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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예수 예수
찬양 이세연 목사님
[2021년 8월 1일 주일기도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높여 경배하며 찬양 드립니다.
저희의 기도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한 전도의 사명을 위해서, 가정과 일터에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허락하신 달란트로 충성하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는 주님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배하는 시간마다 말씀의 계시로 충만하게 하시고, 깨닫는 지혜가 삶의 용기가 되게 하셔서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옵소서.
더위와 코로나로 인해서 지쳐있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 위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부어주시고, 경제와 질병과 관계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서 고통 받는 지체들 위에 회복의 은총이 임하게 하옵소서.
대한민국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지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내고 있는 북녘에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기억해 주옵소서.
기근과 억압에 신음하는 북한 땅에 자유와 평화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루 속히 복음 안에서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통일 된 한국이 세계 복음화의 중심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7월 30일(금)
생명의 삶 Q.T. 묵상 - [환난의 시간에]
●성경본문 : 시편 20편 1~9절
읽기만 해도 힘이 솟는 말씀입니다.
단어 하나, 글씨 한자마다 하나님의 기운이 느껴지고 사랑이 와 닿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릅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상황은 ‘환난’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을 봅니다.
환난의 날을 지날 때, 그저 이 어려움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거나 어떻게든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에게 응답하시고 다른 이들 가운데에서 그들을 높이 드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실함을 하나님께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밑도 끝도 없는 간구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응답하실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 자비, 신실함, 온전한 의뢰 등이 삶의 예배로 하나님께 드려질 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환난 가운데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의 소원이 성취되고 모든 계획이 이뤄집니다.
다윗은 무능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능력자보다 우월했습니다.
사람이 가난하고, 벼들고, 약하고, 갇혔을 때 하나님은 그 약함을 통해 역사하셔서 당신의 강함을 세상에 알리십니다.
우리의 무능과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기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함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약한 우리를 통해 진정한 능력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있습니다.
병거와 말입니다. 그것들은 강하고, 빠르고, 파괴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의지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병거는 언제나 부서지고, 말은 언젠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됩니다.
자랑거리가 사라지면 인생에 남은 것은 허탄함과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지금 강해보이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영원히 기쁨과 영생으로 인도할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에게 회복은 없습니다.
그들은 일단 뒤처지면 앞선 자들을 따라잡을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꽃이 떨어지면 다른 꽃이 필 수는 있어도, 그 꽃이 다시 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보잘 것 없는 자들이, 분명 엎드러져 죽은 것처럼 보였던 자들이 다시 일어나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높이 올려집니다(8절).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나고, 세상은 언제나 그들 때문에 놀라게 됩니다.
그들은 힘이 없지만, 그들은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한 자들을 부르십니다.
가진 것이 없고 마음이 부서진 자들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 가운데, 내 삶의 모든 곳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격이 내 모든 것의 표준입니다.
그런데 표준을 잃은 교회와 성도를 향해 세상은 거룩함과 정직, 사랑과 나눔과 헌신 따위를 점점 더 기대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도 세상과 똑같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영향력을 잃고 담대함을 잃었습니다.
세상은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지성이라 말하는 과학, 철학, 인문학 속에 휴머니즘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우스운 일이며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내로 견디고 지혜를 간구하십시오.
거룩과 정결을 지켜내십시오.
담대함을 잃지 마십시오.
영적 전쟁에 강한 군사가 되십시오.
사탄의 예상을 깨부숴 사탄을 황당하게 만들어 봅시다.
쓰러지지 말고 싸우는 당신의 용기에 사탄은 매우 당황스러워 할 것입니다.
이번이 고비입니다.
그러나 고비를 넘기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삶이 환난입니다.
그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의 글을 한 번 읽고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이유가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21년 7월 28일(수)
생명의 삶 Q.T. 묵상 - [승리 주시는 하나님]
●성경본문 : 시편 18편 32~50절
시편 18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윗은 지난 세월 수많은 환난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자신을 강하게 하셨다는 사실에 찬양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힘으로 그에게 띠 띠우시고, 그의 길을 완전하게 하셨고(32절), 그를 높은 곳에 세우셨고(33절), 싸움을 능히 감당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34~35절).
우리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데는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담금질하시고 강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끊임없이 전쟁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을 전쟁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그때마다 모든 원수를 무찌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37~39절).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승리를 경험했고, 다윗에게 맞선 자들은 모두 티끌처럼, 진흙처럼 파괴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40~41절).
또한 다윗의 소문이 온 땅에 퍼져 이방들이 다윗에게 항복하고 그를 섬기는 일도 벌어졌습니다(43~45절).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고 일도 잘 풀리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다윗을 기억합니다.
만약 다윗에게 계속되는 전쟁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이후에 다윗 왕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신 이유는 그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와는 살아 계시다”는 선포로 마지막 부분을 시작합니다(46절).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인자가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있으리라는 축복으로 끝납니다(50절).
다윗은 원수들에게 보복해 주시고, 이방 민족들을 복종하게 하시며, 악한 자들에게서 그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확신했습니다(47~48절).
다윗은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 고난이 하나님의 복을 얻는 기회가 되었음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제껏 경험하고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와 승리가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지게 되기를 바라며, 강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재물보다, 건강보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의 유산을 남기기를 바랍니다.
2021년 7월 27일(화)
생명의 삶 Q.T. 묵상 - [다윗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경본문 : 시편 18편 20~31절
다윗은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다윗의 어떤 점을 보시고 그를 기뻐하셨고, 큰 영광을 허락하셨는지 본문을 통해 깨닫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19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자신을 기뻐하셨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20절),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24절).
첫째, 다윗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의로움』 때문이었습니다.
두 곳 모두 의로움을 ‘손이 깨끗하다’는 표현으로 강조합니다.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 규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21~22절).
‘의’는 ‘죄’의 반대말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 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은 여호와의 도를 지켰고(21절), 그 규례를 자기 앞에 두고 율례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22절).
다윗은 어떻게든 자신을 죄악에서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23절).
물론 그도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죽인 가증한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고, 인구조사를 강행해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자 겸손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했을 뿐만 아니라 징계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이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 의로움으로 받아들여졌기에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다윗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신뢰함』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현상을 보면 오히려 악인이 번영을 누리는 것 같고,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보응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25~27절).
사실 사울을 피해 도망할 때만 해도 다윗은 자기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의뢰했으며, 하나님은 그의 등불이 되시고, 흑암을 밝히셨습니다(28절).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골리앗 앞에 나섰고, 자기 군대보다 강한 적들과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모든 장벽을 뛰어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29절).
다윗은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지키시는 분임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아무리 두려운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더라도 담대히 주님을 위해 나설 수 있었습니다(30절).
이렇게 하나님만을 의뢰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반석이 되어주셔서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31절).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면 《용기》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나 혼자 말씀대로 살다가 손해 보지는 않을까, 따돌림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 많은 성도가 신앙 지키기를 결단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 모든 역경을 딛고 영광을 얻은 비결은,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신다는 믿음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처세술이나 자기 계발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있지만 참된 성공과 번영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진정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의 비결은 말씀대로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며 도우시고 지키실 것이며, 결국은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2021년 7월 26일(월)
생명의 삶 Q.T. 묵상 - [참된 성공의 비결]
●성경본문 : 시편 18편 1~19절
시편 18편은 분량면에서 119편과 78편에 이어 세 번째로 긴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열 개 연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세 번에 걸쳐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제4연까지만 다루는데 각 주제는,
제1연(1~3절) : 사랑 고백과 구원의 확신,
제2연(4~6절) : 시인의 곤경,
제3연(7~15절) : 여호와께서 오심,
제4연(16~19절) : 하나님의 구원.
