 함께 놓여 있다.
[왼쪽/오른쪽]집 속의 집에 자리한 책을 읽기 좋은 툇마루 / 도서를 검색하거나 서가 위치를 출력할 수 있는 아이패드와 메모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2층 내부
도서 내용과 인테리어의 유기적인 연관성도 보기 좋다. 예를 들면 건축 관련 도서 코너에는 집 모양의 구조물 ‘집 속의 집’이 있다. 한옥 마루처럼 생긴 공간에서 큰 건축도감을 펼쳐놓고 느긋하게 감상하듯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정을 바라보는 창을 따라 늘어선 푹신한 의자에서는 독서와 휴식이 동시에 가능하다. 3층 사진 서적 옆에는 다락방처럼 작은 공간이 있다. 북촌의 한옥 지붕 너머로 종로의 고층 빌딩들, 그 뒤로 남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지만 오래 앉아 있기 갑갑하다면 얼기설기 얽힌 골목길을 따라 한옥마을 산책을 나서는 것도 좋겠다.
한옥의 건축미를 고스란히 살린 도서관 안팎(사진 제공 :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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