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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재앙 교훈
출 10: 1-20
아마 시골에 사셨던 분들은 메뚜기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입니다. 논에 나가 메뚜기를 잡아 병에 넣어 가지고 와 복아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메뚜기는 때로 무서운 재앙으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의 ‘대지’를 보면 중국에서 일어난 메뚜기 재앙이 나옵니다.
2004년 9월 1일 서아프리카 세네갈에서는 15년만의 최악의 메뚜기 떼 습격이 있었습니다. 문명이 발달된 요즈음도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메뚜기떼 재앙’이 임하면 수십억마리가 목초지를 황폐화시켜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메뚜기 떼가 기습하면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4분의 1을 잃게 되고 결과적으로 1천 5백만 명이 생계를 위협받는다고 합니다
.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치우는 메뚜기가 추수를 앞두고 덮치면 수확할 곡식 40~100%가 사라졌고 소·양들을 키울 목초지도 황무지로 바뀌어 버린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이런 메뚜기 떼가 우리 네 인생에도 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꾸어 온 삶의 터전을 황폐화 시켜버립니다. 수십년동안 보살펴 만들어 놓은 몸이 반란을 일으켜 심각한 병을 가져오게도 합니다
. 몇십년동안 충성을 다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애굽에 내린 여덟 번째 메뚜기 재앙을 통해 이런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이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이런 재앙같은 어려움이 임하면 우리는 먼저 재앙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둘째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조언 셋째는 재앙 당한 본인의 부탁에 귀를 기울려야 하는데 오늘도 메뚜기 재앙이 앞에 이미 임한 7가지 재앙과 다른 점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어떤 재앙이 임하면 하나님의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우리는 재앙에 무관심하지 말고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1-2).
어떤 어려움이 오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관심하고 무신경할 수 있습니다.
바로는 일곱가지 재앙을 내렸지만 조금 관심을 보인듯하지만 끝없이 하나님께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제 재앙을 내리는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앞에 일곱가지 재앙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연속되는 재앙의 목적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연속적으로 재앙을 내리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명확하게 애굽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애굽 사람에게는 재앙을 임하게 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집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1) 바로와 애굽의 권력자들이 7가지 재앙을 당하고도 계속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련할 정도로 바로 일당들이 자신들의 아집을 꺾지 않은 근본 동기에는 하나님('내가')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은 그분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표시요 증거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재앙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말로 해서 안됩니다. 무언가 특별한 기적을 내려야 믿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임하는 고난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미래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문흥수 변호사님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시고 부장판사를 지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장 친했던 바로 위의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답니다. 서울대 진학에 실패한 뒤 시름시름 앓다 병원에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추운 2월 어느 날 새벽, 숙모가 찾아와 어머니에게 형이 죽었다고 했답니다.
윗방에 누워 어머니와 숙모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 '주님, 주님, 주님'이란 글자를 수없이 써내려갔다고 합니다. 당시 불교를 믿었지만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기독교의 주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형을 화장터의 한 줌 재로 떠내 보내고 신앙 좋으신 선생님의 권위를 받고 영어로 시편 23편을 외우며 평안히 잠을 잤다고 합니다. 대학 시험 때까지 1000번도 넘게 외웠다고 합니다. 뜻하지 않는 형의 죽음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연 현상으로 평범한 일로 무관심하게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어 있는 뜻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화여고 교장하시고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현대고등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하신 정희경 장로님을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예수님를 믿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외도 동생이 충격을 받았답니다. 동생은 추운날 밖에 나라 음식도 먹지 않고 예닐곱 시간을 헤맸었답니다.
그날 밤 호된 감기로 일주일 넘게 앓았고 한밤중에 '으악'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동생은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시간이 지난 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뜻하지 않는 재앙이 확성기가 되어 믿지 않는 사람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7번째 재앙 때(9:16)에 하나님께서 바로를 왕으로 세운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그런데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기보다는 자신을 신이라고 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자신의 이름을 온 천하에 전파하는데 인생의 목적을 삼습니다. 하나님은 계속적인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시다는 온갖 증거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어떤 숨어 있는 뜻이 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믿는 사람에게 재앙의 숨은 뜻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바로에게 여러 번 참회의 기회를 주시면서 그가 항복할 때까지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애굽에서 행한 일들이 자손들의 뇌리 속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 오고 오는 세대에 두려운 증거로 기억되게 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또한 믿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롬10:17).