『구원』의 의미로서,
첫째, 하나님의 구원은 ‘성전’에서의 응답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성전에서 들으셨다고 고백합니다(6절).
둘째, 하나님의 구원은 ‘창조주의 능력’입니다.
‘꾸지람’과 ‘콧김’으로 혼돈의 물을 제어하십니다(15절).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이런 창조주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은 ‘안전과 자유’입니다.
물에서 건지시고(16절), 넓은 곳으로 인도(18절)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묘사하면서 사용한 은유들, 즉 힘, 반석, 요새, 피할 바위, 방패, 뿔, 산성 등은 모두 군사적 의미지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떠돌며 여러 전투를 수행하던 시절을 반영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3절).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든 위기에서 구해주셨으며 결국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을 지켜주셨다는 이 고백은 결코 무심히 듣고 넘길 수 없는 절절한 고백으로, 우리도 이런 고백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영광과 권능으로 응답하셨다고 찬양합니다.
최선을 다해 가능한 모든 표현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지진과 화산(7~8절), 구름과 바람(9~10절), 빽빽한 구름과 흑암과 번개와 뇌우(11~12절), 우레와 번개(13~14절) 등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물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밑바닥이 드러났다고 표현할 정도로(15절) 하나님의 권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옷깃을 여미고,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온 맘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위험과 이길 수 없는 적들을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높은 곳에서 손을 펴서 도와주셨고(16절), 자기보다 강한 자들에게서 건져 내시며(17절), 재앙의 날에도 의지할 곳이 되어 주셨다고 노래합니다(18절).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과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하고, 자기에게 공로를 돌리지 않았으며, 늘 하나님을 의식했습니다.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모든 일을 기도하며 행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다윗이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인생, 가치 있는 인생, 평탄한 인생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고백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성공의 비결입니다.
[2021년 7월 25일 성령강림절 후 제9주]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을 힘입어 회개할 때마다 용서의 감격을 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마귀의 시험에 빠지고, 불신앙으로 정욕에 사로잡혔으며, 탐욕으로 죄악 된 삶을 살아온 것을 회개합니다.
갈등과 고민이 있을 때 성경 말씀을 읽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구를 찾고 세상적인 방법만 찾았던 것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딤후1:7)입니다.
더위로 인해서 몸과 마음과 신앙이 지치지 않게 하시고,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서 믿음이 무뎌지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도 은혜의 강물에 우리의 심령을 씻고자 주님 앞에 섰습니다.
교회에 가고 싶고, 예배드리고 싶은 간절함으로 주일을 지키며,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어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게 하옵소서.
더위가 곡식과 열매를 익게 하는 것처럼, 고난이 영혼의 아름다운 선율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의의 최후 승리를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7월 23일(금)
생명의 삶 Q.T. 묵상 - [삶의 예배]
●성경본문 : 시편 15편 1~5절
사람들은 연장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 또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만날 때에는 예의를 갖추기 마련입니다.
옷을 단정하게 입고, 말과 행동에도 격식을 갖추려고 합니다.
그런데 온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인 하나님을 뵈올 때에는 다른 것들이 필요합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가 누구입니까?
‘장막’과 ‘성산’은 성막이나 성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성소에 예배하러 올 자격이 있는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릴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물이나 화려한 의식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결하고 죄가 없는 마음과 영혼을 요구하십니다.
성막과 성전이 존재하던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잘 섬기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 내면을 《정직, 공의, 진실》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2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한마디로 ‘경건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개인의 수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포함합니다.
이웃의 허물을 드러내거나 이웃에게 악을 행하거나 이웃을 비방하는 행위를 하는 자가 정결한 영혼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3절).
그런데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경건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배하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대해야 하겠지만, 망령된 자,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하게 행하는 자들까지 존중하는 태도는 경건함이 아닙니다(4a절).
예수님이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믿음의 지체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본을 보이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정결한 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욕망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4b절), 불의한 방법으로 얻는 소득을 멀리하며, 무엇보다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5a절).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선 자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정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정적임을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선물을 가져오는 것보다 바르게 성장하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더 기뻐하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많은 제물보다 우리의 정결한 삶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물은 우리의 변화된 삶입니다.
삶의 예배가 온전하지 않으면 어떤 예배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정결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축복합니다.
2021년 7월 22일(목)
생명의 삶 Q.T. 묵상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성경본문 : 시편 14편 1~7절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악인들과 의인들입니다.
악인은 ‘어리석은 자’(1절), ‘죄악을 행하는 자’(4절)로 지칭됩니다.
반대로 의인은 ‘지각이 있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2절), ‘의인’(5절), ‘가난한 자’(6절)로 지칭됩니다. 이들은 ‘내 백성’(4절), ‘이스라엘’(7절)로 불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3절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이런 인간 이해는 바울에 의해 다시 강조됩니다(롬 3:10~18).
그렇지만 본문은 악인과 의인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악인이며, 어떤 사람이 의인입니까?
‘어리석은 자’와 ‘죄악을 행하는 자’가 악인입니다.
악인의 특징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부패하고 가증한 행실을 보여 줍니다(1절).
선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끼칩니다(4절).
이런 악인에게 임하는 것은 큰 두려움, 즉 하나님의 심판입니다(5절).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은 ‘지각이 있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 ‘지혜로운 자들’, 하나님의 교훈을 전하는 사람,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의인의 세대’(5절)와 함께하시며, 그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6절).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십니다(2~3절).
의로운 자가 있는지 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도의 삶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삶을 채우는 것은 십자가와 순종이며,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악에서 떠나라”(벧전 3;11),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강조합니다.
가벼운 악이라 해도 쉽게 우리 곁은 내주지 마십시오.
평생에 걸친 악 그리고 악인과의 싸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악하고, 우리 안에도 죄의 본성이 강하게 우리를 공격합니다.
또한 악인들은 거칠 것 없이 주먹을 휘두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악과의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 때문입니다(5절).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의인들을 향해 고정되어 있고, 하나님의 손은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보호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입으로만 시인하고 행위로는 부정하는 가증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딛 1:16).
오늘도 자신의 구원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오직 진리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길로 행하기를 바랍니다.
2021년 7월 21일(수)
생명의 삶 Q.T. 묵상 - [어둠의 시간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성경본문 : 시편 13편 1~6절
우리는 번민과 근심 속에서 한숨을 쉬고 현실을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힘을 이겨 낼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만 매몰되어 우리 안에 하나님이 두신 소망과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끔 하나님 앞에 한탄을 쏟아 놓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데 하나님마저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와 한탄을 단순히 불신앙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삶의 무게는 무겁고, 세상은 너무 가혹하며, 우리는 너무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탄만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했고,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응답했습니다.
