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을 주는 일/문신
횟집 주방장이 칼날을 밀어 놓고 흰 살을 한 점씩 발라내고 있다
무채 위에 흰 살이 한 점 얹히고 그 곁에 원래인 듯 흰 살 한 점이 또
얹힌다
곁을 주는 일이 이렇다 할 것이다
애초에 한몸이었다가 홀연 등 떠밀린 것들
이만큼
살 부비고 싶어지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애인이여
우리 헤어져
둘이 되어도 좋을 일이다
생살 찢는 아픔을 견디며 살이 살을 부르는 그 간절함으로
저만치서 오히려
꽉 채우는
그 먼 가까이를 곁이라 해도 좋을 일이다
<시 읽기> 곁을 주는 일/문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에겐 ‘그늘’도 있고 ‘곁’도 있다. 그늘은 모두의 선생님이 되실 만한 분이 가진 웅숭깊음이라면 곁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살뜰함이겠다. 사랑이 그렇듯 한 사람에게 곁을 주고 안 주고는 개인의 몫이다. 사랑은 이별의 독성까지 품는 맨살이므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곁만큼 따뜻하고 정결한 것은 없다.
회칼로 얇게 발라진 살점이 무채 깔린 접시에 한 점씩 얹히고 있다. 살점 옆에 살점이 또 얹히는 틈을 “곁을 주는 일”이라고 여기는 눈길이 새롭다.
원래 한몸이었던 살이 회로 떠져서 남남이 되어 버린 듯 살점으로 나뉜 사정이 쉽게 요약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접시 위에 가지런히 얹힌 틈을 유지하면서 살 부비고 싶은 목마름이 입술에 닿을 듯하다. 시는 이별의 시간을 입고 사는 게 아닐까. 얼마 전까지 한몸처럼 살았어도 이젠 남이 되어 “살이 살을 부르는 그 간절함”을 아프게, 자세히 바라본다.
한 사람을 오래 그리워하다 보면 이별이 깃든 적막 속에 몸이 사는 것일까. 시간을 비끼듯 “저만치서 오히려/꽉 채우는/그/먼 가까이”를 곁이라고 말하는 당신. 그 멀고도 가까운, 가깝고도 먼 곁이 새벽술로 달래는 속처럼 쓰라리다.
가까이 오라, 사람 몸같이 따뜻한 게 없다고 말하는, 회칼로 썰어도 또 썰어도 썰리지 않는 체온의 살뜰한 기억이여.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출판사, 2021.
첫댓글 눈 앞에서 회를 뜨는 모습을 보면 별 생각 없이 군침이 도는데 시인은 탁월한 영감으로 작품을 내셨네요.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