오늘날 말하면 예수 믿는 믿음의 자손들이 부모님께서 생생하게 경험한 믿음의 흔적을 통해 신앙의 계승을 하길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롬 10:17)”는데 기록된 신앙 간증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살기 원하는 것입니다. 후손들에게 대대로 하나님의 업적과 이적을 이야기 해 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고난 주시길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29:11)” 그러나 때때로 재앙같은 고난이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재앙같은 고난이 다가왔다고 낙심하며 하나님을 더 멀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오라는 신호입니다. 서양 격언에 "냇물에서 잔잔한 돌들을 치워버린다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라이스 여사는 '고난이야말로 변장된 축복'이러고 노래하였습니다. 고난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의지하도록 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은 대부분 세 종류입니다.
첫째는 연단으로서의 고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과 같은 인물이 당한 고난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노예로 팔려가기고 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그를 국무총리가 되게 하기 위해 훈련시킨 것입니다.
둘째는 자발적으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의를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피하면 얼마든지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자굴 속에 들어가기도 했고 풀무불 속의 시련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 전하다 죽는 스데반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셋째는 징계로서의 고난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당하게 되는 고난입니다. 다윗이 간음했다가 결국 아들이 죽습니다. 요나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히 12:8).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잠 3:12)"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히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히 12:10)"
지금 애굽에 내리는 재앙처럼 어려움과 고통에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리기 원하십니다. 가정에 간증거리를 주어 그것을 후손에게 전하여 특별한 신앙 경험을 하지 못한 후손들이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신앙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통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무엇을 교훈하겠습니까?
어려움을 당하면 이웃에 있는 사람들이 갖가지 말을 합니다.
2. 우리는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오게 하는 인생의 함정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3-11)
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신하들이 바로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절 이하를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합니다. 무엇을 전합니까? 세 가지를 전합니다.
첫째 어느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내 백성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셋째 만약 다시 거역하면 전무 후무한 메뚜기를 재앙을 내려 우박을 면하고 남은 식량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초토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뿐만 아니라 바로의 신하 모든 애굽 백성의 경제를 파탄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의 말을 듣고 있던 바로의 신하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일곱 재앙과 다린 처음으로 신하들이 반발합니다. 신하들이 태양신의 아들 바로에게 반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심각한 재앙을 이미 당하였고 앞으로 당할 것을 생각하고 왕에게 진언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진언입니까?
첫째 어느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의 함정이 되게 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구덩이에 빠져 멸망하게 하는 덫을 치우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내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7가지 재앙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폐허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바로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가족은 놓아두고 남자들만 가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파리 재앙 때 살펴보았듯이 바로가 어려우니까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다시 한 번 8장 25절을 보십시오. 바로의 술객들이 파리 재앙이 임하니까 하나님의 권능인 것을 인정합니다(8:19). 그 때 바로가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이 땅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혼합주의입니다. 나의 노예로 남아 하나님도 섬기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거절하자 두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적당주의입니다(28). 멀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메뚜기 재앙이 임박하자 신하들의 말을 듣고 세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남자들만 가라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입니다. 너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가족을 볼모로 삼아 결국 이들을 계속적으로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하들도 진언하는데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붙들겠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과 권력을 숭배하는 바로입니다. 자기가 섬기는 무수한 신들이 쓰러져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 우상은 신으로 섬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노예 노동을 통해 애굽을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신하들도 이제 그들이 애굽에게 유익이 아니라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 함정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정이라고 말하면 그 함정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남을 증오하고 있는 함정, 나의 인생을 망치게 하는 나쁜 중독의 함정, 내 건강을 해치게 하는 나쁜 습관의 함정, 신앙생활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세상과 타협하는 차지도 덟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의 함정 이런 함정들을 빨리 청산해 버려야 합니다.
탤런트 김동현 장로와 가수 혜은이 권사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감수광'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찬양 사역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장로님이셨는데 한동안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잘 나가는 가수였습니다. 사람이 그릇된 길로 가는데도 승승장구하면 쉽게 신앙의 바른 길로 돌아 서기 힘듭니다. 그러다 친정 어머니의 사망, 남편의 사업 실패, 자궁적출 수술 등으로 우울증이 겹치며 자살 충동에 시달렸었다고 합니다. 계속적으로 재앙 같은 고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 품으로 돌아와 수요예배와 금요예배, 새벽기도회 등을 남편과 함께 나가면서 신앙을 회복하고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가까이 가까이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빨리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싫어하시는 것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그 만큼 인생은 황폐화되고 진정한 기쁨과 평안도 잃어버립니다. 언제 또다시 재앙이 다가올까 불안하게 살아갑니다.