어떤 이는 번민과 근심이 올 때 더 깊은 수렁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박차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 차이는 “무엇을 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3절).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눈과 마음을 열어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망의 잠’에 빠지는 상태를 두려워 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마저 자신을 잊은 것 같다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큰 불안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시간에 성취될 것을 믿고 기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응답이 조금 늦어지는 것 같다고 해서 낙담하지 마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은 당신의 타이밍에 권능과 영광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성도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성도의 실패와 환난은 대적에게 승리요 기쁨입니다(4절).
대적이란,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의 힘을 의지하며 죄와 탐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의인은 곤란을 겪을 수 있어도, 결코 실패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우리의 실패와 대적의 승리는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싸우시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어려움은 잠깐일 뿐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결국 구원받을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이라는 강력한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다윗 역시 주님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그저 마음 안에 있는 몽글몽글한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역사를 만드는 동기이며 통로이며 힘 자체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존재와 구원 모두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어둠의 시간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성도의 어둠이 영원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안에 참된 빛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그 빛 가운데 거한다면 하나님은 꼭 크신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주께 고백 하게 하소서
아름다운 주의 그늘 아래 살며 주를 보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 선포 될 때에 땅과 하늘 진동 하리니
나의 사랑 고백 하리라 나의 구주 나의 친구
부드러운 주의 속삭임 나의 이름을 부르시네
주의 능력 주의 영광을 보이사 성령을 부으소서
메 마른 곳 거룩해 지도록 내가 주를 찾게 하소서
내 모든 것 주께 드리리 나의 구주 나의 친구
주의 은혜로 용서 하시고 나를 자녀 삼아 주셨네
나의 사랑 고백 하리라 나의 구주 나의 친구
나의 사랑 고백 하리라 나의 구주 나의 친구
[2021년 7월 18일 주일기도문]
긍휼히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지난 한 주간도 죄와 탐욕의 세상에서 비틀거리며 살아온 죄인들의 회개와 고백을 통해 용서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시대와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주셔서 어떤 경우에도 믿음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힘든 세상에서 하나님의 살피심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지혜와 명철을 얻는 복이 있게 하옵소서.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만으로 하나님을 멀리했고, 타락으로 방종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기심으로 편리를 위해서 자연을 파괴했으며, 자비와 긍휼을 등지고 나만의 이익을 우선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가벼이 여겼고, 주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이 모든 죄를 회개하오니 어둔 죄악의 길에서 헤매는 저희를 광명의 길로 인도해 주옵소서.
주일예배조차 성전에 모이기를 주저해야 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겨자씨 믿음을 주셔서 수많은 영혼들이 모이는 천국 백성으로 가득한 열매 맺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7월 16일(금)
생명의 삶 Q.T. 묵상 - [순종과 축복]
●성경본문 : 출애굽기 39장 32-43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성막 제작을 마쳤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이스라엘은 모세로부터 그 명령을 받았습니다.
명령대로 만든 성막을 하나님께 직접 가져가지 못하고, 모세에게 가져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직접 대할 수 없고, 그 뜻을 직접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이스라엘에게 전달하며 율법과 말씀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죽은 이후에도 그가 기록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 뜻을 이루는 데에는,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따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있었던 것처럼, 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끄는 이는 누구입니까?
이 말씀 저 말씀 많이(!) 듣는다고, 내가 듣기 좋은(!) 말씀을 듣는다고 과연 하나님을 말씀을 들은 것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면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성막 제작자들은 지금까지 제작한 성막을 이루는 각 부분들을 열거하여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막의 벽과 지붕의 역할을 하는 기구들이 언급되고, 이후에는 지성소 안에 들어갈 기물들, 성소에 놓일 기물들, 뜰에 놓일 기물들, 성막의 뜰을 구분하는 세마포 휘장과 기둥들과 기구들이 언급됩니다.
이후 마지막으로 제사장이 입을 옷들까지 성막의 도구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목록은 이후 레위인들이 성막을 이동할 때에 각 물품을 점검하기 위해서도 편리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며, 이 목록이 채워지면 ‘준비 완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금 “여호와의 명령하신 대로”라는 말이 두 번 더 반복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백성으로 쓰임 받았음이 드러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마친 모든 일을 보고 자신이 시내산에서 본 양식 그대로 구현되었음을 확인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축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빌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복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 예배할 장소를 만들기 위해 순종했듯이, 우리도 예배의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목사님을 모세처럼 여겨 선포하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철저히 말씀에 근거하여 성막을 만들었듯이, 우리도 세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철저히 말씀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 습관적으로 짓는 죄악은 없는지, 교회를 세워가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받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2021년 7월 14일(수)
묵상 -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룩한 이름]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9:1~21
2021년 7월 15일(목)
생명의 삶 Q.T. 묵상 - [여호와께 성결]
●성경본문 : 출애굽기 39장 22-31절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직무를 수행할 때 구별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설계해 주신 ‘거룩한 옷’을 입어야만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옷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고, 옷 자체에 어떤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셨기에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거룩한 옷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에봇 받침 겉옷은 전부 청색으로 짜되, 어깨 사이에 구멍을 내고, 구멍 주위에 갑옷 깃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겉옷은 이은 데가 없이 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에봇 받침 겉옷이 전부 청색으로, 그리고 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정결함’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정결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순결함’과 ‘거룩함’으로 옷 입지 않으면 빛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겉옷의 아렛단에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로 수놓은 석류를 달고, 그 사이에 금방울을 달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겉옷 밑에 금방울을 달라고 하셨을까요?
대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 방울 소리를 통해 한순간이라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방울 소리를 통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금방울은 대제사장이나 백성 모두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세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에봇을 받치는 겉옷 다음으로는 가는 베로 속옷을 만들고, 세마포로 두건과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실로 세마포 속바지들을 만들고, 사색 실로 수놓아 띠를 만들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 모든 것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갖추어 입으면서 자신의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특별한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 자세를 돌아보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순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겼습니다.
그리고 이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에게 무엇보다 성결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성결하지 못한 상태로 나아간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물론 대제사장도 인간이기에 하나님 앞에 설 만큼 거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한 패를 제사장 머리의 관에 부착하게 하시고 그가 하나님 앞에 성결한 것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죄를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죄악으로 가득해져 갑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늘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구약의 제사장이 거룩한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한 직분을 수행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때는 『거룩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이 입을 거룩한 옷을 만들도록 지시하십니다.
이는 제사장 직분이 거룩함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 직무가 특별함을 나타냅니다.
이제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제사장들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듭니다.
특별히 본문에는 대제사장의 옷을 만드는 과정과 방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세세한 지침까지 알려 주셨고, 그 말씀에 따라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 옷은 계속 ‘거룩한 옷’으로 불립니다.
그 이유는 제사장이 거룩한 성소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때 입기 때문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이 거룩한 옷을 입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는 날마다 거룩함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거룩함의 옷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거룩함이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덮어 줍니다.
제사장의 옷은 크게 일곱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에봇은 제일 겉에 있는 옷입니다.
금실, 청색, 자색, 홍색 실,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었고, 앞판과 뒷판을 견대로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띠를 만들어 허리에 둘러서 밀착시켰습니다.
에봇의 견대에는 이스라엘의 12아들 이름을 새긴 호마노를 달았습니다.
이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 모두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후에 이 에봇이 종종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사사기 8:27, 17:3~5, 18:14, 18:17~20 참고.
