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3620]王維(왕유)5율,終南別業(종남별업) 예서書法
<낙관글>
癸卯夏月高霞書(계묘 하월 고하 서)
계묘년 여름에 고하(가 쓰다).
작가 고하(高霞)
약력 · 중국 여화가협회 회원
· 산동서 미술가 및 서예가협회 회원
· 일조시 미술가협회 이사
· 일조시 서예가협회 감사회 부주석
· 동항구 미술가협회 부주석
終南別業(종남별업)
종남의 별장에서
※ 別業(별업): 별장. 별서(別墅)
-王維(왕유)
中歲頗好道(중세파호도) 중년에 자못 (불)도를 좋아해
中歲(중세): 평년작. 중년 경. 頗(파): 자못.
晩家南山陲(만가남산수) 늘그막에 종남산 근처에 살고 있네.
陲(수): 부근(근처). 경계.
興來每獨往(흥래매독왕) 흥이 일면 매양 혼자 (오고) 가며
勝事空自知(승사공자지) 유쾌한 일은 다만 몸소 안다네.
勝事(승사): 좋은 일. 훌륭한 일. 여기서는 유쾌한 일로 풀이함
行到水窮處(행도수궁처) 거닐다 물길 끝나는 곳에 이르면
坐看雲起時(좌간운기시) 앉아서 구름 이는 걸 바라보네.
偶然値林叟(우연치림수) 우연히 숲속에서 노인이라도 만나면
値(치): 만나다. 叟(수): 늙은이.
談笑無還期(담소무환기) 웃고 이야기하며 돌아갈 기약이 없다네.
<작가 소개>
盛唐(성당)의 風流詩人(풍류시인). 자 摩詰(마힐).
山西省 太原(산서성 태원) 사람. 동생 縉(진). 후에 아버지를 따라
산서성 남쪽의 永濟(영제)에 이사해 살았다. 조숙하여 9세부터 글을 지었고
開元(개원) 초인 21세에 進士(진사)가 되었으며,
右拾遺(우습유), 監察御史(감찰어사), 吏部郎中(이부낭중), 給事中(급사중) 등
40여 년 동안 평온한 官吏生活(관리생활)을 했는데,
다만 安祿山(안록산)의 난 때 포로가 되어 죽을 뻔했다가
아우 縉의 힘으로 구출되어 太子中允(태자중윤)으로 좌천되었다.
이 때부터 사상적 변화가 생겨 차츰 불교에 기울기 시작했고
詩禪一致(시선일치)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다시 승진하여
尙書右丞(상서우승)이 되어 그를 ‘王右丞’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적한 생활을 좋아하여 30세 전후에 상처하고도 再娶(재취)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長安(장안)의 終南山(종남산)에 별장 輞川莊(망천장)을 짓고
산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시뿐 아니라
음악과 그림에도 뛰어나 南畫(남화)의 祖宗(조종)이라 할 만큼 산수화에 능했다.
그는 자연을 觀照(관조)하고 순응하여 自然詩(자연시)를 지어,
孟浩然(맹호연)과 함께 陶淵明(도연명)의 맥락을 받아 당 나라 시의 한 유파를
이루었다 하겠으며, 문집으로 ‘王右丞集(왕우승집 10권)’이 전한다.
출처: (한시작가작품사전)
[출처] 終南別業|작성자 farh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