전신마비 미식축구 영웅 스콧 브룸필드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분입니다. 한때 관중을 매료시키는 '천재적인 선수'로 불렸습니다. 그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3쿼터 경기 1분7초를 남기고 그는 상대팀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전신마비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답니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말했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답니다. 풋볼선수로 인생의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는데 한 순간에 인생은 뒤틀려 버렸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그에게는 가족 외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수술 후 이틀째였는데 중환자실에 30대 후반의 불청객이 나타났답니다. 그는 제지하는 아내에게 애원하듯 말했답니다. 자신의 아들이 브룸필드 선수를 가장 존경한다며 사랑하는 아들의 영원한 스타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결국 면회를 허락받았답니다. 그는 휠체어에 한 아이를 태우고 나타났답니다. 8세 소년은 백혈병을 앓고 있었답니다. 소년은 브룸필드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기도했답니다. "나의 스타 브룸필드씨, 힘을 내세요.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거예요. 저는 3개월밖에 살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기도해요. 저와 함께 기도하세요."
소년은 병이 나으면 브룸필드와 같은 풋볼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답니다. 갑자기 브룸필드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답니다. 교만했던 삶, 감사를 몰랐던 무례한 인생, 액세서리처럼 치장됐던 신앙…. 갑자기 회개기도가 터졌답니다. 그는 소년에게 약속했답니다. "내년에 신시내티로 돌아가 선수로 다시 뛸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하거라. 그때는 반드시 네가 응원을 와야 한다." 그는 기적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답니다. 소년도 치료됐었답니다. 그는 신시내티로 돌아와 선수로 복귀했고 백혈병 소년의 응원이 이어졌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생을 어린이를 돕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 풋볼을 사랑하는 어린이등에게 복음과 꿈과 희망을 선물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사랑과 치유를 증거할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 버릴 것 빨리 버려버리고 정리할 것 빨리 정리해 버려야 합니다. 바로의 신하의 말처럼 어느 때까지 버리지 못한 그것이 우리의 함정이 되게 할 것입니까? 내가 제거하면 작은 고통이 되지만 하나님이 제거하면 깨닫게 하여야 하기 때문에 큰 재앙이 됩니다. 우리를 구덩이에 빠져 멸망하게 하는 덫을 치워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게 하는 교만과 우상, 이기심의 함정을 벗어 던져 버려야 합니다. 바로의 신하들은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우리도 아직도 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불나비처럼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함정은 내가 없애야 징계가 아니라 복의 그릇이 됩니다.
재앙이 다가오면 재앙을 당한 사람의 도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재앙을 당하는 핵심에 있는 바로를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음성을 들려주고 있습니까?
3. 우리는 인생의 재앙이 다가오면 진정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12-20)
세 번째 이미 임한 일곱가지 재앙과 다른 점은 처음으로 바로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애굽 땅 위에 지팡이를 드니까 여호와께서 동풍을 불게 하십니다. 메뚜기 떼들은 혼자 힘으로는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바람의 힘으로 먼곳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당시 애굽에 임하는 메뚜기 떼들은 남서지방(리비아, 에디오피아 등)으로부터 남풍 또는 서풍을 통해 날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식과 달리 동풍이 불어 메뚜기 떼는 아라비아 사막 북부로부터 애굽으로 날아온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바람까지라도 조절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신 10:14; 욥 41: 11; 시 24:1; 50:12).
보통 메뚜기 떼는 어느 특정한 지역만을 강타합니다. 그런데 애굽 전역을 휩쓸어 버린 것입니다. 메뚜기 재앙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초자연적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땅이 어두울 정도로 날아와 푸른 것은 남기지 않고 다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바로가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는 곤충의 피해로부터 막아주는 곤충의 신 세라피아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라피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바로의 반응은 세가지입니다.