에봇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용될 때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에봇도 그저 물건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모든 외형적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면 어떤 것도 거룩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제사장 의복 가운데 두 번째로 제작한 것은 흉패입니다.
흉패는 에봇과 같은 재질의 정사각형 모양 천에 12개 보석을 가로 3줄, 세로 4줄로 물려 만들었습니다.
이 12개의 보석 역시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흉패는 에봇에 고정됩니다.
그래서 아론은 어깨와 가슴에 이스라엘 12자손의 이름을 달고 나아가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12지파와 약속하셨음을 선포하는 메시지로서,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자랑이며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혈통으로는 이스라엘 12지파에 속한 자들이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백성이 되었고, 그분 안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름이 새겨진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제사장의 에봇에 새겨진 이스라엘 12아들의 이름은 지워질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겨진 우리 이름은 절대로 지워지거나 사라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21년 7월 13일(화)
묵상 - [정직하게 자원함으로]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8:21~31
모세는 이다말을 세워서 성막을 짓기 위해 들어간 모든 물자의 목록과 비용을 기록하고 정산하는 회계 업무를 맡겼습니다.
이다말은 아론의 넷째 아들입니다.
세 명의 형들이 있었음에도 이다말에게 귀한 역할이 주어졌고, 모세의 명령을 따라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훗날 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때 성막을 걷고 짐을 꾸리는 레위인들의 직무를 감독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합니다(민 4:28, 33).
성막 건립과 관련해서는 《브살렐과 오홀리압》 두 사람의 이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했지만, 특별히 두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받았으며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재능과 재주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막 건축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책임지고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책임과 권위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는 리더십』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다스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리더십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막과 모든 기구를 만드는 일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금, 은, 놋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발적으로 바친 예물이었습니다.
각각의 무게를 알면, 계산이 빠른 분들은 오늘날 어느 정도의 금액이 될지 알 수 있을겁니다!
금 29달란트 730세겔은 약 1,000킬로그램, 은 100달란트 1,775세겔은 약 3,420킬로그램, 놋 70달란트 2,400세겔은 약 2,400킬로그램입니다.
이렇게 예물의 양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많은 예물을 『자원』하여 감당하면서 차고 넘치는 은혜가 있었음을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은 ‘정직하게 자원함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는 자신의 직무에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 앞에 정직한 태도는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성막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에 모든 백성이 순종하자 흘러넘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행한 하나님의 기대하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 ‘정직하게 자발적으로 순종’ 하십시오.
구별된 거룩한 삶에 실패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지나친 탐욕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명예와 권력과 돈과 쾌락이 인생의 우선순위를 차지하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위대하게 여기는 죄 가운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광야를 벗어나야 합니다.
고난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 깊은 영적인 우물을 파내려 갈 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한다면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2021년 7월 4일
2021년 7월 12일(월)
묵상 - [번제단, 물두멍, 성막 뜰과 울타리]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8:1~20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가 있는 상태로는 누구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막 뜰 안으로 들어올 때 제일 앞쪽에 있는 번제단과 그 다음에 위치한 물두멍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이런 준비를 하게 하십니다.
아울러 성막 뜰의 포장을 통해 사람이나 짐승의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십니다.
번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성막 뜰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기구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번제단에서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 있는 자의 예배와 기도와 예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한편 오늘날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은 예수 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이스라엘이 번제단에서 죄 문제를 해결한 후에 성소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세요.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는 뿔을 연결해 만들었습니다.
이 네 뿔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는데, 희생 제물을 단에 붙들어 매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 여기에 희생 제물의 피를 바르기도 했습니다.
열왕기상 1장 50절에 의하면, 번제단의 뿔을 잡으면 죽음을 면하기도 했습니다.
사가랴는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고 노래했습니다(눅 1:69).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구원의 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생명을 얻습니다.
세상에는 이걸 붙잡아야만 살고 놓치면 죽을 것만 같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 듯한 것도 결코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번제단의 부속 기구인 통, 부삽, 대야, 고기 갈고리, 불을 옮기는 그릇은 다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제단에는 놋 그물을 만들어 단의 가운데 높이에 설치하고,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만들고,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 단 양편 고리에 꿰어 메게 하고,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었습니다.
이 부속 기구들은 이스라엘이 죄를 범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 불로 태워 드릴 때 사용하는 기구들입니다.
이 희생 제물은 남김없이 모두 태워 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자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만한 죄라도 남김없이 소멸시켜 버려야 합니다.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는 물을 담아 놓는 곳입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나 제물을 드릴 때 이곳에서 손발을 씻음으로 정결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돈으로도, 힘으로도, 벼슬로도, 지식으로도, 어여뻐도, 맘 착해도 못가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갈 수 있습니다.
성막은 거룩한 장소이기에 울타리를 만들어 뜰의 범위를 표시해 사람이나 짐승의 출입을 제한했습니다.
거룩함을 위해서는 부정함을 철저히 멀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성막 뜰은 하나님 백성이 속죄의 은총을 누리는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집, 거룩한 교회에 나아옴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워져 가기를 바랍니다.
[2021년 7월 11일 주일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믿습니다.
거룩한 주님의 날에 세상에서 구별하여 불러내시고, 주의 제단에 나와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여전히 구별된 거룩한 삶에 실패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지나친 탐욕에 사로잡혔고, 무모한 자존심으로 교만하게 생활한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명예와 권력과 돈과 쾌락이 인생의 우선순위를 차지하도록 방치함으로 세상을 더 위대하게 여기는 죄 가운데 살아온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죄의 결과는 삼사 대까지 저주로 이어지며, 축복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배가 되는 것을 알게 하셔서, 이제부터는 정의를 목말라 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반복되는 잘못 속에 빠지지 않게 지혜와 지식과 총명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고난은 우리의 앞날이 그만큼 거창하다는 신호임을 알게 하셔서 더 깊은 영적인 우물을 파내려 가게 하옵소서.
사탄은 우리의 영혼에 해를 입힐 무기를 다양하게 갖고 있지만, 우리 대신에 모든 적과 싸우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포기하지만 않으면 어떤 공격에도 이길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 나라를 뒤덮은 코로나 전염병에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가정과 사업을 강건케 하시고 보호해 주옵소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7월 9일(금)
묵상 -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소망입니다]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6:8~38
모세로부터 여호와의 명을 전달받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을 총동원해서 회막을 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해서 드린 각종 예물을 사용해서 성막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회막을 처음으로 만든 것입니다.
《덮개의 의미》
회막 덮개는 네 종류였습니다.
가장 안쪽에는 청색 자색 홍색 베실로 그룹을 아름답게 수놓은 덮개를 씌웠고, 그 위로는 염소 털과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해달 가죽으로 만든 덮개가 차례대로 덮였습니다.
회막의 외부 덮개로 사용된 해달 가죽은 평범한 것이어서 외부에서 보면 회막을 일반 장막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안쪽에는 화려하고 조화로운 그림으로 천상의 아름다움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회막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것없고 연약해 보입니다.
교회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인정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 모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교회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이 넘칩니다.
또 교회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회막을 건설하시고 그곳에 임하셨듯이, 지금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펼치길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각자가 맡은 소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겉모습만 화려하고 정작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성도들 개개인이 더욱 깨어 기도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널판의 의미》
널판은 조각목을 재료로 모두 48개가 제작되었습니다.