16절 보세요. 내가 하나님과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인정하는 것은 이미 우박 재앙 때 인정했습니다(9:27). 마음속 깊이 회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아닙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번 만은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조금 진전된 것같습니다. 세 번째는 죽음만은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자칭 신이라고 하는 바로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기도를 부탁합니다. 세라피아가 곤충의 재앙을 피하게 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미 개구리 재앙 때도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출8:8). 파리 재앙 때도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8:28). 우박 재앙 때도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출9:28). 그럴 때마다 모세는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응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는 또다시 강퍅해졌습니다. 이 정도 되면 모세는 그의 기도부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증오하고 싶을 것입니다. 나를 핍박하고 모독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잘못되면 고소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기도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동풍을 일시에 강렬한 서풍으르 바꾸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서풍을 불게하여 애굽의 온 지경의 메뚜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홍해에 몰살시켜버렸습니다. 기도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동풍을 서품으로 일순간에 바꾸어 버립니다. 끝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아내가 변화되지 않는다고 자녀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서풍을 불게 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서풍을 불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공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 버리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백인경찰이나 군인이 털어놓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 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청문회 자리에서 반드 브렉이라는 경찰관이 자기의 죄를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이 18세 소년을 총으로 쏘고 시체를 불태운 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그 시신을 바베큐처럼 불에 그슬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8년 후 반드 브렉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소년의 아버지를 체포했는데, 불쌍한 그 아내는 경찰관들이 남편을 장작더미에 묶어놓고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을 붙이는 광경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들과 남편을 차례로 잃은 노부인에게 법정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판사는 물었습니다. “반드 브렉 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부탁한 후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반드 브렉 씨는 제 가족을 모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많습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한 달에 두 번 우리 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나는 반드 브렉 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것을 반드 브렉 씨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법정에 가득찬 흑인들이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찬송을 부릅니다. 그 때 반드 브렉은 찬송을 듣지 못했답니다. 그 사랑을 감당치 못하고 졸도해 버립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그렇게 용서할 수 있었겠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고 몸소 행했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야 말로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바로같은 인간이라도 끝없이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재앙은 더 이상 재앙이 아니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덟째 재앙 - 메뚜기
출 10: 1-20
주일 낮 예배시간에는 출애굽기를 강해하는 중입니다. 그중에서 요즈음에 읽는 내용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기 직전의 기록으로,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애굽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의 위대성과 뜻을 계시하시는 중입니다.
10장 1-2절의 말씀은 지금까지 행하신 일곱 가지 재앙들과, 앞으로 행할 세 가지 재앙의 정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셨는데, 세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당시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사람이 만든 신과는 다른 참 신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려는 것이며, 셋째는 그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와 그들의 자녀 손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섬기게 하려고 피, 개구리, 이, 파리, 피부병,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가 죽는 재앙 등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축복에 대한 설교를 좋아하는데 재앙에 대하여 설교를 계속하니까 재미가 없어 보이지만,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들어야 하고, 애굽 사람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해방의 기회가 준비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는데,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축복이요, 그를 거역하고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중에 가장 큰 일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일과 그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일과 앞으로 있을 그의 재림인데,
이보다 더 큰 표적도 없고 이보다 더 큰 재앙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종교적 권력을 유지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재앙이었고, 그분의 부활은 그를 못 박아 죽인 사람들에게 더 큰 재앙이었으며, 그분의 재림은 끝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최종적인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믿는 자에게는 축복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재앙이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여덟 번째 재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을 찾아봅시다.
1. 재앙을 내리기 전에 항상 경고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들어가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였습니다.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들에 너희를 위하여 자라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또 네 집과 네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에 가득하리니” 하나님이 최후통첩처럼 하신 말씀입니다.
‘내일’ 이라는 말에는 24시간의 여유를 두어 경고하면서 그가 선택할 시간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징계하실 때에도 경고를 하신 뒤에 그래도 듣지 않을 때에 경고하신 대로 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경고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경고를 듣고 고치면 용서와 사랑을 받습니다.
2. 불순종 자에게는 재앙을 경 밖에 대기시켜 놓으시는 분입니다.
“네가 만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거절하면 메뚜기가 경내로 들어간다는 말은 경 밖에 대기시켰다는 뜻입니다.
신30:15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 앞에 대기시키신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라."
하나님은 각 사람 앞에 무엇인가를 대기시켜 놓으셨습니다.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대기시켜 놓으시고, 하나님을 싫어하고 죄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재앙을 대기시켜 놓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두려우시고 주밀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지고도 우리를 칭찬하고 복주실수 있고, 그 무엇을 가지고도 우리에게 재앙과 절망과 심판이 되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주관자 하나님이십니다. 마른하늘에서 대형 우박도 내리시고 땅 밑에서 불이 올라오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지난 17일 필리핀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나서 20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1995년 1월에는 일본의 고베 지방에서 지진이 일어나 약 6000여명의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당시 일본은 자기들의 토목과 건축기술은 세계 최고의 것이며, 지진에도 끄떡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2004년 12월26일 오전 7시58분, 인도네시아 북쪽 바다에서 진도 8도의 강진이 발생했고 그것은 해안으로 엄청난 물을 밀고 와서 쓰나미라는 해일이 되어 16만 명을 희생시켰습니다. 2005년 10월 8일에는 파키스탄에서 지진이 일어나서 수 만 명이 죽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내 앞에서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선을 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네 앞에 재난이 엎드려 기다린다." 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문밖에 뭔가를 대기시켜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의 문 앞에는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까? 축복인가요? 아니면 징계인가요? 여러분 앞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선 인가요? 아니면 악인가요?
우리 앞에 무엇을 대기하게 할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명령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선과 행복을 대기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부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속을 일과 불행과 재난을 대기시켜 놓으셨습니다. 말씀 따라서 주님과 동행하며 삽시다.
3. 이번은 재앙 전에 그들이 순종할 것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바로에게 와서 이렇게 간청하였습니다.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을 보내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니이까."(7)
바로의 신하들은 모세를 함정이라고 했는데 덫이나 올가미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모세와 하나님의 진노가 올가미 같이 점점 조여들어오며 자신들을 망하게 하고 있는데도, 왕은 자기 권위에 도취되어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왕은 왕궁에만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당하는 재앙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서 바로가 순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본 신하들이 하다 못해서 왕에게 사실대로 아뢰었습니다.
그들의 간청을 들은 바로가 모세를 불렀습니다.
바로가 묻기를 "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러 갈자가 누구누구냐?" 모세는 대답합니다. "우리가 남여노소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그러자 바로가 거절합니다.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가게 함과 일반이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그는 불가하니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의 구하는 바니라." 너희들 전부를 보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그들이 다 광야로 나갔다가 도주할 것을 예상하고 그렇게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나가게 하시되, 당당하게 그들이 어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 보내기까지 바로를 압박하시는 중입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가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모세는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고 그날이 오기까지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그럴 수는 없고 우리의 남녀노소 전부가 가야 한다고 버텼습니다. 여호와께 경배를 드리는 일은 몇 사람을 대표로 보내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모든 자가 다 나와서 경배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녀노소 어린아이까지 다 가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삼일 밤 예배는, 몇 사람 집사와 장로만 모여서 교인들을 대표하여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아침 한 끼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고, 성도는 한 주간에 한 번만 예배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시시로 기도와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에도 모여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이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에게는 그렇게 큰 복이 됩니다. 예배 시간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안가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온 백성이 다 가야한다고 바로의 제의를 거절하자 바로는 몇 명만 은 보내 줄까 했던 마음마저 닫혀 버렸습니다.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도망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바로의 경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적반하장입니다. 어리석고 악한 경영을 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누가 누구를 향하여 경고를 한단 말입니까? 마음이 강퍅한 바로는 신하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내어 보내지 않았고 더 큰 재앙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기 전에 언제나 우리에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며,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바로처럼 교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에 비교하여 거부하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도 망할 사람이 없습니다.
바로는 모든 이스라엘이 우양과 함께 가버리면, 자기들의 궂은일을 해줄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생각만 하고 있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한번 치시면 얼마나 큰 피해가 올 줄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즉 물질만 알았지 하나님 자신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모든 일이 내게 좋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바로는 여덟 번째 재앙을 부르고 말았습니다.
4. 시작된 여덟 째 재앙. (12-)
결국 하나님은 준비해 두셨던 재앙을 내리셨고, 우박재앙 때에 피해를 당하지 않았던 밀과 나맥과 모든 것을 치게 하셨습니다.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그리고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을 불게 하시니 아침에 미쳐 동풍이 메뚜기를 불러들인지라."
5-6에는 메뚜기의 피해가 어떠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자라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메뚜기가 많아져서 모든 식물을 먹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메뚜기는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데, 그 떼가 날면 햇빛이 가려져서 캄캄 할 지경이며, 그것들이 한번 내려앉아서 먹기 시작하면 땅이 안보이고 푸른빛 나는 것은 모두 갉아먹고, 나무의 껍질까지 벗겨먹기 때문에 메뚜기의 떼가 한번 지나가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15절에는 그 피해상황을 기록하였습니다. "푸른 것은 남지 않았더라."