한 널판마다 두 개의 은 받침을 만들어 그것으로 널판을 고정했습니다.
그리고 조각목으로 만든 널판을 모두 금으로 씌웠습니다.
조각목은 아카시아과에 속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좋은 환경이 아닌 사막과 같은 척박한 곳에서는 휘어지고 구부러져 자랍니다.
볼품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조각목을 잘 깎고 금까지 씌워 회막을 만드는 귀한 재료로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이 조각목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전에는 죄인으로서 초라하고 소망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조각목이 물 없는 사막에서 힘겹게 살아가듯이 죄인이었던 우리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힘겹게 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택해주시고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널판을 은받침으로 견고하게 고정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다른 지체들을 온전하게 세워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세워 나가기 위해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고, 서로 연합하여 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소망입니다.
악하고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워가기를 바랍니다.
2021년 7월 8일(목)
묵상 -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5:30~36:7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의 전체 설계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막을 완성시키려면 ‘브살렐과 오홀리압’같이 기술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의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헌신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브살렐, 오홀리압 같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성령으로 채우시고,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막의 완성은 단순히 사람의 노력과 수고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들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큰 사역의 열매를 거뒀을 때 사람들에게 칭찬과 영광을 돌리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주시는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사역의 결과에 대해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사역에 필요한 능력을 주실까요?
성막을 세우기 위해서 정교한 솜씨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모양을 예민하게 살펴서’ 그대로 만들려는 ‘순종의 마음’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마음을 가진 자를 부르시고 당신의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자원하여 순종하는 이들에게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막을 건축하는 일은 수많은 작업과 정교한 솜씨가 동원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꾼을 부르시되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기술과 지혜를 나눠 주셨고, 그들이 모두 협력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 연합하고 하나 되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온전한 연합과 협력을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이런 연합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가 맡은 사역과 능력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서로 맡은 일들의 경중을 따지기도 합니다.
혹은 사역의 성취에 대해 자기 공로를 주장하려는 자세를 고수해 다른 지체의 마음을 상하게도 합니다.
사탄은 언제든지 우리의 연합을 깨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할 때 서로의 관계 가운데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지체를 판단하는 마음이 들거나 서로를 비교하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마음을 모아 연합하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사람들을 통해 이루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합당한 사람을 부르고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실 때 비로소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도록 간절히 구하십시오.
지체들을 하나로 묶으시고 사역의 성취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2021년 7월 7일(수)
묵상 - [마음의 감동, 자원하는 순종]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5:20~29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명령을 받은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말씀을 듣는 현장에서 즉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따라 실천할 때 비로소 순종이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 순종해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 등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지만 모세의 말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중재자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뜻대로 행하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예물과 헌신을 준비시키시면서 ‘마음에 원하는 자’ 곧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예물을 바치게끔 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자원하는 자들이 회막과 제사장 예복의 재료로 쓰일 예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예물을 바친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나 특정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데는 남녀 구분이 없었습니다.
각기 가진 형편과 상황에 따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일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몇몇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모든 백성이 참여하여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찮은 일도 없고, 하찮은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능력 안에서 함께 참여함으로 세워져 나가는, 우리는 모두 존귀한 사역자입니다.
우리는 물질을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도,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질을 헌납함으로써 하나님께로 돌아온 그들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이 살던 광야는 모든 물건이 귀하고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의 참된 주인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하나님을 위해 언제든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즐거이 헌납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 땅에 펼쳐 가실 것입니다.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힘과 수고가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그들 중 부녀자들은 손수 실을 가지고 천을 짰고, 힘 있는 자들은 목재를 날랐으며, 어떤 이들은 금을 녹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아낌없이 헌신한 이들에게 성령께서는 지혜와 기술을 더하셔서 성막이 완성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는 물질과 수고를 드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의 헌신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마음에 감동이 있고, 자원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주일기도문]
2021년 7월 6일(화)
묵상 - [엄숙한 안식일]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5:1~19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세상의 다른 나라와 ‘다른 정체성’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가장 특별한 삶의 규례였습니다.
이 규례를 따라,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일하지 않아야 합니다.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말라는 명령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조리나 조명을 위해 불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명령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 조차 피우지 말라는 명령은, 어쩌면 매우 불편하고 지키기 힘든 규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례였습니다.
안식일의 핵심은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은 인간이 생존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식이리에 일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일 할 경우에는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 규례는, 하나님의 백성은 일해서 얻은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라면 자제해야 합니다.
성막을 짓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바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런데 성막 건립 비용을 백성에게 강제로 부담시키지 않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 즉 자신의 소유 중에서 정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여호와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질이나 시간의 ‘양’에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어떠한지를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에 기쁨과 진실함을 담았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성막에 사용될 기구들을 만드는 일에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능을, 성경은 ‘마음이 지혜롭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기술적 능력만을 이야기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재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깨닫고, 그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합니다.
모든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은 각자 달라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공동체 안에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봉사와 섬김 등에 성도들은 재능(은사)을 따라 참여해야 합니다.
각자 다른 재능이 어우러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가운데 임하시고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역에 기꺼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2021년 7월 5일(월)
묵상 - [하나님과의 교제를 훈련하라]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4:27~35
하나님은 모세가 깨트려 버린 십계명을 다시 기록해 주십니다.
모세는 이 같은 일을 하나님 앞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감당했습니다.
육체적으로 엄청난 한계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했던 모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보이는 광채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를 보며 두려워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빛이 자신들의 어둠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의 빛이 비취면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을 인식하고서 빛을 피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의 악함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해서 빛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 광채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어둠을 몰아내시도록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용서받은 죄인들을 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삼으시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도록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마치 친구처럼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를 대면하여 만나 주시고 당신의 능력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그 능력이 그의 얼굴의 빛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인도하는 막중한 사역을 맡았습니다.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연약한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힘과 지혜 그리고 사랑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는 영적 원리와 방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오롯이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최고로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삶에서도 발견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새벽,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본을 따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훈련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고 사명을 맡기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하늘의 능력을 덧입게 하십니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며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넘치는 축복을 베풀어 주옵소서.
만족과 즐거움이 넘치게 하시고, 날마다 탐스러운 열매가 익어가게 하옵소서.
죄와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회를 등지고, 예배를 등지고 살아온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저희가 등져야 할 것은 세상이 주는 여러 가지 유혹인 것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며 살아왔습니다.
괴로움과 후회를 더할 뿐임을 알면서도 불평과 불만을 일삼고 죄악의 가라지를 방치했습니다.
열하루 만에 도착한 약속의 땅, 가나안 이었지만 ‘불순종’은 사십년의 광야 생활을 가져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거룩한 교회에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기도와 찬송과 말씀과 감사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영혼을 단장하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며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순간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주의 선한 영을 주사 우리를 가르치시고, 주의 만나가 우리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영생하는 물을 마심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옵소서.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피 흘리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7월 2일(금)
묵상 - [중보의 기도]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3장 12~23절
영적 위기에 빠진 사람들, 삶의 위기를 맞은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중보기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과 더 이상 동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가시적 형상으로 대체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언약 파기는 물론이고 관계 자체를 파경으로 몰고 갔습니다.
거짓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여호와의 임재의 도구와 근거로 삼으려 했지만, 정작 그 우상을 통해 그들이 그토록 눈으로 확인하고 소유하려 했던 실제적 여호와의 임재를 상실하고 마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모세의 중보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진멸당하는 상황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셨고, 이에 모세는 다시 중재에 나섭니다.
중보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죄 용서’입니다.
약속의 땅을 주시되 함께 가지 않겠다는 선언에,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땅은 축복의 장소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알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에 결코 죄인과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반드시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모세를 중재자로 세우신 것처럼, 지금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의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모세는 친구같이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만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중보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중보기도가 필요한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그들이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때때로 가족이나 이웃을 향한 중보의 기도가 오래도록 응답되지 않아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해 드리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멈추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중보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세가 드린 중보기도의 최종 목표는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기를 거부하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약속의 땅도 아무 의미가 없음을 강력하게 호소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어떤 복보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가장 큰 복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중보기도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의 치유 등을 위해 중보하곤 합니다.
이런 현실의 문제들 역시 중요한 기도 제목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기도를 놓친 것입니다.
사람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란 지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약속의 땅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성도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가족과 이웃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중보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2021년 7월 1일(목)
묵상 - [중보]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3장 1~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없는 틈을 타서 아론을 협박하고, 아론은 못이기는 척 하며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그들은 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와 더불어 광란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모세가 그들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했지만 ‘방종’에 빠진 그들은 집단 반발을 하고, 결국 레위 지파를 통해서 3천명의 죽음으로 제정신을 차립니다.
모세는 다시 시내산에 올라 이스라엘 백성이 ‘금 신’을 만들어 숭배한 일을 자백하며 용서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를 수용하셨고,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는 뜻을 약속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이스라엘을 데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시내산을 떠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잊지 않으시며, 여전히 이행하고자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가게 하시겠다는 약속도 하십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여러 족속을 쫓아내실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겠다고 하시면서도, 정작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은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이유보다도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무서운 결과 때문입니다.
즉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도중에 또다시 그들이 여호와께 방자히 행할 경우 그들을 진멸하시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그들과 동행하지 않으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장신구를 떼어 내라는 여호와의 준엄한 명령을 준행합니다.
장신구를 떼어 내고 단장하지 않은 것은 과거에 여호와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 관계가 취소되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슬퍼함’으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를 파경으로 몰고 간 책임을 인식하고 애곡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에 놓여 있던 우상을 제거하는 행위를 동반합니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세속적 가치관과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 버리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잘못된 인생의 목적이나 그릇된 삶의 방식 같은 세속적 당장품을 지닌 채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세상에서 익힌 옛 습관과 가치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삶의 목적으로 삶을 수 없습니다.
세상 욕심과 정욕에 흔들리지 않고 영과 육이 성결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두 마음으로 나뉘어 있지 않은지 살피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참된 회개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강과 자유를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보류된 상황에서, 모세는 회막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모세가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감당했던 것은 ‘중보자’의 역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다 꺼지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교제하셨습니다.
모세의 역할을 통해 이스라엘이 은혜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회막으로 갈 때 ‘모두 일어나’ 자신들의 장막 문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회막에 하나님이 구름기둥으로 임하자 그 영광스러움을 보고 경배했습니다. 예배했습니다.
여호와를 앙모하십시오.
일어나십시오.
바라보십시오.
예배하십시오.
죄에 대해 슬퍼하는 감정에만 머물지 말고, 변화된 삶의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결심을 기뻐하시며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7월 첫날, 말씀과 기도로 승리함으로 열매가 익어가는 2021년 남은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6월 30일(수)
묵상 - [헌신]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2장 25~35절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이 금 송아지 형상을 숭배한 사태를 수습하는 한편, 문제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론과 대면했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그 우상을 숭배하는 큰 죄에 빠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와 맺은 언약 파기에 대한 모든 ‘책임과 죄책’을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렸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방자하다’는 ‘통제 불능’(out of control)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취한 일련의 조치에 이스라엘 백성이 순응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폭동이나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여집니다.
긴급한 상황에 처하자 모세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우선 여호와 편에 있는 자를 모두 그에게 나아오게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속한 레위 지파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 나아옵니다.
바꾸어 말하면, 레위 지파 사람들을 제외한 상당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은 끝내 회개할 기회를 저버린 것입니다.
모세는 언약을 파기한 책임과 징벌을 시행합니다.
그에게 나아온 자들에게 허리에 칼을 차고 이스라엘 진영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동하면서 각 사람이 ‘그 형제를, 친구를, 이웃을’ 치게 함으로써 방자한 자들을 처단합니다.
이 날 죽임을 당한 사람의 수가 삼천 명에 이릅니다.
모세는 회개할 기회를 저버리고 오히려 반란을 일으킨 방자한 자들을 처단하는 일에 동참한 레위 사람들에 대해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복을 빕니다.
모세가 그들을 축복한 이유는 동족을 죽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자들이지만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금 그들의 구속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그분의 소유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본연의 정체성과 순수성을 회복할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의 “큰 죄”를 “속죄”하기 위해 다시 시내산을 오릅니다.
정상에 오른 모세는 자기가 죄인인 것 마냥 여호와께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시인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 송아지’를 만들었다고 아뢰지 않고 “금 신”을 만드는 큰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과 함께 모의해서 만들어 낸 금 송아지는 단순한 우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간구하며, 만약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지 않으시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 즉 하나님의 백성 명부에서 자기 이름도 지워달라는 필사적인 기도를 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즉시 그들의 죄를 사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그의 이름이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다는 원칙적인 말씀만 하시고, 모세에게 돌아가서 이스라엘을 이끌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중재한다 해도 죄로 인해 깨어진 언약이 회복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쯤 되어 회개하겠다”는 태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절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영원한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죄 용서를 받는 것은 가게에서 물건 사듯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르셨던가를 생각해 보면 죄의 대가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며,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복음을 들은 자의 마땅한 반응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죄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021년 6월 29일(화)
묵상 - [아론은 변명하고, 모세는 분노했다]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2장 15~24절
산을 내려가는 모세의 두 손에는 두 개의 증거판이 들려 있었습니다.
언약 체결을 위한 이 두 개의 증거판은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시고 글자까지 친히 새겨 넣었습니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20:1~17에 기록된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이었습니다.
돌판을 들고 산을 내려가는 모세는 모세를 수행하기 위해 시내산 정상 인근까지 올라갔던 여호수아와 재회합니다.
약속을 『기억』하고 『기다림』에 성공한 여호수아가 있었다면, 『기억』과 『기다림』에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밑에서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요!
용맹한 전사의 귀를 가진 여호수아는 산 밑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싸우는 소리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7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낸 것을 모세가 한 일로 말씀하시고, 그들을 ‘내 백성’이 아니라 ‘네 백성’이라 칭하심은 그들이 여호와의 길을 떠나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산 밑에 다다른 모세의 눈에 금 송아지는 물론이고, 방탕한 춤판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왔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정작 부패의 참상을 목격한 모세는 크게 노해서 손에 들고 있던 증거판들을 던져 깨뜨립니다.
여호와의 진노를 진정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하려고 힘썼던 그가 이처럼 진노한 것은 시내산 언약이 파기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증거판을 던져 깨뜨린 것 역시 분을 참지 못해서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언약의 파기를 뜻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문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신속히 대처합니다.