이 한 문장이면 그 피해가 어떠했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푸른 것은 생명의 색갈이요 희망의 상징인데 희망이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재앙이 어떻게 왔는지 아십니까? 동풍에 밀려왔습니다. 언제나 불던 동풍입니다. 그렇게 불었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동풍이 하나님이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해서 불게 하시자, 셀 수 없는 메뚜기 떼가 그 동풍을 따라 몰려왔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언제나 그의 곁에서 그를 비춰주던 태양도 해가 되게 하시고, 언제나 불어 시원하게 하던 동풍도 재앙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재앙은 어떤 특별한 것으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것, 내게 익숙한 것, 내게 유익하던 것, 내가 선택한 것이 재앙이 되게 하시니 막을 수가 없고 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19절에 보면, 그들이 회개했을 때 서풍을 불게 하시어, 메뚜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홍해로 밀려가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어떤 방법이든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가로막을 사람이나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온 천하에 오직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신론자들의 눈에는 끝까지 하나님의 내리신 재앙이 아니라 자연현상처럼 보이도록, 동풍과 서풍을 매개체로 이용 하셨습니다. 택함 받은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망하게 되는 것이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눈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고, 하나님의 자비가 느껴지고 하나님 사랑이 체험된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아십니까? 그분께서 약속하신 천국이 믿어지고 우리의 죄 사함과 구원이 믿어지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아십니까? 이것이야 말로 복중에 복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을 드리고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성도가 됩시다.
5. 뒤늦은, 그러나 짧은 뉘우침 (16이하)
다급해진 바로는 급히 모세를 불렀습니다.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17)
언제는 "너희 경영이 악하다."고 하던 바로가 "나의 죄를 용서하라" 하는 것을 보니 다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줄 몰랐다니 답답한 일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당하지 않을 징벌과 재난을 다 당하고 터진 뒤에야 뒤늦게 회개하는 척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음과 미련은 고칠 약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만 용서하라’는 말은 또 무엇입니까? 미련하면 보이지도 않고 깨달아지지도 않는 법입니다. 어디 이번만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지난날에 모르고 지은 죄 뿐만 아니라, ‘나’ 라는 인생의 생각과 행동 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대부분 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만’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우리는 그런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한가지의 죄만 고백하고, 다른 것은 잘못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뻔뻔하지 않았습니까? 따지자면 우리의 모든 행위가 다 죄악된 것입니다.
바로가 할 일은 자기의 어리석음과 하나님께 도전한 것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뿐입니다. 그가 회개하면 재앙은 다시 올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회개는 말로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스라엘을 내어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물질적인 손해를 볼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로만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런 모습은 아닙니까? 진심으로 순종하면 손해를 볼까봐서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면서 여전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행동을 바꾸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것은 손해를 본다면 보겠다는 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손해가 온다면 감수하겠다고 결심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손해를 보게 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순종의 행동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즉시에 메뚜기를 처리해 주셨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내보낸 것이 아니라, 잘못했다고 말만 했을 뿐인데도 하나님은 메뚜기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아무 유감도 없으신 것 같습니다. 바로와 애굽이라는 나라를 없애기 위해서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리려고 내리신 재앙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쓸어 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않았더라."(19) 하나님이 얼마나 깨끗하신 분인가를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깨끗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지나간 잘못을 완전하게 잊어주시고, 깨끗하게 용서하시고 복만을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주저 말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봅시다.
메뚜기가 갑자기 온 하늘과 땅에 가득히 몰려온 것도 기적이지만, 한 순간에 사라진 것도 기적입니다. 그 많은 메뚜기를 보내신 것도 기적이지만, 갑자기 서풍을 불게하사, 메뚜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처치하신 것도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우연증식의 메뚜기였다면 사라지는 기적은 불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불러오신 것이었기에 말씀 한마디로 소멸하게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에게 신속하게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능력의 하나님을 두려워합시다. 이번만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근본적인 죄를 고백하고 행동을 고쳐서 용서와 인도를 구합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사합시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 믿어지고, 그의 은혜의 손길이 보이고, 그의 진노의 손길도 보인다는 사실을 감사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손아래 있음을 감사합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숨을 내걸고 애굽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죄악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 힘쓰는 성도가 됩시다.
그래서 우리 앞에 늘 축복과 기쁨과 선하신 인도가 대기하고 있는 그런 삶, 하나님의 자녀답게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