우선 그들이 만든 금 송아지를 불사르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티끌처럼 부수어 갈고 빻아 그 가루를 시냇물에 뿌려 그 물을 이스라엘 백성이 마시게 합니다.
이것은 우상과 그 숭배의 흔적을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어서 모세는 아론과 대면합니다.
아론은 모세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손으로 금 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의 임재와 그 위상을 대체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행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고 질책합니다.
그러자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악함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며 오히려 모세에게 되묻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청한 것과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라고 말하며 그를 위협했다고 변명합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강압적인 요청 때문에 아녀자들에게서 금을 빼내어 가져오라고 해서 그들이 가져온 금을 불에 던졌더니 금 송아지가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둘러댔습니다(24절).
이런 사태의 모든 원인과 책임은 자신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으며, 금 송아지를 만든 것도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틀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정체성과 삶의 지향점까지 전부 왜곡시킨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입’(4:14~16)과 ‘대언자’(7:1)로 붙여 주신 동역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는 전 과정을 함께한 인물이 아닙니까!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구원 역사의 모든 순간을 함께 공유했고,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임재를 모세 다음으로 가까이에서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시간과 경험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이스라엘 자손이 부패하고 부정하게 되는 일에 앞장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관계를 파행으로 몰아가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이제 곧 건립될 성막에서 중추적인 직분을 맡아 감당할 대제사장으로 위임될 인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옵니다(25~31장).
이 불미스러운 사건은 모세의 중보와 여호와 하나님의 돌이키심으로 해결되는 듯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모세와 같기를 원합니다.
아론은 변명했고, 모세는 분노했습니다.
죄에 대해서 분노하고, 피 흘리기까지 죄와 맞서 싸우십시오(히 12장).
2021년 6월 28일(월)
묵상 - [기억하라]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2장 1~14절
출 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애굽기24장은 5월 마지막 날에 읽었던 말씀입니다.
6월을 시작하면서 시편 1~10편의 말씀을 보았고, 다시 출애굽기 25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성막에 관한 설명을 듣는 동안(출 25~31장),
시내산 아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을 앞세워 반역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임한 열 가지 재앙을 겪었습니다. 보았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기적과 함께 시작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호의를 경험했습니다.
출애굽한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시내 광야에 도착했고,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출 19:5)이라는 언약을 맺으면서 놀라운 현상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이처럼 하나님을 속히 떠난 걸까요?
비록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70인 장로들이 그 얼굴을 뵙기까지 했지만,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수많은 우상을 보며 살아온 자들입니다.
사실상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따랐던 게 아니라 보이는 사람, 모세를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모세를 대신할 ‘신’ 즉 우상을 만들라고 아론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마땅히 백성을 꾸짖고 모세를 기다렸어야 할 아론은 금고리를 빼어 가져오라고 해서 송아지 형상을 새겨 만들어 이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우상숭배와 참 신앙의 차이점이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참 신앙은 ‘손가락으로’ 친히 쓰신 돌판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우상숭배는 사람에게 금고리를 바치게 하고, ‘인간의 조각칼’로 새겨 신을 만들게 합니다.
아론은 우상 종교를 따라 절일(festival,명절)을 선언하고는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노는’ 전형적인 우상 종교의 방탕한 제의를 이끕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어떤 것으로 정의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성의 범조 내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조종하려 하고, 구체화하려는 어리석은 태도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응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신을 아론에게 요구했지만, 사실 그들이 죽느냐 사느냐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기억』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명령한 길에서 “속히 떠났다”고 하시며 금 송아지를 숭배하며 부패한 것에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규정하셨고, 그들은 진멸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들이 언약을 『기억』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하나님이 애굽에서 행하신 일, 홍해를 가르신 일,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하신 일,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잊었기에 죽을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죽이시면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진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생명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 손에 잡히지 않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체적인 지위나 부가 자기를 살게 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체험했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기보다 지금 손에 있는 것에 마음을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기억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신을 죽이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참 신앙을 회복하십시오.
[2021년 6월 27일 주일기도문]
6월 마지막 주일을 맞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21년 절반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전 세계를 두려움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게 하셨고, 백신 접종에 대한 여러 가지 염려가 많지만 이 또한 무사히 마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혼란한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욕망과 이기적인 탐욕과 무지와 비정함과 나태함의 켜켜이 쌓인 허물과 과오를 벗기고 또 벗겨 가며 발전된 나라와 민족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세대ㆍ권력ㆍ이념ㆍ문화 등의 갈등과 부조리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어리석고 무지한 저희 마음속에 뿌리내린 죄악의 근원을 뽑아주시고, 영적인 기갈에 허덕이는 저희에게 성령의 단비를 허락해 주옵소서.
지켜야 할 바를 지키게 하시고, 언약한 대로 행하게 하옵소서.
예배의 시간마다 성전을 찾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시고, 주어진 기업과 은사를 소중히 여기며 책임을 다하게 하옵소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남은 6개월, 열매가 익어가는 날들이 되기를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6월 25일(금)
묵상 - [정결하고 거룩하게]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0장 17~38절
제단과 회막 사이에 물두멍이 설치되었습니다.
제단을 지나 회막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제사장들뿐입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을 위한 안전장치였습니다.
그 앞에서 멈춰 자신을 씻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 임재 앞에 서기 위해 자신을 정결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늘 정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거룩한 관유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관유를 만드는 재료들은 향기롭고 좋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관유가 거룩한 이유는 재료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제조되고 사용되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몸을 씻고 나병이 치료된 것은 요단강이 어떤 주술적 힘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왕하 5:10).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 하신 것에 접촉하면 거룩하게 됩니다.
죄가 전염성을 가지듯, 거룩 역시 전파되고 확산됩니다.
바울은 성도와 세상을 거룩과 부정,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의 대결로 보았습니다(롬 7:21~24).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지만 우리가 거룩을 추구하고 거룩의 전파를 위해 힘쓴다면 그리스도 안에 생명과 성령의 능력이 역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관유와 향에 대해 분명히 경고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용도로 만들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관유와 향은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을 위한 것이기에, 이것을 침해할 수 있는 일말의 여지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과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 도구는 《기도와 말씀과 경건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가능하게 해 주는 훨씬 쉬운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쉬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거룩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온전케 하십니다.
죄인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룩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이들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에 만족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을 전하고 다른 이들을 거룩하게 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2021년 6월 24일(목)
묵상 -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 할지]
● 성경본문 : 출애굽기 30장 1~16절
제사장은 지성소 바로 앞까지 나아가 향과 불을 밝혔고, 모든 백성은 하나님께 생명의 속전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성큼 다가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할까요?
하나님은 분향할 제단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우리가 이 땅 위에 있지만 하나님을 향하고, 삶의 모습은 온전하며,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제단의 모양은 네모 반듯, 즉 온전했습니다.
하늘을 향해 뿔이 돋아 있습니다. 즉 땅에 있지만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각목으로 제작되었지만 금으로 덮였습니다.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고, 하늘을 향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분향단은 이동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단에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를 꿸 채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머물러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과 영광이 임재하는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이동식으로 제작하게 했습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민족이 어디로 이동하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함께하시려고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분향단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한 휘장 바로 앞에 두었습니다.
즉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에 분향단이 놓인 것입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향을 보충해 아름다운 향이 하나님 앞에 끊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소 안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향이 가득했고, 등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향과 빛이 가득한 공간이 성소였습니다.
하나님의 현현이 멈추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과 정성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성도의 헌신이 멈추지 않고 만나는 공간이 바로 성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계수된 자는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 속전의 규례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따릅니다.
생명의 속전을 바친 백성 중에 질병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으로 계수되어 그 책임을 감다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은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럴 능력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십니다.
생명의 속전은 모든 사람이 동일합니다.
아무리 부유해도, 아무리 가난해도 반 세겔씩 내야 했습니다.
생명의 속전을 지불하는 것은 철저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며, 종국에는 우리 삶의 결과를 가지고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내가 원하시는 방식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오직 온전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밤낮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하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2021년 6월 23일(수)
묵상 - [매일의 경건, 매일의 예배]
● 성경본문 : 출애굽기 29장 38~46절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사장으로 세워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진 사역이 무어인지를 살피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제사장’ 답게 살기 위해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 봐요!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진 이후에 그들이 감당해야 할 직무로 제시된 것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린 양 한 마리씩, 하루에 두 마리를 번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어린 양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고운 밀가루 1/10에바(1.8리터)를 소제로 드리고, 기름, 올리부유 1/4힌(0.9리터)과 같은 양의 포도주도 부어 드립니다.
제사 순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어린 양을 잡아 각을 떠서 놋 제단 위 그물(석쇠)에 올리고 제단 아래에서 장작을 태우는데, 거기에 밀가루와 기름을 부으면 기름에 불이 붙어 불꽃이 크게 올라갔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제물이 거의 다 탔을 때쯤에 포도주를 부어 포도주의 향기가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제단에서 올라가는 불꽃과 연기, 그리고 포도주의 향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상기시키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하는 『경건 생활』과 반복해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이것이 끊이지 않고 이루어지면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한결같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진정한 성도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면, 하나님이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시고, 하나님의 임재로 회막, 곧 성막이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회막이 거룩해진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제단과 제사장들까지 거룩해진다는 의미입니다.
회막이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만한 처소가 될 것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씀을 반복하시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이유가 바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별하고 거창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주하시는 곳이 거룩한 곳이 되고, 그곳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행해야 할 것은 바로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고, 매주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교회는 왜 이것밖에 안하느냐며 좀 더 특별한 일을 해보자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다른 사역도 할 수 있지만, 교회가 무엇보다 중시해야 하는 것은 매일, 매주, 매년 반복되는 경건 생활과 예배를 충실하게 감당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꾸준히 먹고 정기적으로 운동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루해 보이고 당장 효과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자신이 성장하고, 교회가 성장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렇게 날마다 자라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6월 22일(화)
묵상 - [속죄와 화목 그리고 헌신]
● 성경본문 : 출애굽기 29장 10~37절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죄를 씻으시고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대속의 제사가 꼭 필요했습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하는 제사는 ‘속죄제’입니다.
제물로 드릴 수 있는 가축 중 가장 큰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렸는데, 이는 속죄제가 가장 중요한 제사임을 암시합니다.
제사장으로써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속죄제를 통해 죄를 씻은 후에 번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바쳐진 존재가 됩니다.
그 후에 숫양 한 마리로 위임식 제사를 드리는데, 그 숫양의 피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바르는 독특한 의식을 진행합니다.
이는 이들이 위임식의 숫양과 함께 죽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죽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아남으로써 이들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피로 드리는 제사가 끝나면,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세 종류의 무교병을 하나님 앞에서 흔들고 제단에 불사릅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께 떡을 드린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이어서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흔들어 요제로 드리는데 이는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제물을 잡아 그 기름과 가슴을 가져오면 제사장이 가슴을 요제로 삼아 자기 몫으로 남기고, 그 기름을 제단에 태웁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에는 모세가 제사장 역할을 했으므로 제물의 가슴이 모세의 분깃이 된 것입니다.
화목제는 제사장들과 하나님이 친밀한 관계 가운데 들어가게 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역보다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즉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위임식 제사가 끝나면 아론과 아들들은 7일 동안 성소에 머물며 첫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제사장들은 그 기간에 매일 제단에서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고, 그 기물에 매일 제단에서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고, 그 기물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7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듯이, 천지 만물을 상징하는 성막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하는 사역이 7일 동안 이어진 것입니다.
그동안 제사장들은 그 제물의 고기와 소제물로 바쳤던 떡을 먹는데, 이는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음을 선포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만 그것을 먹을 수 있고, 그 고기나 떡이 다음 날 아침까지 남으면 불살라야 했습니다.
이렇게 제사장들은 비록 사람이지만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의 자격을 가진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며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용서받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고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2021년 6월 21일(월)
묵상 -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 성경본문 : 출애굽기 29장 1~9절
우리는 눈으로 판단합니다.
보이는 대로 인식하고, 보이는 것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하는 제사장들은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온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온전케 해서 하나님 앞에 설수 있을까요?
제사장이 성결해지기 위해 필요한 예식이 있었습니다.
그 예식은 그들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1절).
거룩한 옷을 입고(28:2), 거룩한 흉패를 붙이고(28:29), 기름을 부어 거룩해졌지만(28:41) 아직도 하나님 앞에 서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의복으로 겉을 가리고 치장할 수는 있지만, 마음과 영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음과 영혼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위임식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모두 흠 없고 순전한 상태여야 합니다(1~3절).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최상의 것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오염되지 않은 순전한 상태의 제물만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삶으로 당신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 앞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겼습니다(4절).
물로 씻는 행위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자신을 씻어 내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단지 용서해 달라는 한마디로 모든 속죄와 회개를 끝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통회와 삶의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이제 위임식을 위한 준비는 끝났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의 의복을 입습니다(5~8절).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빠짐없이 입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제의 절차를 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안과 밖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준비와 정결함은 우리의 태도와 모습을 더 정갈하게 만들고, 바른 자세와 다잡은 옷매무새는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른 자세와 태도와 모습을 갖추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첫 걸음입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졌습니다(9절).
그들의 직분은 하나님이 정하셨기에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특별한 자격을 가졌거나 우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특별한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 자격도, 공로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아시고,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고, 밖을 정갈하게 다듬어 내면을 안정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마음을 품도록 힘쓰는 것은 물론이고, 선한 말과 친절한 태도와 단정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힘쓰면서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랍니다(벧전 2:9).
[2021년 6월 20일 주일기도문]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죄악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능력의 말씀을 의지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우리의 시선이 주님만을 향하기를 원합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최고의 응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따라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불법과 편법이 지름길처럼 보여도 따라 걷지 않게 하옵소서.
특정한 죄를 반복적으로 범하는 육신의 정욕의 문제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느끼는 달콤한 미혹과, 악을 행한 후에 내뱉는 후회스러운 한탄의 반복이 우리의 삶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성숙하고 아름다운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 자랑하게 하시고, 주를 향한 믿음만이 천국을 향한 오직 한 길임을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영분별의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을 얻게 하셔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터와 직장과 가정과 교회에서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인생을 치료하십니다. 육신의 약함을 고쳐주시고, 나약한 믿음을 일으켜 세워주옵소서. 도전하고 전진하게 하옵소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